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계사 시인선 41
신현림 지음 / 세계사 / 1994년 6월
평점 :
품절


이 모두를 사랑해
[시를 노래하는 시 30] 신현림,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 책이름 :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 글 : 신현림
- 펴낸곳 : 세계사 (1994.6.1.)
- 책값 : 5500원

 


  선선한 가을 아침은 따스한 가을볕과 함께 새롭게 열립니다. 가을이 무르익으며, 이제 새벽 다섯 시 반을 지나고 여섯 시 가까울 때까지 퍽 어둑어둑합니다. 여섯 시 반쯤 되어야 비로소 환하게 날이 샙니다.


  저녁에는 다섯 시 즈음 되면 선선한 바람이 감돕니다. 말리는 이불이나 빨래가 있으면 네 시 반쯤 모두 걷어야 합니다. 처마 없는 마당에 두는 물건은 저녁부터 이슬이 내려앉습니다. 아침 아홉 시가 넘어도 밤새 내린 이슬을 맞은 들풀과 나뭇잎마다 물방울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나물비빔을 하려고 들풀을 뜯으며 손끝으로 풀이슬을 느낍니다.


.. 후후 / 당신은 여지껏 환상을 보고 있었다 / 어쩌면 生과 死란 없다 // 홀연히 사라질 나는 / 공중에 불타는 구름막대기 ..  (bottle woman)


  가을볕은 누구만 더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가을볕은 시골 들판만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가을볕은 도시 한복판 높다란 빌딩숲도 사랑합니다. 고속도로를 누비는 자동차도 사랑합니다. 원자력발전소 지붕과 화력발전소 지붕도 사랑해요. 가을볕은 푸른기와 이은 집도 사랑하고, 천막으로 이은 집도 사랑해요. 누구한테나 골고루 따순 사랑을 드리우는 가을볕입니다.


  가을쑥이나 가을나물은 누구를 더 좋아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사람한테만 반가울 가을나물이 아니에요. 도시에서 살림하는 사람한테도 반가울 가을나물이에요. 가을꽃도 가을나무도, 모든 사람한테 고운 빛을 베풀고 싶으리라 느껴요.


.. 제 한 줄의 시가 누군가에겐 동병상련 술이 되게 / 그대 장칼로 내 가슴 거듭거듭 휘저어주시기를 ..  (황혼의 지구병동)


  사랑하기가 가장 쉬우며 즐겁고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사랑받기가 가장 반가우며 기쁘며 좋다고 느낍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할 때에 더없이 빛난다고 느껴요. 이른바 평화도 평등도 민주도 통일도,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할 때에 천천히 이루어지리라 생각해요.


  미워하기란 참 어렵고 힘들며 괴로우리라 생각합니다. 싫어하거나 못마땅히 여기기 또한 참말 까다롭고 고단하며 슬프리라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삶이란 하루하루 웃음으로 누리는 삶이에요. 하루하루 누리는 삶이란 하루하루 맑고 밝게 일구는 삶이에요.


  가을에는 가을사람이 됩니다. 겨울에는 겨울사람이 됩니다. 봄에는 봄사람 되고, 여름에는 여름사람 돼요. 언제나 가장 좋게 꿈을 꾸고, 늘 가장 살가이 사랑을 키우며, 노상 가장 곱게 말을 빚어요.


.. 금연방송을 비웃는 듯 / 내 앞의 사내가 계속 담배를 피웠다 / 담배연기는 얼어가는 파도처럼 / 머리를 휘감아 죄었다 문득 담배를 / 그의 위법의 법을 숨통을 비벼끄고 싶었다 / 신도림 역을 떠날 때였다 / 하모니카 부는 장님이 오고 있었다 / 껌팔이 소녀가 구호상자 든 노인이 / 허기진 손들이 장례식의 화환처럼 몰려왔다 / 내 것과 다른 가난을 사는 그들이 낯설었다 / 아무도 그들의 가난에 관심갖지 않았다 / 궁핍의 냄새가 지겨웠다 화가 치밀었다 ..  (호소의 表裏)


  가을날 들새는 가을철에 걸맞게 바쁩니다. 겨울날 멧새는 겨울철에 걸맞게 바빠요. 사람들은 가을과 겨울은 어떤 철을 헤아리고 어떤 날씨를 살필까요. 들새한테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온통 다른데, 사람한테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스스로 얼마나 다르다고 느낄까요.


  아침과 저녁이 다를까요. 낮과 밤이 다를까요. 새벽과 어스름이 다를까요. 구름과 햇살이 다를까요. 바람과 무지개가 다를까요. 달과 별이 다를까요.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내 삶이 한결같이 새로우면서 새삼스럽다고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오늘 하루를 맞이하면서 내 삶을 한결같이 새롭고 새삼스럽게 돌보는 바탕은 어디에 있을까요.


.. 바다는 엄청 큰 가야금이다 / ―둥기당당 두둥기당당― / 젖은 가야금소리 / 어머니 긴 머리칼처럼 진하고 따뜻해라 / 바다란 말처럼 부드러워라 아아 아파라 ..  (나는 물고기가 될테야)


  밥을 합니다. 식구들 먹을 밥을 합니다. 밥상을 차립니다. 식구들을 부릅니다. 밥을 먹는 사람은 밥을 하는 사람 마음을 알까요. 거꾸로, 밥을 하는 나는 밥을 먹는 식구들 마음을 알까요.


  나는 내 살붙이나 이웃한테 말을 건넵니다. 나는 내 말투가 어떠한가를 잘 헤아릴까요. 나한테서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요 마음이며 생각인가를 환하게 깨달을까요.


  밭자락에서 풀을 뜯으며 풀포기한테 고맙다고 말합니다. 너도 먹고 너도 먹어야겠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오래오래 푸르게 자라서 나와 살붙이 모두한테 좋은 밥이 되어 고맙다고 말합니다. 가을 늦게까지, 또 겨울까지, 이 밭자락 풀들이 싱그럽고 기운차게 돋으면 참 기쁘겠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새가 노래합니다. 풀내음이 날립니다. 풀벌레가 속삭입니다. 아이들이 칭얼거립니다. 빨래하고 집일하는 내 발자국 소리가 콩콩 울립니다.


.. 여자인 것이 싫은 오늘, 부엌과 / 립스틱과 우아한 옷이 귀찮고 몸도 귀찮았다 / 사랑이 텅 빈 추억의 골방은 비에 젖는다 / 비오고 허기지면 푸근할 내 사내 체온 속으로 / 가뭇없이 꺼지고 싶다는 공상뿐인 내가 싫다 ..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나 스스로 이 모두를 사랑하기에 오늘 다시금 눈을 뜰까 하고 되뇌어 봅니다. 나 스스로 이 모두를 안 사랑한다면 오늘 나는 눈을 못 뜬 채 어디론가 사라질까 가누어 봅니다. 나 스스로 이 모두를 사랑하려는 따스한 넋이기에 새롭게 기운을 차릴 수 있는가 궁금합니다. 나 스스로 이 모두를 안 사랑하는 차갑거나 매몰차거나 메마른 몸가짐이라면, 내가 발을 디딘 이곳은 무척 쓸쓸하며 어둡겠지요.


.. 그야말로 나는 아름다운 악기가 돼 / 이 모든 것을 사·랑·해라고 노래하면 ..  (철로변의 가을)


  신현림 님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세계사,1994)를 읽습니다. 신현림 님은 1994년에 이 시집을 낼 적과 스무 해 지난 2014년에 서로 어떤 모습일까 그려 봅니다. 다시 스무 해가 지난 2034년이 되면 또 어떤 모습이 될까 그려 봅니다. 1994년에 처음 나온 시집을 2012년에 처음 읽는 나는, 또 앞으로 스무 해 지난 2032년이나 다시 스무 해 더 지난 2052년에 어떤 눈길과 눈빛과 눈높이로 내 삶을 마주할까 그려 봅니다.


  나는 지겨운 이 땅에 불길 활활 오르는 고무신짝 던지는 사람일까요. 나는 즐거운 이 터에 불길 활활 오르는 풀짚으로 불을 밝히며 멧길을 걷는 사람일까요.


.. 밥 한 사발엔 / 해뜨는 바다와 조상의 살냄새와 단비가 / 매일 일하다 저무는 쓰라린 손그림자가 있다 ..  (밥 한 사발)


  나는 내 삶이 지겹거나 따분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슬프거나 고단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기쁘거나 놀랍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흐르는 삶이 스며들고, 나부끼는 삶이 노래한다고 느껴요. 푸른 물결 되어 춤을 추고, 파란 하늘이 무지개 되어 손짓을 하는구나 싶어요.


  왜 그럴까, 왜 이렇게 느낄까, 왜 이처럼 생각할까, 하고 돌아보곤 하는데, 온누리에는 딱히 좋음이나 싫음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바라봅니다. 좋거나 싫거나로 가를 수 없이, 좋으면서 싫고 싫으면서 좋달까요. 즐거우면서 서운하고 서운하면서 즐겁달까요.


  자전거로 언덕길을 오르며 허벅지가 터질 듯하지만 온몸에 땀이 쏟으면서 즐겁습니다. 자전거로 달리는 즐거움을 느끼다가는 허벅지가 터질 듯하며 고단합니다. 마음은 두 갈래가 아니라 하나요, 이때에는 이렇고 저때에는 저렇지 않습니다. 늘 똑같이 움직여요. 그래서, 진보와 보수라든지, 왼쪽과 오른쪽이라든지, 어떻게 가리거나 따질 수 있을까 알쏭달쏭하다고 느껴요. 지구별에서 왼쪽으로 왼쪽으로 왼쪽으로 가면 어디로 갈까 싶고,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또 어디로 갈까 싶어요. 어디로도 안 가고 한 자리에 있대서 ‘한 자리(중립)’가 아니라, 왼쪽에서 볼 때에는 오른쪽이 되고, 오른쪽이 볼 때에는 왼쪽이 돼요. 한편, 나와 얼굴을 마주한 아이는 나한테 왼쪽이 아이한테 오른쪽이요, 아이한테 왼쪽이 나한테 오른쪽이에요.


.. 북풍이 거칠게 몰아친다 / 나는 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 깨닫기 위해 시를 쓰는지 몰라 ..  (북풍과 은장도)


  신현림 님은 예전이나 오늘이나 똑같이 ‘아무것 아닌’ 숨결일까 궁금합니다. 또는, 아무것 아니기에 모든 것일까 궁금합니다. 깨달으려고 시를 쓰는 사람은 없지 싶어요. 깨닫기에 시를 쓰고, 시를 쓰다가 깨닫지 싶어요. 깨달으려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겠지요. 깨닫기에 살아가고, 살아가며 깨달아요. 깨달으려고 밥을 짓지 않고, 깨닫기에 밥을 지으며, 밥을 지으며 깨달아요.


.. 결혼해서 애를 낳아봐야 인생을 안다구요? / 당신은 인생 좀 아세요? ..  (활짝 핀 살코기의 공허함을 아세요?)


  아이들이 개구지게 놉니다. 이른아침부터 늦은저녁까지 마음껏 놉니다. 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넣는다면, 나는 이 아이들이 얼마나 개구지고 얼마나 힘차며 얼마나 맑은 넋인가를 낱낱이 깨닫지 못했으리라 생각해요. 하루하루 새롭게 살아가는 아이들 모습에 비추어 내 삶을 헤아리고, 내 삶에 비추어 아이들 마음을 헤아려요.


  저녁거리로 텃밭에서 돗나물을 큰아이하고 뜯습니다. 내 손은 아이 손이고, 아이 손은 내 손입니다. 아이가 뜯는 돗나물은 싱그럽게 바구니에 담기고, 내가 뜯는 돗나물 또한 싱그럽게 바구니에 담겨요. 이 돗나물은 벌써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 집 밥거리가 됩니다. 날마다 조금씩 자라며 줄기를 뻗는 돗나물을 날마다 이곳저곳 돌아보며 조금씩 뜯어 먹습니다. 돗나물은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돗나물이 돼요.


  쑥을 뜯을 적에도, 모시풀을 뜯을 적에도, 부추풀을 뜯고 까마중풀을 뜯으며 망초풀을 뜯을 적에도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으레 망초풀을 어찌 먹느냐고 하지만, 나는 ‘왜 못 먹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왜 못 먹을까 하고 생각한 지 퍽 오래 흐르고서야 비로소 망초풀 한 닢 뜯어 잘근잘근 씹었고, 망초풀은 망초풀맛이 나네, 하고 생각하면서 나물비빔을 하거나 풀물을 짜서 먹습니다.


.. 우리는 탐구하지 않을 때 시간을 잃어버린다 / 밭갈고 씨뿌리는 농부의 손길을 배우지 않을 때 / 내 안에 깊이 생각하는 얼굴이 없을 때 / 시간을 잃어버린다 / 우리가 저 강물 저 나무그늘에게 고마워할 때 / 세월의 무덤에 환한 창문을 보리라 / 더 이상 시간을 놓치진 않으리라 / 강렬한 오늘을 살기 위해 나는 사랑하련다 / 내 가족과 벗들을 겨울이 오는 도시를 / 내게 주어진 상황과 고달픔을 / 서럽게 죽고 사는 모든 것을 안으련다 ..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창문, 입시생을 위해)


  이제 물을 덥힙니다. 큰아이를 씻길 생각입니다. 작은아이도 같이 씻길까요. 그러고 나서 나도 씻을까요. 나는 내 몸을 씻으며 빨래를 할 수 있겠지요. 날마다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이렇게 조금씩 손빨래를 하면 빨래가 천천히 알맞게 마르고, 굳이 기계빨래를 하지 않아도 좋아요. 날마다 틈틈이 물을 만지면서, 이 물방울이 내 몸과 내 삶에 얼마나 고마우며 즐겁고 반가운가 하고 생각해요. 물을 만지고 물을 마셔요. 물을 다루고 물로 씻겨요. 물을 헤아리고 물을 누려요.


  물을 따숩게 덥히며 내 마음을 따숩게 덥힙니다. 아이들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녀온 다음 찬물로 내 몸을 씻으면서 머리를 시원하게 식힙니다. 좋은 마음이 되고 착한 머리가 되며 슬기로운 몸이 되자고 생각합니다. 맑은 눈길이 되고 밝은 눈빛이 되며 고운 눈높이가 되자고 생각합니다.


  씻기 앞서, 두 아이는 또 개구지게 놉니다. 아마, 씻고 나서도 다시금 개구지게 놀겠지요. 말끔히 씻은 다음에도 땀을 낼 테고, 이렇게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흐르며 이 아이들은 무럭무럭 클 테며, 나 또한 아이들 곁에서 사랑이 무엇인가 그리면서 크겠지요. 이 모두를 사랑하는 하루란 밝고 따스합니다. (4345.9.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와 글쓰기

 


  사람들이 집회를 한다. 사람들이 외치는 말을 안 듣기 때문이다. 사람들 말을 들으라고 대통령·국회의원·군수(또는 시장)·군의회 의원 들을 뽑지만, 이들은 막상 어느 ‘모임 우두머리’ 자리에 오르고 나면 사람들 말을 듣지 않는다. 곧, 나라에서는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마련했다고 스스로 민주주의라 외치지만, 스스로 사람들 말을 들으며 곧은 길을 걷지 않기에, 하나도 민주주의가 아니요, 선거제도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선거를 하기 앞서만 얼굴울 겨우 볼 뿐, 선거를 마치기 무섭게 까만 옷 입은 사람들이 까만 차에 태워, 여느 사람들하고는 동떨어진 울타리 높은 곳에서 지내는 ‘모임 우두머리’가 어떻게 정치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옳은 뜻과 바른 꿈과 착한 삶을 돕는 정치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고 느낀다.


  정치를 말하는 글쓰기란 얼마나 아름다울까 헤아려 본다. 정치를 말하는 글쓰기란 정치뿐 아니라 사회와 삶을 얼마나 아름다이 이끌까 헤아려 본다. 스스로 아름다운 삶길을 걸어갈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이야기를 빚는다. 스스로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일 때에 언제나 서로서로 아름답게 나눌 이야기를 쓴다. 정치를 한다고 나서는 사람들과 정치를 말하겠다고 글을 쓰는 사람들부터 스스로 아름답다 싶은 삶터를 일굴 때에 비로소 ‘정치 글쓰기’는 아름답게 읽으며 널리 나눌 만하리라 생각한다. 문학 글쓰기이든, 자연 글쓰기이든, 아이키우기 글쓰기이든, 밥짓기 글쓰기이든, 책방마실 글쓰기이든, 언제나 이와 같다고 느낀다. 나와 네가 함께 아름다운 삶길을 걸어갈 때에 바야흐로 아름다운 글 하나 태어난다. (4345.9.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명운동 어린이

 


  이름 넉 자 곱게 쓸 줄 아는 예쁜 아이 사름벼리는 ‘고흥화력발전소 반대’ 서명운동 종이에 제 이름을 적어 넣는다. 이제부터 너는 네 스스로 네 이름을 적으면서 네가 하고픈 일을 하고, 네가 갈 길을 찾으리라. (4345.9.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짓기

 


  식구들 함께 마실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옆지기는 창문 바깥으로 펼쳐진 구불구불한 논배미를 보고는 ‘참 예쁘다’ 하고 말한다. 나는 멧자락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며 ‘참 좋네’ 하고 말한다. 옆지기 말을 들은 논은 한결 노랗게 무르익으리라. 내 말을 들은 하늘은 한결 눈부시게 빛나리라. 사랑스레 노래하는 말은 사랑스레 일구는 삶이 된다. 곱게 들려주는 말은 곱게 보듬는 꿈이 된다. 사람은 생각으로 말을 짓고, 말을 지으며 삶이 하루하루 새롭게 거듭난다. (4345.9.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희망을 여행하라 - 공정여행 가이드북
이매진피스.임영신.이혜영 지음 / 소나무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구별을 사랑하는 두레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34] 이매진피스 임영신·이혜영, 《희망을 여행하라》

 


- 책이름 : 희망을 여행하라
- 글 : 이매진피스 임영신, 이혜영
- 펴낸곳 : 소나무 (2009.6.10.)
- 책값 : 16000원

 


  “그곳에 머무는 여행자들이 하루에 쓰는 돈은 그곳 사람들 한 달 월급에 달한다고 하건만, 그토록 많은 여행자들이 발리로, 보라카이로, 몰디브로 여행을 떠나건만, 왜 여전히 여행지에서 만나는 현지 사람들은 가난한 것일까? 우리가 여행을 하며 쓰는 그 어마어마한 돈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19쪽)?” 하고 묻는 이야기책 《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2009)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사람들이 여행에서 쓰는 돈 가운데 70∼85%는 외국인 소유 호텔이나 관광 관련 회사로 스며들고, 현지 공동체에는 1∼2%가 콩고물처럼 남는다고 합니다. 관광지를 찾아오는 사람이 늘고 또 늘어도, 관광지 사람들은 살림이 넉넉해지지 못하지만, 여행회사는 자꾸 돈을 벌 뿐 아니라, 새로운 여행사가 수없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나라 안팎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은 돈흐름을 알까요. 스스로 여행을 즐기면 그만일 뿐, 내 주머니에 있던 돈이 어디로 가든 아랑곳할 일이란 없을까요.


  나는 따로 관광이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어딘가를 다닌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나들이나 마실을 다닌다고 여겼고, 나들이길이나 마실길로 좋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관광이나 여행이 아니더라도, 나들이를 나서며 드는 돈 가운데에는 찻삯이 참 많이 들고, 이 다음으로는 잠자리 찾는 값이 퍽 많이 듭니다. 밥을 사다 먹는다든지 다른 무언가를 누리며 쓰는 돈은 매우 적어요.


  한국에서는 제주섬을 관광지로 첫손을 꼽는데, 제주섬을 오가는 손님들은 ‘여행 경비’를 어떻게 쓸까요. 비행기나 배를 타는 삯, 하루나 이틀이나 여러 날 묵는 삯,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을 빌리는 삯, 이런저런 삯이 ‘여행 경비’ 가운데 얼마쯤 차지할까요. 밥을 사다 먹을 적에도 ‘지역 밥집’에서 얼마나 사다 먹을까요. 물 한 병을 살 적에 편의점 아닌 ‘지역 가게’에서 얼마나 사다 마실까요. 기념품이나 선물은 어디에서 살까요. 나라밖 여행 아닌 나라안 여행에서조차 돈흐름은 마을사람한테 들어가는 일이 참 드문 노릇 아닐까 싶어요.


.. “헬리콥터가 착륙하자, 저는 제가 지고 있던 등반객들의 배낭과 제 짐을 헬기에 실었죠. 그러자 헬기를 빌려 우리를 구조하러 온 트레킹 회사 직원이 제 짐은 밖으로 내던졌어요. 제가 왜 그러느냐고 외치자 그가 답하더군요. ‘이 헬기는 너희들을 위한 게 아니야. 관광객들을 위한 거라구. 너희들은 얼음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걸어서 내려가.’ 날씨는 너무 추웠어요. 우리는 눈 속에서 방한복도 없이 며칠을 걸었죠. 3일 후 룰카에 도착했지만 눈에 반사된 강한 빛 때문에 이미 실명한 후였어요.” … 지구상의 아름다운 곳이라면 어디에나 이런 호텔과 리조트가 있고 편안한 휴식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잠자리를, 그들이 먹는 음식을, 그들이 받는 월급을 헤아리지는 않는다. 늘 깨끗한 옷을 입고 환히 웃으며 시중을 들어 주는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 많은 관광객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씻고 마실 물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수영을 하고 샤워를 한다 ..  (39, 49, 169쪽)


  여행이나 관광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 얼거리는 온통 얼기설기 짜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 거둔 곡식을 농협에서 독과점처럼 사들인 다음 팝니다. 정부(농협)는 ‘가을 곡식 사는 값(추곡수매가)’을 물건값 흐름에 맞추어 차츰 높이는 일이 없습니다. 곡식값은 예나 이제나 퍽 눅습니다. 흙을 일구는 이들은 제값을 받은 적이 아직 없다 할 만합니다. 능금, 배, 복숭아, 포도는 어떠할까요. 버섯, 꿀, 인삼은 어떠한가요. 요즈음 들어 정부(농협) 손길을 안 거치고 ‘생산지와 소비자’를 잇는 흐름이 생겼다지만, 예전에는 이런 흐름이 생길 수 없었어요. 땅에서는 농협, 바다에서는 수협, 이렇게 정부 독과점기구는 여느 자리 사람들 먹을거리를 쥐락펴락 흔들었어요.


  그러니까, 여행 정책이나 관광 산업만 몇몇 독과점 기업이나 업체나 정부 주머니를 불리는 일이 아니에요. 여느 삶에서 이루어지는 밥·옷·집 모두 몇몇 독과점 기업이나 업체나 정부 주머니를 불리는 얼거리예요.


  더 살피면, 전기·도시가스·기름(석유)·전화·인터넷·보험·연금 모두 독과점처럼 이루어집니다. 여느 사람들은 정부가 하자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여느 사람들 뜻과는 달리 모든 사회기반시설이 마련됩니다. 고속도로를 왜 자꾸 늘릴까요. 공항을 왜 자꾸 지을까요. 비둘기호를 없애고 고속철도를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시골은 자꾸 작아져야 하고, 왜 도시는 자꾸 커져야 할까요.


.. 하나의 리조트가 생겨날 때마다 몰디브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는 리조트를 건설하는 일용직 노동자, 리조트가 완공된 후에는 객실 청소부, 식당 설거지, 호텔 잡부 같은 단순 노무직이었다. 기술도 필요 없고, 교육도 필요 없느나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 현재 몰디브 인구의 83%는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유엔 인권보고서에 의하면 42%가 하루 1달러 이하로 삶을 견디고 있다 … “네팔은 세계의 자연박물관이에요. 숲과 강, 호수, 유구한 문화유산과 다양한 종족들. 아름답고 풍요로운 문화와 환경을 가진 나라죠. 경제적으로 돈이 없다고 네팔을 가난한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 “우리도 가난해요. 하지만 우리에겐 신이 주신 선물, 두 손이 있어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자연에 있고, 누구나에게 자연은 주어져 있잖아요.” ..  (50, 52, 145, 203쪽)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 또 다른 곳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물입니다. 사람이든 나무이든 짐승이든, 물이 없을 때에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햇볕과 바람이 없어도 살아가지 못하고, 물이 없어도 살아가지 못해요. 곧, 나라(정부)에서는 수도물 정책을 마련합니다. 사람들 누구나 샘에서 긷거나 우물을 파거나 냇물을 뜨면서 살았는데,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수도관을 깔면서 수도물을 마시도록 이끕니다. 어느 누구도 물값을 치르지 않고 물을 마시던 삶이었는데, 이제 모두들 물값을 치르며 살아가요. 물값을 치르지 않고 물을 나누던 때에는 서로서로 물을 아끼고 정갈히 지키려 했으나, 물값을 치르는 오늘날 오히려 물을 함부로 쓰고 마구 더럽히며 수많은 돈벌이에 어지러이 써요.


  더구나, 공장에서는 물을 엄청나게 씁니다. 공장에서는 기계를 식히거나 닦으면서 물을 씁니다. 원자력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는 연로봉을 물로 식혀야 하니까 으레 바닷가에 짓습니다. 바닷물을 더럽히고 어지럽힙니다. 사람들 스스로 마실물 더럽히고 바닷물고기 죽여요. 전기가 모자라니 발전소를 더 짓고 또 지어야 한다지만, 참말 전기가 왜 모자란지 알쏭달쏭해요. 전기는 참말 모자랄까요. 전기가 모자라다면 왜 모자랄까요. 집집마다 자가발전을 해서 전기를 쓸 만할 텐데, 왜 전기를 나라에서 홀로 거머쥐면서 흔들까요. 발전소를 짓느라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고, 송전탑을 잇느라 또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며, 발전소와 송전탑 공해를 메우려고 새삼스레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는데, 이만 한 돈이면 집집마다 자가발전 시설을 거저로 마련하고도 돈이 넉넉하게 남을 뿐 아니라, 환경피해나 환경공해란 하나도 없으리라 느껴요. 왜 아파트를 짓거나 공장을 세우거나 여느 살림집 만들 때에 자가발전 시설을 안 갖출까요.


.. 아름다운 풍광, 이국의 문화유산만이 한국인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다. 여행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남성이 여행지를 찾는 이유는 ‘색다른 재미’ 즉 ‘섹스 관광’에 있다 … 자유여행이라 한들 호텔과 패스트푸드, 혹은 다국적 체인 음식점을 오가며 관광지 중심의 여행과 쇼핑으로 끝난다면 그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네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여행자들이 가는 곳은 정해져 있어요. 그 말은 관광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도 정해져 있다는 뜻이죠.” … 오늘날 수학여행은 교육이 아닌 관광이 되었다. 수학여행 가운데 학생들의 참여 공간은 보장되지 않는다. 학교 당국이 결정한 관광지를 조용히 잘 따라다니면 된다. 학교 교육의 연장이라지만 여행지에 대한 사전교육과 준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자발적 참여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뺏긴 학생들에게 수학여행의 최대 미덕은 ‘학교를 떠난다는 것’, 그것만 남은 것은 아닐까.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기 전에 쇼핑을 하게 되고, 길 위의 사람들과 교감하기 전에 사진찍기에 바쁘다 ..  (59, 118, 129, 362쪽)


  생각은 차츰 새롭게 이어집니다. 먹을거리, 사회기반시설, 물, 전기, 이 다음으로 학교입니다. 학교도 독과점과 같습니다. 학교 교과서는 정부 검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일반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정부 인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정부 인허가를 받은 학교를 나오고, 정부 인허가 있는 대학교를 마쳐야, 비로소 ‘공공기관 일자리’와 ‘회사원 일자리’를 얻어요.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학력차별이 버젓이 있습니다. 솜씨와 재주와 슬기에 따라 사람을 뽑아서 쓰지 않아요. 일을 알뜰히 잘 하는 사람이 일을 하도록 놓아 주지 않아요.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일자리를 주고, 서울 쪽에 있는 이름난 대학 졸업장일 때에 비로소 마음을 놓도록 들볶아요.


  그러면,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요. 학교에서는 참말 사람들이 ‘사회에서 즐겁고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길’을 가르치나요. 학교라는 곳은 즐거움과 아름다움과 사랑이 아니라, 거꾸로 다툼과 싸움과 순위와 실적에 따라 서로를 짓밟고 올라서는 바보짓에 길들도록 내몰지 않는가요.


  누구라도 환하게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오늘날 학교에서는 시험공부만 가르쳐요. 오직 대학입시 하나만 바라보는 시험공부예요. 고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와 초등학교도 이와 같아요. 사람다운 착한 넋을 북돋우는 학교가 없어요. 사람다운 참다운 슬기를 일깨우는 학교가 없어요. 사람다운 고운 사랑을 보살피는 학교가 없어요.


  온통 교칙이요 규칙입니다. 온통 체벌이요 벌칙입니다. 온통 점수요 계급입니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머리 모양과 머리 길이를 맞추면서,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몸짓을 하도록 밀어붙입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아름다움으로 가꾸도록 돕지 않아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은 톱니바퀴가 되어 부속품으로 쓰이게끔 몰아세워요.


.. “처음 필리핀에 가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필리핀 사람들의 여유로움이었어요. 제 눈에는 가난하고 어렵게만 보이는 살림과 환경인데, 다들 눈빛과 행동에 여유가 있는 거예요. 훨씬 잘 사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었죠.” …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리조트의 신고를 받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어부들은 늘 고기를 잡아 오던 마을 앞바다에 나간 것뿐이었지만 그것이 사유지 무단 침입이 되어 버린 탓이다. 어부들이 헐값에 팔았던 집과 땅과 해안은 리조트의 사유지가 되었고, 어부들은 해안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연안의 바다까지 포함하게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 애초부터 개발업자들에게 현지 주민들은 그곳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였다 … 잃어버린 일자리가 농업, 어업, 목축업 같은 전통사회를 이어온 자급과 자립의 뿌리였다면, 관광이 가져다준 일자리는 관광자본에 의존한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함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 “론리 플래닛이요? 그들은 필리핀을 모르죠. 아, 물론 관광지는 필리핀 사람보다 잘 알 수도 있겠죠. 그들은 필리핀의 문화나 사람을 경험하는 여행이 아니라 필리핀을 구경하며 그저 먹고 마시고 버리고 떠나는 여행을 하는 가이드하니까요.” ..  (82, 103∼107, 198∼199쪽)


  그런데, 사람들을 이토록 길들이고 틀에 박히게끔 몰아세우면서도, 정부 권력은 마음을 놓지 못해요. 먹을거리와 전기뿐 아니라 학교까지 틀에 박히도록 길들이면서, 이런 것으로는 모자라다고 여겨 군대를 만듭니다. 언제나 전쟁 기운이 감돌도록 합니다. 서로 이웃이 되어 돌보게끔 하지 않습니다. 서로 노려보거나 윽박지르도록 몰아붙입니다. 낫과 호미가 아닌 총과 칼을 들게 합니다. 전쟁영화를 만들고 전쟁만화를 그립니다.


  ‘미래 사회’도 ‘과거 사회’도 온통 전쟁투성이인 양 그립니다. 지나온 옛사람 발자국을 이야기한다는 역사조차 ‘권력자 정치 다툼을 보여주는 전쟁’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밝은 앞날마저 ‘거대 강대국이 핵전쟁을 한다느니 무얼 한다느니’ 하면서 전쟁을 두려워 하도록 두려움을 이끌어 냅니다.


  어린 사내들을 군대로 불러들여서 가부장 권력 사회가 오래오래 단단히 이어지게끔 밑바탕을 다집니다. 어린 사내들은 군대로 끌려가서 총질과 칼질과 주먹질과 욕질을 배웁니다. 어린 사내들은 군대에서 익힌 총질·칼질·주먹질·욕질을 ‘사회로 돌아와’ 저보다 여린 후배나 이웃한테 폭력을 휘두릅니다. 사랑스러운 가시내를 만나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면, 옆지기와 아이한테 주먹다짐 욕부림 따위를 휘두릅니다.


  회사에서 위계질서를 만듭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계급으로 바라봅니다. 군대에서 ‘충성!’ 하고 외치듯, 사내들 스스로 만든 위계질서에 따라 스스로 충성을 받거나 충성을 합니다.


.. “이스라엘에게 땅과 나라가 생긴다는 것만 생각했지, 거기 아랍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과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질 못한 거죠. 그들의 문화와 종교에 대해 배우려 하지도 존중하는 마음도 없었던 거예요. 믿었던 건 무기와 돈뿐이죠.” … 티베트의 상징, 포탈라를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은 이들은 포탈라와 더불어 휘날리는 중국의 오성홍기를 함께 담아야 했다. 포탈라는 중국의 것이고, 중국은 오성홍기 없이 포탈라를 바라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토록 지적 소유권에 민감한 유럽에서 우리 돈 4만 원에 팔고 있는 시리아 고대 유물 미니어처. 옆에는 이집트 석관의 모형도 보인다. 유럽의 박물관들은 이 유물들의 소유권을 넘어 저작권까지 가질 권리가 있을까? … “돈을 벌 수 없어도 우리가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우리는 예술가라는 것을,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보전해 나가는 것 자체가 진보하는 삶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배우고 있는 거죠.” ..  (220, 254, 294, 320쪽)


  정부 권력은 전쟁과 군대까지 만들었으면, 이제 사람들을 손쉽게 부릴 만할 텐데, 여기에서도 마음을 놓지 않아요. 정부 권력은 ‘새마을운동’을 만들어요. ‘경제개발 몇 개년 계획’을 만들어요. 또,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만들어요. 새로운 방송국을 만들고, 새로운 스포츠 쇼를 만듭니다. 새로운 토목공사를 벌입니다. 새로운 울타리를 끝없이 만들어요.


  이 덫에 안 걸리면 저 덫에 걸리도록 합니다. 저 덫에 안 걸려도 또 다른 곳에서 덫에 걸리도록 자꾸자꾸 울타리를 세워요.


  사람들한테 여행이나 관광이란 무엇일까요. 서울 여행이나 부산 여행은 어떻게 남다른 여행이 될까요. 남원 관광이나 통영 관광은 얼마나 새로운 관광이 될까요. 홍천 여행이나 옥천 여행은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이 될는지요. 안산 관광이나 포항 관광은 즐거운 관광으로 마무리지을 만한가요.


  온 나라가 ‘서울처럼 되기’로 흐릅니다. 온 나라가 서울처럼 되기로 흐르면서, 모든 돈과 사람과 문화와 정치 따위가 서울로 쏠리도록 합니다. 지구별 테두리에서 보자면, ‘서울처럼 되기’와 맞물려 ‘미국처럼 되기’가 나타납니다. 미국에서 대통령을 누구로 뽑든 말든 무엇이 대수일까요. 한국에서 대통령이 누가 되든 말든 무엇이 대단할까요.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지구별과 한 나라가 달라지지 않아요. 나 한 사람으로 지구별과 한 나라를 바꾸어요. 아름답게 살아갈 꿈을 키우며 내 삶을 나 스스로 일구어요. 곱게 사랑할 빛을 쓰다듬으며 내 하루를 나 스스로 누려요.


  뭔가 그럴싸한 구경거리를 본다거나, 뭔가 짜릿한 놀이를 한다거나, 뭔가 화끈한 먹을거리를 먹는다거나, 뭔가 엄청난 선물을 산다고 해서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여행이든 관광이든, 나들이가 되든 마실이 되든, 서로서로 즐겁게 동무할 사람을 사귀는 삶입니다. 다 함께 어깨동무할 이웃을 마주하는 나날입니다. 내 아름다운 보금자리처럼 내 둘레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느껴, ‘샘물이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깨끗하’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곧 여행이요 나들이입니다. ‘하늘이 이곳에서도 파랗고 저곳에서도 파랗’도록 마음을 쓰는 일이 곧 관광이며 마실입니다.


.. 많은 인재들이 인류애를 위해 국자세회의 빈곤과 난민, 건강 등의 문제를 위해 일하려고 준비 중인데, 왜 한국 내에서는 정작 일꾼을 찾기 어려운 것일까? 그렇게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글로벌 인재론, 유엔과 국제기구 열풍의 허상 … “나이트 스쿨에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진짜 가르치고 싶은 건, 자기 목소리를 찾고,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가는 법이에요. 성공을 위해 마을과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지식인이 아니라 자기가 선 자리에서 새로운 힘을 깨달아 삶을, 세상을 바꾸어 가는 새로운 아이들이 커 나가고 있는 거예요 … 공정여행은 우리가 여행하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의 삶과 사회를 존중하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소통하는 여행이며, 환경을 파괴하거나 다른 이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소극적 책임을 넘어 그곳의 현실과 아픔에 귀기울이고 마음으로 함께하는 적극적인 여행, 우리의 움직임을 통해 일어나는 소비가 지역 사회에 스며들어 그 사회를 일으키고 사람들의 삶에 토양이 되는 정직하고 올곧은 여행의 여정을 뜻하는 것이다 ..  (369, 408, 445쪽)


  《희망을 여행하라》는 “당신은 떠나고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니까요(195쪽).” 하고 말합니다. 당신은 떠나고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이는 바로 굴레이고 사슬입니다. 꿈이 아니라 미움입니다. 사랑이 아니라 괴롭힘입니다.


  ‘당신은 내 동무이고, 서로 함께 살아가는 지구별 이웃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당신은 나와 한몸이고 한마음이요 한목숨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참말, 서로 하나라고 느낄 때에 마음이 움직여요. 꽃과 내가 하나라고 느낄 때에 비로소 아름다움을 느껴요. 쌀알과 내가 하나라고 느낄 때에 배가 부르고, 물과 내가 하나라고 느낄 때에 싱그러이 웃어요.


  《희망을 여행하라》는 ‘여행하는 기쁨’을 따로 말하지 않아요. ‘이웃을 만나는 기쁨’을 말하고, ‘동무를 사귀는 기쁨’을 말해요. ‘내 마을을 아끼는 어깨동무’와 ‘지구별을 사랑하는 두레’를 말해요. (4345.9.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