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61 : 좋아서 읽는 책


 좋아서 읽는 책입니다. 좋아서 기쁘게 장만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예쁘게 선물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내 삶으로 담고픈 책입니다. 좋아서 날마다 다시 들추는 책입니다. 좋아서 언제나 곁에 두면서 되새기는 책입니다.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좋아서 곱게 살림을 꾸립니다. 좋아서 나무를 아끼고 좋아서 꽃과 풀을 보듬습니다. 좋아서 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좋아서 파란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좋아서 누런 빛깔 흙을 맨발로 밟으며 보송보송한 기운을 살며시 받아들입니다. 좋아서 나비 날갯짓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만화책 《누나는 짱!》(와타나베 타에코 그림,학산문화사 펴냄)은 일본에서 1990년대 첫머리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1999∼2000년에 옮겨집니다. 4권 87쪽을 보면, 다섯 쌍둥이가 툭탁툭탁 얽히다가는  “타쿠미도, 나오토도, 똑같지 않으니까 둘이 있는 거잖아?” 하는 이야기가 톡 튀어나옵니다. 쌍둥이라 으레 똑같이 생겼다고 여기지만, 똑같이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똑같은 삶이 아니요 똑같은 넋이 아니에요. 둘은 많이 닮았다 할 만하지만 ‘많이 닮았’을 뿐, ‘서로 다른’ 예쁜 목숨이에요.

 《누나는 짱!》 12권을 펼치면 100쪽에 “설령, 그래도 못 쉬어. 나를 대신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만화책은 연예기획사에 몸담아 손꼽히는 가수나 연예인으로 뛰는 젊거나 어린 사람들이 나오는데, 고작 스물 안팎밖에 안 된 어린 사람들이 삶과 사랑과 사람을 꿰뚫는 눈이 참으로 남다릅니다. 아니, 남다르다기보다 ‘널리 사랑받는 손꼽히는 연예인’이기에 앞서 ‘나는 이 지구별에 내 어버이한테서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받아 태어난 꼭 하나뿐인 예쁜 목숨’인 줄을 뼛속 깊이 알뜰히 아로새겨요.

 모두 열다섯 권에 이르는 만화책 《누나는 짱!》을 둘째 아이 똥기저귀를 빠는 틈틈이 읽습니다. 둘째가 우리 집으로 찾아온 지 꼭 이레가 되는 오늘까지, 이 아이는 날마다 똥기저귀를 마흔 장, 오줌기저귀를 두 장 즈음 내놓습니다. 몸이 아픈 옆지기는 집일을 하나도 못하기에 첫째 때하고 똑같이 둘째 때에도 기저귀 빨래나 집일을 아버지가 도맡습니다. 둘째 똥기저귀를 빨면서 ‘그래, 첫째 때에도 똥기저귀를 세이레까지 마흔 장 남짓 늘 빨았잖아?’ 하고 떠올립니다. 그때 어떻게 이런 빨래를 했나 나도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둘째 똥기저귀를 빱니다. 둘째 기저귀를 빨며 첫째한테 얘기합니다. ‘네가 아기였을 때에도 이렇게 했어. 네가 아기였을 때에는 둘째 때보다 훨씬 오래 안고 달래며 놀아 주었어.’ 그러나 첫째는 저한테 더 사랑을 쏟아 달라며 엉겨붙거나 달라붙습니다. 아이니까, 아직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라 할 테니까, 오래오래 더 깊이 사랑받고 싶으니까, 아이는 더 촐싹대고 더 방정맞게 굴겠지요.

 그러니까, 아이는 좋아서 엉겨붙습니다. 좋아서 떼를 씁니다. 좋아서 조잘조잘 떠들거나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는 좋아서 아이를 업고 안으며 토닥입니다. 좋기에 힘겹거나 바쁜 틈을 쪼개어 책을 읽습니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품에 살며시 안은 채 책을 읽습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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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74] dibrary 디토 유토 엔토

 이제 한국땅 공공기관 가운데에는 아예 영어로 이름을 짓는 곳까지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영어 이름’ 공공기관은 퍽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느 회사는 하나같이 영어 이름을 붙일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곳이 영어사랑 영어바람이니까요. ‘디브러리’라는 이름이라면 아무래도 ‘디지털 라이브러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디지털’ 같은 영어를 쓸 수밖에 없다면, ‘디지털 도서관’이라 해야 할 테지만, 이런 이름조차 못 씁니다. 더욱이, 디저털 도서관을 널리 알릴 때에 쓴다는 상징그림에 붙이는 이름은 ‘디토’와 ‘유토’와 ‘엔토’예요. 아무래도, 영어 이름 공공기관이니까 영어 이름 상징그림입니다. 살가우면서 손쉽고 고운 이름 공공기관이라면, 이곳 상징그림에 붙이는 이름 또한 살가우면서 손쉽고 곱게 붙였을 테지요.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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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90] TEL 하고요

 한국사람이 영어 아무 데나 쓰기 좋아하는 버릇은 언제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아리송하다. 다만, 요즈음 들어 생각하면, 일본 문학이나 만화를 한국말로 옮기는 자리에서 이와 같은 ‘영어 아무데나 쓰며 좋아하기’를 쉬 찾아본다. “전화 하고요” 아닌 “TEL 하고요”는 일본 만화책에 ‘TEL’이라 적혔기에 이러한 모습을 고스란히 적바림한 글월일 테지.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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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숲 책읽기


 깊은 숲이 아니어도 나무 백 그루쯤 우거지면 새들이 둥지를 틀면서 시원스러운 푸른바람이 산들산들 붑니다. 꼭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무들이 깊디깊은 숲을 이루어야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퍽 많은 돈을 들여 번듯한 도서관을 새로 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골목동네 작은 집이나 시골마을 멧자락 집에 예쁘장하게 책꽂이를 갖추어 삶을 밝히는 책 백 권쯤 마련하더라도 아름다운 책숲입니다. 백 차례쯤 되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만한 책을 백 가지 마련하는 도서관이 백만 가지 책을 꾸준하게 새로 갖추는 도서관 못지않게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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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산티아고를 걸었어도 깨닫지 못하는 까닭
 [책읽기 삶읽기 60] 서영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2010)



 걷는 길은 하나가 아닙니다. 곧게 뻗은 한길이더라도, 이 곧게 뻗은 한길을 걷는 사람은 다 다른 모양새와 생각과 느낌입니다. 누군가는 앞만 바라보며 걸을 테고, 누군가는 옆을 두리번거리며 걸을 테며, 누군가는 자꾸자꾸 멈출 테지요. 곧게 뻗은 한길이더라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걷기 때문에 다 다른 생각과 이야기와 느낌이 태어납니다.

 산티아고라 하는 데를 걷는 길 또한, ‘걷는 길은 같다’지만, 이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길을 걸은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르게 느끼거나 품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마련입니다.

 서영은 님이 내놓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2010)라는 책은, 산티아고를 걸었기 때문에 뜻있지 않습니다. 산티아고를 걸었대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네 골목을 걷든, 아파트 골마루를 걷든, 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느끼려 할 때에 느낌이 태어납니다.


.. 대한민국의 중요한 문학상 심사를 거의 도맡아 해온 심사위원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순간 왠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란 것이 부끄러웠다. 그들이 나에게, 내가 그동안 심사를 너무 많이 해온 것을 깨우쳐 주었다. 폭식 … 그 순간 나는 작가로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너무 멀리 떠나 와 있는 것을 느꼈다 … 나는 문학을 시작할 때 내 문학이 있을 자리는, 그 낡은 구두, 제 몸을 아무리 부딪혀도 삶이 양지로 변하지 않는, 또는 끝내 양지 쪽으로 자리를 옮길 수 없는 비통한 증거로서, 다 해진 그 구두가 있는 자리라 여겼다 ..  (15, 16, 17쪽)


 서영은 님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라는 책에서 ‘내려놓기’를 꿈꾼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막상 서영은 님 스스로 내려놓기를 했다고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내려놓기를 하겠다’는 생각만 잔뜩 드러날 뿐입니다.

 참으로 내려놓기를 할 마음이라면, 굳이 ‘무엇을 내려놓아야지’ 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내려놓았을 테니까요. 제대로 내려놓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 내려놓을 마음이 없는데다가, 어쩌면 내려놓지 않은 채 마지막 삶길까지 걸을 매무새인 터라 ‘내려놓지 못하는 내려놓기’ 이야기가 가득하지 않나 싶습니다.

 문학상이든 작가이든 김동리이든 무엇이 대수롭겠습니까. 교수이든 강사이든 가정주부이든 짝짓기 연인이든 무엇이 대단하겠습니까. 나 스스로 즐거울 삶을 찾아 나 스스로 즐거울 길을 걸으면 됩니다. 문학상 심사를 즐겁고 아름다이 받아들여 옳고 바르게 펼치면 됩니다. 문학상 심사를 안 한대서 더 훌륭하거나 많이 한대서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잘 팔리는 소설을 써서 상도 받고 글삯도 벌어야 좋다 할 만하지 않습니다. 소설꾼 김동리 님하고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건 없건 나한테 따사로운 사람이거나 나한테 커다란 사람이거나 나한테 애틋한 사람이거나 나한테 좋은 사람이면 넉넉합니다.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믿음을 품는다 하고, 마음 깊이 살가이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믿음을 붙잡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단단하기 때문에 믿음을 품기도 하며, 마음 깊이 넉넉히 맞아들이기 때문에 믿음을 붙잡기도 합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어떻게 일구려 하느냐가 대수롭고, 내 길을 내 발로 어떻게 디디려 하는가가 대단합니다. 돈없는 삶도 내 삶이고 돈있는 삶도 내 삶이에요. 가난하대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지 않고, 가멸차대서 하늘나라에 갈 수 없지 않아요. 어떠한 길을 걸어가며 어떠한 삶을 일구든, 내가 나를 바라보며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매무새이면 알뜰합니다.


.. 내 마음에서는 김동리와의 인연을 다 내려놓고 싶은데, 밖에서는 끊임없이 그의 사진이 필요하다, 육필원고가 필요하다, 작가의 방을 꾸미겠다 등등의 일로 전화가 걸려왔다 … 내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과 비례해서, 내 마음의 여유는 폭우에 깎이는 산의 절개지처럼 세상 속으로 쓸리어 나갔다. 얄팍하고 거짓된 칭찬, 집단심리에 편승한 일시적 관심인 줄 알면서도 나는 높고 낮은 강단에 올라, 독자들의 값싼 호기심에 부응하려고 애썼다 ..  (21, 30쪽)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여행책도 믿음책도 수필책도 아닙니다. 딱히 어느 한 갈래로 넣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돋보이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어냐 하면, 함께 산티아고를 걷는 길동무한테 끝없이 투정을 부리는 대목. 길동무 마음을 살뜰히 읽지 않으며 그예 울타리만 쌓는 대목.


.. “너무 오래 쉬면 일어나기 싫어져요.” 노련한 카미노답게 치타는 앉지도 않고, 사진만 몇 컷 찍은 다음 이내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좋은 경치를 봐도 그냥 스쳐만 간다면, 도대체 이 길은 왜 있는 거야.’ 속으로 투덜대며, 마지못해 떠날 채비를 한다 … 그녀는 제법 많은 굴을 따서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비탈을 낑낑거리고 올라왔다. 몸이 추억을 되찾아가는 방법은 그 몸에 기억된 수고를 재현하는 것일까. 비탈 위에서 치타의 손을 잡아끌면서 나는 그녀가 단순히 먹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관계된 향수를 되찾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  (98, 190쪽)


 서영은 님은 스스로 이토록 낮아지고 싶어 글을 쓰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이토록 낮아지자 다짐하면서 글을 썼는지 모릅니다. 곁에서 사랑을 나누며 내미는 손길을 얼마나 못 받아들이며 얼마나 못 헤아리는가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 이제부터는 참사랑과 참믿음을 찾아나서겠다는 다짐을 펼치려는지 모릅니다.

 ‘좋은 경치’는 ‘한 번 보았으니 됐’습니다. 왜냐하면, 길동무이든 서영은 님이든 ‘좋은 경치’가 있는 곳에서 뿌리를 박으며 살아갈 사람이 아니니까요. ‘좋은 경치’를 보자면서 ‘산티아고 걷기’를 하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좋은 경치’를 보려는 산티아고 걷기가 아니라, ‘내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면서 참다운 삶을 바라보는 고운 넋을 일구려는’ 뜻에서 하려는 산티아고 걷기입니다. 서영은 님 스스로도 밝히고, 이제껏 산티아고를 걸었다는 사람들 또한 밝히는 대목이에요.

 좋은 경치를 보자면 한낱 관광객 아니겠어요. 좋은 경치에 얽매이자면, 한국땅에서 문학상 심사 오래오래 맡고 대학교수 이름쪽 단단히 거머쥐면 됩니다. 좋은 경치 아닌 좋은 삶을 일굴 노릇이고, 좋은 이름값 아닌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자며 마음닦이를 하듯 걷는 산티아고 ‘노란 화살표 길’이라고 느낍니다.

 먼 길을 오래도록 걷는 내내 곁에서 이모저모 챙기고 밥을 차리며 도움말을 끝없이 들려주는 길동무 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않으면서 산티아고를 걸었다면, 이 산티아고 걷기란 무슨 보람인가 알쏭달쏭합니다.


.. 도시에 들어서면 순례자들은 이방인이 된다. 도시가 버린 것은 ‘걷기’이다 … 여기까지 오는 길이 고통스러웠으니 산티아고가 거룩하고 성스럽기를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일 수 있다 ..  (108, 365쪽)


 에스파냐 도시이든 칠레 도시이든 일본 도시이든 한국 도시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사람들이 걷도록 놓아주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자동차가 우쭐거립니다. 어느 도시이든 높직한 건물이 가로막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따스한 사람결보다 돈을 앞세웁니다. 어느 도시이든 풀과 나무와 흙이 아닌 시멘트와 아스팔트입니다.

 이러한 도시 얼거리를 일찍부터 알았다면, 서영은 님은 일찌감치 도시를 떠날 노릇입니다. 꼭 산티아고를 걷지 않았어도 슬기롭게 깨달아 아름다이 살아갈 노릇입니다.

 산티아고는 거룩하지 않으니까요. 산티아고는 산티아고이지 서울이나 제주가 아니에요. 산티아고에서는 산티아고를 온몸으로 부대껴서 온마음으로 느껴야 해요. 내가 살아온 대로 보고 느끼며 받아들이는 이야기인 줄을 깨달아야 해요.

 이제 책을 덮습니다. 외롭다고 생각하며 외롭다는 이야기를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수없이 되풀이하는(그렇다고 ‘외로움’이라는 낱말로 외롭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일기책은 덮습니다.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살아가더라도 외롭다고 느낄 수 있고, 사람들한테 둘러싸였으나 내 마음 차분하게 사랑할 길을 찾지 못하기에 외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디, 산티아고에서 한국땅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자리에서 외로움을 떨치거나 예쁘게 껴안으면서 참살길을 보살펴 주기를 바랍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글·사진,문학동네 펴냄,2010.4.8./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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