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방치 放置


 쓰레기의 방치로 → 쓰레기를 놔두어

 그대로 방치된 채 → 그대로 버린 채

 몇 년째 방치되어 있었다 → 몇 해째 팽개쳤다

 고장 났는데 방치하다 → 망가졌는데 내버리다

 그 상태로 방치해 두었더니 → 그대로 두었더니


  ‘방치(放置)’는 “돌보거나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둠 ≒ 기치”로 풀이합니다만, ‘게으르다·게으름뱅이·게으름질’이나 ‘곁눈질·고개돌리다·구경·불구경·얼굴돌리다’나 ‘구르다·굴러가다·굴리다·각다귀’로 손봅니다. ‘그냥·그냥두다·그대로·그만하다·길들지 않다’나 ‘나몰라·나몰라라·남기다·남일·남탓·남한테 맡기다’나 ‘내놓다·내던지다·내동댕이·내맡기다’로 손볼 만합니다. ‘내버리다·내다버리다·내버려두다·내팽개치다’나 ‘넘겨씌우다·넘기다·놓다·놓아두다·놔두다’나 ‘노닥거리다·노닥질·놀다·노닐다·놀리다’로 손보고, ‘눈감다·눈돌리다·던지다·돕지 않다·두다’로 손볼 수 있어요. ‘뒤통수·뒷짐·뒹굴다·드러눕다·등돌리다·등지다’나 ‘딴전·딴짓·딴청·떠나다·떠맡기다·떠밀다·떼밀다·띵’으로 손보지요. ‘마음쓰지 않다·멀거니·멀뚱멀뚱·멀리하다·멍·멍하다’나 ‘모르는 척하다·모르쇠·못 본 척하다·묶지 않다’로 손봅니다. ‘묻거나 말거나·미루다·발빼다·발뺌·버리다’나 ‘새침·시침·시치미·시들다·시큰둥·심드렁’으로 손보고, ‘손놓다·손떼다·손털다·손빼다·숨만 쉬다’나 ‘스스로·스스로길·스스로하다’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썩다·아무렇게나·안 낳다·안 사다·안 쓰다·안 짓다’나 ‘알아서·안 하다·애쓰지 않다·집어던지다’로 손봐요. ‘입닫다·입다물다·입씻다·콧대·콧방귀’나 ‘자다·잠들다·잠재우다·재우다·저버리다’로 손보고요. ‘지켜보다·쳐다보다·팔짱끼다·팽개치다’나 ‘풀다·풀리다·풀어주다·힘쓰지 않다’나 ‘한눈·한눈팔다·흘려듣다·흘리다·흘려보내다’로 손보아도 되어요. 이밖에 한자말 ‘방치(邦治)’를 “나라의 정치”로 풀이하면서 낱말책에 더 싣지만 털어냅니다. ㅍㄹㄴ



몇 달 간을 방치해 두었었다

→ 몇 달 동안을 내버려 두었다

→ 몇 달 동안을 그대로 두었다

《가을》(장석주, 백성, 1991) 126쪽


척박하기 그지없는 문화환경을 언제까지나 방치할 수 없다는

→ 강파르기 그지없는 살림자락을 언제까지나 팽개칠 수 없다는

→ 메마르기 그지없는 삶자리를 언제까지나 구경할 수 없다는

《기획회의 183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 86쪽


그냥 방치해 두면

→ 그냥두면

→ 내버려두면

《충사 8》(우루시바라 유키/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7) 93쪽


무책임하게 방치해 온 역사적 전말과 관련지어 규명되어야 하며

→ 그저 내팽개친 발자취와 묶어 밝혀야 하며

→ 팔짱만 낀 발걸음과 엮어 드러내야 하며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전진성, 휴머니스트, 2008) 148쪽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방치한다

→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내버린다

→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손뺀다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이수정, 철수와영희, 2015) 63쪽


간혹 방치해도 무방한 경우도 있었다

→ 곧잘 그대로 두어도 되는 때도 있다

→ 때로 그냥두어도 괜찮을 수도 있다

→ 때때로 내버려둘 만하기도 하다

《1945 히로시마》(존 허시/김영희 옮김, 책과함께, 2015) 176쪽


봉건 지배 아래에서는 그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야말로 인민은 무학무지의 상태로 방치되었던 것이 아닌가

→ 꼭두틀에서는 그 ‘나라를 지키’도록 사람들을 어리석게 팽개치지 않았는가

→ 임금틀에서는 그 ‘나라를 건사’하려고 사람들을 바보로 굴리지 않았는가

《메이지의 문화》(이로카와 다이키치/박진우 옮김, 삼천리, 2015) 69쪽


후회로 얼룩질 삶을 알고도 그냥 방치하고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 아쉬워 얼룩질 삶을 알고도 그냥두고 사는 듯하다

→ 한숨으로 얼룩질 삶을 알고도 손놓고 사는 듯하다

《하루 10분 아빠 육아》(안성진, 가나북스, 2015) 25쪽


그냥 내버려 두었지만 더는 방치할 수 없게 되었다

→ 그냥 두았지만 더는 그냥둘 수 없었다

→ 내버려두었지만 더는 그리할 수 없었다

→ 내버려두었지만 더는 이럴 수 없었다

《고양이의 서재》(장샤오위안/이정민 옮김, 유유, 2015) 94쪽


이렇게 한 다음 1∼2주간 그냥 방치해 둬야 돼

→ 이렇게 한 다음 한두 이레쯤 그냥둬야 돼

→ 이렇게 한 다음 열흘 즈음 지켜보면 돼

→ 이렇게 하고서 한 열흘을 놔두면 돼

《플라잉 위치 1》(이시즈카 치히로/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16) 34쪽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하여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결과를 불러온 경우에도 동물학대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아무 손을 쓰지 않고 내팽개쳐서 짐승을 괴롭힐 적에도 막짓으로 볼 수 있다

→ 달리 손쓰지 않고 내팽개쳐서 괴롭힐 적에도 망나니짓으로 여긴다

→ 따로 보살피지 않고 내팽개쳐서 들볶을 적에도 괴롭힘질로 본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이형주, 책공장더불어, 2016) 5쪽


자가처방 효과를 아는 나는 가끔 고열을 방치한다

→ 손다스림을 아는 나는 가끔 후끈후끈 지낸다

→ 손수돌봄을 아는 나는 가끔 달아오른 채 산다

《토요일 한국학교》(강남옥, 모악, 2017) 40쪽


테티아가 시끄러우면 방치해

→ 테티아가 시끄러우면 딴짓해

→ 테티아가 시끄러우면 등돌려

→ 테티아가 시끄러우면 그냥둬

《고깔모자의 아뜰리에 1》(시라하마 카모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8) 76쪽


대관람차의 형해(形骸)가 방치돼 있다

→ 큰바퀴 뼈대를 내버린다

→ 큰고리가 덩그러니 나뒹군다

→ 고리눈 부스러기가 구른다

《편지의 시대》(장이지, 창비, 2023) 18쪽


사이드 안주로는 아이들이 저녁에 먹다가 방치한 사과나

→ 곁거리로는 아이들이 저녁에 먹다가 남긴 능금이나

→ 곁밥으로는 아이들이 저녁에 먹다기 둔 능금이나

《탯줄은 끊은 지 오래인데》(김정, 호밀밭, 2025)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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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백구 白狗


 동네에서 살던 백구 → 마을에서 살던 흰둥이

 백구를 키우고 싶다 → 흰개를 키우고 싶다


  ‘백구(白狗)’는 “빛깔이 흰 강아지 ≒ 백견”처럼 풀이하는데, ‘흰개·하얀개’나 ‘흰둥이·하얀둥이’나 ‘하얗다·희다’로 고쳐씁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백구’를 여섯 가지 더 싣는데 싹 털어냅니다.



백구(白球) : 야구나 배구 따위에서 쓰는 흰 공

백구(白駒) : 빛깔이 흰 망아지

백구(白鷗) : [동물] 갈매깃과의 새. 몸의 길이는 45cm, 편 날개의 길이는 115cm 정도이다. 머리와 몸은 대체로 흰색, 등과 날개는 회색, 부리와 다리는 노란색이다. 물갈퀴가 있어 헤엄을 잘 치고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해안, 항구에 사는데 북반구에 분포한다 = 갈매기

백구(百口) : 1. 백 명의 식구라는 뜻으로, 가족의 수가 많음을 이르는 말 2. 여러 가지 변명

백구(伯舅) : 천자(天子)가 성(姓)이 다른 제후(諸侯)를 존경하여 이르던 말

백구(伯舅) : 외삼촌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외삼촌



백구야, 네가 알아서 아무거나

→ 흰둥아, 네가 알아서 아무거나

→ 하양아, 네가 알아서 아무거나

→ 흰개야, 네가 알아서 아무거나

《우주가 잠들었을 때 나는 달이 되었다》(임경자, 문학의전당, 2014) 21쪽


죽은 백구는 진돗개의 피가 절반 섞여 유난히 영리한 개였다고 했다

→ 죽은 흰개는 진돗개 피가 섞여 유난히 똑똑했다고 한다

→ 죽은 흰둥이는 진돗개 피가 섞여 유난히 빼어났단다

《흰》(한강, 난다, 2016) 23쪽


낙엽 뒹구는 마당 백구가 털갈이한다

→ 가랑잎 뒹구는 마당 흰개 털갈이한다

→ 갈잎 뒹구는 마당 흰둥이 털갈이한다

《씁쓰름새가 사는 마을》(송창우, 브로콜리숲, 202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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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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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25.

까칠읽기 70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동녘

 2017.4.17.



내가 거북하거나 성가시거나 싫으니, 남도 거북하거나 성가시거나 싫기를 바랄 수 있다. 내가 즐겁고 아름답거나 사랑이기에, 누구나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이기를 바랄 만하다.


바로 내가 나부터 어떻게 보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내가 둘레를 바라보는 눈이 바뀐다. 남이 나를 바꾸지 못 하고, 내가 남을 바꾸지 않는다. 누구나 스스로 바꾸고 가다듬고 추스른다.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왜 굳이 ‘남’을 들추어야 할까? 남을 따지거나 말하기보다는 ‘나’는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하면서 이 삶을 어떻게 사랑으로 짓는지 풀어놓으면 넉넉하지 않을까?


순 사내들이란 제멋대로라고 여기면 그냥 끝이다. 거꾸로 보아도 같다. 순 가시내들이란 멋대로라고 여기면 그저 끝장이다. 남이 쌓은 담벼락도 틀림없이 있을 텐데, 내가 쌓은 담벼락도 나란히 있다. 둘이 서로 쌓은 담벼락이 두 겹이기에 서로 안 만나기 일쑤이다.


자꾸 이야기할 일이다. 다시 이야기할 노릇이다. 또 이야기를 걸고, 새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걸어갈 길을 찾으면 된다. 온나라 책수다를 보면, 거의 순이밭이다. 돌이는 책수다에 거의 안 오거나 아예 안 오기 일쑤이다. 그 많은 사내는 어디에 있을까? 이 나라는 순이돌이가 나란히 있는데, 왜 배움자리만큼은 사내가 안 끼려고 할까? 순이는 한갓지고 일이 없어서 배움자리나 책수다에 가지 않는다. 순이는 참으로 스스로 새로 배우고 다시 익히려는 마음이기에 자꾸자꾸 배움자리나 책수다에 찾아간다.


적잖은 사내는 배움자리나 책수다에 한걸음을 떼고는 다시 안 찾아오기 일쑤이다. 한걸음 들었으면 되었거니 여기는데,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한걸음 듣고서 ‘다 알았’다면 이 나라가 아름답게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한걸음 듣고서 ‘다 알았’다고 여기는 마음이라면, 밥을 한 그릇 먹었으니 이제 배고플 일이 없을 테니, 앞으로는 아주 안 먹어도 되는지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다 알았’다는 사내는 왜 아직도 집안일을 그렇게 못 하거나 안 할까? ‘다 알았’다는 아저씨는 왜 아직도 아이를 돌보는 일을 그렇게 못 하거나 안 할 뿐 아니라 꼬랑지를 빼는가? ‘다 알았’다는 아저씨는 왜 길바닥에 가래와 꽁초를 그렇게 많이 내뱉을까?


갑갑하고 답답해서 죽을 노릇이기에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같은 책을 썼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갑갑하기에 너더러 갑갑하라고 한다면, 이런 말이 오히려 ‘말주먹’으로 번지기 쉽다. 내가 여태 이렇게 답답했으니 너도 이제부터 답답해야 한다고 몰아세우면, 언제나 다툼으로 번지고 싸움으로 도진다. 끝없는 앙갚음으로 쳇바퀴에 갇힌다. 앙갚음이라는 사슬은 남(너)이 먼저 끊어야 하지 않는다. 남(너)은 아마 죽었다 깨어나다 안 끊고 안 바꾸리라.


박근혜도 김건희도 ‘년’이 아닌 ‘순이’에 ‘가시내’이다. 박정희도 윤석열도 ‘놈’이 아닌 ‘돌이’에 ‘사내’이다. 그들한테 섣불리 ‘년놈’ 같은 말을 붙이지 않을 줄 아는 마음으로 일어설 적에 이 나라를 갈아엎은 다음에, 아름답게 돌볼 수 있다. 그들이 일삼거나 저지른 ‘잘못’을 짚고 따지되, ‘사람’을 할퀴거나 갉지 않을 줄 아는 마음으로 서야, 비로소 아이들한테 이 나라를 아름답게 일구면서 물려줄 만하다. 그들이 참으로 못나거나 나쁘더라도 그들을 ‘년놈’으로 할퀴거나 깎아내리려고 하면, 이 말씨는 늘 우리한테 고스란히 돌아온다. 끝없는 싸움수렁으로 뒹군다.


홍승은 씨는 ‘어느 시인’과 ‘활동가 진보 진영’ 사람들이 겉속이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삶을 온몸으로 겪어 보았다고 밝힌다. ‘그 시인’ 하나만 그와 같지 않다. 틀림없이 아니다. 사람들이 우러르거나 섬기거나 모시는 숱한 ‘시인과 소설가와 기자와 평론가와 교수’ 무리는 매한가지이다. 그러면 생각해 봐야지. 겉속이 다른 ‘시인’과 ‘진보’를 어떻게 해야 갈아엎을까? 갈아엎은 자리에는 무엇을 심어야 할까?


갈아엎는 몸짓으로 끝이 아니다. 갈아엎은 땅에는 씨앗을 심을 노릇이고, 씨앗을 심었으면 돌볼 노릇이다. ‘갈아엎기(개혁·혁명·번혁)’만 진보이지 않다. ‘심기·씨앗·돌봄·지킴’만 보수이지 않다. 모든 사람은 ‘진보·보수’가 나란하기에 스스로 빛난다. 갈아엎은 데를 또 갈아엎으면 다 죽는다. 돌보기만 할 뿐 안 거두고 안 갈아엎으면 이때에도 다 죽는다. 그러니까, 둘 다 해야 사람이고, 남(너)을 미워하는 일만 하려고 든다면, 나부터 쓰러지고 죽을 테지.


ㅍㄹㄴ


스무 살은 무조건 대학생이거나 재수생이어야 하고, 여자는 머리가 일정 정도 이상 길어야 함은 물론, 예뻐지길 욕망할 거라는 견고한 편견들. 아무 생각 없이 뱉은 질문은 정말 생각이 없어서 폭력이 된다. (11쪽)


서점에는 남성 수도권·중산층·고학력·이성애자 저자가 ‘여의도 정치’를 비판하거나 경제적 불평등·철학을 다룬 책이 가득하다. (15쪽)


잘 차려진 밥상 앞에서 바로 맛을 평가하기 전에, 재료를 사오고 손질하고 씻고 썰고 재우고 볶고 양념하고 찌고 설거지하는 누군가의 지난한 노동이 우선 눈에 보인다. (86쪽)


동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고분고분한 대상을 찾는 심리는, ‘내 뜻을 거스를 때 혼낼 수 있다’는 당위를 전제한다. (134쪽)


집회 현장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을 ‘년’으로 욕하지 말라는 발언이 집회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거라는 식의 글을 당당히 올릴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275쪽)


활동하며 만난 사람들 중에는 일베나 새누리당 쪽 사람들보다 같은 진영의 사람에게 상처받은 이들이 많았다. 친구 D는 종종 “마이크·피켓·펜을 내려놓았을 때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이 무섭다”며, “다른 무엇보다 그런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278쪽)


한 시인을 만났다. 그는 세월호의 슬픔에 누구보다 가슴 절절한 시구를 뱉어내는 사람이었다. 시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감동해서 그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처음 마주한 그는 다짜고짜 ‘어린’ 내게 반말을 했고, 먹을 것 좀 사오라며 대뜸 카드를 내밀었다. 그 뒤로도 쭉 이어진 그의 무례한 말과 행동에 한 번 놀라고, 본 행사 때 진심 어린 표정으로 슬프게 시를 읽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288쪽)


+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홍승은, 동녘, 2017)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 지방에 남아 있겠다고

→ 서울곁으로 가지 않고 작은고장에 남겠다고

→ 서울밭으로 가지 않고 마을에 있겠다고

10쪽


엄마 혹은 누군가가 기쁘도록 말을 잘 들을 거라는 어린 나의 다짐을 보며 마음이 쓸쓸해졌다

→ 엄마나 누가 기쁘도록 말을 잘 듣겠다는 어린 다짐을 보며 쓸쓸했다

→ 엄마나 남이 기쁘도록 말을 잘 듣겠다는 어린 다짐을 보며 쓸쓸했다

30쪽


보통의 존재라고 못박기에 나와 너는 고유하다

→ 흔하다고 못박는데 나와 너는 반짝인다

→ 수수하다고 못박지만 나와 너는 빛난다

→ 그냥이라고 못박으나 나와 너는 다르다

33쪽


악력이 약하고 손바닥 살이 연해서요

→ 손힘이 여리고 손바닥살이 여려서요

→ 아귀힘이 없고 손바닥살이 여려서요

36쪽


그때부터 집중 포화가 이어졌다

→ 그때부터 쏟아붓는다

→ 그때부터 퍼붓는다

→ 그때부터 들이붓는다

51쪽


상대적으로 더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에 있다 보면 시선이 확장되기 마련이다

→ 더 눈치를 봐야 하는 자리에 있다 보면 눈길이 넓게 마련이다

→ 더욱 눈치를 봐야 하다 보면 눈길을 넓히게 마련이다

86쪽


상대가 여성일 경우 으레 가르치려고 드는 남성의 특성을 일컫는 맨스플레인은 그래서 중요하다

→ 그래서 가시내를 마주하면 으레 가르치려고 드는 꼰대질을 눈여겨본다

→ 그래서 순이와 마주하면 으레 가르치려고 드는 잘난척을 들여다본다

134쪽


어떤 존재가 사회적으로 배제된다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금기시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막히고, 보이지 않고, 묶인다면 어떤 뜻일까

→ 어느 누가 이 삶에서 빠지고, 보이지 않고, 가로막히면 어떤 뜻일까

30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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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휴일 8
신조 케이고 지음, 장혜영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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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5.25.

책으로 삶읽기 1019


《매일 휴일 8》

 신조 케이고

 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4.30.



《매일 휴일 8》(신조 케이고/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을 읽는다. 줄거리를 늘이고 또 늘인다. 삶을 잇는 사람이기에, 하루하루 살아내는 길을 그리면 온갖 줄거리를 그릴 수 있다. 다만, 스스로 그려서 짓고 나누고 펴고 누리는 삶이 아니라, 짝을 안 맺으면 안 된다고 여기듯 엮으면서 가볍게 실랑이가 잇는 얼거리라면, 그저 끝없이 늘이다가 어영부영 흩어지게 마련이다. 사랑을 바라볼 적에는 헤매거나 어지럽지 않다. 사랑을 안 바라보기에 기웃기웃한다. 사랑을 품고서 심는 하루일 적에는 힘들거나 지치지 않는다. 사랑을 안 품고 안 심으니까 힘겨우면서 그만 지쳐서 쓰러진다. “ひらやすみ”란 무엇인가? 붓을 쥔 그림꽃님부터 스스로 헤매면서 길을 안 열려고 하는구나. 길은 얼마든지 헤맬 만하고 헤매면서 새롭게 눈을 뜰 수 있다만, 억지로 이리 헤매거나 저리 헤매야 하지 않는다.


ㅍㄹㄴ


‘요새 들어 스스로를 아이 같다고 느끼는 건, 제대로 연애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 어린애 같아서 만화도 못 그리고 있는 게 아닐까?’ (29쪽)


‘나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 데이트를 위해?’ (52쪽)


“타치바나 씨는 지금 하는 일을 별로 안 좋아하세요?” “음, 원래는 좋아했어요.” (69쪽)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172쪽)


+


#ひらやすみ #真造圭伍 


지붕 위에 올라가는 거 진짜 좋아했는데

→ 지붕에 올라기기 참 즐겼는데

→ 지붕에 참말 즐겨 올라갔는데

→ 지붕에 참 자주 올라갔는데

18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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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햇수 -數


 햇수가 차다 → 해가 차다 / 나날이 차다 / 때가 차다

 근무 햇수에 따라 봉급에 차등을 두다 → 일한 해에 따라 품삯이 다르다

 서울에 온 지 햇수로 5년이 되었다 → 서울에 온 지 다섯 해이다

 햇수로 따지면 벌써 오 년째이다 → 벌써 다섯 해째이다


  ‘햇수(-數)’는 “해의 수 ≒ 역수·연수”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해’나 ‘지’로 고쳐씁니다. ‘날·나날·날짜·때’로도 고쳐써요. ‘해나이·해셈·해길’이나 ‘해읽기·해자취’로 고쳐쓸 수도 있습니다. ㅍㄹㄴ



햇수로 쳐서 몇백 년이나 먼 옛날

→ 숱한 해가 지난 먼 옛날

→ 긴긴 나날이 흐른 먼 옛날

《홍길동》(홍영우, 보리, 2006) 3쪽


서점 일을 시작한 지 햇수로 8년에 접어들었다

→ 책집에서 일한 지 여덟 해로 접어든다

→ 책집일꾼으로 여덟 해에 이른다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김영건, 어크로스, 2022) 21쪽


장난스러운 농담이 현실이 된 지 햇수로 10년, 만으로는 8년이 꽉 찼습니다

→ 장난스러운 말이 삶이 된 지 열 해, 여덟 해를 꽉 채웠습니다

→ 장난말이 삶이 된 지 열 해, 여덟 해를 꽉 채웠습니다

《우리나라 시골에는 누가 살까》(이꽃맘, 삶창, 202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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