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껍질과 하얀절편
김연희 지음 / 그린비 / 1995년 10월
평점 :
절판


요리책과 밥책과 이야기책
― 김옥희·김연희·김선희·김미원·김연미, 《수박 껍질과 하얀 절편》



- 책이름 : 수박 껍질과 하얀 절편
- 요리감수 : 김옥희
- 글 : 김연희
- 그림 : 김선희·김미원·김연미
- 펴낸곳 : 그린비 (1995.10.25.)


 어느새 집식구 밥차림을 도맡는 아빠로 살아갑니다. 밥을 잘한다거나 반찬을 잘 내지 못하면서도 어느덧 집식구 밥상을 도맡습니다.

 밥차림을 하는 아빠는 밥차림만 하지 않습니다. 빨래이니 청소이니 아이돌보기이니 도맡아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살림돈을 벌어야 합니다.

 혼자 살아가던 때에는 마땅히 혼자 밥을 차려 먹습니다. 혼자 꽤 오래 살다 보니 혼자 냄비 하나만 쓰는 일이 익숙합니다. 굳이 밥그릇에 밥을 푸는 일이 없고, 반찬을 여럿 내는 일조차 드물었습니다. 혼자 먹는 밥차림에 이런저런 반찬 내놓기를 해 보지 않아 버릇했고, 늘 한 가지 국이나 찌개만 끓여도 배부르다 여겼습니다.

 아이하고 옆지기 먹을 밥을 날마다 똑같이 차린다 해서 나쁠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매운 먹을거리를 못 먹는다 하더라도 김치를 접시나 그릇에 내놓지 않는다거나 찌개 하나만 달랑 끓여서는 아이가 좋아하기 어렵습니다. 어수룩하지만 이럭저럭 새롭게 한두 가지 다른 찬거리를 장만해 보려고 하지만, 늘 뻔한 틀에서 허덕입니다.

 앞으로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가며 열 해쯤 흐르면 나아질 수 있으려나요. 이냥저냥 힘들고 지치며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허우적거리기만 하려나요.

 밥차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아프며 힘든 옆지기와 함께 헌책방마실을 하던 지난해 어느 날, 옆지기는 《수박 껍질과 하얀 절편》이라는 책을 골라서 읽더니 아빠한테 건넵니다. 할머니와 딸 넷이 함께 일군 소담스러우면서 ‘밥차림 자랑’이 한 가지도 없는 요리책 아닌 ‘밥 이야기책’입니다. 밥차림 한 가지를 이야기하기 앞서 다섯 여자가 복닥이며 받아들인 삶을 짤막히 적바림합니다. 대단할 삶이 아니지만 모자랄 삶이 아니요, 놀라울 삶이 아니지만 어설픈 삶이 아닙니다. 수수한 대로 즐거우면서, 투박한 대로 재미난 삶입니다.


.. 어머니의 요리에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기쁨, 사랑, 감사의 삶이 그려져 있다. 콩과 씨앗, 버려질 뻔한 음식들, 소박한 야채들은 어머니의 언어이다. 그것들은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어머니의 종교를, 우리들의 사랑을, 때로는 아이들의 기쁜 재잘거림을 들려준다. 치자꽃으로 노랑물 들이고, 맨드라미 빨강 꽃물, 쑥으로 초록물 들여 음식을 만들던 사랑. 자다가 일어나 한밤에 샘물 길어 밤참을 준비하는 정성은, 음식이란 입으로 먹는 것만이 아니라 귀로 눈으로 마음으로 먹는 것임을 일깨워 준다. 결국, 여자가 요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  (머리말)


 요리사가 차려 준다 해서 맛난 밥이지는 않습니다. 밖에서 비싼 값 치러 사먹는다 해서 내 몸이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내 삶이 사랑이듯이 내 밥은 사랑입니다. 받는 밥상이든 차리는 밥상이든 사랑입니다. 사랑 아닌 밥상이란 없고,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요리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예쁘장하거나 맛깔스럽다 싶은 사진을 잔뜩 넣어야 요리책이 아닙니다. 서양밥이나 일본밥이나 중국밥을 남달리 보여주어야 요리책이지 않아요. 철 따라 먹고 날 따라 즐기는 우리 보금자리 조촐한 살림살이 밥차림을 이야기할 때에 비로소 요리책, 아니 밥책입니다. (4344.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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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옷 선물을 받다. 

- 2011.1.5. 

 

스스로 단추를 꿰고 

 

마실도 다녀오고 

 

그림도 그리고. 아빠는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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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떠 주는 뜨개 양말. 아직 다 뜨려면 멀었다. 한 켤레 뜨기까지 보름은 걸릴 듯... 

- 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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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글쓰기 삶쓰기 ㉣ 말로 이룬 열매, 글로 빚은 꽃


 우리가 쓰거나 읽는 글은 여러 갈래로 나눕니다. 이른바 문학이라는 이름을 맨 앞자리에 놓은 다음, 시하고 산문하고 소설하고 희곡을 나눕니다. 산문은 수필이라고도 하며, 소설은 어른소설하고 청소년소설이 있습니다. 소설하고는 다른 틀로 어린이한테 읽히는 동화가 있으며, 연극이나 영화나 연속극을 올릴 때에 쓰는 희곡이나 대본이 있어요.

 갈래로는 이렇게도 나누고 저렇게도 나누는데, 글이란 다 똑같은 글입니다. 이 글을 이런 갈래에 넣든 저런 갈래에 넣든 딱히 다른 뜻이 없습니다. 남자가 더 나은 사람이 아니듯 여자가 더 나은 사람이 아니에요. 교사가 가장 거룩한 일거리가 아니듯 농사꾼이나 대통령이 더 훌륭한 일거리는 아니에요. 저마다 제 몫이 있으며 제 길과 자리가 있어요. 나 스스로 나한테 가장 알맞으면서 좋은 가운데 나와 내 이웃을 아름다이 보듬을 일거리를 찾을 때에 즐겁습니다. 흔히들 대통령을 가장 높은 자리로 두곤 하지만, 흔히 하는 말이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틀에서 바라본다면 농사꾼이 가장 사랑스러운 자리라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농사꾼은 높거나 거룩한 자리에 올라서려 하지 않으면서, 늘 나와 내 이웃을 먹여살리는 일꾼이거든요.

 글을 갈래로 나눌 때에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누구한테는 시가 가장 사랑스러울 수 있고, 누구한테는 산문이 가장 즐거울 수 있으며, 누구한테는 소설이 가장 기쁠 수 있어요. 희곡을 좋아하든 동화를 좋아하든, 모두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이쯤에서 말사랑벗들이 하나 더 헤아려 주면 좋을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글쓰기를 시험으로 친다고 할 때에 100점을 맞아야 좋은 글이 아니에요. 0점을 맞는다고 엉터리 글이 아니에요. 우리가 쓴 글에는 점수를 붙일 수 없어요. 우리가 꾸리는 삶에는 점수를 매기지 못하거든요. 나 스스로 좋아하는 결을 찾고, 나부터 기뻐하는 삶을 보듬으면 넉넉합니다.

 글을 쓰는데 맞춤법을 잘 몰라서 받침이나 홀소리를 잘못 적었다고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돼요. ‘찌개’로 써야 맞는지 ‘찌게’로 써야 맞는지, 또는 ‘빨래집게’하고 ‘빨래집개’하고 어느 쪽이 바른지를 몰라도 글쓰기를 하면서 걱정스러울 일이란 없어요. 맞춤법은 틀릴 수 있고, 띄어쓰기를 모를 수 있어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나중에 혼자서 새로 배우면 되고, 틀렸으면 바로잡으면 돼요.

 그런데 말사랑벗들이 쓰는 글에 알맹이가 없다면 나중에 어찌저찌 손을 쓰지 못합니다. 무언가 할 이야기가 없는 글이라면 값이나 보람이나 뜻이 없어요. 동무들도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할 말’이 없으면 서로 멀뚱멀뚱하거나 쭈뼛쭈뼛하겠지요. 속이야기나 참이야기가 될 알맹이가 있어야 합니다. 속마음이나 참마음을 나눌 고갱이가 있어야 해요. 내 동무랑 어버이랑 이웃이랑 오순도순 주고받을 깊은 사랑과 따순 믿음이 있어야 해요.

 모든 글에는 바로 이 사랑과 믿음이 깃들어야 글이라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사랑과 믿음이 깃들지 못하고 껍데기로만 시 모양을 갖추거나 소설 틀을 이루거나 산문 모습이라 할 때에는, 허울은 좋게 시요 소설이요 산문이요 하겠으나, 우리가 기쁘게 맞아들일 문학이라 하는 시나 소설이나 산문은 못 되어요.

 그러니까 서울대학교라든지 제주대학교라든지 대구대학교라든지 인천대학교 같은 곳에 들어가는 일은 크게 마음쓸 일이 아니에요. 어느 대학교를 바라보며 입시 공부를 하든지, 내가 가려는 대학교에서 ‘커다란 배움’을 맞아들여 아름다운 삶과 넋과 말로 학문꽃을 피우도록 마음쓸 일입니다. 조금 더 마음쓸 수 있다면, 굳이 대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내 배움꽃을 피울 수 있어요. 텃밭을 일구거나 꽃밭을 돌보면서 배움꽃을 피웁니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을 다니며 책을 읽는 가운데 배움꽃을 이룹니다. 튀김닭이나 신문이나 우유를 나르면서 배움꽃을 얻습니다. 막일판이나 공장 일꾼으로 살아가면서 배움꽃을 깨달아요.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삶을 엿보는 가운데, 내가 쓰거나 읽는 글에 어떠한 빛줄기를 담아 어떠한 삶줄기를 이루면 좋을지를 몸으로 느끼지요.

 자, 그러면 문학 갈래에 따라 쓰는 글이 무엇인지 살짝 살펴봅니다.

 

 - 산문 쓰기
 모든 글은 산문에서 비롯합니다. 한자말로 ‘산문’이고 우리말로 ‘줄글’인데, 낱말책에서 풀이하는 ‘줄글’은 먼 옛날 한문으로만 글을 쓰던 이야기에 머무릅니다. 한문으로 글을 쓸 때에도 우리말 ‘줄글’로 가리키겠지만, 우리가 한문이 아닌 우리말을 한글이라는 그릇에 담는 글을 쓸 때에도 ‘줄글’이라 할 만해요. 따로 어떤 틀에 매이지 않으면서 줄줄이 쓰는 줄글이에요. 줄을 따라 한 줄 두 줄 써 내려 가는 글이 줄글이고요.
 따로 어떠한 틀에 매이지 않고 쓰는 글이 산문, 곧 줄글인데, 이렇게 쓴 줄글은 시가 되기도 하고 소설이나 동화가 되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흐르는 결을 곱게 살피며 꾸밈없이 적바림할 때에는 산문이 돼요.


 - 시 쓰기
 모든 글은 시에서 태어납니다. 시는 한자로 ‘詩’라 적는데, 한자로 적지 않아도 시는 시예요. 어쩌면 앞으로 말사랑벗님 가운데 ‘시’를 갈음할 만한 새 우리말 하나 빚을 수 있겠지요. 이 시란, 내가 글을 쓴다고 할 때에 가슴으로 담아 나누는 말밥입니다. 고픈 마음을 살찌우는 밥 같은 말, 이리하여 말밥이라 할 만한 글이 시예요.
 시를 쓸 때에는 가락을 살린다거나 글자수를 맞춘다거나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가락이나 글자수를 살피기 앞서, 내 마음이 흐르는 결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산문은 내 마음이 흐르는 결을 꾸밈없이 적바림하면서 태어나고, 시는 내 마음이 흐르는 결을 꾸밈없이 적바림하면서 태어나기도 하지만, 더도 덜도 아닌 밥그릇 하나에 알뜰히 밥을 담듯, 잘 짜 놓은 틀에 걸맞게 담아내어 태어나기도 합니다.


 - 소설·동화 쓰기
 소설하고 동화는 따로 갈래를 나눌 수 있으나, 둘을 하나로 여길 수 있습니다. 어른이 읽는다고 꼭 소설이거나, 어린이가 읽는다고 반드시 동화는 아니에요. 소설이나 동화는 산문이나 시에서 ‘어느 만큼 길이가 되는 줄거리’라는 살을 입히면서 이러한 ‘줄거리 살결’에 여러 가지 옷을 입힌다든지, ‘옷을 입힌 줄거리 살결이 여기저기 마실을 다니듯 돌아보는 삶’을 골고루 담아내는 이야기잔치입니다.
 산문은 꾸밈없이 적바림하는 티없는 글이고, 시는 꾸밈없이 적바림하려는 티없는 넋을 밥그릇 하나에 담은 글이며, 소설이나 동화는 꾸밈없이 적바림하려는 티없는 넋을 날마다 고마이 즐길 밥상을 꾸준하게 차리듯이 두고두고 즐기면서 언제나 새로운 기쁨을 베푸는 이야기잔치 같은 글입니다.


 - 희곡·대본 쓰기
 희곡이나 대본을 처음부터 따로 쓸 수 있기도 할 테지만, 희곡이나 대본을 쓰자면 먼저 산문이랑 시랑 소설이나 동화랑 밑바탕을 다스려야 한다고 느껴요. 사람에 따라 한달음에 모든 일을 이루기도 하지만, 웬만한 여느 사람은 차근차근 발걸음을 떼면서 나아가잖아요.
 희곡이나 대본은 무대에 올려 ‘나 스스로 하든 다른 사람한테 맡기든 서로 다 함께 하든’ 몸짓과 목소리와 노래와 춤 들을 알맞게 섞으며 선보일 수 있도록 하나하나 풀이말을 달아 놓은 시나 산문이나 소설이나 동화라고 할 만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이 몫을 맡은 사람이 이런 목소리 높낮이와 어떠한 빠르기로 말을 한다고 풀이말을 달고, 저 대목에서는 무대 한쪽에 무엇을 꾸며 놓는다든지 하는 풀이말을 달아야 해요. 산문·시·소설·동화를 쓰거나 읽을 때에는 말없이 머리로 ‘이들 글로 이루는 이야기에 나타나는 모습’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희곡과 대본은 머리로 가만히 여러 모습을 생각하지 않고, 누구나 두 눈으로 바라보거 두 귀로 들으며 가슴으로 뭉클하게 느낄 수 있게끔 풀이말을 꼼꼼하며 알맞춤하게 달아야 합니다.


 

 앞서, 글쓰기는 삶쓰기라고 했어요. 삶쓰기로 나아가는 글쓰기는 말로 이룬 열매를 맺고, 글로 빚은 꽃을 피웁니다. 글을 잘 써도 좋고 못 써도 좋아요. 아니, 잘 쓴 글이란 없고 못 쓴 글 또한 없어요. 나 스스로 내 삶이랑 넋을 고운 말결과 글투에 담아 소록소록 새로 태어나도록 한다면 즐겁습니다. 말사랑벗님들 누구나 예쁘며 착한 말열매를 신나게 빚으면 좋겠어요. 말사랑벗님들 모두모두 참다우며 해맑은 글꽃을 꾸준하게 이루면 기쁘겠어요.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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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이 - G&S 어린이 만화 5
이두호 지음 / 게나소나(G&S)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착하게 살면서 아름다이 마주하기
 [만화책 즐겨읽기 19] 이두호, 《두손이》



 우리가 날마다 꾸리는 삶을 담는 길은 여럿입니다. 첫째로는, 몸뚱이입니다. 살붙이랑 동무랑 이웃이랑 복닥이는 그대로 내 삶을 담습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살림을 꾸리는 결 그대로 내 삶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노래와 춤입니다. 구성진 노래도 부르고 해맑은 노래도 부릅니다. 신나게 춤을 추고 구슬핀 몸짓을 실어 손짓 발짓 몸짓을 합니다.

 셋째로, 그림입니다. 흙땅에 나뭇가지로 그리든 종이에 먹을 찍거나 연필을 들든 그림을 그립니다. 넷째가 글이고, 다섯째가 오늘날 사진입니다. 영화와 연속극도 내 삶을 담는 길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그림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종이에 남아 오늘까지 이어진 작품으로 쳐도 오래되었으나, 작품으로 남지 않고 동굴그림이나 벽그림으로 남은 그림도 몹시 오래되었습니다. 흙땅이나 모래밭에 그리던 그림이라면 참으로 헤일 길 없이 오래되었다 할 만합니다.

 만화는 그림 갈래에서 비롯한 새삼스러운 길입니다. 그림하고 글이 어우러지면서 남다른 길이 되었습니다. 만화는 여섯째나 일곱째쯤으로 ‘사람 삶을 나타내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만화라고 깎아내리지만, 아이들이 몹시 좋아한다는 소리란, 아이들이 쉽게 알아듣거나 받아들인다는 소리입니다. 아이들한테 쉽게 눈높이를 맞출 뿐더러, 학교 문턱을 오래도록 많이 밟지 않은 사람들 누구나 수월하게 마주할 만한 문화이자 예술이라는 소리입니다. 어린이부터 즐길 만한 길이요, 어린이와 함께 즐기면서 흐뭇한 삶이라는 뜻입니다.


.. “지금 달 떠 있지?” “아니, 달 안 떴어.”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끼었어.” “거짓말 마라! 달 떴다. 내 마음의 눈으로 다 보인다.” “너 점쟁이냐?” “아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올바른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도 다 볼 수 있는 법이다.” ..  (56∼57쪽)


 만화를 만화 그대로 살피지 못하는 어른들은 만화를 얕잡습니다. 만화가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그윽한 삶자락 하나인지 읽지 못하는 어른들은 만화를 멀리합니다. 만화에 담는 삶에 어떠한 멋과 맛이 깃드는지를 껴안지 않는 어른들은 만화를 비웃거나 까맣게 모를 뿐더러, 더 너른 삶밭을 만나지 못합니다.

 만화는 아주 쉽습니다. 만화는 머리를 지끈지끈 앓도록 하지 않습니다. 만화는 억지스레 꾸미지 못합니다. 만화는 그림 하나와 말 하나로 모든 삶을 나타냅니다. 만화는 우리 삶을 고스란히 담을 뿐 아니라 우리 꿈을 남김없이 보여줍니다. 만화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글을 몰라도 즐기는 만화요, 글 없이도 좋아할 수 있는 만화입니다. 만화는 신나는 이야기꽃입니다. 만화는 고운 삶꽃입니다.

 쉬우면서 고운 이야기꽃인 만화인 터라, 만화는 푸대접받거나 따돌림받습니다. 먼 옛날, 여느 사람 누구나 쉽게 배워 쉽게 쓰며 쉽게 생각을 나누도록 도와줄 글인 한글(훈민정음)이 막대접을 받거나 따돌림을 받았듯, 만화처럼 울타리 없고 스스럼없는 문화요 예술은 제 대접을 못 받습니다.

 만화에는 권력이 없고, 만화쟁이는 권력모임을 꾸릴 수 없습니다. 만화가 벗하는 사람이란 이 땅 가장 낮은 자리에서 숨죽이는 사람입니다. 어린이하고 사귀며, 글을 잘 모르는 사람하고 사귑니다. 경제도 사상도 철학도 역사도 정치도 문학도, 만화하고 어우러지거나 만화로 다시금 빚으면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으로 거듭납니다.

 권력자는 만화를 깎아내릴밖에 없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만화 맛과 멋을 즐긴다면, 권력자 꿍꿍이는 금세 까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만화를 손사래칠밖에 없습니다. 만화는 아주 쉽고 재미나며 주먹다짐 없이 가르치는데, 교사는 딱딱한 지식을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한손에 들고는 머리속에 쑤셔넣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또 나는 노인을 공경할 줄 알고 어린 것을 귀여워할 줄 알며, 나보다 약한 자를 건드린 적이 없고, 나보다 강한 자에게 비겁해 본 적이 없다. 남의 물건을 훔친 적이 없고 아무 데서나 침 뱉고 오줌 눈 적도 없다. 난 길에 더러운 게 떨어져 있으면 치울 줄 알고, 밭이나 들에 난 어린 싹을 밟지 않고, 산짐승을 만나도 새끼를 잡지 않지. 특히 난 욕심이 없어 마음이 늘 푸르지. 이만하면 되었느냐? 이만하면 내가 양반인 이유가 충분하냐고?” “그럼 네가 나와 같은 양반이다, 그거냐?” “뭐? 내가 언제 너보고 양반이라고 했느냐? 내가 보기엔 너나 이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너의 선조들은 똑똑했고 이 사람들의 선조는 똑똑하지 못해서 지금 처지가 달라졌을 뿐이지.” ..  (109∼111쪽)


 만화쟁이 이두호 님 작품 《두손이》를 읽습니다. 혼자서도 읽고 옆지기하고도 읽다가는 요사이에는 아이하고도 읽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이고, 다시 읽을 때마다 시원시원한 그림칸 요 구석 조 구석 다시 돌아봅니다. 처음 볼 때에 느끼던 맛을 다시 볼 때 거듭 느끼기도 하지만, 처음 보던 때에 지나치던 대목을 다시 보면서 새삼스레 깨닫기도 합니다.

 혼자 볼 때랑 둘셋이서 볼 때랑 다릅니다. 말없이 책장을 넘길 때하고 아이한테 한 대목씩 짚으며 이야기 살을 붙일 때하고 다릅니다.

 만화는 만화 그대로 좋기 때문에, 어른 혼자 읽든 아이 혼자 즐기든 좋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나와 내 아이가 함께 즐긴다든지, 나와 옆지기가 나란히 즐길 만화를 생각한다면, 숱한 만화책 모두 장만할 수는 없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 삶을 착하면서 아름다이 돌보는 데에 길동무가 될 작품을 추립니다. 두고두고 읽을 만화를 고릅니다. 길이길이 사랑할 만화를 살림집 책꽂이에 꽂습니다. 오래오래 아낄 만화를 집식구 모두 보드라운 손길로 어루만집니다.


.. 우리 나라는 신문물을 죄악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문물에 지고 말아 반만 년 역사의 나라를 빼앗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때도 조상들은 조국 사랑은 바로 우리 마을 사랑이고, 우리 자신을 아끼는 것이 나라를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느껴집니다 ..  (그린이 말)


 《두손이》는 서양사람이 조선땅에 막 쳐들어오던 무렵 바닷가 여느 마을 사람들 살림살이를 다룹니다. 이 조선땅은 강화섬이나 인천 앞바다일 수 있고, 목포나 군산 둘레일 수 있습니다. 바닷마을 생김새로 보아서는, 또 서양(러시아) 군함이 쳐들어오는 흐름을 보아서는 거문도는 아니고, 강화섬이나 인천, 또는 북녘땅 황해도 께로 여길 만하지만, 한양 들머리인 강화섬이나 인천 영종섬 즈음을 무대로 삼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뭐, 무대야 어디이든 좋습니다. 나오는 사람들이 백정이든 중인이든 농사꾼이든 양반이든 임금님이든 좋습니다. 무엇을 다루고 어떻게 보여주며 누구하고 말벗을 삼으려는 이야기인가를 살필 노릇입니다. 만화를 그린 이두호 님이 어느 자리에서 어떤 사람하고 이웃하는가를 느낄 노릇입니다.

 한 권으로 끝맺지 말고, ‘두손이’가 ‘방실이’하고 서양으로 떠나며 ‘배워서 돌아와 이 나라를 살찌우겠다’고 다짐하는 이야기를 2권으로 그린다든지, 3권째에는 조선으로 돌아와 복닥이는 삶을 그린다든지, 4권째에는 식민지살이를 그린다든지, 5권째에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그린다든지, 6권째에는 이동안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는 나날을 그린다든지, 7권째에는 어둡지만 빛을 보는 가난한 사람들 살림자락을 그린다든지, 8권째에는 고향을 잃거나 잊어야 하는 농사꾼 살림살이를 그린다든지, 9권째에는 눈부신 경제개발 그늘에 드리운 사람들 땀방울과 한숨을 그린다든지, 10권째에는 오늘을 새롭게 살아가는 손자나 증손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숨결을 그린다든지 할 수 있어요.

 짧은만화는 짧은만화대로 내 나름대로 생각날개를 펼칠 수 있어 좋습니다. 길게 내다보면서 온삶을 두루 담는 긴만화는 긴만화대로 좋습니다. 이두호 님이 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만화그리기에만 온마음 바칠 수 있다면, 《두손이》는 1권으로 끝이 아닌 10부작 만화쯤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터전에서는 《두손이》라는 만화책 하나 태어난 일로도 반가우며 기쁩니다.

 ‘두손이’는 힘과 이름과 돈 하나 없지만 착한 마음과 슬기로운 넋과 아름다운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힘보다 사랑이 좋고, 이름보다 믿음이 좋으며, 돈보다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착하게 살아야 착한 만화를 알아보며 즐깁니다. 아름다이 살려고 힘쓸 때에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만화를 살포시 껴안습니다. 나부터 오늘 하루 새롭게 착하고 아름다이 아이랑 옆지기랑 어깨동무하자고 다짐합니다. (4344.1.12.물.ㅎㄲㅅㄱ)


― 두손이 (이두호 글·그림,GenaSona 펴냄,2003.11.15./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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