달빛과 글쓰기


 새벽 두 시 오십 분, 창문 틈으로 환하게 비치는 달빛에 기대어 아이 기저귀를 갈다. (4343.11.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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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이 - 이와사키 치히로의 자연의 아이들, 초등학생 그림책 10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다치하라 에리카 글, 백승인 옮김 / 달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하루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 이와사키 치히로·다치하라 에리카, 《가을 아이》(달리,2005)



 저녁이 깊어져 달빛이 환하게 비칠 무렵이면 아이를 부릅니다. 아이를 부르기 앞서 으레 밖으로 나와 멧기슭 쪽으로 달려가서 쉬를 눕니다. 멧기슭 도랑에서 쉬를 눌 때면 아이는 아빠를 따라 바깥문을 열고 내다보면서 “아빠, 쉬?” 하고 묻다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빠, 달!” 하고 외칩니다. “그래, 달이지? 달이 환하지? 이제 들어가자.” 하고 말하며 아이하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방으로 들어갈 때에 그림책 두 권쯤 챙깁니다. 아빠가 먼저 이불을 뒤집어쓰며 눕습니다. 아이를 부릅니다. 아이는 그냥 혼자 뒹굴고 싶어 안 들어오기도 하지만, 아빠 팔을 베개 삼아 눕고 싶기도 합니다. 팔베개를 하며 그림책을 함께 봅니다. 이러다가 일어나고, 또 눕고 다시 일어나기를 끝없이 되풀이합니다.

 저녁에 그림책을 읽힐 때마다 느끼지만, 아이가 씽씽쌩쌩 놀 때에는 그림책을 읽히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어느 만큼 신나게 논 다음 눈이 가물가물할 때에 읽혀야지 싶습니다. 그러나 눈이 가물가물거리다가도 어느 때에 번쩍 깨어나 다시금 놀곤 합니다. 불을 다 끄고 어른들이 모두 누웠다 해서 잠드는 아이는 아닙니다. 지난밤에는 세 시에 깨어나 두 시간 남짓 잠들지 않으면서 노래를 하고 아빠를 부르고 응가를 한다 하고(그러나 응가는 안 했습니다) 끝없이 놀아대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만큼 하루가 다르게 뛰놀고파 하는구나 싶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싶어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픈 애 엄마에다가 씩씩한 아이 하나를 애 아빠 홀로 건사하기란 틀림없이 벅찹니다. 그런데 튼튼한 어른 두 사람일지라도 아이 하나 돌보기란 만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함께 살아가면 한결 수월하고, 다른 살붙이가 한둘쯤 있다면 제법 짐을 덥니다. 그리고, 집안 살붙이가 여럿일 때에는 일거리를 여럿이 나누어 맡는다기보다 ‘집안 살림을 하는 가운데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놀라운 모습’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즐겁거나 기쁘겠다고 느낍니다.


.. 실뜨기를 가르쳐 준 사람은 할마니였습니다. 리본 매기를 가르쳐 준 사람도 할머니였고, 세 가닥 땋기를 가르쳐 준 사람도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의 손은 언제나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 가을에 피는 꽃 이름과 나무 열매의 이름을 가르쳐 준 할머니. 도토리 팽이랑 억새 초롱을 만들어 준 할머니. 할머니는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 할머니는 이제 여자 아이처럼 뛰어오르거나 달릴 수 없습니다. 멀리 걸을 수도 없습니다. 너무 늙어서 다리가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  (15∼17쪽)


 어제는, 아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느 날처럼 신나게 놀아대다가 까무룩 잠들었습니다. 아빠가 껍질을 벗겨 준 귤 한 알을 들고 한쪽씩 뜯으며 쪽쪽 빨거나 아빠한테 먹여 주며 마지막 놀이를 하더니 그예 이 모양 그대로 곯아떨어졌습니다. 귀엽게 잠든 아이를 잠자리에 눕히며 아빠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요 며칠 아빠가 몸이 퍽 고단해 기운을 차리느라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읍내 장마당 마실을 다니지 못했는데, 이듬날 읍내 장마당에는 꼭 자전거수레에 태워 마실을 해야겠다고. 장마당을 휘 한 바퀴 돌며 아이한테 찐빵도 사 주고 까까이든 사탕도 사 주어야겠다고. 아이가 잘 먹는 도토리묵 한 모를 사고, 귤이랑 능금이랑 한 봉지씩 장만해야겠다고.

 그림책을 볼 때이든 길을 걸을 때이든 자전거만 보면 ‘자전거!’ 하고 외치는 이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 몸이 달 텐데, 아빠가 튼튼하지 못하면 날마다 서운한 빛으로 하루를 마감하겠지요. 아빠이든 엄마이든 몸이 조금 더 튼튼해서 날마다 멧등성이도 타고 자전거도 타야 훨씬 즐겁게 하루를 보낼 테지요.

 여기에 할머니랑 이모랑 삼촌이랑, 또는 큰아빠까지 함께 살아간다면 여러 사람 손에 따라 여러 가지 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으니 더 신날 테고요. 시골집이라 또래 동무 만나기 더더욱 힘들지만, 이웃한 이오덕자유학교 언니 오빠들이랑 얼크러지는 날이면 밥먹기조차 잊으며 참 잘 뛰어다니며 놉니다. 놀려고 태어났으며, 놀고 싶어 하는 아이이니, 집안에서 논다며 이 책 저 책 이 물건 저 물건 마음껏 늘어놓을 때에는 함부로 꾸중하지 말아야지 싶습니다. 마음껏 놀도록 한 다음 다른 놀이를 하려 할 때에 ‘네가 어지른 이 물건들 치우고 놀아야지.’ 하고 한 마디를 하면서 함께 치워야지 싶습니다.


.. 다음날부터, 시오리는 (고양이) 미미에게 꼭 맞는 예쁜 조끼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정성스럽게 짜도, 미미는 금세 누더기로 만들어 버릴 거야. 고양이는 조끼 입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엄마가 웃습니다. “입혀 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에요.” 시오리는 그렇게 말하며, 부지런히 뜨개바늘을 움직입니다. “조끼가 다 되면 장화도 만들어야지. 미미의 발은 네 개니까 장화가 두 켤레 필요하겠다. 예쁘게 만들어 줄게. 기다려, 미미야.” 시오리는 뜨개를 뜨면서 말했습니다. 아직 아무도 미미의 비밀을 모릅니다 ..  (30쪽)


 그림책 《가을 아이》를 아이랑 함께 읽습니다. 아이는 아빠 팔베개를 한 채 함께 드러누워 읽습니다. 《가을 아이》는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에 다치하라 에리카 님이 글을 붙여 《봄 아이》 《여름 아이》 《겨울 아이》가 나란히 함께 나온 그림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산골자락에서 가을을 보내는 아이하고 가을 이야기를 나누려고 네 가지 가운데 《가을 아이》를 먼저 뽑아 읽습니다. 이 그림책들은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 숨을 거둔 다음 어린이문학을 하는 분이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을 살피며 글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와사키 치히로 님은 1974년에 숨을 거두었고, 이 그림책은 일본에서 1985년에 나왔거든요.

 《가을 아이》 마지막 쪽을 보면, 뜨개질을 하는 계집아이 그림이 나옵니다. 이제 고작 초등학교 낮은학년쯤 되어 보이는데 큼직한 뜨개바늘을 꽤 잘 놀립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무렵에도 학교에서 남녀 가리지 않고 실과 공부를 하며 뜨개질을 익혔습니다. 2학년은 아니었지 싶고, 3학년부터 뜨개질을 했다고 느낍니다. 바느질은 2학년부터 했나, 바느질도 3학년부터 했나 싶어요. 저는 국민학교 다닐 때에 바느질을 하며 쓰던 반짇고리를 아직 잘 건사해 놓고 있습니다. 그때 무슨 마음이었다고 딱히 말할 수 없지만, 나중에 커서 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가 되면, 내 아이 어버이로서 내가 어린 나날 바느질을 익히며 쓰던 이 반짇고리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즈막에 애 엄마는 한창 뜨개질을 하는데, 뜨개질을 하며 쓸 바늘을 ‘그럭저럭 좋은 녀석’으로 삼십만 원 웃도는 값을 치르며 장만했습니다. 그럭저럭 좋은 녀석이니 아직 바늘을 다 장만하지 않았어도 이만한 값이라 합니다. 꽤 좋은 녀석이라면 바늘을 다 장만하기까지 백만 원이 넘겠지요. 바늘 값을 치르느라 허리가 휘청휘청하는데, 애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이 바늘은 우리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바늘이에요.’

 하기는. 500원짜리 값싼 바늘은 장마철만 되어도 곰팡이가 핍니다. 그럭저럭 좋은 녀석쯤 되면 장마철이고 뭐고 곰팡이 걱정이 없으며 바느질하는 손이 덜 아프답니다. 애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곰곰이 되새깁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값싼 바늘을 너무 값싸게 다루기만 하지만, 나라밖에서는 뜨개바늘쯤 되면 ‘아주 좋은 녀석으로 알뜰히 장만해서 아이들한테 두고두고 물려주어 쓰도록 한다’더군요. 그래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우리들은 아이와 아름다이 즐길 좋은 책을 장만해 놓아야 하고, 아이가 나중에 기쁘게 물려받아 쓸 만한 뜨개바늘이며 냄비이며 수저이며 살림살이를 갖추어야겠지요. 한 번 쓰고 버릴 물건이 아니라, 쉰 해 백 해 즈믄 해를 보낼 만큼 튼튼하고 좋은 살림살이와 연장을 차곡차곡 건사해야겠지요. 더 많은 돈이 아닌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살림살이를, 더 큰 집이나 더 빠른 자동차가 아닌 한결 믿음직하며 참다운 연장을, 우리 조그마한 멧기슭 집에 하나둘 마련해야겠지요. 즐거이 살아갈 만한 터전을 곱게 일구어야지, 돈이 될 만한 땅을 잔뜩 사들이는 어버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림책 《가을 아이》를 빚은 이와사키 치히로 님은 인권운동가로 일하며 벌이를 못하는 남편에다가 병든 어머니에다가 나이든 시어머니랑 시아버지까지 모시는 가운데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독신이라면 보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릅니다. 비록 몸이 고단할지라도 나는 번잡한 나의 가정 속에서 인간으로서 균형 잡힌 감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야말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나는 소중한 인간관계를 뿌리치고서 어린이를 그릴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그림책에 딸린 안내종이에 적힌 말).”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고작 살붙이 둘을 돌보면서 글을 끄적거린다고 용을 씁니다. 이듬해에 둘째가 태어나면 살붙이 셋을 돌보며 글을 끄적거려야 하겠지요. 아픈 옆지기하고 신나게 놀고픈 어린이를 돌보는 나날이란 참 힘겹습니다. 퍽 벅찹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겹고 벅차기에 날마다 새로 기지개를 켜며 새벽 일찍 일어나 글 몇 자락 쓰자고 다짐을 하고, 아침부터 밥하고 찌개 끓이며, 설거지에 뒤치닥거리에, 아이하고 놀아 주기에, 집안 치우기에, 빨래에, 무엇무엇에 힘을 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3.11.20.흙.ㅎㄲㅅㄱ)


― 가을 아이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다치하라 에리카 글,백승인 옮김,달리 펴냄,2005.8.5./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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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쥐와 글쓰기


 세 해 남짓 비어 있던 산골집에 들어왔더니 이 빈 집에서 쥐가 신나게 놀고 있더라. 이들 쥐를 쫓아내고 사람이 들어와서 지낸다. 한 달쯤 지날 무렵 멧쥐가 한 마리 두 마리 다시 들어와 벽 안쪽을 갉으며 돌아다녔고, 이들 멧쥐를 한 마리씩 끈끈이로 잡았다. 첫 멧쥐는 금세 잡혔으나 둘째 멧쥐는 이곳저곳에 구멍을 파며 쉬 잡히지 않다가 끝내 잡혔다. 그러고 한 달 반쯤 멧쥐는 다시 들어오지 않더니 어느새 또다른 멧쥐가 벽으로 기어든다. 이들 멧쥐는 벽에서 새끼까지 깐 듯하다. 구멍을 다 막았는데 어디로 다니나 싶더니, 예전에 팠던 구멍을 막고 다시 막았는데 그 자리를 또 뚫었다. 제 발로 곱게 나가 주기를 빌지만, 바깥보다 따스하며 아늑할 벽 안쪽을 섣불리 버리지는 못한다고 느낀다. 게다가 벽 안쪽뿐 아니라 집안까지 마실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이 집이 사람 집인지 쥐 집인지 알 노릇이 없다. 이번에도 하는 수 없이 끈끈이를 놓는다. 서너 마리쯤 있는 듯한 멧쥐 가운데 한 마리가 금세 잡힌다. 끈끈이 하나를 더 놓는다. 다른 쥐들은 잡히려 하지 않는다. 아마, 한 번 붙잡힌 자리로는 좀처럼 안 나올 테지. 다른 데에 몰래 구멍을 팔는지 모르지. 어젯밤 끈끈이로 잡은 쥐는 땅을 파고 묻어 흙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할는지, 쓰레기봉투에 담아 읍내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4343.11.2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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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귤과 글쓰기


 아이가 귤을 하나씩 까서 아빠 입에 넣어 먹인다. 겉껍질은 아빠가 벗겨 주었다. 아이는 열 알 즈음 하나로 뭉쳐 있는 귤을 제 작은 손으로 하나씩 깐 다음 제 입으로 쪽쪽 빨다가 더 빨아먹을 수 없을 때에 아빠 입에 넣기도 하고, 그냥 안 빨아먹고 넣기도 한다. 이러다가 어느 때에 뚝 끊긴다. 모로 누워 책을 읽던 아빠는 아이가 왜 뚝 그쳤는지 모른다. 엄마가 옆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본다. 아이는 오른손에 귤을 들고 입에는 귤 한쪽을 문 채 큰베개에 엎드려 곯아떨어졌다. 이른아침부터 일찌감치 깨어나 낮잠 없이 놀더니 저녁을 먹고 이내 곯아떨어졌구나. 곯아떨어진 채 입을 오물오물거리는 아이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살며시 들어 자리에 눕힌다. 기저귀를 채워도 꼼지락거리지 않는다. 아주 깊이 잠들었구나. 한참을 이 모습 그대로 두다가 손에서 귤을 빼내고 입에서 오물거리다가 만 귤을 꺼낸다. 둘 다 아빠가 먹는다. (4343.11.2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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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기와 글쓰기


 인천에서 살다가 또다시 인천을 떠나 산골마을로 거듭 들어가서 지낸다. 인천에서 지낼 때에 늘 글을 쓰다가 또다시 인천을 떠나 산골마을에 들어와서도 글을 쓴다. 이제는 동네마실이 아닌 인천마실이 된다. 인천 골목동네를 찾아가자면 인천나들이가 된다. 혼자서 인천으로 찾아와도 만만하지 않고, 식구들 다 함께 찾아와도 꽤 벅차다. 시골집으로 옮긴 지 얼마나 되었나 싶지만, 시골집에서 지내는 느낌이 하루하루 쌓이면서 도시로 마실을 나올 때마다 몸이 퍽 무겁고 힘들다. 도시로 식구들 함께 나들이를 나왔을 때에는, 시골집에서 하듯 으레 새벽 서너 시쯤이면 홀로 조용히 일어난다. 촛불이든 작은 불이든 켜고 책을 읽거나, 작은 셈틀을 꺼내어 글을 쓴다. 올해에는 모기가 없다고들 하지만 도시로 나들이를 나와 바깥잠을 자는 우리들은 모기한테 시달린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하느라 모기장 밖으로 나와서 움직이는 애 아빠는 모기한테 좋은 밥이 된다. 모기들은 살 판이 나고 애 아빠는 죽을 맛이 난다. 그렇다고 더 드러누워 잠들고 싶지는 않고, 더 드러누워 잠들 수 없기도 하다. 조금 더 바지런을 떨어 글줄 하나라도 끄적이며 밥벌이를 삼아야 한다. 그러나, 애써 써대는 글줄이 모두 밥벌이가 되지는 않는다. 입으로는 밥벌이를 하느라 글을 쓴다고 외기는 하나, 글을 쓰는 동안에는 이 글을 내가 내 삶으로 삭여내어 적바림할 이야기 하나로만 여긴다. 정작 따지고 본다면, 밥벌이를 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 내 삶을 적바림하고 싶어 쓰는 글이다. 이런저런 글 가운데 다문 한 가지쯤 밥벌이 구실을 할 글이 나올까 말까 할 뿐이다. 살림돈은 바닥을 보이고, 써대는 글은 돈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따로 살림돈을 벌어들일 일거리를 찾지 않을 뿐더러 찾을 수조차 없다. 집식구를 돌보고 아이하고 복닥여야 하니까. 홀로 느긋하게 살아가며 글을 써대던 지난날을 날마다 그리워 한다. 그렇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굳이 예전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 살림과 글쓰기와 아이키우기로 고단하다 못해 모기한테까지 밥을 주어야 하는 몸이지만,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며 지난날 내 글을 돌아보노라면 온통 고치거나 손질할 곳투성이라고 느낀다. 날마다 새 글을 몇 꼭지씩 쓰기는 하지만, 예전에 쓴 글을 몇 꼭지씩 고치거나 손질한다. 아마, 앞으로 몇 해쯤 뒤에는 오늘 내가 쓴 글을 또 고치거나 손질해야 할 테지. 그런데 집식구하고 부대끼거나 아이하고 복닥이지 않으며 홀로 살아가던 때에는 내 예전 글을 고친다든지 손질한다든지 하지 않았다. 늘 새 글을 더 많이 쓰느라 몹시 바빴다. 그저 쏟아내기만 하고, 그예 쏟아붓기만 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쏟아내고 쏟아부었기에 꽤 많다 할 만큼 자료를 모은 셈인데, 자료는 많아도 잘 갈무리되지 못했다면 나부터 옳게 쓰기 힘들다. 그러니까, 요즈음은 하루에 두어 꼭지 글을 가까스로 일구는 고달픈 나날이라 하지만, 이렇게 가까스로 영글어 놓은 두어 꼭지 글은 앞으로 한동안 더 고치거나 손질할 곳이 그리 안 많을 수 있다. 어쩌면 더 손볼 구석이 없을 수 있겠지. 이제껏 쓴 글은 거의 머리를 써서 글을 일구었다면, 요즈음 쓰는 글은 온몸을 바쳐 글을 영글어 놓으니까. (4343.8.14.처음 씀/4343.11.20.흙.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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