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소년 9
시무라 타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은 ‘우물 개구리’가 아닙니다
 [만화책 즐겨읽기 17] 시무라 다카코, 《방랑 소년 (9)》


 저마다 예쁘게 살아가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저마다 꿈을 꾸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이제 여자축구는 남자축구 못지않게 눈길을 끌거나 사랑을 받을 만하다 싶으나, 여자가 축구를 한다 할 때에 뱀눈으로 보는 사람은 아직 많습니다. 여자가 권투를 하거나 격투기를 한다 할 때에도 비슷합니다. 언제나처럼 떠도는 도깨비 같은 말이란 ‘그러다 시집 어떻게 갈래?’입니다.

 남자로 살아가는 저는 으레 듣는 물음이 이렇습니다. ‘당신 그렇게 살면서 어떻게 식구들 먹여살릴래?’

 집식구는 남자가 집안기둥이 되어 홀로 벌어먹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남자는 오로지 바깥일을 도맡고 여자는 오직 집안일을 도맡으며 살아야 하나 궁금합니다. 다 함께 바깥일에 힘쓰고 모두 다 집안일을 북돋우며 즐거이 살아가면 아름답지 않나 생각합니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이 쓴 “큰숲 작은집” 이야기책을 읽으면 집안일이건 집밖일이건 식구들이 모두 힘을 쏟아 함께합니다. 워낙 사람 숫자가 적은 외딴 멧골집에서 살아가니까 이렇게 할밖에 없다 말할 수 있으나, 참말 이렇게 꾸리는 살림살이가 동양이든 서양이든 ‘가난하고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삶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책이나 인문지리책에 ‘가난하고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삶이 적힌 적이 없기에 종잡기는 어렵습니다만,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에서 엮은 “민중자서전”을 읽다 보면, 없는 사람들은 돈이 없다뿐 사랑이 있고 마음이 있으며 가슴이 있습니다. 사랑과 마음과 가슴으로 서로를 보듬거나 돌보거나 어루만집니다.


.. “얘(친구)는 단순한 취미 생활이야. 이 녀석(동생)은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구. 그렇지?” (13쪽)


 만화책 《방랑 소년》 9권을 읽습니다. 한 권 두 권 호수를 채울 때마다 아슬아슬한 금에서 오락가락하는 만화책 《방랑 소년》입니다. 책이름부터 ‘방랑’이라 적었기 때문일 테지요.

 이 만화책에 나오는 두 주인공 슈이치(남자)와 요시노(여자)는 서로 같은 꿈을 서로 다르게 품으며 살아갑니다. 먼저, 슈이치와 요시노는 ‘내가 태어나며 받은 성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슈이치는 여자로 살고픈 남자아이요, 요시노는 남자로 살고픈 여자아이예요.

 한자말로 적으니 ‘방랑’입니다만,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에 들어선 이 아이들로서는 섣불로 홀로 서기 어려운 나이와 넋과 삶인 까닭에, 망설입니다. 갈팡질팡합니다. 오락가락합니다. 흔들립니다. 떠돕니다. 헤맵니다. 무엇보다 가슴이 아프고 쓸쓸합니다.

 이 아이들하고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를 들어 주거나 들려주는 어른이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아이들 마음을 읽어내어 따숩게 껴안거나 얼싸안는 어른 또한 만나기 어렵습니다.

 왜 이 아이들이 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나요. 왜 이 아이들 꿈을 놀림감으로 삼으며 따돌리거나 꾸짖거나 못마땅해 하기만 하나요.

 착하며 아름답게 살아가고픈 길에 선 아이들입니다. 속마음을 숨긴 채 겉치레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아이들입니다. 저마다 다 달리 태어난 몸과 마음을 곱게 건사하면서 예쁘게 북돋우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맑은 눈망울과 밝은 눈빛으로 이 땅에서 씩씩하게 한길을 걷고픈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한참 흔들리며 슬프고, 눈물을 짓지만, 바보가 아닙니다. 바보가 아니지만 똑똑이도 아닙니다. 그냥 한 사람입니다. 사랑스러운 목숨을 포근히 보듬는 한 사람입니다.


.. ‘난 말하지 못했어. 슈이치는 당당했다.’ ..  (36쪽)


 어른들은 아이들을 제도권 울타리에 가두어 놓으며 흐뭇해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넣다가는 초등학교에 보내고, 중·고등학교에서 입시공부만 하다가는 대학교에 들어간 다음, 돈 잘 버는 회사를 찾아 사무직 일꾼이 되기를 바랄 노릇이 아닙니다. 이 다음 길은? 뻔하지요. 시집장가 잘 가서 아이 둘쯤 낳아 효도 하기.

 이 땅 아이들은 어떠한 길을 걸어야 할까 생각해야 합니다. 이 땅 아이들이 걸어가며 즐길 가장 아름다우며 빛나는 길을 헤아려야 합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은 길을 걷도록 내모는 오늘날 어른들 사회 얼거리가 아이들한테 얼마나 고되고 괴로우며 슬픈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크도록 길동무가 되어야 할 어버이요 어른입니다. 아이들이 튼튼하게 살도록 옆지기가 되어야 할 어버이면서 어른입니다. 훈계를 늘어놓거나 설교를 하는 사람은 어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닙니다.


.. “집에도 설 자리가 없는 느낌?” “누나가 학교에 안 갈지도 몰라요. 나도 이제 가기 싫어요. 나만 보건실로 끌ㄹ려가고, 나만 엄마가 데리러 왔어요. (여자아이) 치즈루랑 요시노는 (남자 옷을 입고 왔어도) 아무도 비웃지 않았는데, 나만 비웃음을 당했어요.” ..  (46∼48쪽)


 새벽녘 쉬가 마려운지 깬 아이가 다시 잠들지 못하고는, 훨씬 이른 새벽부터 깨어나 일하는 아빠 곁으로 살금살금 걸어옵니다. 아이는 언제나 아빠 곁에 붙어서 아빠가 무얼 하는가 가만히 바라보다가는 고 모양새를 저도 따라합니다. 고 모양새를 아이가 따라하는 모습을 슬쩍 바라볼라치면 아이는 상긋 웃습니다. 아이는 엄마 곁에서도 엄마가 하는 양을 따라합니다. 할머니가 마실을 오면 할머니 매무새 또한 따라합니다. 아이는 둘레 어른들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제 교과서로 삼습니다. 제 앞길로 삼아요.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은 누구나 느끼기 마련이면서 누구나 못 느끼기도 하는데, 아이한테는 아주 좋은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이나 학교나 대안학교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제 어버이하고 둘레 어른이 도움이 됩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는 학교를 다니며 길들 뿐입니다. 아이는 집에서 배우고 마을에서 배웁니다. 아이는 집과 마을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집과 마을에서 사랑과 믿음을 익힙니다. 아이는 학교를 다니며 머리통만 굵어지다가는 깊은 생채기를 받는 가운데 스스로 좁은 우물(제도권)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립니다.

 참다이 가르치며 배우는 가운데 살아갈 길은 모두 집에 있습니다. 그냥 집이 아닌 살림집에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밥을 하며 옷을 기우고 빨래를 하며 집 안팎을 쓸고 닦아 치우는 모든 살림살이에 아이를 가르치며 배우는 참살길이 깃듭니다.

 아이들은 제 먹을거리를 제 손으로 키우는 땀을 알아야 하는 한편, 제 먹을거리를 손수 밥상에 차리는 품을 알아야 하고, 제 밥상을 제 손으로 치우는 겨를을 알아야 합니다. 밥과 옷과 집이 하늘에서 똑 떨어지거나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뿐더러, 내 손과 몸둥이로 이루어 내는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참살길을 밝히며 보여주어야지, ‘돈 벌 길’이나 ‘이름 높일 길’이나 ‘힘 쌓을 길’을 보여주거나 이 길로 떠밀면 안 됩니다.


.. “선생님을 모셔 올까?” “그냥 보건실로 갈게. 카나코한테 말해 줘.” (같은 반 남자아이가 슈이치를 보며 지나가듯이 말한다) “너 바보지?” (슈이치는 고개를 떨구며 보건실로 가는 길에 생각한다) ‘바보인가? 바보지, 뭐.’ ..  (83∼86쪽)


 내 아이는 딸아이로 태어나도 좋고 아들아이로 태어나도 좋습니다. 내 아이는 딸아이로 살아도 좋고 아들아이로 살아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 아이는 그예 내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고운 목숨 예쁘게 일구는 삶이면 즐겁기 때문입니다. 착한 삶이냐 참다운 삶이냐 어여쁜 삶이냐를 눈여겨볼 일입니다. ‘계집아이처럼 군다’든지 ‘수줍음을 탄다’든지 하는 빛깔은 아무것 아닐 뿐더러, 따숩게 받아들이면 넉넉합니다. 내 아이가 학교성적이 처진다든지 달리기가 느리다든지 눈이 나쁘다든지 책을 잘 안 읽는다든지 하면 어떻습니까. 사랑스러우면서 씩씩하고 다부지게 자라나면 훌륭합니다.

 《방랑 소년》에 나오는 슈이치는 9권에 이르러 드디어 홀로 설 자리를 찾으려 하는데, 참으로 이 아이가 홀로 설 만한 자리는 어디에도 안 보인다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학교라는 곳이, 제도라는 곳이, 사회라는 곳이, 어느 만큼 답답하며 무시무시한가를 몸소 깨닫습니다.

 누가 바보일까요? 누가 바보인가요? 바보는 왜 있어야 하고, 바보라는 낱말은 왜 태어났을까요? 예부터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라 했습니다. 누가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일까요? (4343.12.14.불.ㅎㄲㅅㄱ)


― 방랑 소년 9 (시무라 다카코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2010.10.25./42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와 글쓰기


 흔히들 ‘아끼거나 어루만지며 살아가기에도 짧은 삶’이라 하지만, ‘아끼거나 어루만지며 살아가기에 알맞춤한 삶’이 아닌가 싶다. 오래 산다고 더 즐겁지 않으나, 짧게 산다고 덜 즐겁지 않으니까. 예쁘고 착하게 살아가면 즐거운 나날이니까.

 내 삶을 들여다보며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는 가운데 맑게 웃으면 고맙다. 책이란 무엇이고 삶은 또 무엇이며 글쓰기는 참말 무엇이겠는가. 어머니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꾸리는 삶과 보듬는 사랑과 빚는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어머니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어머니들한테 하루란 어떠한 나날인가.

 얼마 앞서 아이랑 둘이 사흘 동안 서울마실을 하면서 자주 퍽 오래 안고 걸었다. 아이가 힘들어 하니까 안지 않을 수 없다. 아빠는 앞과 뒤로 멘 가방이 제법 무겁다. 어깨가 눌리는 무게를 느끼지만, 이렇다 해서 고단하여 걷기 힘들다는 아이보고 “힘들지만 더 걸어 보렴.” 하고 말할 수 없다. 삼십 분쯤 ‘아이가 앞을 보도록 안으’면서 걷다가는, 십 분쯤 아이보고 아빠하고 손 잡고 걷자고 말한다. 둘레 사람들은 날이 추우니 옷을 꽁꽁 싸매듯 입으며 걸어다니지만, 애 아빠는 겉옷을 훌러덩 벗고 싶다. 땀줄기가 등판으로 줄줄 흐른다.

 함께 마실을 오느라 애쓴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가까스로 잠든다. 시외버스 기사가 버스를 너무 거칠게 모느라 아이 속이 메스꺼울까 걱정스럽다. 아이를 아빠 무릎에 눕힌다. 사십 분 남짓 이렇게 있다가 내릴 즈음 아이를 옆자리에 눕히고는 가방을 챙긴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안 깬 아이였는데, 막상 버스에서 내리니 잠에서 깬다. 아빠는 속으로 생각한다. ‘녀석아, 이렇게 깨려면 좀 일찍 깨지. 네가 잠이 깰까 살몃살몃 안으며 내렸는데.’ 그러나 어쩌겠는가. 잠이 제대로 들자면 넉넉히 드러누워서 따숩게 있어야 하는데, 흔들거리는 버스가 잠을 잘 만했겠는가. 그나마 좀 잘까 싶던 버스에서 내리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했으니 아이가 깰밖에 없지 않은가.

 아이한테 얼음과자를 하나 사 준다. 아이는 아주 좋아라 하면서 야금야금 깨어 문다. 시골버스역에서 시골버스를 기다리는 시골할매는 “이 추운 겨울에 무슨 아이스크림을 먹누.” 하지만, 아이는 춥건 말건 얼음과자 노래만 부른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적에 추운 겨울이건 더운 여름이건 얼음과자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 집에서까지 냉장고 얼음칸에다가 설탕물을 얼려 먹지 않았던가.

 아이하고 살아가며 젊은 살결은 금세 쭈글쭈글해지고, 보드랍던 살갗은 어느덧 투박하며 거칠어진다. 잠자리에 들던 엊저녁, 내 손바닥 딱딱한 꾸덕살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아이도 아빠 손바닥 꾸덕살을 살살 만져 본다. 아이는 나중에 제 아빠 나이만큼 자랐을 때에 제 아빠 손바닥 꾸덕살 느낌을 떠올릴 수 있을까. 나는 내 아이만 한 나이는 아니고, 열 살 무렵 즈음 어머니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던 느낌을 곱다시 떠올린다. 아이하고 살아가며, 아니 옆지기랑 함께 살아가던 나날부터 내 어머니 젊은 날 손바닥 느낌을 늘 떠올린다. 글 한 줄 쓸 틈이 없는 어머니들 삶은 손바닥에 아로새겨진다. 책 한 권 읽을 겨를이 없는 어머니들 이야기는 손바닥에 차곡차곡 적바림된다. (4343.12.12.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터넷으로 파일을 올리고 받을 때에 '업-다운'이나 '업로드-다운로드'라 하기도 하지만, '올리기-내리기'나 '올리다-내려받다'라고도 하는데, 난 이런 광고를 보면 참 구리다고 여긴다. 이렇게밖에 쓸 만한 말이 없나. 영어를 쓴다고 멋이 날 까닭이 없으나, 영어로밖에 광고를 만들지 못하는 한국사람은 철이 없고 생각이 짧다. 따지고 보면 토씨 빼고는 다 영어 아닌가. 그나마 '맛'은 영어로 안 적었네. 그냥 'taste'라 적어 주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제품사용설명서'를 읽어 보면, 영어로 풀이하는 대목은 한 군데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맨 앞쪽에는 언제나처럼 영어를 적어 놓는다. 하기는, 자전거 이름 가운데 우리 말 이름이 아니라 한글 이름조차 하나도 없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집에서 노래노래 하던 아쮸끄림(얼음과자)을 서울마실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먹으며 노래하며 좋아하는 아이. 다 먹고 논둑길을 걸을 무렵 갑자기 두 손을 모아 쪼쪼아 아님(성부와... 하느님)을 왼다.

 - 2010.12.1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0-12-15 22:01   좋아요 0 | URL
ㅎㅎ 추운 겨울날이지만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따님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네요^^

파란놀 2010-12-17 06:56   좋아요 0 | URL
좋아하니 안 줄 수 없답니다.
다만... 읍내에 마실을 나왔을 때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