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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0일
이튿날 부산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바보눈' 모임을 꾸립니다.
이날 나누는 밑글을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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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기 모임 (12걸음)
― 바보눈 + 나살림 : 바라보고 보살피는 눈 + 나를 살리는 씨앗
곳 : 부산 거제동 〈책과 아이들〉과 함께
때 : 2025년 4월 20일 (일요일) 10∼12시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80세 마리코 1∼16》
얼개
ㄱ. 이오덕을 바라보면서 나를 보살피는 눈을 틔운다.
ㄴ. 드높은 봉우리가 아닌, 아이 곁에 있는 어른을, 아이한테 쉬운말로, 상냥하게 이야기 들려주며,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고서, 우리 손으로 적으면서, ‘나살림’으로 나아간다.
ㄷ. 이오덕을 읽어가면서 ‘나’라는 마음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생각한다.
ㄹ. 여태 이오덕 책은 두루 읽었으니, “‘이오덕’이라면 어떻게 읽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나를 사랑으로 읽을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줄거리 : ‘모임’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 글쓰기연구회 ……)
모인다고 하는 뜻인 ‘모임’입니다. ‘모이다·모으다’는 옛꼴이 ‘모히다·모흐다(뫼흐다)’이고, 밑동은 ‘뫃(모 + ㅎ)’입니다. 모으거나 모인다고 할 적에는 덩이를 이룬다는 뜻이고, 덩이를 이룬 하나이기에 ‘몸’이고, 덩이로 바라보기에 ‘모습’이고, 덩이가 덩치를 이루어 커다랗기에 ‘뫼(메)’입니다.
모이거나 모은다고 할 적에는 “하나로 크게 이루거나 어울리려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따로 있는 ‘낱’은 “작은 하나”라면, 여럿을 덩이로 이룬 ‘몸·모임·뫼’는 “커다란 하나”입니다. ‘낱’이 따로 있는 작은 하나이듯, 벼나 밀이나 보리나 조나 수수 같은 풀열매는 ‘낟·낟알’이라 합니다. 뭉치기에 ‘뭇사람’이지만, 뭇사람을 이루는 “작은 하나”는 ‘나’예요. 숲을 이루는 ‘나무’는 숲으로 보자면 ‘나무모음·나무뭉치’일 테지만, 낱낱으로 나무가 있기에 숲으로 크게 어우릅니다.
꾸역꾸역 모아서 덩치만 크다면 ‘뚱뚱’하다고 여깁니다. 알맞게 모아서 뜻과 길과 빛을 아름답게 펼치면 ‘든든·튼튼·단단’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몇몇 노림길로 기울거나 치우치면 ‘딱딱’할 뿐 아니라, ‘닫아’버리는 ‘담’으로 치닫습니다. 여럿을 아우르며 아름답게 나아가는 몸과 모습과 모임이라면 ‘담는(담다)’ 구실로 단단하면서 서로 닮고 다른 빛을 펼 텐데, 그저 뭉뚱그려서 얕게 노림길을 꾀할 적에는 판박이처럼 닮다가 닳고 말아서 아무런 사랑도 꿈도 빛도 없이 단단하다가 딱딱하게 굳어서 바스라지는 굴레입니다.
낱과 낟인 나로 있기에 마냥 작거나 초라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무처럼 가만히 서서 “나와 마찬가지로 나무로 있는 너”하고 만나서 ‘우리’가 함께 숲을 이룰 만합니다. 그렇지만 낱과 낟인 나를 팽개치면서 그저 뭉뚱그리려고 하면 ‘나·너·우리’를 모조리 밟게 마련이라서, 이때에는 “닫힌 울타리”인 ‘가두리(가둔 우리)’로 치우치니, ‘모임’이 그만 글담(문단권력)처럼 갑갑하게 얽매입니다.
이오덕 님은 혼자서 온나라 모든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는 줄 알았기에, 온나라 여러 길잡이(교사)가 작게 뜻을 모으고 힘을 여미어서 “어린이 곁에서 함께 살림을 짓는 하루를 누리면서 같이 글그림을 펴는 작은모임”을 바랐습니다. 처음에는 ‘경북글쓰기회’로 꾸렸고, 이 작은모임을 ‘한국글쓰기연구회’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모임을 키우는 동안에도 사람(회원)들은 ‘모임꾸러미(회보)’에 글을 잘 안 냈습니다. 모여서 이루는 술자리만 좋아하는 사람(회원)이 너무 많았습니다. 모처럼 글을 쓰더라도 어린이 살림길하고는 동떨어진 동심천사주의나 ‘문교부 작문교육’에 갇히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해에는 총무 일을 맡은 어느 해직교사가 ‘회비 5000만 원’을 빼돌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모임은 어떻게 열고 어떻게 꾸리며 어떻게 나아갈 적에 스스로 ‘아름몸’을 이루면서 ‘사랑모습’이라는 빛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이 대목을 곰곰이 생각할 때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아무나 나라지기(대통령)나 벼슬꾼(공무원)을 맡지 않을 노릇이되, 누구나 나라지기나 벼슬꾼을 맡아도 될 만큼, 우리 모두 고르게 눈을 틔우고 마음을 가꾸며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숨결로 설 노릇이어야 알맞습니다. 뛰어나거나 빼어나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람만 길잡이나 일꾼 노릇을 해야 하지 않아요. 누가 어느 자리에 앉든 알맞고 아름답게 살림살이를 북돋우는 일꾼으로 설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글쓰기를 다루거나 가르치는 일을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잘 써야 하는 글이 아닌, 우리 삶을 살림짓는 손길과 눈길로 풀어내어 사랑스럽게 숲빛으로 담아낼 줄 아는 글이면 됩니다. 모든 사람은 숲목숨입니다. 모든 사람이 누리는 밥옷집은 숲들메바다에서 비롯합니다. 숲빛과 들빛과 멧빛과 바다빛으로 물들면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서기에 사람이고, 이러한 사람으로서 문득문득 그날그날 글살림을 짓고 말살림을 펼 뿐입니다.
우리는 문학이나 문화나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림을 짓는 손길로 글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몸짓(연극)도 하고 이야기도 짓고 두런두런 두레를 이루어 일하고 놀이하고 쉬는 사람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