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하지 않은 날


 요즈음 들어 아이 옷가지 빨래가 크게 줄었다. 벌써 닷새 남짓인가, 밤나절 아이 오줌기저귀 빨래가 나오지 않는다. 아이 오줌기저귀 빨래가 나오지 않으니 빨래할 일이 크게 줄어든다. 옆지기 빨래라든지 아이 겉옷 빨래야 하루쯤 미루어 몰아서 해도 되니까, 요사이는 빨래를 안 하고 건너뛰는 날이 곧잘 있다. 나는 내 옷을 더디 빤다. 식구들 빨래가 적은 날 내 옷을 한두 점쯤 끼워서 빤다.

 얼마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날마다 한 시간 즈음 빨래를 하지 않으면 하루치 빨래라 하더라도 잔뜩 쌓이는 나날이었는데, 아이가 밤에 오줌을 잘 가리니까 이렇게도 빨래가 줄어드는구나. 놀라우면서 새삼스럽고, 반가우면서 고맙다. 그렇지만 다음달에 둘째가 태어나면 다시금 빨래쟁이 나날을 맞이할 테지. 어쩌면 우리 첫째는 제 어버이가 그동안 빨래살이로 몹시 고되었으니 한동안 쉬게 해 주는지 모른다. 둘째가 태어나면 날이면 날마다 기저귀이며 배냇저고리이며 똥옷 오줌옷, 여기에 이부자리와 물막이깔개까지, 빨래가 넘치고 넘치리라. 첫째와 함께 살아오며 실컷 겪었으니까.

 날마다 빨래살이를 하는 동안 ‘이다지도 많은 빨래를 언제까지나 이렇게 해야 하나. 우리 아이는 언제쯤 혼자서 제 옷을 빨래할 날을 맞이하려나.’ 하고 노래를 했다. 아이가 커서 스스로 제 옷을 빨래할 즈음 된다면, 아이가 더 커서 제 어버이만큼 자라나 사랑하는 짝꿍을 만나고 혼인을 하거나 제금을 나서 제 아이를 낳아 키우며 제 아이 옷가지를 빨래한다면 제 어버이가 저를 낳아 키울 때에 어떠한 빨래살이를 치러야 했는지 몸으로 느낄 테지.

 머리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오로지 몸으로 알 뿐이다. 책을 수없이 읽는달지라도 알 수 없다. 오직 스스로 몸을 바쳐 겪을 때에 알 뿐이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는 책으로 낼 수 없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는 스스로 하루하루 보내는 나날이 주름살과 꾸덕살에 아로새겨질 뿐이다. (4344.4.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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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
필립 퍼키스 글.사진, 박태희 옮김 / 안목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더 나은 사진장비’를 놓고 망설이는 분한테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33] 필립 퍼키스,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 책이름 :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 글 : 필립 퍼키스
- 옮긴이 : 박태희
- 펴낸곳 : 안목 (2011.2.8.)
- 책값 :9500원



 (1) 사진이란 무엇인가


 더 나은 사진장비는 있습니다. 좀 떨어지는 사진장비 또한 있습니다. 필름사진기이든 디지털사진기이든 값진 장비가 있고 값싼 장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 나은 사진장비이든 좀 떨어지는 사진장비이든, 언제나 ‘사진을 찍도록 이끄는’ 기계입니다.

 더 나은 사진장비를 쓰면 시야율이 높을 뿐 아니라 화질이 한결 뛰어납니다. 화소수가 높은 사진장비를 쓸 때에는 사진 하나를 크게 만든다 하더라도 입자가 덜 깨지거나 안 깨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입자가 보드라운 사진이든 입자가 거친 사진이든, 늘 ‘사진다울 때에 사진’이라고 일컫습니다.


.. 전시장에 간다. 눈길을 끄는 사진 앞에 선다. 그것을 5분 동안 바라본다. 사진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  (15쪽)


 필름은 감도 50부터 감도 3200까지 있습니다. 필름은 감도 100만 있지 않습니다. 흑백필름을 쓰던 예전 사람들은 감도 400을 곧잘 썼다지만, 흑백필름 또한 감도 100이나 감도 200이 있으며, 감도 800이나 감도 1600이나 감도 3200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감도 100 필름을 400으로 올려서 찍습니다. 누군가는 감도 400 필름을 1600으로 올려서 찍습니다.

 입자가 보드라운 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입자가 거친 느낌을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풍경사진을 찍을 때에는 대형원판으로 찍어야 비로소 ‘먼 곳과 가까운 곳’이 작은 데까지 살아난다고들 말합니다.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풍경사진이기 때문에 언제나 보드라운 결로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아요. 풍경사진이든 얼굴사진이든 패션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한결같이 ‘사진’이에요. 사진이라는 테두리에서만 같은 울타리일 뿐, 저마다 홀가분하게 제 길을 걸을 노릇입니다. 다 같은 사람이라지만 다 같은 길을 걸어야 하지 않아요. 저마다 좋아하는 길을 저마다 제 힘과 슬기와 삶에 맞추어 걸을 뿐입니다. 농사꾼이 되고픈 사람하고 버스기사가 되고픈 사람이 똑같은 길을 걸을 까닭이 없어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고픈 사람이랑 학자나 교사가 되고픈 사람이 비슷한 길을 걸어야 하지 않아요. 돈이 많은 사람하고 돈이 적은 사람하고 꼭 같은 자리에 서야 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더 누린대서 더 낫거나 좋은 삶이 아닙니다. 무언가 적게 누린대서 덜 떨어지거나 나쁜 삶이 아니에요. 일본사람 미우라 아야코 님은 몸이 아파 죽을는지 모르는 채 오래오래 병자리에 누워 지냈지만, 고마운 하늘 뜻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처음부터 고맙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지만, 나중에 고맙게 받아들이면서 당신 삶이 달라졌다고 해요. 아픈 사람은 아프기 때문에 고맙고, 튼튼한 사람은 튼튼하기 때문에 고마운 노릇이에요. 혼자 살아가면 혼자 살아가는 대로 고맙습니다. 여럿이 복닥거리며 살아간다면 이대로 고맙겠지요.

 사진기는 1회용 사진기부터 여러 천만 원에 이르는 사진기까지 있습니다. 몹시 이름나고 아주 잘 팔린 사진기부터 그닥 많이 알려지지 못한 사진기까지 골고루 있습니다. 같은 회사 사진기라 하더라도 기종에 따라 빛느낌이나 질감이 조금씩 다르기 마련입니다. 같은 기계라 하더라도 다루는 사람 손길과 마음에 따라 빛느낌이나 질감이 조금씩 새로워지기 마련입니다.

 사진은 기계 단추만 누른대서 이루어지는 삶이 아닙니다. 기계 단추만 누른대서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계 단추를 누르는 사람 넋과 얼이 스미는 사진이에요. 기계 단추를 누르기까지 저마다 제 삶을 어떻게 보듬으며 살아왔는가 하는 꿈과 뜻이 서리는 사진입니다.

 곧, 내가 사랑하는 삶결 그대로 내가 빚는 사진결이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삶무늬 그대로 내가 일구는 사진무늬가 돼요. 내가 보살피는 삶자락 그대로 내가 껴안는 사진자락이 될 테고, 내가 아끼는 삶길 그대로 내가 걸어갈 사진길이 되기 마련입니다.


.. ‘무엇’을 상상하려고 하면 우리는 그 말의 족쇄에 걸려 그 ‘무엇’밖에는 상상할 수 없게 된다 ..  (27쪽)


 인천에서 살던 때, 인천으로 ‘골목길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이들을 데리고 인천 골목길 골골샅샅 몇 시간씩 누벼 보기도 했습니다. 누구든 혼자서 하루 예닐곱 시간을 천천히 걸어다닌다면 굳이 저 같은 사람하고 함께 골목길을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굳이 저 같은 사람하고 함께 골목마실을 해야 하는 까닭이라면, 늘 오붓하거나 호젓하게 오래오래 골목동네를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골목길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 ‘골목 사진을 찍어야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더 깊은 골목을 봐야 한다!’라느니 ‘더 골목다운 골목을 봐야 해!’ 하는 생각에서 풀리지 못합니다.

 인천에서 살던 지난날, 저는 날마다 서너 시간씩 옆지기나 아이를 데리고 골목을 구비구비 거닐었습니다. 혼자서 거닐 때에는 날마다 대여섯 시간은 가벼이 걸었어요. 꼭 어느 골목 어느 모습 어느 이야기를 빚으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따로 무슨 사진을 찍겠다거나 반드시 어디를 다녀 보거나 느껴 보려 하지 않았어요. 집식구하고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 꼭 한 가지만 헤아렸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터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봄·여름·가을·겨울 맑거나 비오거나 눈오거나 바람부는 온갖 삶자락을 함께한다고 헤아렸습니다.

 골목이기 때문에 더 사람내음이 나지 않습니다. 골목이기 때문에 더 가난해 보이지 않습니다. 골목이기 때문에 더 따스한 삶터가 아닙니다. 골목이기 때문에 더 오래되거나 낡아 보이지 않습니다. 골목이기 때문에 더 사진거리가 될 만하지 않습니다. 골목이기 때문에 곧 사라질 추억어린 곳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골목은 그저 골목입니다. 시골은 그예 시골입니다. 큰도시는 그냥 큰도시입니다.

 골목집도 집이고 아파트도 집입니다. 굴피집도 집이고 풀집도 집입니다. 흙으로 집을 짓고 짚으로 지붕을 이어야 가장 아름다운 집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집이란,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아름답게 살붙이랑 어울리겠다는 꿈을 꽃피우는 집을 가리킵니다. 아파트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집일 수 있고, 아파트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사진거리가 됩니다.

 기찻길이든 뱃길이든 하늘길이든 땅밑길이든 골목길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오솔길이든 멧길이든 물길이든 바닷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은 모습이란 없습니다. 덜 떨어질 모습이란 없습니다. 예쁘장하다는 모델을 세워 놓고 찍어야 예쁜 얼굴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값진 옷을 입히고 찍어야 패션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가난하거나 따돌림받는 사람들을 애써 찾아다니며 찍어야 다큐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이 될 때에만 사진입니다. 야구 경기를 하는 이들이 1등을 해야만 야구를 하고 막등이나 가운데쯤 자리할 때에는 야구를 안 한다 할 수 없습니다. 2등이나 3등쯤은 차지해야 비로소 농구를 하거나 배구를 한다고 하겠습니까. 1등을 했다지만 참말 1등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겠습니까.

 사진은 늘 사진이어야 합니다. 사진으로 장난을 쳤으면 ‘사진 장난’이지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돈벌이를 한다면 ‘사진으로 하는 돈벌이’이지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사진으로 이름값을 높인다든지 특종을 노린다든지 무슨 왜곡을 한다면 모두 ‘이름값 높이기’나 ‘특종 노리기’나 ‘왜곡 보도’에 머물 뿐, 사진이라는 데에 이르지 못해요.

 이리하여, 사진기자일 때에 사진을 찍는 기자라고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사진기자이면서 사진 노릇도 기자 노릇도 못한다 할 수 있습니다. 사진작가라는 이름을 내건다지만 막상 사진을 빚는 사람 노릇을 못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책을 읽었다 해서 다 책읽기가 되지 않습니다. 짝꿍하고 사귀며 혼인을 했대서 다 혼인살이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이 읽은 책이라면 앎조각만 갖다 맞추는 ‘지식쌓기’입니다. 사랑이 없이 맺은 짝꿍이라면 혼인이 아닌 ‘계약 동거’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사진입니다. 사랑이 없는데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담은 손길로 기계를 매만지며 일구는 사진입니다.


 (2) 두 번째 나오는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


 2007년 6월에 인천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연 뒤부터 곧잘 ‘사진작가’나 ‘사진즐김이’를 만났습니다.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곳을 열기 앞서까지는 ‘사진작가’를 만날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언제나 만나는 사람이라면 ‘사진즐김이’뿐이었습니다.

 2010년 6월에 인천살림을 모두 추슬러서 충주 멧골마을로 옮겼습니다. 도시에서는 더 달삯을 버틸 수 없을 뿐더러, 집식구들 몸을 생각해서 시골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시골마을로 깊이 들어가니까 이제는 사진작가라 하든 사진즐김이라 하든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언제나 집식구하고 어울리면서, 집식구하고 복닥이는 사진을 시골자락에서 혼자 즐깁니다.

 인천에서 지낼 때이든 충주 멧골마을로 들어온 뒤이든, 사진과 얽힌 사람을 드문드문 만나는 자리에서 ‘책 하나 소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책 하나 선물로 사 주는’ 때에는 으레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를 꼽곤 했습니다. 사진길을 처음 밟는 사람한테이든, 사진길을 퍽 오래 밟았다는 사람한테든,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만큼 사랑스러운 사진동무는 드물다고 느꼈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2005년에 눈빛출판사에서 처음 나온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가 판이 끊어졌다는 이야기를 문득 듣습니다. 깜짝 놀랍니다. ‘참말인가? 이런 책이 참말 판이 끊어질 수 있나? 출판사 누리집에서 이 책이 꽤 잘 팔린다고 늘 밝혔다고 떠오르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헌책방마실을 할 때에 이 책이 나오는가를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두 번 이 책을 다시 장만합니다. 왜냐하면 새책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요. 2005년에 처음 나왔을 때에 장만한 책은 내 도서관 책시렁 ‘사진책 자리’에서 왼쪽 끝 즈음에 꽂고, 새로 장만한 책은 사진책 자리에서 오른쪽 끝 즈음에 떨어뜨려서 꽂습니다. 다른 한 권은 나한테 반가운 사진즐김이 한 분한테 선물로 드립니다.


..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 사진이 찍혀지는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 … 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재 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 그러나 그저 보이는 게 찍힐 뿐이다 … 사진가가 열린 마음과 지성으로 사물을 충분히 관찰한 다음 그 주제를 온전한 매체로 기록할 때,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무언가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다 … 사진의 이미지란 결코 창조물이 아니며, 무지개나 우박처럼 오히려 어떤 식으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  (19, 57, 64쪽)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를 쓴 필립 퍼키스라는 분은 미국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미국사람으로서 미국에서 사진길을 걸으려 하는 이들한테 도움말을 들려주려고 엮은 책이라 할 만합니다.

 일본사람이 사진강의노트를 썼다면 일본사람 눈길과 넋으로 일본 ‘사진 새내기’한테 도움말을 들려주려고 책을 엮을 테지요. 필립 퍼키스 님은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친 기나긴 나날을 되짚으면서 책 하나를 갈무리했습니다.

 사진을 가르치던 첫무렵부터 이와 같은 사진강의노트를 내놓지는 못합니다. 사진을 오래오래 가르친 끝에 이와 같은 사진강의노트를 내놓습니다.

 여러 차례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를 읽었고, 2011년 2월에 새옷을 입고 다시 살아난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를 새삼스레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진길을 처음 밟는 이한테나 사진길을 오래 밟았던 이한테나 더없이 도움이 될 만한 사진동무인 작은 책 하나이지만, 이 작은 책 하나를 알뜰히 여기며 사랑할 만한 사진쟁이가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살짝 알쏭달쏭합니다.


.. 이 사진은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걸작이다. 오직 사진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다. 이런 식의 은유와 애절함은 사진이라는 독특한 매체의 직접성에서 비롯된다 … 시를 쓰는 단 하나의 이유는 산문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 누군가 바닐라 맛에 대해 최상의 표현으로, 지적이고 우아하게 설명하는 것을 듣는다고 치자. 나는 여전히 바닐라 맛을 모른다. 그러나 난생 처음으로 바닐라 맛을 본 후에 설명을 듣는다면, 그제서야 ‘맞아, 바로 이 맛이야’라며 무릎을 칠 것이다. 처음으로 그랜드 캐니언에 가 보거나 예술 작품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 그러나 이름이 없는 것은 상도 안 준다. 오로지 이름을 붙이는 것만이 관건이다. 읽기와 산수로만 지능이 평가된다. 감수성과 관찰력이 뛰어난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던 적은 언제였던가? ..  (25, 35∼36, 66∼67쪽)


 사진길을 걷겠다고 하는 이들치고 ‘어떤 사진장비’를 갖출까로 망설이거나 근심하거나 마음쓰는 사람만 많을 뿐입니다. 말 그대로 ‘어떤 사진길을 걸을까’ 하는 대목에 생각을 기울이거나 마음을 쏟는 이가 퍽 드뭅니다.

 야구선수한테 ‘어떤 방망이’나 ‘어떤 공’이나 ‘어떤 장갑’을 쓰느냐고 여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방망이 가운데에도 더 낫다 하는 방망이가 있겠지요. 더 질기며 튼튼하고 손에 잘 맞는 장갑이 있을 테지요. 그런데, 어느 야구선수도 방망이 탓이나 장갑 탓을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겠지요.

 축구선수가 더 낫다 하는 축구신을 신고 더 낫다 하는 공을 발로 차야 더 이름을 드높이거나 더 멋지거나 더 신나게 축구를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배구선수가 더 낫다 하는 공을 써야 배구를 더 잘 하겠습니까.

 100원짜리 연필이든 100만 원짜리 연필이든, 글을 쓸 때에 달라질 대목이란 없습니다. 좀 싸구려 연필이나 좀 싸구려 볼펜을 쓰면 손목이 더 아프거나 어깨가 더 결릴까 궁금합니다. 좀 싸구려 자판을 두들기면 글쓰기를 더 못할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똑같습니다. 사진을 찍든 노래를 부르든 똑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낫다 하는 장비가 있대서 글을 더 잘 쓰거나 그림을 더 잘 그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없고서야 글이고 그림이고 태어날 수 없습니다.

 장비는 좋다지만 마음이 없으면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무대가 좋다지만 마음이 없으면 노래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사진길을 걸으려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진길을 걸으려 하는가’ 한 가지만 생각해야 합니다. 사진장비란 내 살림돈에 맞추어 장만할 뿐입니다. 사진기 만드는 회사는 참 고맙게도, 값싼 사진기부터 값진 사진기까지 골고루 만들어 베풉니다. 어느 사진기를 쓰든 어찌 되건 돈이 있어야 하지요. 돈이 없고서야 사진을 찍지 못해요. 그러나, 돈이 아주 넉넉하기 때문에 사진을 걱정없이 할 수 있지는 않아요. 돈이 참 없어 밥굶기를 자주 한다 하더라도 사진을 못 할 수 없어요. 내 마음가짐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사진일 뿐입니다.


.. 늘 같은 렌즈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렌즈가 제공하는 시야에 익숙해지면 ‘전체’를 훨씬 빨리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프레임은 사진가가 조작한 시각이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보고 느끼는 사진 속에서 사진의 내용이 되는 질감과 명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사진가의 섬세함을 기르는 일이다 … (내가 찍은 사진을 내 손으로 갈무리하는) 편집을 하는 까닭은 내 사진을 발전시키기 위한 훈련이 필요해서다 … 작품의 정신은 예술가의 내면으로부터 나오고, 창조적 행위는 우리가 숨을 쉬며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슬프고 기쁘고 지치고 죽는 그 모든 과정과 서로 맞물려 이루어진다 ..  (41, 81, 95, 114쪽)


 필립 퍼키스 님은 사진을 오래오래 가르쳤습니다. 사진을 오래오래 가르친 열매가 담긴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입니다. 저는 이 책을 2005년에 처음 만나고 2011년에 새책으로 다시 만나면서,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생각합니다. ‘사진은 가르칠 수 없고, 사진은 누구한테서 따로 배울 수 없다’고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생각합니다.

 모르는 노릇입니다만, 필립 퍼키스 님이 사진을 가르칠 수 있다고 여겼다면 ‘사진강의노트’가 아닌 ‘사진강의’라고만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무슨무슨 ‘예술개론’이라든지 무슨무슨 ‘이론과 실제’라는 이름을 붙이는 책이 있는데, ‘사진미학’이든 ‘영화미학’이든 있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주의주장이 아니라 느낌으로 받아들입니다. 사진은 ‘사진예술’이나 ‘사진문화’라는 덧옷을 입힐 수 없구나 싶어요. 글을 놓고 ‘글예술’이나 ‘글문화’라 할 수 없어요. ‘수필예술’이나 ‘소설문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글이고 수필이며 소설입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이지 사진 앞에 무슨무슨 꾸밈말을 붙이거나 사진 뒤에 어떤저떤 덧말을 달 수 없습니다.

 패션사진을 한다는 사람들은 패션도 사진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돈벌이만 합니다. 다큐사진을 한다는 사람들은 다큐도 사진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구경꾼 노릇만 합니다. 누군가 예술사진을 한다고 말한다면 이이는 예술도 사진도 못 하거나 안 하는 셈입니다. 예술은 예술이고 사진은 사진입니다. 패션은 패션이고 사진은 사진입니다. 패션을 하면서 사진을 즐길 수 있고, 사진을 하면서 패션을 즐길 수 있어요. 다큐를 이루면서 사진을 받아들일 수 있고, 사진을 하면서 다큐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가르칠 수 없는 예술이고, 배울 수 없는 예술입니다. 문화를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습니까. 그저 살아낼 뿐인 문화이자 예술입니다. 사랑을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습니까. 그저 사랑할 뿐인 내 삶입니다.

 사진은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한테 가르치지 못합니다. 사진을 배우겠다며 대학교에 갈 수 없고 사진학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필립 퍼키스 님은 대학 강단에서 오래도록 몸담으면서 바로 이 대목, ‘사진은 가르칠 수 없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를 썼다고 느낍니다.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사진인 줄을 사람들이 알아채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고 느껴요. 그래서, 이 책은 필립 퍼키스 님이 ‘대학교 사진 강단’에서 물러날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놓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내가 살아내는 하루만큼 그날그날 찍는 이야기입니다.


.. 세월이 흐르면서 사진도 돈벌이로 부상했다. 사진가가 죽거나, 대형 사진이거나, 비평가들에게 쓸거리가 풍부한 내용일 때 값은 더욱 올라갔다 … 권세 있는 자들이 사진을 예술이라고 선고한 후부터 많은 사진가들이 예술 안에서 사진의 개념을 확장하려는 노력이나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그저 예술처럼 보이는 그럴싸한 사진을 만드는 데에만 죽을힘을 다해 애쓰고 있다. 머릿속에 든 생각이 점점 빈약해질수록 사진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간다 … 희한하게도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고 접근이 용이해질수록 플라티늄, 팔라디움, 카브로, 사이아노타이프 같은 ‘과거의’ 기법들이 기승을 부린다 … 인물 사진의 최신 경향은 영리하고 재능 있고 의욕에 찬 사진가들이 영민한 머리로 온갖 재주를 부려 사람들을 찍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경향은 얼굴의 땀구멍이 불쾌하게 보일 정도로 가깝게 촬영한다(어떤 감정이든 불러만 오면 된다는 식이다). 지금 잘나가는 인물 사진가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하는 방식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패션 사진가들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  (59, 91, 102, 109쪽)


 사진이 처음 태어나던 지난날에도 사람들은 사진을 했고, 사진이 널리 퍼진 요즈음에도 사람들은 사진을 합니다. 옛사람이 더 빼어난 사진을 하지 않았습니다. 새사람이 더 훌륭한 사진을 하지 않습니다. 예전 사람이건 요새 사람이건, 그저 사진을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사진을 하건 사진을 즐기건 사진을 누리건,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내 삶에 걸맞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나눈다’고 하는 마음을 잊거나 처음부터 안 품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오늘 시를 몇 편이나 쓰셨오?” … 결코 ‘순수’사진이라고 불릴 만한 사진은 한 장도 없다 … 모든 사진은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으며, 모든 사진은 사진가가 결정을 내린 순간 찍혀지기 때문에 얼마간 사진가의 의도가 ‘표현된’ 것이다. 선을 그어 놓고 한쪽만을 취하도록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해악이다 ..  (93, 121, 125쪽)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는 사진길을 걷는다는 사람들한테 나누어 주는 선물입니다. 사진을 찍는 내 삶이 어떠한 삶인가를 저마다 스스로 즐거이 돌아보자는 뜻으로 나누어 주는 선물입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사진을 하는 마음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일을 맡은 사람이라면 ‘교육이란 무엇이고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마음을 짚을 수 있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살림하는 마음을 깨달을 수 있어요.

 우리가 저마다 살아가는 터전에서 망설여야 할 대목이라면 다문 한 가지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맞이하는 내 하루를 오늘은 얼마나 더 사랑스럽거나 즐겁거나 신나게 맞아들이려 하는가’입니다.

 삶은 덜도 더도 아닙니다. 사랑은 덜도 더도 아닙니다. 사람은 덜도 더도 아닙니다. 사진은 덜도 더도 아닙니다. 삶은 삶이고, 사랑은 사랑이며, 사람은 사람이겠지요. 사진은 사진입니다.

 좋은 삶·사랑·사람을 이야기하는 책 하나를 알뜰히 여미어 되살린 박태희 님이 참 고맙습니다. (4344.4.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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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사람 읽던 책을 읽으며


 누군가 장만해서 읽어 주었기에 먼먼 뒷날, 누군가 고맙게 새삼스레 집어들어 읽습니다. 책이란 책입니다. 옛책도 헌책도 새책도 아닌 책입니다. 살아숨쉬는 사람처럼 살아숨쉬는 책입니다. 펄떡펄떡 숨쉬며 일어서는 내 몸뚱이처럼, 가난한 마음을 펄떡펄떡 일으켜세우는 마음밥인 책입니다. 백 그릇을 먹고 즈믄 그릇을 비워도 언제까지나 더 먹을 수 있고 다시 먹을 수 있는 책입니다. (4344.4.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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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닭 생생 푸른 교과서 6
장-클로드 페리케 지음, 얀 르브리 외 그림, 최인령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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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부터 모르는 ‘닭고기’ 이야기
 [책읽기 삶읽기 54] 장 클로드 페리케·얀 르브리·장 올리비에 에롱, 《나는 닭》(청어람주니어,2008)



 꽤 예전부터 어른책보다 어린이책이 더 많이 나옵니다. 어른책만 내던 적잖은 출판사들은 어린이책을 함께 내는 틀로 바꾸곤 했으며,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를 따로 새끼회사로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한테 읽힐 마땅한 책이 없다며 아쉽게 여기거나 안타까이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이들한테 읽힐 책이 대단히 많은 나머지 추리거나 가리거나 솎거나 골라야 합니다. 좋다고 할 만한 책을 추려서 책이름과 간기와 겉그림만 단출히 그러모은 ‘권장도서목록’만 하더라도 두툼한 책 하나가 될 만큼 이 나라 책마을은 달라졌습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해마다 새로 나오는 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어린이책은 어른책보다 훨씬 많이 나옵니다만,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새로 나오는 책이 퍽 많습니다. 한 해만 지나도 여러 갈래 여러 이야기를 파고드는 여러 가지 책이 새로 태어납니다. 지난날에는 한 권조차 없던 이야기가 이제는 여러 권 되기도 하고, 지난날에는 아무도 다루지 않던 이야기를 오늘날에는 퍽 자주 다루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른책에서 깊이 있게 살피거나 돌아보는 책은 차츰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어린이책에서 깊이 있게 살피거나 돌아보는 책을 한결 찬찬히 헤아리거나 곱씹는 어른책이 좀처럼 못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 시대가 바뀌면서 다른 모습의 닭들이 생겨났어. 농부들이 좋은 닭만 골라 키웠기 때문이야. 유럽 사람들은 작은 닭만 보다가, 19세기 중반 아시아에서 건너온 큰 닭을 보고 감탄했어. 곧 유럽의 닭과 아시아의 닭을 교배해서 종자 개량에 들어갔지 … 오늘날에는 알을 얻기 위한 닭과 고기를 얻기 위한 닭을 분리해서 사육해. 알을 더 잘 낳거나, 살이 더 많이 찌도록 품종을 개량했거든 … 고기를 얻기 위한 닭의 사육시설에는 물통, 먹이통, 그리고 배설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해. 하지만 그 수가 하도 많아서 한 마리당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이 책을 펼친 크기 정도야. 게다가 닭들이 서로 물어뜯고 때로는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부리의 끝을 잘라 버려. 야외에서 기르는 닭도 부리를 잘라 버릴 때가 있어. 사육기간은 다양한데, 표준 닭은 35일 내지 40일째에 목표 무게인 2킬로그램에 도달해. 때로는 너무 빨리 성장해서, 약한 발로 몸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  (12, 34, 36쪽)


 《나는 닭》이라는 이야기책을 펼치면서 생각합니다. 어린이책으로 나온 《나는 닭》이라는 이야기책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닭 한삶을 헤아리는 데에 길잡이가 될 만큼 잘 빚은 알찬 책’이라 할 만합니다. 어린이들은 이 책 하나로 닭 한삶을 차근차근 짚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른책으로 ‘닭 한삶’을 알뜰히 다룬 이야기책으로는 무엇이 있다 할 만할까요. 아니, 어른들은 닭 한삶을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돌아보거나 생각하는 일이 있기나 하는지요. 닭고기를 밥으로도 먹고 술안주로도 먹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닭고기를 사 주는 어른들은, 닭튀김이니 백숙이니 닭곰탕이니 닭꼬치이니 훈제이니 숯불구이니 하면서 즐기는 어른들은, 흔히 값싸게 먹는 닭 한 마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기르며 어떻게 가게에 들어오는지를 알기는 할까요.


.. 병아리는 6개월이면 어른 닭이 돼. 그때부터 수평아리는 수탉, 암평아리는 암탉이 되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 암탉은 하루에 몇 번씩 알을 굴려서 골고루 따뜻하게 해 줘. 하루 종일 끈기 있게 알을 품고 있다가, 한 번씩 둥지에서 나와 먹이나 물을 먹고 배설을 해 … 닭을 비롯한 꿩과의 새들은 날기보다는 땅에서 걸어 다니기를 좋아하고, 땅바닥에서 먹이를 찾아. 닭은 아직 이런 습성이 남아 있어서 흙만 보면 단단한 발가락으로 땅을 헤치며 먹이를 찾곤 해. 닭은 흙이나 모래 목욕을 즐기는데, 먼저 땅을 파 모래나 흙이 깃털 속으로 들어가게 해. 그런 뒤에 푸다닥 털면 피부와 깃털 속에 있던 기생충이나 불결한 것들이 함께 떨어져서 깨끗하게 돼 ..  (29, 33, 66쪽)


 예나 이제나 학교에서는 ‘달걀이 몇 일이 지나야 깨어나는가’를 배웁니다. 앎조각으로 배웁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떠올리는 사람이 있으나, 나이가 들어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닭》이라는 책에도 나오지만, 달걀이 깨려면 세이레가 걸립니다. 스물하루가 걸려요.

 《나는 닭》이라는 책에는 ‘사람들이 먹는 고기가 되는 닭’을 며칠 만에 길러내는지도 밝힙니다. “표준 닭은 35일 내지 40일째에 목표 무게인 2킬로그램에 도달해” 하고 들려줍니다. 여기에, 병아리가 어른 닭으로 ‘자연스럽게 자라기’까지는 얼마쯤 걸리는 지도 알려줘요. 여섯 달이 걸린다고도 알려줍니다.

 한국사람은 항생제와 촉진제를 써서 서른닷새보다 더 빨리 고기닭을 만들곤 합니다. 한국사람은 고기닭 한 마리를 아주 값싸게 팔기도 합니다. 아예 다 익혀서 그냥 돈만 내면 값싸게 사먹을 수 있는 닭을 이름난 큰 회사에서 널리널리 팔곤 합니다. 2011년 3월까지 한국에 있는 ‘닭고기 체인점’이 만육천 곳이 넘는다 하는데, 동네에서 조그맣게 하는 곳까지 치면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들 닭고기집에서 다루는 닭고기란 한 가게에서 한 마리만 팔아도 날마다 만육천 마리는 가볍게 넘겠지요.

 나라안에 손꼽히는 닭고기회사는 하루에 삼십만 마리이니 사십만 마리이니를 고기닭으로 다룬다고 합니다. 하루에 삼십만 마리를 다루는 닭고기회사가 세 곳이라면 날마다 백만 마리를 웃도는 닭이 고기가 된다는 소리이고, 날마다 백만 마리가 넘는 병아리가 새로 태어나 닭우리에서 자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닭이란, 사람한테 잡아먹히도록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태어나서 어마어마하게 많이 죽어야 하는 목숨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먹는 달걀은 닭고기보다 훨씬 많겠지요. 한국에서는 하루에 달걀이 몇 알쯤 사람들 입으로 들어갈까요.


.. 시골에서 암탉은 매우 소중해.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달걀을 낳아 주거든. 달걀을 낳지 못하면 닭을 요리해 먹을 수 있어 ..  (13쪽)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집에서 닭을 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닭을 칠 만한 널따란 마당을 마련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파트 툇마루에 닭장을 두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원하며 어여쁜 꽃밭은 마련할 테지만 닭우리를 두거나 닭을 풀밭에 풀어서 키우는 도시사람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기만 하지 않던 지난날에는, 시골집 어디에서나 닭을 풀어서 키웠고, 달걀을 때때로 고맙게 얻어서 먹었으며, 닭고기는 더욱 고맙게 여기며 잡아서 먹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고부터는 닭을 치는 사람은 더 돈을 벌고자 더 좁은 우리에 더 많은 닭을 집어넣고 더 빨리 길러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적은 돈으로 더 큰 닭을 더 맛나게 먹고픈 꿈을 키우며 돈만 치릅니다. 닭 한 마리 어떻게 자라거나 죽는가를 아는 도시사람은 몹시 드물어요.


.. 집약적 사육장에서는 닭의 사료에 항생제를 첨가해. 항생제를 먹인 닭은 많이 먹지 않아도 살이 빨리 찌거든. 그러나 항생제는 세균의 저항력을 키워서,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생겨나게 할 위험이 있어 ..  (40쪽)


 아이들은 《나는 닭》을 읽으면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곱씹어 봅니다. 닭은 어떤 짐승이고, 닭과 사람은 서로 어떤 역사를 이었으며, 더 크고 맛있다는 고기닭을 만들려고 사람들이 어떻게 ‘품종 개량’을 했는가를 알 수 있을까요. 고기닭을 만든다며 항생제를 쓴다는 대목이 한 줄 깃들기는 하지만, 정작 닭우리에서 어떤 항생제를 쓰고, 이 항생제 성분이 무엇이며, 이 항생제가 사람몸에 어떻게 파고드는지는 한 줄이건 한 낱말이건 다루지 못합니다. 고기닭한테든 고기소한테든 고기돼지한테든 먹이는 항생제를 알려면 《항생제 중독》(시금치,2005) 같은 책을 따로 사서 읽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기짐승한테 먹인다는 항생제 이야기를 다루는 어린이책은 아직 따로 없구나 싶습니다. 항생제 이야기를 살뜰히 다루는 어른책 또한 몇 없습니다. 어른들부터 너무 바쁜 나머지 항생제를 쓰건 말건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아이들 또한 어른 못지않게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 책 저 책 지식쌓기 하려고 읽기는 하지만, 아이 스스로 제 삶으로 삭이기까지 차근차근 톺아보기란 몹시 힘듭니다.

 이야기책 《나는 닭》은 어른들부터 모르는 닭고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 이러한 이야기책은 어른책으로 읽기보다 어린이책으로 함께 읽어야 ‘어른 스스로 이 나라와 사회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한결 쉬운 말과 더 차근차근 풀어낸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책이야말로,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이 함께 즐기면서 배울 이야기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더 생각합니다. 이야기책은 이야기책으로 그치는 책일 수 없습니다. 책을 읽으며 새기는 이야기는 앎조각이 아닌 삶으로 녹이도록 되새길 때에 뜻과 보람이 있습니다. 앎조각만 쌓으려 한다면 앎조각을 더 많이 쌓은 사람이 더 훌륭하거나 좋은 사람이 되겠지요. 삶으로 녹이도록 되새기며 살아가려 한다면, 책을 한 권만 읽었든 백 권을 읽었든 만 권을 읽었든, 나 스스로 착하며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착하며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테지요.

 책을 읽는다고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 사람이 똑똑합니다. 집에서 닭을 치는 사람이라면 굳이 《나는 닭》을 읽지 않아도 됩니다. (4344.4.25.달.ㅎㄲㅅㄱ)


― 나는 닭 (장 클로드 페리케 글,얀 르브리·장 올리비에 에롱 그림,최인령 옮김,청어람주니어 펴냄,2008.7.25./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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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66] 출판사 누리집 게시판

 한국 전통문화를 다루는 책을 알뜰히 펴낸다고 하면서, 문화나 예술 갈래 책을 깊이 있게 엮는다고 하는 ㅇ출판사 누리집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랍니다. 누리집 게시판이 온통 알파벳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영어로 누리집을 짜고 영어로 출판사 이름을 붙이는 일이 멋스러워 보일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다르게 느낍니다.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이나 미국사람이 ‘일본 출판사 이름’이나 ‘중국 출판사 이름’이나 ‘미국 출판사 이름’을 한글로 붙인다면 하나도 안 반갑습니다. 이들이 제 나라에서 내는 책을 한글로 적바림할 때에도 참말 안 반갑습니다.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제 나라 출판사 이름을 붙이고, 중국사람은 중국말로 제 나라 출판사 이름을 붙여야지요. 외국사람이 찾아와서 들여다보도록 하겠다며 게시판을 영어로 적는다면, 글부터 모두 영어로 쓸 노릇입니다. 아예 따로 영어 누리집을 마련해야 올바릅니다. 한국사람이 찾아와서 들여다보도록 하겠다는 누리집이라면 마땅히 한국말과 한국글로 누리집을 꾸며야 합니다. 누리집을 찾아가는 한국사람은 생각해 보지 않는 한국땅 출판사인지요. ‘new books’부터 ‘free board’까지 끔찍하다 못해 두렵고 슬픕니다. (4344.4.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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