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34] 눈맞춤

 서로 마음을 맞추며 살아가기에 마음맞춤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삶을 보듬기에 사랑맞춤입니다. 서로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으니 책맞춤입니다. 서로 마주 바라보는 눈높이를 맞추려고 키맞춤을 합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소리맞춤을 합니다. 생각을 나누는 동안 어느새 뜻맞춤을 합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으나 푼푼이 그러모으면서 다 같이 돈맞춤을 합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우리들은 이야기맞춤을 합니다. 비좁은 자리라 할지라도 서로 마음을 기울여 다리가 덜 아프도록 자리맞춤을 합니다. 하루하루 차근차근 이루어 가는 우리 꿈을 헤아리면서 꿈맞춤을 합니다. 나와 네가 날마다 꾸리는 이 삶을 아끼고자 삶맞춤을 합니다. 어깨동무하는 좋은 일이기에 일맞춤을 하다가는, 함께 일하고 함께 놀자며 놀이맞춤을 합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기르는 어버이는 아이하고 눈맞춤을 합니다. 맞춤 가운데에는 입맞춤이 있어요. 좋아하는 사이이기에 입술과 입술을 맞닿아 따스한 사랑을 나눕니다. 아이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거닐면서 생각하고, 다리가 아프다 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생각합니다. 어떠한 맞춤이든 맨 먼저 눈을 맞추지 않고서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4344.1.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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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야 미안해


 아이가 저녁 일곱 시에 잠들었다. 아이는 저녁 아홉 시 이십 분쯤 깼다. 아빠가 아이 옆에서 함께 잠들었다면, 아이는 저녁 아홉 시 이십 분 즈음에 이래저래 칭얼대다가 옆에서 함께 잠든 아빠를 보면서 걱정없이 즐거이 잠을 이었겠지. 그러나, 아빠는 아이가 잠들었다면서 ‘그래, 이제부터 아빠도 글 좀 쓰고 책 좀 읽자고!’ 하는 생각으로 큰방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아이는 그만 잘 자다가 깨고 만다. 잘 자다가 깼기 때문에 여느 때하고 견줄 수 없이 짜증이 더한 몸짓으로 아빠를 힘들게 한다.

 아빠는 참 힘들다. 그러나, 아빠가 힘들다고 느끼는 만큼, 또는 아빠가 힘들다고 느끼는 만큼보다 더욱, 아이 네가 힘들겠지. 미안하구나. 네가 새근새근 잠들기는 했으나, 네 곁에 엄마가 함께 잠들었다면 네가 살짝 깼다 하더라도 다시 고이 잠들 수 있었겠지. 네 곁에 엄마랑 아빠 둘 다 없으니, 살짝 깼을 때 이렇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울면서 칭얼댈밖에 없겠지.

 그깟 글조각이 얼마나 대수롭거나 대단하다고, 아빠가 이 글조각 붙잡는다며 너를 제대로 재우지 않으면서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너 먹이고 아빠랑 엄마 먹자면서 글을 쓰는데, 아빠야말로 얼마나 벌어먹으려고 이렇게 글조각을 붙잡는지 모르겠구나. 아빠는 이렇게 글조각을 붙잡을지라도 우리 세 식구, 곧 네 식구가 될 우리 살림살이를 보듬기에도 꽤나 빠듯한데.

 그래도, 이렇게 네가 깨 주었으니, 아까 네 코를 솜막대로 살살 파면서 코딱지를 떼어낼 때 잠드는 바람에 네 이를 닦아 주지 못했는데, 이참에 네 이를 닦아 주면 되겠구나. (4344.1.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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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3. 

콧물이 그치지 않아 혼자서도 콧물을 킁 하고 푸는 아이.

 

아이는 하루하루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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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마음
― 조성선,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



- 책이름 :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
- 글 : 조성선
- 펴낸곳 : 전파과학사 (1985.6.20.)


 내가 글을 언제부터 썼는가 곰곰이 돌아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1년에 처음으로 글쓰기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학교 다니던 때까지는 따로 글쓰기를 하지 않았고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글쓰기를 온마음 기울여 붙잡은 때는 1995년부터라고 느낍니다. 내 어버이하고 살아오던 집에서 나와 혼자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갈 때부터 비로소 내 글쓰기 첫길을 열었다고 떠올립니다.

 1995년 4월 5일, 내 어버이 집을 나와 홀로 살림을 꾸리기로 한 때부터 이제까지 어설프든 어리숙하든 집살림과 책살림과 글살림을 혼자서 맡습니다. 따지고 보면 혼자서 살림을 한다 할 수 없고, 내 둘레 숱한 사람들 도움손길을 받으며 혼자서 이것저것 할 수 있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혼자 살아간다지만 밥과 옷과 집을 혼자서 마련하지는 못하니까요. 언제나 누군가한테서 도움을 받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글쓰기를 할 때에 으레 내 힘과 슬기로 글쓰기를 한다지만, 글로 쓸 수 있는 이야기란 내가 꾸린 삶이면서 내가 내 둘레 사람들과 부대끼며 꾸린 삶입니다. 내가 부대끼며 꾸린 삶이란 내 힘만으로 이룬 삶이 아니라, 둘레 사람들 사랑과 믿음으로 이룬 삶입니다. 글쓰기를 하기까지 얻는 온갖 깜냥 또한 내 마음밭이 따뜻하거나 내 머리가 뛰어나서 얻는 깜냥이 아닙니다. 나한테는 조그마한 씨앗이 하나 있을 뿐, 이 씨앗을 돌보거나 보살피는 손길이 많습니다. 게다가 내 가슴에 깃든 씨앗이란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길러서 베푼 선물입니다.


.. 수업을 참관하던 내가 보기에는 보라색이 아니라 검은색으로 보였다. 다른 분단에서 실험한 결과도 모두 검은색으로 나타났다. 나는 조금 전에 발표했던 학생 곁으로 다가갔다. “얘, 이 색이 보라색이냐?” 그 학생은 머리를 긁으며 싱긋이 웃기만 하고 말을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보라색 같지가 않은데, 너는 이 색이 무슨 색으로 보이니?” 나는 옆에 앉은 다른 학생에게 물어 보았다. “검은색 같아요.” … “그런데 왜 보라색이라고 발표했지?” “녹말가루에 요오드용액을 떨어뜨리면 보라색으로 변하니까요.” … “네가 실험한 결과는 소금이 ‘거뭇거뭇’하게 되지 않았는데 왜 ‘거뭇거뭇’하다고 발표했자?” “전과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그 학생은 거침없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 지식이란 이미 발견되었거나 밝혀진 사실을 체계있게 엮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 수업에서, 교사가 어떤 식의 덩어리를 말로만 가르친다면, 그것은 어린이들의 발견하고자 하는 왕성한 의욕을 꺾어버린 결과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  (9, 12, 39쪽)


 1995년 4월부터 2011년 1월에 이르는 나날을 돌이킵니다. 갓 홀로 살아가던 때이든 멧골자락 작은 집에 깃든 오늘 내 삶이든, 글쓰기를 하는 방은 겨울이면 썰렁해서 손이 시립니다. 따끈따끈한 곳에서 글쓰기를 한 적은 한 번조차 없다고 느낍니다. 추위를 잊거나 모르면서 글쓰기를 한 일은 아직 없다고 느낍니다. 추운 날은 춥게 글을 쓰고, 더운 날은 덥게 글을 씁니다. 글을 쓸 때면 으레 날씨를 헤아리고, 날씨를 헤아리는 하루하루 그대로 글을 씁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잠이 모자란 나날인 오늘, 잠이 모자라 꾸벅꾸벅 졸면서 글을 씁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는 매무새 그대로 글을 쓰고, 아이를 안고 달래며 토닥여 재우는 삶자락 고스란히 글을 씁니다.

 돈이 없어 더 따스한 집을 마련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내 살림집을 꾸리거나 보듬는 데에 마음을 쓰지 못하기도 합니다. 겨울날 추운 집이라면 이래저래 뚝딱뚝딱 고치거나 손질해서 찬바람이 덜 들어오도록 해야 할 텐데, 이런 데에는 제대로 마음을 쓰지 못합니다. 책 하나를 살핀다든지, 글 하나를 여민다든지, 어리숙하나마 밥하고 빨래하는 집일에는 마음을 쓰지만, 막상 집 안팎을 다스리는 데에는 젬병입니다. 글을 쓰는 데에 마음을 바치듯, 집을 고치는 데에 마음을 바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한 사람이 모든 삶을 다 건사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나 스스로 모든 삶을 다 건사한다면 글을 쓸 겨를이 없다든지, 구태여 글까지 쓰면서 살아갈 까닭이 없는지 모릅니다. 집을 손질하는 재미 하나로 넉넉할 삶일 테니까요.


.. 이렇게 볼 때 공장을 거쳐 나온 물건들은 제조되는 과정에서 연료를 소비시킨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므로 우리는 물건이나 물자의 낭비를 막음으로써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대기오염도 줄여야 할 것이다. 즉 대기오염과 거리가 먼 것 같은 수도물도 헤프게 쓰면 쓸수록 대기를 오염시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수도물 생산비의 1/3∼1/5은 전기요금이므로, 수도물의 낭비는 전기의 낭비와 같고, 전기의 낭비는 결국 석유나 석탄을 더 많이 태워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결국 대기오염을 심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결국 대기오염을 심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물 한 컵 연필 한 자루 도화지 한 장 양말 한 켤레라도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동안 대기가 오염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못 쓰게 된 물건이라도 마구 버리거나 태워서 또다시 대기를 오염시킬 것이 아니라 다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연구하여 재활용해야 할 것이며 ..  (143∼144쪽)


 글을 쓰는 마음은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기쁘든 슬프든 즐겁든 고단하든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을 그대로 글로 담습니다.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을 쓴 조성선 님은 과학이라는 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살았기에 이와 같은 책을 묶었겠지요. 과학나무가 삶나무가 되고, 삶나무가 사랑나무가 되는 길을 헤아리면서 글조각 하나하나 모았겠지요.

 글이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책이란, 어느 날 한꺼번에 확 쏟아부은 글로 엮지 않습니다. 글이란, 오늘까지 살아낸 내 모든 땀과 슬기와 꿈을 실어 푼푼이 적바림합니다. 책이란, 날마다 조금씩 적바림하면서 그러모은 삶조각을 차근차근 꿰어맞추며 내놓습니다.

 과학을 하는 마음이란 글을 쓰는 마음과 마찬가지로, 내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제대로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학을 하는 마음이란 글을 쓰는 마음과 매한가지로, 내 삶을 아낌없이 사랑하면서 아낌없이 돌보는 매무새를 건사해야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학문하는 과학으로만 치달을 수 없는 과학이요, ‘순수’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치달을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웃음과 울음을 담는 과학하는 마음이고, 갖은 기쁨과 슬픔을 싣는 글쓰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4344.1.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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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64] Hi Seoul 맑은서울

 세 식구 나란히 서울로 볼일을 보러 다녀온 어느 날, 광화문 옆길을 걷다가 서울 시내버스 한쪽에 붙은 딱지를 들여다본다. 오, ‘친환경차량’을 써서 ‘맑은서울’을 이룬다는구나. 그런데, ‘맑은서울’이라면서, 정작 옆에는 ‘Hi Seoul’이 그대로 있네. 이럴 바에는 ‘맑은서울’이라 하지 말고, ‘Hi Seoul’하고 아귀를 맞추어 ‘Clean Seoul’이라 해야지. ‘반가운 서울’이나 ‘좋은 서울’이나 ‘웃는 서울’이 아닌 ‘Hi Seoul’이면서 ‘맑은서울’이라니. (4344.1.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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