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껍질과 하얀절편
김연희 지음 / 그린비 / 1995년 10월
평점 :
절판


요리책과 밥책과 이야기책
― 김옥희·김연희·김선희·김미원·김연미, 《수박 껍질과 하얀 절편》



- 책이름 : 수박 껍질과 하얀 절편
- 요리감수 : 김옥희
- 글 : 김연희
- 그림 : 김선희·김미원·김연미
- 펴낸곳 : 그린비 (1995.10.25.)


 어느새 집식구 밥차림을 도맡는 아빠로 살아갑니다. 밥을 잘한다거나 반찬을 잘 내지 못하면서도 어느덧 집식구 밥상을 도맡습니다.

 밥차림을 하는 아빠는 밥차림만 하지 않습니다. 빨래이니 청소이니 아이돌보기이니 도맡아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살림돈을 벌어야 합니다.

 혼자 살아가던 때에는 마땅히 혼자 밥을 차려 먹습니다. 혼자 꽤 오래 살다 보니 혼자 냄비 하나만 쓰는 일이 익숙합니다. 굳이 밥그릇에 밥을 푸는 일이 없고, 반찬을 여럿 내는 일조차 드물었습니다. 혼자 먹는 밥차림에 이런저런 반찬 내놓기를 해 보지 않아 버릇했고, 늘 한 가지 국이나 찌개만 끓여도 배부르다 여겼습니다.

 아이하고 옆지기 먹을 밥을 날마다 똑같이 차린다 해서 나쁠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매운 먹을거리를 못 먹는다 하더라도 김치를 접시나 그릇에 내놓지 않는다거나 찌개 하나만 달랑 끓여서는 아이가 좋아하기 어렵습니다. 어수룩하지만 이럭저럭 새롭게 한두 가지 다른 찬거리를 장만해 보려고 하지만, 늘 뻔한 틀에서 허덕입니다.

 앞으로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가며 열 해쯤 흐르면 나아질 수 있으려나요. 이냥저냥 힘들고 지치며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허우적거리기만 하려나요.

 밥차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아프며 힘든 옆지기와 함께 헌책방마실을 하던 지난해 어느 날, 옆지기는 《수박 껍질과 하얀 절편》이라는 책을 골라서 읽더니 아빠한테 건넵니다. 할머니와 딸 넷이 함께 일군 소담스러우면서 ‘밥차림 자랑’이 한 가지도 없는 요리책 아닌 ‘밥 이야기책’입니다. 밥차림 한 가지를 이야기하기 앞서 다섯 여자가 복닥이며 받아들인 삶을 짤막히 적바림합니다. 대단할 삶이 아니지만 모자랄 삶이 아니요, 놀라울 삶이 아니지만 어설픈 삶이 아닙니다. 수수한 대로 즐거우면서, 투박한 대로 재미난 삶입니다.


.. 어머니의 요리에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기쁨, 사랑, 감사의 삶이 그려져 있다. 콩과 씨앗, 버려질 뻔한 음식들, 소박한 야채들은 어머니의 언어이다. 그것들은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어머니의 종교를, 우리들의 사랑을, 때로는 아이들의 기쁜 재잘거림을 들려준다. 치자꽃으로 노랑물 들이고, 맨드라미 빨강 꽃물, 쑥으로 초록물 들여 음식을 만들던 사랑. 자다가 일어나 한밤에 샘물 길어 밤참을 준비하는 정성은, 음식이란 입으로 먹는 것만이 아니라 귀로 눈으로 마음으로 먹는 것임을 일깨워 준다. 결국, 여자가 요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  (머리말)


 요리사가 차려 준다 해서 맛난 밥이지는 않습니다. 밖에서 비싼 값 치러 사먹는다 해서 내 몸이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내 삶이 사랑이듯이 내 밥은 사랑입니다. 받는 밥상이든 차리는 밥상이든 사랑입니다. 사랑 아닌 밥상이란 없고,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요리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예쁘장하거나 맛깔스럽다 싶은 사진을 잔뜩 넣어야 요리책이 아닙니다. 서양밥이나 일본밥이나 중국밥을 남달리 보여주어야 요리책이지 않아요. 철 따라 먹고 날 따라 즐기는 우리 보금자리 조촐한 살림살이 밥차림을 이야기할 때에 비로소 요리책, 아니 밥책입니다. (4344.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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