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


 다가오는 주말에 옆지기 아버님이랑 어머님이 충주 산골집으로 찾아오시기로 했다. 아이가 날마다 어지르는 집꼴이라 하지만, 아이 아빠가 책을 여기저기 늘어놓으며 어지르는 집꼴이기도 하다. 나부터 집을 치워 놓아야 한다. 오늘은 그림책 한 덩어리를 걸레로 먼지를 닦아내어 비로소 치운다. 지난주에 제주마실을 하며 사들인 그림책 가운데 2/3쯤 되는 큰 덩어리이다. 아직 1/3을 더 닦아야 한다. 저녁 열 시 조금 넘어 잠들었다가 새벽 두 시에 깬다. 아이가 기저귀에 오줌을 누고 나서 끙끙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벌떡 깨어 기저귀를 갈았다. 다시 자리에 누우려 하다가 일어선다. 문을 열고 멧기슭으로 나와 도랑에 쉬를 눈다. 보름달이 무척 밝다. 보름달이 무척 밝아 마당이 아주 환한데, 이렇게 밝은 달빛인데에도 별이 꽤 많이 보인다. 그렇구나. 보름달에도 시골에서는 뭇별을 올려다볼 수 있구나.

 다시 자리에 누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벽을 갉는 쥐 소리를 듣는다. 엊그제 쥐를 네 마리 잡았는데 또 새로운 쥐가 기어들었나. 참말 끔찍하구나. 너희들은 왜 이렇게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오려고 하니. 흙땅에 굴을 파며 따스히 지내면 되잖니.

 쥐가 벽을 갉는 자리를 툭툭 두들긴다. 꿈쩍을 않고 자꾸 갉는다. 히유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벽에 기댄다. 이내 갉는 소리가 뚝 끊긴다. 응? 뭐니? 한참을 그대로 있는다. 쥐 소리가 사라진다. 뭘까? 한참을 더 이렇게 있으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벽을 아무리 두들긴들 쥐한테는 조금도 무서울 노릇이 없다. 두들긴다고 내가 이 벽을 뚫을 수 없으며, 이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나 벽에 머리를 기대어 숨소리를 낸다면, 이 쥐로서는 벽을 갉아 구멍을 내어 뾰롱 하고 튀어나오고 싶어도 바로 코앞에서 무시무시한 사람이 저(쥐)를 잡으려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고 여기며 얼른 내뺄 노릇일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내 바보스러운 생각이다.

 큰방 등불을 켠다. 조그마한 불을 켠다. 지난주 제주마실을 하며 샀던 책 가운데 1/10쯤을 책상맡에 꺼내어 놓는다. 하나하나 넘기면서 생각에 잠긴다. 차근차근 읽는다. 새벽 두 시 남짓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어느새 새벽을 꼴딱 새운 꼴이다. 이러다가 잠자리에 들면 아침 여덟아홉 시까지 곯아떨어진 채 못 일어나지는 않을까 근심스럽다. 애 아빠 주제에 또 바보스러운 짓을 했다. 이러면 아침에 아이가 깨어나서 얼마나 힘들거나 심심해 하겠는가. 애 엄마는 또 얼마나 고되겠는가.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덜 읽고,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린다. 새벽내 다시 들추었던 〈공씨책방〉 공진석 님 책 《옛책, 그 언저리에서》를 곱씹는다. 쉰 나이에 안타깝게 숨을 거둔 공진석 님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여느 헌책방 일꾼이라면 다 어슷비슷한데, 쉰 줄 나이는 ‘한창 일할 때’라고 여겨 버릇한다. 아무리 많은 책짐이라 하더라도 거뜬히 들어 나를 만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공진석 님은 당신 몸이 아주 튼튼하다고, 또는 꽤 씩씩하다고 보다가 그만 어느 결에 고꾸라지지는 않았을까. 가끔은 느긋하게 몸을 눕히기도 하고, 때로는 택시도 타고 다른 사람 자가용도 가볍게 얻어타면서 몸을 쉬기도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남 얘기라기보다 내 얘기로 되씹는다. 나부터 글을 쓴다느니 책을 읽는다느니 하면서 새벽을 지새우다가는 서른여섯밖에 안 되는 이 나이에 골로 갈 수 있다. 할 일이 많다고 하더라도 몸을 눕혀야 한다. 밥벌이가 걱정되어 이 일 저 일 붙잡으며 잘 팔리지 않는 글을 끄적이거나 책을 엮는다며 글을 갈무리하는 일도 좀 쉬어야 한다. 그래, 내가 내놓는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 뭐 하러 그렇게 아득바득 용을 쓰면서 책 하나 더 내놓으려고, 글 한 줄 더 쓰려고 하는가. 잘 팔린다 한들 이를 악물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낼 까닭이란 없다. 내 밥그릇만큼 살아가자. 내 밥그릇만큼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살자. 나중이 아닌 오늘을 생각하자. 나중에 뜻을 이루거나 꿈을 꽃피운다는 생각이 아니라, 오늘 내 살붙이를 헤아리고, 머잖아 태어날 새 목숨붙이를 살피자. 나 혼자 나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두 식구뿐 아니라 세 식구를 고달프게 한다면, 내가 좋아한다는 내 일이란 무슨 보람이 있는가. (4343.11.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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