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는


 깊은 밤에 아이가 깼다. 아이가 깨는 소리를 듣고 나도 깬다. 몇 시쯤인가 들여다보니 슬슬 내 일을 해야 할 때인 두시 반. 아이는 잠들려 하지 않는다. 새벽 다섯 시 반이 넘도록 옆에서 졸린 눈으로 잠들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도무지 안 되겠어서 아이한테 한소리를 한다. 너, 이제 안 자려면 밖으로 나가서 놀아. 깜깜한 밤에 모두 자는데 너는 왜 안 자겠다고 일어나서 그러니. 아이는 울먹울먹하며 어머니 곁으로 가서 안긴다. 그러나 어머니 곁에서 안긴 뒤로도 한 시간쯤 또 싱글벙글거리면서 잠든 어머니를 깨우면서 논다. 놀이가 모자라서 그 깊은 밤에 일어나 새벽까지 또 놀아야 하니. (4344.3.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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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책꽂이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7.



 내가 연 도서관은 내가 주머니를 털어 장만한 책으로 마련했다. 누가 거저로 준다든지 잔뜩 보내준 책으로 연 도서관이 아니다. 그러나 책꽂이만큼은 내가 장만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책꽂이를 장만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책을 사느라 바빠 언제나 주머니가 쪼들렸으니까.

 인천집에 살던 고등학생 때에는 아버지한테서 얻은 책꽂이가 둘 있었다. 형이 쓰던 책꽂이는 형이 인천집을 떠나면서 나한테 물려주었다. 아버지가 쓰시던 장식장이나 책꽂이는 아버지가 인천집을 떠나면서 나한테 넘겨주었다. 내가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지내던 때에는 자전거로 신문을 돌리며 ‘버려진 책꽂이’가 있는지 눈여겨보았고, 제아무리 먼 데에 버려진 책꽂이라 하더라도 신문을 다 돌린 뒤 부리나케 달려가서 남들이 먼저 손을 쓰기 앞서 낑낑거리며 날랐다. 깊은 새벽, 신문배달 마치고 땀에 옴팡 젖은 후줄근한 젊은이는 무거운 책꽂이를 홀로 이리 들고 저리 지며 날랐다. 거의 다 혼자 들기 어려운 큰 책꽂이였는데, 서너 번쯤은 혼자서 한 시간쯤 낑낑대로 날라 오는 동안 팔뚝 인대가 늘어나서 자전거 타며 신문을 돌릴 때에 몹시 애먹었다.

 이러다가 두 차례 책꽂이를 여럿 얻는다. 먼저, 충북 충주에서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하던 때에 스무 개 남짓 얻는다. 다음으로, 인천에서 드디어 내 도서관 문을 열던 때에 헌책방 아주머니가 알음알음하여 장만한 미군부대 도서관 책꽂이를 서른 개 남짓 얻는다.

 날마다 책이 조금씩 늘어나니까 책꽂이 또한 날마다 늘어나야 하는데, 나는 책꽂이를 새로 살 생각을 늘 안 하면서 살았다. 인천에서 문을 연 도서관을 충북 충주 멧골마을로 옮기면서도 책꽂이를 새로 장만하지 못한다. 책짐을 옮기느라 돈이 무척 많이 들었고, 시골집 둘레에서는 책꽂이를 주워 올 데라든지 살 데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

 멧골마을로 도서관을 옮길 때, 멧골자락에 도서관 자리를 내어주신 분이 삼 미터 남짓 되는 벽을 따라 단단한 책꽂이를 가득 마련해 주었다. 이리하여 나로서는 또 책꽂이를 얻는다. 그런데 이 자리에 책을 꽂으면서 살피니, 이만큼으로도 책을 다 꽂아 놓지 못한다. 책꽂이가 모자라다.

 가만히 생각한다. 나는 이제껏 내 책을 책꽂이에 알뜰히 꽂은 채로 지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소리일까. 책꽂이가 조금은 빈 채, 그러니까 책들이 조금은 넉넉히 꽂힐 수 있도록 마음을 쓴 적이 없다는 이야기일까.

 그렇지만, 책꽂이가 꼭 모자라기 때문에 책을 제대로 못 꽂는다고는 볼 수 없다. 옆지기는 말한다. 내가 책을 이곳저곳에 늘어놓기 때문에 책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도 하지만, 차곡차곡 제자리에 두지 않으니까, 이곳저곳에 잔뜩 쌓이기만 한다고.

 어서 날이 풀려 저녁나절에도 도서관에서 얼른 책 갈무리를 마무리짓고 싶다. 아직 저녁에는 손이 시려서 책 갈무리를 오래 하기 힘들다. 얼른 날이 풀려야 우리 집 물이 녹을 테고, 물이 녹아야 걸레를 빨아서 그동안 쌓인 먼지를 닦으면서 집이며 도서관이며 건사할 텐데. 이제는 부디 따스한 날이 온 멧자락에 가득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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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날 책읽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4.



 이오덕학교 어린이와 푸름이가 우리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온다. 아직은 만화책만 신나게 읽는다. 그러나 만화책만으로는 제 눈높이에 맞다 싶은 책을 찾기가 만만하지 않은 만큼, 다른 책을 바라기도 한다.

 나이가 가장 어린 아이는 그림책 꽂힌 자리에 가서 이것저것 살핀다. 나이가 조금 있는 아이는 이제 글책 있는 자리에 가서 이것저것 살피겠지.

 그나저나 지난겨울도 그렇고 아직까지도 그렇고, 한 주에 한 차례 모든 어린이와 푸름이가 찾아오는 때에는 한 주 가운데 가장 날이 춥다. 전기난로를 켜 놓지만 이 난로로 따뜻하기는 힘들다. 칸막이 있는 방이 아니라서 따스함이 고이 남지 못한다.

 그래도 차가워지는 손으로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글책이든 잘 읽는다. 아이들이 쥐는 책이 아이들한테 재미나지 않다면 손이 시린 데에도 읽을 수 없겠지. 손이 시려도 놓지 않을 만큼 재미나야 비로소 읽을 만한 책이라 여길 수 있겠지.

 나는 내 도서관에 갖춘 책을 겨울날에는 두 손이며 두 발이며 몸뚱이며 꽁꽁 얼어붙으면서 한 권 두 권 살피면서 장만했다. 책을 장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몸과 손발은 얼어붙었고, 집에서도 시린 손을 비비면서 읽었다. 맨 처음 책을 장만하는 사람부터 손발이 얼어도 꼭 사야겠다 느끼는 책이기에 장만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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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3.5.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쌀집 옆에 있는 만화방. 

이곳은 만화방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장날이며 토요일에 지나갈 때에 문이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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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은 하루하루 더욱 깊어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더욱 깊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기에 날마다 조금씩 깊어지는 삶을 누립니다.

 사람을 읽는 사람은 나날이 더욱 따스해집니다. 사람을 읽으면서 더욱 따스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을 읽기에 언제나 차근차근 따스해지는 삶을 맞이합니다.

 사랑을 읽는 사람은 꾸준히 아름다와집니다. 사랑을 읽으면서 한결같이 아름다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읽기에 노상 아름다운 삶을 즐깁니다.

 책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책에는 사람이 살아가며 나누는 사랑을 차곡차곡 싣습니다. 사람은 날마다 새로우면서 똑같은 삶을 마주합니다. 사랑은 내 가까이에도 있고 멀리에도 있습니다. 수많은 책과 사람과 사랑이 내 가슴으로 스며들지만, 숱한 책과 사람과 사랑이 나를 거쳐 지나갑니다. 나로서는 내가 받아들이는 책과 사람과 사랑만큼 좋은 나날을 누리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책과 사람과 사랑이 없대서 나쁜 나날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아는 책과 사람과 사랑으로도 언제까지나 기쁠 수 있고, 조금씩 새로 찾아서 살피는 책과 사람과 사랑으로도 한결같은 삶을 지킬 수 있습니다.

 새로 읽는 책이라서 더 좋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읽을 때에 좋지, 새로운 책을 읽기에 좋지 않습니다. 좋은 책이기에 거듭 읽을 수 있으며, 좋은 책을 거듭 읽기에 거듭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운과 느낌과 꿈을 선물받습니다.

 내가 차근차근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새로운 좋은 책을 맞아들이거나 새로운 좋은 사람을 사귀거나 새로운 좋은 사랑을 빛내기 때문이 아닙니다. 늘 품에 안는 오래된 책을 다시 읽는달지라도, 오래도록 사귄 동무나 살붙이하고만 지낸달지라도, 한 사람을 지며리 사랑한달지라도, 나는 어제와 오늘과 글피가 새삼스러이 좋은 모습으로 거듭나며 살아갑니다.

 좋은 책이기에 좋은 책입니다. 좋은 사람이기에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랑이기에 좋은 사랑입니다. 문학하는 사람은 더 많은 토박이말을 새롭게 배워서 글에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좋은 말을 옳고 바르게 깨달아 알맞고 착하게 가눌 줄 알면 비로소 문학입니다. 문학은 고작 오백 낱말이나 삼백 낱말로도 태어납니다. 오천이나 삼만쯤 되는 낱말을 마음껏 부려 쓸 수 있다 해서 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일곱 살 어린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쓰는 낱말로 빚을 수 없는 문학이라면 문학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습니다. (4344.3.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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