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펴야 봄이 온다 - 다름이라는 사선을 넘어서, 탈북 청소년의 당당한 자기 길 찾기
셋넷학교 엮음 / 민들레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주먹다짐으로 맞서는 남·북녘이기 때문에
 [책읽기 삶읽기 15] 셋넷학교 엮음, 《꽃이 펴야 봄이 온다》



 《꽃이 펴야 봄이 온다》를 읽는다. 남과 북으로 갈라졌을 뿐더러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로 뿔뿔이 흩어진 채 살아가는 이 한겨레 조그마한 땅에서, 남녘땅으로 들어와 살아가는 북녘땅 푸름이들 삶과 넋과 꿈이 무엇인가를 담은 조그마한 책을 읽는.

 《꽃이 펴야 봄이 온다》는 북녘땅에서 살다가 남녘땅에서 살아가는 푸름이들 삶과 넋과 꿈을 담는 가운데, 사이사이 ‘남녘땅 셋넷학교 교사 목소리’를 곁들인다. 교사란 아이들을 이끄는 사람이고, 교사란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나서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아이들보다 한 가지라도 더 잘 알거나 많이 안다면서 이런저런 앎조각을 나누어 줄 사람이겠지.

 지난 2007년에 나온 《금희의 여행》(민들레)이라는 책을 떠올린다. 《금희의 여행》은 함경도 아오지에서 태어나 살다가 7000킬로미터를 거치고 헤치면서 남녘땅에 자리를 잡은 작은 아이 삶을 작은 아이 목소리 결을 고스란히 살린 이야기책이다. 《꽃이 펴야 봄이 온다》 또한 아이들 목소리 결이 잘 살아나 있으나, 남녘땅 교사들 목소리가 섣불리 자꾸 끼어든다. 아이들 글을 읽거나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람기’와 같은 구경꾼 글을 끼워넣자면 맨끝에 몰아서 적바림을 하거나 아예 덜어야 하지 않았을까. 오늘 이 땅 이 둘레 사람들이 ‘다름을 안다지만 다름이 어떠한 다름인가는 모른다’고 한다면, 이들 푸름이들 목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여 들을 노릇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정길·김영심·김하늘·박영명·박정혁·윤나영·최금희·하복란, 이렇게 아이들 이름을 당차게 적바림하고, 이 아이들 스스로 제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곁이나 뒤에서 조용히 거드는 한편, 이 아이들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어떤 꽃이 피어야 어떤 봄이 올까’ 하는 이야기를 길어올리도록 이끌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 처음 버스를 탈 때 잘못 타게 되었는데 ‘푸른마을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물거리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한국사람들이 순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한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모든 것이 달라 있었다. 한국 아이들이 입은 옷도 나와 달라 보였고, 그들의 말투 행동도 달랐다. 내 고향 아오지와 전혀 다른 서울에서의 삶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 ‘도대체 왜 강원도에서 왔다고 말한 거야? 함경북도 아오지가 내 고향이라고 말하면 어때서?’ … 차라리 굶더라도 북한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말하고 뛰어놀며, 어디를 가도 내가 아는 사람들이어서 낯설거나 두렵지도 않았으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 나 아오지 여자야. 그래서? 너희 한국사람들은 북한사람 사귀면 감옥에 가냐? 그게 그렇게 창피한 일이야?’ ..  (19∼21쪽)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한테 꼬리표나 이름표를 붙이려 한다면 ‘탈북 청소년’이 아닌 ‘함경도 아이 아무개’라든지 ‘평안도 아이 아무개’라든지 ‘해주 아이 아무개’처럼 불러야 옳다고 느낀다. 《꽃이 펴야 봄이 온다》라는 책을 살피면, 책날개에 아이들 소개하는 글을 적어 넣을 때에 ‘탈북 청소년’이라 하고 ‘아이들 학력’을 달아 놓았다. 책날개에서 ‘탈북 청소년’이라는 이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아이들 학력을 굳이 달아야 했을까. 달아야 한다면 아이들 고향마을 이름을 달아야 옳지 않은가. 아이들은 남북녘·일본·중국·러시아라는 울타리를 넘어 서로 같은 한겨레임을 느끼면서 즐거이 어깨동무하기를 바랄 텐데, 이 아이들을 언제까지 이런 눈길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아이들은 탈북 청소년이 아닌 그저 청소년이다. 꼭 대학교를 다녀야 무언가 일할 솜씨가 생기는 아이들이 아니다. 대학교라는 곳이 아닌 삶자리를 찾으며 아름다운 나날을 일굴 아이들이고, 분단과 전쟁이 아닌 평화와 통일을 꿈꿀 아이들이다.

 남녘이든 북녘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러시아이든 전쟁무기 만드는 일을 그쳐야 한다. 남녘이랑 북녘이랑 ‘군대 시설 현대화’는 집어치워야 한다. 남북녘 모두 군량미를 차츰 줄이고 군인 숫자를 나날이 줄여, 바야흐로 군대가 이 땅에서 모조리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한테는 군사훈련이 아닌,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을 갈고닦는 올바른 일거리와 놀잇감을 베풀어야 한다. 아이들은 손수 땅을 일구어 내 밥그릇을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 기운을 담아 고맙게 얻는 흐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나부터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살가운 동무와 이웃을 사귀는 즐거움을 맛보아야 한다. 씩씩한 넋, 튼튼한 얼, 착한 마음, 고운 생각으로 푸르디푸른 삶을 보듬어야 한다. 나라에서는 군부대에 쏟아붓던 돈을 사람들 누구나 골고루 아늑하면서 즐거이 살아갈 수 있게끔 써서 문화와 복지와 교육과 의료를 가다듬는 데에 마음을 기울이고, 푸름이들은 서로를 한껏 사랑하고 아끼는 따스한 가슴을 북돋아야 한다.


.. 많은 교회가 북에서 온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 목적이 선교를 위한 것이다. 전도하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중국에서 일 년 동안 하루에 열두 시간씩 무릎 꿇고 성경을 읽은 경험이 있다 … 사람들한테 굳이 이런 공연을 보여주지 않아도 어디 가서든 당당하게 살 수 있는데, 하필 어릴 때 불렀던 노래를 부르게 하는지, 이해가 되면서도 반발심이 생겼어요 … 문제는 남과 북 모두 서로가 다름을 알고 있으나,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  (27, 166, 251∼252쪽)


 연평도에 폭탄이 떨어졌으니 황해도 해주에 폭탄을 돌려주어야 한다면, 황해도 해주에서는 인천이나 서울이나 경기도에 미사일을 되퍼부어야 할 테고, 인천이나 서울이나 경기도에서는 평양이나 평안도에 미사일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야 만다.

 서로서로 얼마나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며 아끼지 못했기에 이렇게 툭탁툭탁 다투어야 하나. 서로서로 얼마나 살피지 못하고 보듬지 못하며 어루만지지 못했기에 이토록 주먹다짐에 윽박지르기에 손찌검으로 마주해야 할까.

 총 한 자루 만드는 돈은 너무 아깝다. 총 한 자루 만든다며 바칠 땀은 몹시 슬프다. 총 한 자루 만드는 일꾼 품이랑 총 한 자루 움켜쥘 사람들 손길이랑 더없이 딱하다. 총이 아닌 쟁기를 쥐어야 하고, 총이 아닌 책을 들어야 하며, 총이 아닌 연필을 들어야 한다.

 어른들부터 꽃다운 삶을 돌보고, 아이들 또한 꽃다운 삶을 가꾸도록 힘써야 한다. 어른들이 앞장서서 손을 맞잡고, 아이들이 나중에 기쁘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 “아무리 내가 좋은 대학을 나와도 한국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어. 경쟁이 심하고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우리로선 이 땅에서 공부를 해도 힘들어.” … ‘탈북자’라는 이름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북에서 온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기보다, 살기 힘들어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또한 이 이름은 북한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이름이기도 하다 ..  (31, 243∼244쪽)


 《꽃이 펴야 봄이 온다》를 덮으며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이 땅 남녘나라에서는 북녘땅을 고향으로 둔 푸름이들 목소리를 찬찬히 담아낸 책 하나 거의 없지만, 정작 남녘나라에서 예쁘며 착하게 살아가는 푸름이들 목소리를 알뜰히 실어낸 책 하나 거의 없다. 아프고 힘겨이 살아가는 푸름이들 목소리조차 듣기 어렵다. 글쎄, 찾아볼 수 있을까? 다문 몇 권이나마 찾아낼 수 있으려나? 열다섯 푸른 아이 목소리를 어느 책이 실었을까. 열여섯 푸른 아이 삶무늬를 어느 책이 보여줄까. 열일곱 푸른 아이 마음결을 어느 책이 껴안을까.

 서로서로 사랑으로 꽃이 펴야 한다.

 남녘나라 어른들이 남녘나라 아이들을 참다이 사랑하지 않으니, 이런 메마르고 거친 곳에서는 북녘나라 아이들이 찾아왔을 때이건 일본땅이나 중국당 아이들이 찾아들 때이건 곱고 따스한 봄이 찾아오지 못한다. 찬바람 씽씽 부는 이 남녘땅에 무슨 꽃 무슨 봄이 있는가. 매몰찬 이 남녘나라에서 어떤 푸름이가 꽃다운 나이를 누릴 수 있는가. 꽃다운 푸름이를 군대에 집어넣어 살인기계로 바꾸어 내는 남·북녘 모두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없는 슬픈 불지옥이다. (4343.11.29.달.ㅎㄲㅅㄱ)


― 꽃이 펴야 봄이 온다 (셋넷학교 엮음,민들레 펴냄,2010.2.27./9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눈과 글쓰기


 새벽에 일어난다. 찍찍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쥐가 잡혔구나. 어느덧 일곱 마리째. 장갑을 끼고 끈끈이를 바라본다. 꽤 큰 쥐가 잡혔다. 끈끈이를 덮고 마당으로 나온다. 마당이 하얗다. 새벽에 일어나면서 창문으로 바깥을 얼핏 보았을 때 밭자락이 하얗다고 느껴 설마 눈이라도 왔나 싶었는데, 참말 눈이 왔네. 발자국을 되도록 안 내면서 멧기슭 쪽으로 걸어가 쉬를 눈다.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서 시골집 첫눈을 즐겁게 맞이하며 마당에 아이가 첫 발자국을 찍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들인 봉숭아물이 거의 다 빠지는가 싶더니, 드디어 첫눈을 맞이했구나. 벽 긁는 소리 없이 차분하고 으슬으슬하게 맞이하는 11월 29일. 글피만 지나면 12월을 맞이한다. 한 달 지나면 아이는 네 살로 접어들고, 새봄을 맞이하면 둘째가 태어난다. (4343.11.29.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식구와 글쓰기


 옆지기 어버이가 시골집으로 나들이를 와 주신다. 옆지기 어머님이 김치를 담가 잔뜩 들고 와 주신다. 옆지기 어버이가 시골집으로 오시기 앞서 방바닥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치운다. 쓸고 닦는다. 아이가 자꾸 어지르는 물건을 아이를 타이르다가는 나무라다가는 하면서 스스로 치우도록 하는 한편, 아빠가 함께 치운다. 그러나 아이는 다 치운 제 놀잇감을 다시금 어지른다. 아빠는 또 아이를 불러 타이르며 제자리에 얌전히 놓도록 이끌고, 아이는 이내 다시 어지르는데, 아빠는 거듭거듭 한 가지를 놀고 나서 제자리에 곱게 치운 다음 다른 놀잇감을 갖고 놀라며 이른다.

 옆지기 어버이는 당신 딸아이네 시골집으로 오는 길이 많이 막히기도 하고, 살짝 헤매기도 하면서 무척 늦게 닿는다. 아이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언제 오나 손꼽아 기다리며 졸음을 꾸역꾸역 참는 가운데, 애써 치운 놀잇감을 자꾸만 어질러 놓으며 놀고파 한다.

 드디어 아이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시골집에 닿고, 아이는 차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문을 활짝 열고는 할머니랑 할아버지를 부르며 뛰쳐나간다. 늦게 닿은 어르신 두 분한테 밥을 차려 드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집안 어르신들이 자주는 아니어도 틈틈이 나들이를 와 주시면, 이때에 신나게 집안을 크게 쓸고 닦으며 치울 수 있다고. (4343.11.28.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람들 사이로 imagepress 2
이미지프레스 엮음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과 살아가는 하루
 [찾아 읽는 사진책 10] imagepress, 《사람들 사이로》(청어람미디어,2006)



 다큐멘터리 사진쟁이 모임인 ‘이미지프레스’는 《여행하는 나무》(청어람미디어,2005)를 첫 책으로 삼으며 꾸준하게 사진이야기를 내놓겠다고 했으나, 2006년 12월에 《사람들 사이로》를 내놓고 나서 2010년 11월까지 셋째 사진이야기를 내놓지 못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첫 번째 책을 찾아 주셔서 17개월 만에 2000부가 넘게 판매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분발해서 매진의 속도를 높여 보겠습니다(9쪽/이상엽).”는 말은 덧없는 꿈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진을 말하거나 사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열일곱 달에 걸쳐 2000부가 팔렸다면, 적게 팔렸다 할 만하면서 많이 팔렸다 할 만합니다. 예쁘장하게 엮은 모양새를 헤아린다면 적게 팔렸고, 사진책 장만하는 사람이 그리 안 많음을 헤아리면 무척 많이 팔린 셈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기 장만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새로 나오는 제법 비싸다 싶은 사진기조차 꽤 많이 팔립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 할는지 모르겠는데, ‘사진을 알고 즐기’려는 매무새에 앞서 ‘더 값나가는 사진 장비 갖추’려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없는 탓이라 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이보다는 우리 삶터 얼거리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이는 사진밭에서만 느낄 아쉬움이 아니라, 글밭이든 그림밭이든 노래밭이든 학문밭이든 사회운동밭이든 매한가지예요. 이 나라 삶터가 온통 돈을 많이 벌든 이름을 크게 떨치든 힘을 대단히 거머쥐든 하는 쪽으로 흐르며 굳어졌거든요, 서로를 사랑하며 살거나 다 함께 착하게 어깨동무를 하거나 콩 한 알 나누는 너그럽고 따스한 넋을 아끼는 흐름이란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언제나 겨루기요 노상 다툼이며 늘 숫자놀음입니다. 사진밭 한 갈래만 착하거나 참되거나 곱게 나아가기를 바랄 수 없어요.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이자 사진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 《사람들 사이로》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열네 가지 이야기를 노순택·이기명·이상엽·이재갑·정은정·Area Park·김홍희·한대수·이규철·박평종·이치열, 이렇게 열한 사람이 들려줍니다. 그런데 열한 사람 이야기를 열한 가지 빛깔로 느낀다거나, 열네 가지 이야기를 열네 빛깔 무지개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 사이에 있고, 사람 사이에는 늘 사람이 있는데, 굳이 《사람들 사이로》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사진삶을 이야기하려고 했다면 ‘왜 사람이고, 왜 사람 사이이며, 왜 사람 사이 사진인가’ 하는 대목을 건드려야 합니다. 이 대목을 건드리지 않고 이름만 그럴듯하게 “사람들 사이로”라 외친들 사람들 사이에서 사진을 나누는 일이 되지 못합니다. “브 나르도”라 외친다거나 “민중 사이로”라 외친다 해서 참말 여느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지는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사이로 스며드는 일이란 외침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따로 외칠 까닭이 없고 애써 외칠 겨를조차 없습니다. 그저 그대로 조용히 살아가며 그예 고스란히 예쁘게 살아가면 넉넉합니다.

 《사람들 사이로》에서 노순택 님은 말합니다. “나는 사진관을 운영하기 전에도 많은 대추리, 도두리의 농민들을 필름에 담아 왔다. 노동의 현장에서 그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투쟁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은 더 많았다. 그들은 그들이 원치 않았던 투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투사들을 필름에 담아 왔다. 그렇지만 황새울 사진관에서 내가 만난 그들은 달랐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수줍게 웃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것은 정녕,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22쪽/노순택).” 노순택 님은 《사람들 사이로》에서 비로소 당신이 걸어갈 다큐사진 길 한 자락을 얼핏 보았구나 싶은데, 이렇게 얼핏 본 다큐사진 길 한 자락을 조금 더 살가우며 기쁘게 붙잡으며 오늘 하루 사진삶을 즐기는지 어떠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느 사진이든 사진기를 쥔 사람이 바라보는 그대로 찍습니다. 이 결을 읽어 준다면 고맙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사진쟁이가 생각하는 그대로 담습니다. 이 무늬를 예쁘게 살펴 준다면 반갑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사진을 아는’ 사람이 꿈꾸는 대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이 느낌을 고이 얼싸안아 준다면 넉넉합니다.

 다만, ‘《사람들 사이로》라는 사진책 하나로 엮은’ 이만큼 해도 사진은 퍽 볼 만합니다. 이렇게 해도 사진은 꽤 값어치있습니다. 그러나, 이만큼 하기에 사진은 사람들 사이로 스미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니까 사진쟁이 삶이 여느 사람 삶하고 동떨어집니다.

 사진쟁이가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찍혀서 적바림되고픈 모습을 찍고 싶어 하기란 참 힘들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힘들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애 찍히는 사람이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모두 같은 목숨이요, 다 함께 사랑스러운 벗님이에요.

 아주 흔한 말이지만, 사진쟁이들은 사진기를 쥐기 앞서, 또 다큐사진이란 이름을 걸기 앞서 생각해야 합니다. ‘내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나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난 어떤 모습으로 이 사람 앞에 마주하거나 바라보며 서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느 마을사람이 사진쟁이를 사진으로 찍겠다고 할 때에, 다큐사진을 하는 분들은 어떤 느낌 어떤 넋 어떤 매무새가 될는지 곱씹어야 합니다.

 사진쟁이 이재갑 님 또한 말합니다. “약 6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때, 비로소 혼혈인 형님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 일정한 수입이 없던 당시로서는 많은 어려움은 당연했고, 이는 오히려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한 절대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83쪽/이재갑).” 그래요,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은 참 즐거운 나날을 보냅니다. 그런데, 사진기를 들었기에 서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붓과 종이를 들든, 연필과 수첩을 들든 서로 즐거이 어울릴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들어도 기쁘게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여러 겨레 피가 섞인 사람이든 이주노동자이든 여느 사람이든 다 똑같습니다. 우리들은 눈으로 사람을 보니까 여러 겨레 피가 섞인 사람을 달리 바라보곤 하는데, 앞을 못 보는 사람들한테는 여러 겨레 피가 섞인 사람이란 ‘무엇이 다른 사람’이 될까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영어를 쓰는 사람이나 한국말을 쓰는 사람이나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되려나요.

 다큐사진을 하는 분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받아안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시내버스를 모는 분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이, 학문을 파고들어 깊은 뜻을 깨우친다는 분들이 어떤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헤아리면서 서로를 마주보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다큐사진을 왜 자꾸 멀리서만 찾고, 내 삶터에서 내 살붙이하고 못 보듬는지 아리송합니다. 《사람들 사이로》에서는 사진책 《윤미네 집》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오늘 다큐사진을 한다’는 분들 가운데, 또 이미지프레스 모임 분들 가운데 ‘내 삶터가 뿌리내린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오순도순 아기자기 알콩달콩 살랑살랑 들려주는 분은 아직 없습니다.


.. 나는 여행할 때마다 경치보다는 현지 사람들의 모습을 더욱 중요시한다. 그곳의 환경 속에 사는 그 사람들은 어떠한 것들 때문에 고민하고 기뻐하는지가 궁금하다 ..  (162쪽/한대수)


 사진책 《사람들 사이로》를 읽으며 한대수 님 이야기를 빼고는 그리 가슴에 와닿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다른 분들 사진이나 글은 자꾸 겉돌고 헛돌며 맴돈다고 느낍니다. 여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머무는 사람이 있으면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듯이 걱정하는 사람이 있고, 기뻐하듯이 슬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사람은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사진이고, 어디에서나 다큐멘터리입니다.

 “대중들의 교육·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도 사진의 촬영과 공표에 있어서 초상권의 문제는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사이에 열린 마음으로 나누는 적극적인 의사소통이 부재했다는 것이다(205쪽/이치열).” 같은 이야기는 참 좋습니다. 여러모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밑앎입니다. 애써 《사람들 사이로》 같은 책에서 한 꼭지로 들어갈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은 사진기를 쥐기 앞서 밑앎으로 익힐 이야기입니다. 낱말을 바꾸어 글쟁이나 그림쟁이나 연극쟁이나 영화쟁이나 방송쟁이나 신문쟁이 누구나 깊이 곱씹을 이야기입니다. 더욱이, 《사람들 사이로》는 이런 밑앎이 아닌, 참말 사진쟁이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얼크러지거나 설크러지며 빚어낸 사진삶을 차곡차곡 실어내야 해요. 사진쟁이 둘레 가장 너르며 흔한 이야기를 가장 고우며 밝은 사진삶으로 엮어내야 해요. 누구나 가진 사진기로 누구도 못 담는 사진삶을, 다른 누가 아닌 ‘다큐사진 모임 사진쟁이’부터 참다우며 제대로 깨닫거나 받아들이면서 신나게 나누는 모습을 알뜰살뜰 풀어놓아야 합니다.


..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서도 내가 기억해야 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보낸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있었구나, 했다 ..  (113쪽/정은정)


 가만히 보면, 《사람들 사이로》는 다큐사진을 하는 이 나라 사진쟁이들 어설픈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울이라 할 만합니다. 다큐사진을 한답시고 설치는 남우세스러운 모습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뉘우침책(고백록)’인지 모릅니다.

 다큐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사진이든 하나같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복닥이는 즐겁고 애틋한 나날’을 담는 손짓 눈짓 몸짓입니다. 그리고 사랑짓 믿음짓 나눔짓이에요.

 단추질에서 그치는 사진이 아니기를 빕니다. 단추질에서 헛도는 다큐사진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단추질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진모임이 아니기를 꿈꿉니다. 단추질과 볼펜질에 앞서, 사람들하고 사랑스러운 품앗이요, ‘사람들’이란 바로 나부터 함께하는 ‘그 사람들’임을 살갗으로, 뼈마디로 받아들일 나날을 기다립니다. (4343.11.28.해.ㅎㄲㅅㄱ)


― 사람들 사이로 (이미지프레스 엮음,청어람미디어 펴냄,2006.12.22./15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극장 포스터를 붙이던 나무판. 이 나무판은 인천에 이 한 곳에만 남았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나 혼자만 사진으로 담아 놓는다.

 - 2010.11.10. 인천 동구 송현1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