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4.12.


《늑대의 딸 2》

 코다마 유키 글·그림/정우주 옮김, 소미미디어, 2025.1.8.



날이 뿌옇고 구름이 덮는다. 비가 오려나. 어제 마을에서 마늘밭에 풀죽임물을 어마어마하게 뿌리던데, 죽음빛을 씻어낼 비가 오실 수 있겠다고 느낀다. 한낮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듣다가 저녁에 시원스레 내린다. 이렇게 비오는 날인데 고흥군청과 면사무소는 ‘산불금지’ 마을알림을 시끄럽게 틀어댄다.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우렁차다. 《늑대의 딸 2》을 읽고서 고개를 저었다. 첫걸음은 꽤 볼만하도록 줄거리를 짰다고 여겼으나, 두걸음에서 바로 뒹군다. 늑대와 숲과 사람 사이에 오래도록 맺은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길이 아닌, ‘오직 짝짓기’로 기울려고 해버린다. 큰아이도 함께 읽고서 낯을 잔뜩 찡그린다. “왜 이렇게 그렸대!” 하는 큰아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주어야 할까. “아무래도 짝짓기를 그려야 만화도 책도 팔릴 수 있다고 여기나 봐. 늑대살이와 숲살림과 사랑이라는 길을 푸른붓으로 그리면 만화도 책도 안 팔린다고 여기기 때문이겠지.” 하고 얘기하면서도 쓸쓸하다. 늑대가 어떤 숲빛인지 차분히 그려나가면서 부드러이 짝을 맺는 길도 곁들이면 된다. 사람도 늑대도 나비도 “짝만 맺으려고 몸뚱이가 자라지 않는”다. 철이 들면서 눈을 틔우고 마음을 가꾸려고 몸도 나란히 자랄 뿐이다.


#狼の娘 #小玉ユキ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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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19. 마냥 제비



  아침에 길을 나선다. 마을앞에서 시골버스를 기다리자니 제비 한 마리가 코앞까지 날아와서 나를 자꾸 들여다본다. 크게 빙그르르 돌면서 길바닥이나 논배미에 거의 닿을 듯 아슬아슬 미끄러지다가 꼭 내 앞에서 휙 솟구쳐서 까치집 옆을 가볍게 스친다. 한참 바라보다가 버스를 탄다.


  흔들덜컹 춤추는 시골버스에서 노래 두 자락을 쓴다. 이제 고흥읍에서 부산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자니, 읍내 제비 일고여덟 마리가 부드러우면서 기운차게 날갯짓이다. 읍내 제비를 한참 물끄러미 보면서 해바라기를 한다.


  제비춤을 보느라 한동안 붓을 놓는다. 곧 들어올 버스를 살피며 다시 붓을 쥔다. 제비가 날고 노래할 적에 시끄럽다고 느낀 적이 없지만, 사람들이 덧없이 떠들 적에는 늘 귀가 따갑다고 느낀다. 우리 사람들 말소리는 어쩌다가 마음빛을 잃고서 시끌소리로 나뒹굴까? 새한테서 배우던 숲사람 눈길을 왜 잊었을까, 바람과 바다한테서 배우던 들사람 넋을 왜 잃을까?


  제비가 춤추고 노래하는 하늘을 보는 시골사람을 볼 수 없는 아침이 흐른다. 뭐, 그럴 수 있지. 제비와 꾀꼬리와 동박새와 뜸북새와 뱁새와 소쩍새를 그리면서 귀여겨듣고 바라보는 시골이었다면 처음부터 풀죽임물(농약)과 비닐은 아예 들어올 수 없었으리라. 부산이웃한테 드리려고 《토리빵 8》을 석 자락 더 장만했다. 부디 부산에서는 이 그림꽃을 반기는 눈망울을 만날 수 있기를 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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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0일

이튿날 부산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바보눈' 모임을 꾸립니다.

이날 나누는 밑글을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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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기 모임 (12걸음)
― 바보눈 + 나살림 : 바라보고 보살피는 눈 + 나를 살리는 씨앗


곳 : 부산 거제동 〈책과 아이들〉과 함께
때 : 2025년 4월 20일 (일요일) 10∼12시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80세 마리코 1∼16》


얼개
ㄱ. 이오덕을 바라보면서 나를 보살피는 눈을 틔운다.
ㄴ. 드높은 봉우리가 아닌, 아이 곁에 있는 어른을, 아이한테 쉬운말로, 상냥하게 이야기 들려주며,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고서, 우리 손으로 적으면서, ‘나살림’으로 나아간다.
ㄷ. 이오덕을 읽어가면서 ‘나’라는 마음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생각한다.
ㄹ. 여태 이오덕 책은 두루 읽었으니, “‘이오덕’이라면 어떻게 읽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나를 사랑으로 읽을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줄거리 : ‘모임’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 글쓰기연구회 ……)

  모인다고 하는 뜻인 ‘모임’입니다. ‘모이다·모으다’는 옛꼴이 ‘모히다·모흐다(뫼흐다)’이고, 밑동은 ‘뫃(모 + ㅎ)’입니다. 모으거나 모인다고 할 적에는 덩이를 이룬다는 뜻이고, 덩이를 이룬 하나이기에 ‘몸’이고, 덩이로 바라보기에 ‘모습’이고, 덩이가 덩치를 이루어 커다랗기에 ‘뫼(메)’입니다.

  모이거나 모은다고 할 적에는 “하나로 크게 이루거나 어울리려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따로 있는 ‘낱’은 “작은 하나”라면, 여럿을 덩이로 이룬 ‘몸·모임·뫼’는 “커다란 하나”입니다. ‘낱’이 따로 있는 작은 하나이듯, 벼나 밀이나 보리나 조나 수수 같은 풀열매는 ‘낟·낟알’이라 합니다. 뭉치기에 ‘뭇사람’이지만, 뭇사람을 이루는 “작은 하나”는 ‘나’예요. 숲을 이루는 ‘나무’는 숲으로 보자면 ‘나무모음·나무뭉치’일 테지만, 낱낱으로 나무가 있기에 숲으로 크게 어우릅니다.

  꾸역꾸역 모아서 덩치만 크다면 ‘뚱뚱’하다고 여깁니다. 알맞게 모아서 뜻과 길과 빛을 아름답게 펼치면 ‘든든·튼튼·단단’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몇몇 노림길로 기울거나 치우치면 ‘딱딱’할 뿐 아니라, ‘닫아’버리는 ‘담’으로 치닫습니다. 여럿을 아우르며 아름답게 나아가는 몸과 모습과 모임이라면 ‘담는(담다)’ 구실로 단단하면서 서로 닮고 다른 빛을 펼 텐데, 그저 뭉뚱그려서 얕게 노림길을 꾀할 적에는 판박이처럼 닮다가 닳고 말아서 아무런 사랑도 꿈도 빛도 없이 단단하다가 딱딱하게 굳어서 바스라지는 굴레입니다.

  낱과 낟인 나로 있기에 마냥 작거나 초라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무처럼 가만히 서서 “나와 마찬가지로 나무로 있는 너”하고 만나서 ‘우리’가 함께 숲을 이룰 만합니다. 그렇지만 낱과 낟인 나를 팽개치면서 그저 뭉뚱그리려고 하면 ‘나·너·우리’를 모조리 밟게 마련이라서, 이때에는 “닫힌 울타리”인 ‘가두리(가둔 우리)’로 치우치니, ‘모임’이 그만 글담(문단권력)처럼 갑갑하게 얽매입니다.

  이오덕 님은 혼자서 온나라 모든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는 줄 알았기에, 온나라 여러 길잡이(교사)가 작게 뜻을 모으고 힘을 여미어서 “어린이 곁에서 함께 살림을 짓는 하루를 누리면서 같이 글그림을 펴는 작은모임”을 바랐습니다. 처음에는 ‘경북글쓰기회’로 꾸렸고, 이 작은모임을 ‘한국글쓰기연구회’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모임을 키우는 동안에도 사람(회원)들은 ‘모임꾸러미(회보)’에 글을 잘 안 냈습니다. 모여서 이루는 술자리만 좋아하는 사람(회원)이 너무 많았습니다. 모처럼 글을 쓰더라도 어린이 살림길하고는 동떨어진 동심천사주의나 ‘문교부 작문교육’에 갇히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해에는 총무 일을 맡은 어느 해직교사가 ‘회비 5000만 원’을 빼돌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모임은 어떻게 열고 어떻게 꾸리며 어떻게 나아갈 적에 스스로 ‘아름몸’을 이루면서 ‘사랑모습’이라는 빛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이 대목을 곰곰이 생각할 때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아무나 나라지기(대통령)나 벼슬꾼(공무원)을 맡지 않을 노릇이되, 누구나 나라지기나 벼슬꾼을 맡아도 될 만큼, 우리 모두 고르게 눈을 틔우고 마음을 가꾸며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숨결로 설 노릇이어야 알맞습니다. 뛰어나거나 빼어나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람만 길잡이나 일꾼 노릇을 해야 하지 않아요. 누가 어느 자리에 앉든 알맞고 아름답게 살림살이를 북돋우는 일꾼으로 설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글쓰기를 다루거나 가르치는 일을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잘 써야 하는 글이 아닌, 우리 삶을 살림짓는 손길과 눈길로 풀어내어 사랑스럽게 숲빛으로 담아낼 줄 아는 글이면 됩니다. 모든 사람은 숲목숨입니다. 모든 사람이 누리는 밥옷집은 숲들메바다에서 비롯합니다. 숲빛과 들빛과 멧빛과 바다빛으로 물들면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서기에 사람이고, 이러한 사람으로서 문득문득 그날그날 글살림을 짓고 말살림을 펼 뿐입니다.

  우리는 문학이나 문화나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림을 짓는 손길로 글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몸짓(연극)도 하고 이야기도 짓고 두런두런 두레를 이루어 일하고 놀이하고 쉬는 사람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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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9일

오늘 부산 마을책집 <카프카의 밤>에서 

'이응모임'을 꾸립니다.

오늘 나누는 밑글을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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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이응모임” 12걸음

― 새롭게 있고, 찬찬히 읽고, 참하게 잇고, 느긋이 익히고



때 : 2025.4.19.토. 19시 30분

곳 : 부산 연산동 〈카프카의 밤〉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일하는 아이들》을 미리읽기, 또는 〈카프카의 밤〉에서 사기



줄거리

가. 하루글

 ㄱ 하루를 읽기

 ㄴ 늘 다른 하루

 ㄷ 어제 오늘 모레

 ㄹ 작은집에서 옹기종기

 ㅁ 철이 흐르다


나. 하루쓰기

 ㄱ 일기검사

 ㄴ 일기를 쓸 틈

 ㄷ 숙제를 할 짬

 ㄹ 준비물 살 돈

 ㅁ 집안일 집살림


다. 글씨

 ㄱ 한글을 배우지만

 ㄴ 동심천사주의와 교과서

 ㄷ 캐릭터북과 문해력

 ㄹ 어린이한테 안 묻다

 ㅁ 교육전문가끼리


라. 일없는 아이들

 ㄱ 자가용으로 모신다

 ㄴ 학원버스로 모신다

 ㄷ 집안일은 누가?

 ㄹ ‘살림’을 본 적 없는

 ㅁ ‘졸업장’과 성과


+


열두걸음 : 하루글·하루쓰기


  우리는 그냥그냥 쓰는 말글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학교’에서 쓰거나, ‘사회’에서 쓰거나 ‘정부·공공기관’에서 쓰거나 ‘언론’에서 쓰거나 ‘책’에서 쓰면 곧이곧대로 외워서 따라해야 하는 듯 잘못 여기기 일쑤입니다.


  아직 학교에서는 ‘일기’를 쓰라고 얘기하고, 정부와 언론은 ‘일기예보’를 내놓습니다. 한글로 옮기면 ‘일기’이되, ‘日記·日氣’인 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어린이한테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여기에 ‘一技·一紀·一氣·一期’처럼 한자로 적는 다른 낱말이라면, 아이어른 모두 무슨 말인 줄 더욱 못 알아차리게 마련입니다.


  우리말에 ‘일기’란 없습니다. 중국말이거나 일본말입니다.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쓸 수도 있되, 굳이 ‘일기’를 써야 할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우리말로 어린이부터 부드럽고 수월하게 알아들으면서 어른도 널리 생각을 나누는 낱말을 우리 나름대로 ‘사투리’로 새롭게 짓겠다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일본말씨라고 여길 만한 ‘日記’는 ‘하루를 적다 = 하루쓰기 = 하루글’로 이야기할 만합니다. ‘日氣’는 ‘하루를 읽다 = 하루읽기 = 하루길’로 이야기할 만합니다. ‘일기(日氣)’를 놓고는 진작부터 ‘날·날씨’라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날이 어떤가?”라든지 “날씨는 어떨까?” 하고 으레 말합니다. 그런데 정부와 언론은 ‘날씨알림·날씨얘기’처럼 누구나 쉽게 곧바로 알아들을 말로 하루길이 어떠한가 하고 들려주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 정부와 언론이 ‘날씨알림·날씨얘기’처럼 말을 바꾸어야 알맞다고 목소리를 내지 못 합니다.


  아이를 낳거나 돌본 어른이라면, 다음처럼 이야기를 해보았을 만합니다. “자, 이제 일기를 쓰자.” “일끼? 일귀? 잇기?” “일기.” “일기? 일기가 뭐야?” “일기는 오늘 하루 지낸 이야기를 쓰는 글이야.” “오늘 하루 이야기? 그러면 오늘쓰기? 하루쓰기?”


  어린이한테 ‘일기’는 매우 어려운 낱말입니다. 열세 살이 아닌 열여섯 살이나 열아홉 살에 이르러도 못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스무 살이나 서른 살에 이르러도 속뜻을 못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쓰기’나 ‘하루쓰기’라 하면 이내 알아차리면서 오늘과 하루를 가만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오덕 님은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어린이 글모음을 꾸리면서 ‘하루글·하루쓰기’가 아이들한테 얼마나 뜻깊으면서 빛날 만한지 가만히 밝혔습니다. 먼 옛날이나 앞날이 아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우리 스스로 느끼고 보고 생각하고 겪고 마음을 기울인 대로, 우리 손끝으로 찬찬히 적어 보자는 뜻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늦잠이었다면 늦잠 이야기를 쓰면 됩니다. 오늘 아무것도 안 풀려서 아무 일도 못 했다면 이대로 쓰면 됩니다. 오늘 어쩐지 잘 풀렸으면 잘 풀린 그대로 쓰면 됩니다. 오늘 싫거나 좋거나 괴롭거나 반가운 일이 있으면 모두 그대로 쓰면 됩니다. 얻어맞았다든지 동생을 돌본 하루도 그저 그대로 쓰면 됩니다. 스스로 오늘을 읽고서 말할 수 있을 적에 스스로 자랍니다. 스스로 하루를 헤아리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적에, 이 하루를 스스로 그리는 꿈과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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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타인능해



 타인능해(他人能解)라 새겨져 있는데 → ‘누구라도’라 새겼는데

 타인능해(他人能解)의 정신을 실천하려는 → ‘누구나 연다’는 넋을 펴려는


타인능해 : x

타인(他人) : 다른 사람

능해 : x



  어느 절집에 ‘他人能解’라 글씨를 적었다고 하는데, 이 글씨를 읽고서 뜻을 새길 사람은 드뭅니다. 가난해서 굶는 사람들이 뒤주를 열어서 쌀을 퍼 가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막상 가난하거나 굶는 사람은 ‘他人能解’ 같은 글씨를 못 읽을 텐데요. 참으로 이웃을 헤아린다면 “누구나 열다”처럼 바로 알아들을 글을 적을 노릇입니다. 단출히 ‘누구나·누구든지·누구라도’처럼 적어도 될 테고요. ㅍㄹㄴ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굶주린 이는 누구라도 뒤주를 열고 쌀을 퍼 가라는 뜻입니다

→ ‘누구나 연다’라는 글을 적었습니다. 굶주린 이는 누구라도 뒤주를 열고 쌀을 퍼 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먹어요》(고정순, 웃는돌고래, 2022)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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