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고 싶어서, 이런 사진을 찾아본다...

 - 2010.7.26. 인천 남구 도화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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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께부터 아주 단추질을 잘 해낸다. 아주 놀랍다. 그러나 단추질을 잘 해내면서 이 짓만 하려고 든다. -_-;;;;

 - 20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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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


 다가오는 주말에 옆지기 아버님이랑 어머님이 충주 산골집으로 찾아오시기로 했다. 아이가 날마다 어지르는 집꼴이라 하지만, 아이 아빠가 책을 여기저기 늘어놓으며 어지르는 집꼴이기도 하다. 나부터 집을 치워 놓아야 한다. 오늘은 그림책 한 덩어리를 걸레로 먼지를 닦아내어 비로소 치운다. 지난주에 제주마실을 하며 사들인 그림책 가운데 2/3쯤 되는 큰 덩어리이다. 아직 1/3을 더 닦아야 한다. 저녁 열 시 조금 넘어 잠들었다가 새벽 두 시에 깬다. 아이가 기저귀에 오줌을 누고 나서 끙끙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벌떡 깨어 기저귀를 갈았다. 다시 자리에 누우려 하다가 일어선다. 문을 열고 멧기슭으로 나와 도랑에 쉬를 눈다. 보름달이 무척 밝다. 보름달이 무척 밝아 마당이 아주 환한데, 이렇게 밝은 달빛인데에도 별이 꽤 많이 보인다. 그렇구나. 보름달에도 시골에서는 뭇별을 올려다볼 수 있구나.

 다시 자리에 누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벽을 갉는 쥐 소리를 듣는다. 엊그제 쥐를 네 마리 잡았는데 또 새로운 쥐가 기어들었나. 참말 끔찍하구나. 너희들은 왜 이렇게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오려고 하니. 흙땅에 굴을 파며 따스히 지내면 되잖니.

 쥐가 벽을 갉는 자리를 툭툭 두들긴다. 꿈쩍을 않고 자꾸 갉는다. 히유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벽에 기댄다. 이내 갉는 소리가 뚝 끊긴다. 응? 뭐니? 한참을 그대로 있는다. 쥐 소리가 사라진다. 뭘까? 한참을 더 이렇게 있으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벽을 아무리 두들긴들 쥐한테는 조금도 무서울 노릇이 없다. 두들긴다고 내가 이 벽을 뚫을 수 없으며, 이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나 벽에 머리를 기대어 숨소리를 낸다면, 이 쥐로서는 벽을 갉아 구멍을 내어 뾰롱 하고 튀어나오고 싶어도 바로 코앞에서 무시무시한 사람이 저(쥐)를 잡으려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고 여기며 얼른 내뺄 노릇일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내 바보스러운 생각이다.

 큰방 등불을 켠다. 조그마한 불을 켠다. 지난주 제주마실을 하며 샀던 책 가운데 1/10쯤을 책상맡에 꺼내어 놓는다. 하나하나 넘기면서 생각에 잠긴다. 차근차근 읽는다. 새벽 두 시 남짓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어느새 새벽을 꼴딱 새운 꼴이다. 이러다가 잠자리에 들면 아침 여덟아홉 시까지 곯아떨어진 채 못 일어나지는 않을까 근심스럽다. 애 아빠 주제에 또 바보스러운 짓을 했다. 이러면 아침에 아이가 깨어나서 얼마나 힘들거나 심심해 하겠는가. 애 엄마는 또 얼마나 고되겠는가.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덜 읽고,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린다. 새벽내 다시 들추었던 〈공씨책방〉 공진석 님 책 《옛책, 그 언저리에서》를 곱씹는다. 쉰 나이에 안타깝게 숨을 거둔 공진석 님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여느 헌책방 일꾼이라면 다 어슷비슷한데, 쉰 줄 나이는 ‘한창 일할 때’라고 여겨 버릇한다. 아무리 많은 책짐이라 하더라도 거뜬히 들어 나를 만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공진석 님은 당신 몸이 아주 튼튼하다고, 또는 꽤 씩씩하다고 보다가 그만 어느 결에 고꾸라지지는 않았을까. 가끔은 느긋하게 몸을 눕히기도 하고, 때로는 택시도 타고 다른 사람 자가용도 가볍게 얻어타면서 몸을 쉬기도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남 얘기라기보다 내 얘기로 되씹는다. 나부터 글을 쓴다느니 책을 읽는다느니 하면서 새벽을 지새우다가는 서른여섯밖에 안 되는 이 나이에 골로 갈 수 있다. 할 일이 많다고 하더라도 몸을 눕혀야 한다. 밥벌이가 걱정되어 이 일 저 일 붙잡으며 잘 팔리지 않는 글을 끄적이거나 책을 엮는다며 글을 갈무리하는 일도 좀 쉬어야 한다. 그래, 내가 내놓는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 뭐 하러 그렇게 아득바득 용을 쓰면서 책 하나 더 내놓으려고, 글 한 줄 더 쓰려고 하는가. 잘 팔린다 한들 이를 악물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낼 까닭이란 없다. 내 밥그릇만큼 살아가자. 내 밥그릇만큼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살자. 나중이 아닌 오늘을 생각하자. 나중에 뜻을 이루거나 꿈을 꽃피운다는 생각이 아니라, 오늘 내 살붙이를 헤아리고, 머잖아 태어날 새 목숨붙이를 살피자. 나 혼자 나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두 식구뿐 아니라 세 식구를 고달프게 한다면, 내가 좋아한다는 내 일이란 무슨 보람이 있는가. (4343.11.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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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글쓰기 2


 아름다운 문학을 읽을 때면 으레 나 또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아니, 아름다운 문학을 읽었기 때문에 내 어줍잖은 글에 아름다운 결 하나 살포시 내려앉는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결은 이내 사그라든다. 내 삶이 온통 아름다운 빛깔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야 내 손으로 아름답다 느낄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문학을 빚은 사람은 당신 삶을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웠을 뿐 아니라, 언제나 아름다운 삶으로 하루하루를 알뜰히 일구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삶일 때에 아름다운 문학을 온사랑 쏟으며 일구는데, 이 아름다운 문학을 몇 가지 읽었다고 내가 섣불리 아름답다 싶은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다만, 아름다운 문학을 읽은 뒤끝이 남아 한두 줄 엉성하게 끄적이며 멋을 낼 뿐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문학을 읽고 난 뒤에는 이런 엉성한 멋내기를 해 보아도 즐겁다. 아름다움이란 참 아름다운 선물을 베푼다. (4343.11.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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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1.20.
 :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지 않는다



- 토요일 무극 장날에 맞추어 읍내 마실을 다녀오기로 한다. 이른겨울을 눈앞에 두었기에 한낮에 길을 떠나 일찍 돌아오자고 생각한다. 12시 27분에 집에서 나서다.

- 집에서 길을 나서기 앞서 읍내 마실은 좀 머니까 체인이며 자전거며 꼼꼼히 살피고 손질한다. 날이 추운 탓인지 수레를 달고 시골 오르막을 낑낑대며 오르다 보면 기어가 잘 안 먹곤 한다. 가는 길은 괜찮아도 돌아오는 길에 꼭 말썽이 생기곤 한다.

- 조금 쌀쌀하지만 반바지를 입고 길을 나선다. 긴바지를 입고 바지 아래쪽을 끈으로 묶곤 했는데, 한창 달리다 보면 땀이 차며 덥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말든 수레를 더 잘 끌며 오갈 수 있도록 차려입어야 한다. 예순터 고개를 오를 즈음, 처음 길을 나설 때 생각했듯이 등이며 다리이며 후끈후끈하면서 땀이 흐른다.

- 멧기슭 우리 집에서 무극 읍내(금왕읍)로 가는 길은 네찻길. 이 네찻길을 오가는 차는 그리 안 많지만 우리 시골마을에서는 차가 가장 많이 오가는 길이다. 그래 보았자 도시로 치면 아주 한갓진 길이라 할 텐데, 신호에 따라 한 차례 차가 씽 지나가고 나면 귀가 먹먹하다. 아이도 아빠하고 마찬가지인가 보다. 차들이 씽 하고 지나간 뒤에 “빠방이 시끄러워.” 하고 한 마디 한다.

- 자동차 흐름이 끊어지고 아주 조용히 시골길을 달릴 때면, 길가 풀숲과 안쪽 산골짝에 깃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잘 들린다. 그런데 풀숲에 있던 자그마한 새들은 자전거가 달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깜짝깜짝 놀라는지,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내뺀다.

- 예순터 고개를 다 오르고 내리며 바야흐로 무극에 들어선다. 읍내에 들어설 즈음, 고등학생 둘이 길가를 나란히 거닐며 수다를 떨다가 문득 과자봉지를 휙 내던지는 모습을 본다. 참으로 아무렇지 않게 휙 내던진다. 갑작스런 일이라 멍하고 얼떨떨하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손쉽게 과자봉지를 길에 함부로 버릴 수 있는가.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지? 이 아이들은 집에서 어떻게 지내지?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이 아이들을 낳아 기른 어버이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 무극 읍내 하나로마트에 들러 보리술 한 병을 산다. 무극은 장날이어도 하나로마트에 사람이 드글드글하다. 음성 읍내 하나로마트는 장날이면 하나로마트에 사람이 거의 없는데. 무극 읍내는 하나로마트 코앞에 높직한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으니, 이 아파트숲 사람들이 장마당까지 걸어가기 귀찮거나 자동차를 타고 가도 대 놓기 마땅하지 않아 하나로마트로만 가려나. 그러나 무극 읍내 개천가에는 차 댈 자리가 아주 넓다. 시골 읍내에 살아도 아파트가 살림집이라면 마트에 다니기가 수월하고, 장마당 둘러보기는 익숙하지 않으려나.

- 도토리묵을 사고 두부를 한 모 사며 찐빵을 이천 원어치 산다. 오늘은 찐빵이 하나도 따뜻하지 않다. 아이는 찐빵을 두 입 베어물다가 더는 안 먹고 아빠 먹으라고 자꾸 내민다. 따뜻하지 않은 찐빵은 아이가 먹기에도 맛이 없구나. 아빠가 다 먹어 준다.

- 짐차에 과일을 잔뜩 실은 아저씨가 파는 능금보따리를 하나 고른다. 오천 원짜리를 고르는데 능금 몇 알에다가 감하고 귤을 덤으로 얹어 준다. 고작 오천 원어치를 살 뿐인데 이삼천 원어치를 더 얹어 주는 셈.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 아이 엄마가 사 오라 한 밤을 한 봉지에 사천 원을 주고 장만한다. 약국에 들러 쥐끈끈이 두 봉지 천 원에 산다. 저잣거리에서 그때그때 빚어서 파는 물고기묵을 오천 원어치 산다. 양파 작은 묶음을 삼천 원에 산다. 양파하고 능금은 수레 뒷칸에 싣는다. 가방이 묵직하다.

- 집으로 돌아오는 예순터 고개는 한결 힘겹다. 그렇지만 읍내로 올 때에는 제법 수월했으니 마땅한 노릇이지. 생각해 보면, 집에서 읍내로 나올 때에는 빈 가방이니까 조금 더 힘겨워도 괜찮고,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가방이 꽉 차니까 길이 한결 수월하면 좋으련만. 이쪽 읍내로 가든 저쪽 읍내로 가든, 언제나 집에서 나설 때에는 길이 수월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더 비알진 고개를 더욱 힘겹게 올라야 한다.

- 읍내를 벗어나 예순터 고개 두 번째 고비를 오를 무렵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읍내 장마당부터 퍽 졸렸는가 보구나. 그래도 과일장수 아저씨가 건넨 작은 귤 두 알을 두 손에 하나씩 꼬옥 쥔 채로 잠들었다. 얼굴과 등판으로는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싱긋 웃는다. 고갯마루에 닿아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가 덮는 담요하고 두툼한 겉옷을 잘 여미어 놓는다. 수레 덮개를 내린다. 긴소매 웃옷 한 벌을 벗는다. 반소매 차림으로 달린다. 마지막 고빗사위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을 씽 달리는데 퍼더덕 소리가 나면서 덮개가 말려 올라간다. 덮개를 제대로 안 덮었구나. 이제 막 잠든 아이가 춥겠다. 내리막에서는 좀 신나게 달리며 땀을 식히고 싶었으나 빠르기를 줄여 천천히 내려온다.

- 마을 어귀에 있는 보리밥집에 들른다. 땀도 식히고, 아이 엄마가 먹을 김치를 얻으며, 아이 까까를 하나 사기로 한다. 아이 까까는 보리건빵 한 봉지. 매운 밥을 못 먹는 나는 김치를 손대지 못하지만, 아이 엄마랑 아이는 김치를 무척 잘 먹고 좋아한다. 오늘도 김치를 고맙게 얻는다. 내가 김치를 못 먹다 보니, 집식구 둘이 김치를 좋아하는 데에도 김치를 담글 생각을 못한다. 매운 것은 건드리기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몸이 아픈 아이 엄마가 김치를 담글 수도 없고.

- 논둑길로 접어든다. 논둑길로 접어들어 달리면 좋다. 마주 달리는 차가 아주 드물게 있는데, 이때만 빼고는 이 논둑길은 언제나 자전거 차지라서 호젓하다. 호젓한 길을 달리며 생각에 잠긴다. 읍내를 다녀오며 달린 네찻길 국도에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자동차가 그리 많이 오가지는 않아도 이 자동차들이 오가며 내는 소리 때문에 몹시 시끄러우니까 생각이고 뭐고 없다. 조용하고 호젓한 시골길이나 논둑길을 달릴 때 비로소 무언가 생각을 할 수 있다. 자동차로 시끄럽거나 바쁜 국도라든지 도심지에서는 차소리 때문에 고단하기도 하지만, 자전거가 차에 치일까, 또는 신호라든지 길가에 마구 대 놓은 자동차 때문에 다른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한다. 도시에서는 나 스스로 차분히 자전거를 즐기지 못하고, 조금 더 느긋하게 자전거를 달릴 수 없다. 더군다나 어디에선가 불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가 좀 많은가.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자전거를 고달프게 하고, 오토바이는 오토바이대로 자전거를 고단하게 한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 빨리 달릴 생각에 매여 있다고 느낀다. 더 빠르고 더 곧은 길을 바란다고 느낀다. 더 느긋하며 더 호젓한 찻길을 바라는 자동차꾼이나 오토바이꾼은 없겠지. 자전거꾼하고 나란히 느긋하며 호젓하게 달리기를 바라거나 꿈꾸는 자동차꾼이나 오토바이꾼이 있을까.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전거꾼이라든지 두 다리로 걷는 사람한테 착하게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을 만나기 참 어렵다. 게다가 시골에서는 짐승한테까지 곱게 마음을 쏟는 자동차꾼이란 아예 없다시피 한다.

-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싶다. 네찻길에서 앞지르기를 하려고 빠르기를 높이던 자동차는 길가 한켠에 자전거가 아이를 태운 수레를 살살 끌면서 지나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참말 아슬아슬 스쳐 지나가며 매캐한 차방귀를 뿜는다. 빠르기를 살짝 늦추면서 옆 차 뒤에 서서 여느 자전거이든 수레를 단 자전거이든 걱정없이 달리도록 도와주는 자동차를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고작 1초, 또는 2초, 아니면 3초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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