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지 첫째 책읽기

 


  혼자서 마음껏 옷을 벗고 입을 수 있는 첫째는 제 눈에 어여뻐 보이는 옷을 골라서 입곤 한다. 빨래하는 차례에 따라 다른 옷을 입히려 해도, 굳이 차례를 벗어나 입으려 하는 옷이 있다. 그럴 수 있겠지. 꽃무늬 새겨진 바지는 아이가 옷집에서 스스로 골라 장만한 옷이니, 다른 옷보다 꽃무늬 바지를 즐겨입고 싶어 할 만하다. 먼먼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빈집에 닿은 책꾸러미를 끌러 첫째한테 그림책 하나 내미니, 꽃무늬 무늬가 드러나도록 쪼그려앉아서 펼쳐 스스로 이야기를 꾸며 읽는다. 너도 바지도 그림책도, 또 머리에 꽂기까지 한 꽃모양 집게도 하나같이 예쁘구나. 4345.1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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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둘째 발가락 책읽기

 


  큰아이는 아직 작다. 작은아이는 큰아이보다 더 작다. 큰아이도 작은아이처럼 자그마한 발가락으로 씩씩하게 뛰고 걸으면서 하루를 개구지게 누렸다. 작은아이는 이 작은 발가락으로 튼튼하게 달리고 거닐면서 하루를 신나게 누린다. 나도 옆지기도 자그마한 발가락으로 태어나 작은 발가락으로 이 땅을 밟았고, 이제 아이들보다 커다란 발가락 되어 새삼스레 어버이로 살아간다. 두 아이를 무릎에 앉혀 그림책을 읽히다가 작은아이는 어머니 품으로 옮겨 잠들고, 큰아이는 스스로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놀이를 즐긴다. 4345.1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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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공주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25
안너마리 반 해링언 글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22

 


아이들 예쁜 마음을 읽어요
― 긴 머리 공주
 안너마리 반 해링언 글·그림,이명희 옮김
 마루벌 펴냄,2001.4.6./9000원

 


  네덜란드사람 안너마리 반 해링언 님이 빚은 아름다운 그림책 《긴 머리 공주》(마루벌,2001)를 아이와 즐겁게 읽고 나서 간기를 훑다가 깜짝 놀랍니다. 그림책 간기에 “내용 요약 :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 공주, 긴 머리로 나라가 부자가 되자 궁전을 나와 서커스의 긴 머리 공주가 된다. 주제 분류 : 1.성장 2.자아실현”이라는 글월이 적히거든요. 아니, 이런 대목을 출판사에서 간기에 밝혀 ‘아이들 어버이’한테 미리 읽혀야 하나요? 아이들 어버이는 이 그림책이 이런 줄거리이니, 이런 줄거리에 맞추어 아이들한테 읽혀 ‘가르침(교훈)’을 심어야 하나요?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그림책을 선물하는 일은 그야말로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책을 선물하니까 ‘아름답’습니다. 즐거운 그림책을 선물한다면 ‘즐겁’겠지요. 사랑스러운 그림책을 선물한다면 ‘사랑스럽’습니다. 곧, 아이들한테 교훈 어린 그림책을 선물할 적에는 ‘교훈을 나눌’ 수 있어요.


  자, 그러면, 생각해 봅니다. 그림책 《긴 머리 공주》는 아이들한테 무언가 ‘가르쳐야’ 하기에 읽힐 그림책이라 할 만한가요.

 

 


.. 어느 작고 가난한 나라에 공주가 태어났어요. 공주를 본 왕은 싱글벙글 싱글벙글. “정말 예쁜 공주야! 정말 예쁜 머리야!” ..  (2쪽)


  그림책 《긴 머리 공주》는 자그마한 나라 자그마한 임금님과 공주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림책을 그린 네덜란드사람은 네덜란드라 하는 자그마한 나라에서 살아가기에 자그마한 이야기를 그릴 수 있었을까 궁금한데, 한국은 네덜란드 못지않게 자그마한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책 이야기는 우리 나라하고 빗대어 읽을 수 있어요.


  자그마한 나라 임금님은 딸아이를 낳고는 ‘예쁘다’고 느끼지만, 딸아이 마음결이나 눈빛이나 생각을 읽으며 예쁘다고 느끼지 않아요. 딸아이 ‘머리카락이 예쁘다’고 느껴요.


  참 어리석지요. 참 엉뚱하지요. 참 뚱딴지라 할밖에 없고, 참 미련하다 할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어른들을 돌아보면 이와 엇비슷해요. 아이들을 바라보며 ‘무슨 영재’라느니 ‘무슨 천재’라느니 하면서, 일찍부터 무언가 가르쳐서 무언가 잘 해내도록 길들여요.


  아이들을 수학 영재나 영어 천재로 만들려는 어른들이에요. 아이들을 골프 영재나 수영 천재로 만들려는 어른들이에요. 아이들이 삶을 즐기고, 구슬치기를 누리도록 이끌지 않아요. 아이들이 들판을 즐기고, 하늘을 누리도록 지켜보지 않아요. 아이들이 사랑을 즐기고, 꿈을 누리도록 돕지 않아요.

  아이들은 얼굴이나 머리카락이 예쁘장하게 보인대서 예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맑게 웃고 밝게 노래하며 신나게 뛰놀기에 예쁩니다. 아이들은 혼자서 책을 잘 읽거나 글쓰기를 잘 해내거나 시험성적이 높게 나온대서 예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동무를 아끼고 이웃하고 어깨동무할 뿐 아니라 살붙이를 따사로이 얼싸안을 줄 알기에 예쁩니다.


.. 공주의 머리는 감고 나면 늘 잔뜩 엉켰어요. 어느 날 공주는 빗을 집어던지며 소리질렀어요. “밖에 나가 놀 거야. 그네도 타고 뛰어놀 거야.” 하인들은 겁이 나 모두 숨어 버렸어요 ..  (10쪽)

 

 


  아이들 예쁜 마음을 읽어 주셔요. 무엇보다 어른인 우리 스스로 내 마음속에 깃든 예쁜 꿈과 사랑을 읽어 주셔요. 내 마음속에서 샘솟을 예쁜 꿈을 보살펴 주셔요. 아이들 마음속에서 자라나려는 고운 사랑을 돌보아 주셔요.


  두 어버이가 회사일로 바쁘다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겨야겠지요. 그런데, 아무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겨서는 안 돼요. 하염없이 텔레비전이나 만화영화만 보여주는 곳은 아이들 마음이나 생각이 죽는 데예요. 숲에서 동무들과 사이좋게 놀도록 이끌지 못한다면, 보육원이나 어린이집 구실을 못하는 데예요.


  아이들한테 영어 노래를 들려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사랑스레 즐기며 부를’ 노래가 아니라, 영어를 일찌감치 가르치려 하는 영어 노래라 한다면, 아이들한테 왜 노래를 들려주려 하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지요. 아이들은 마음으로 우러나와 노래를 불러야 예뻐요. 아이들과 마주하는 어른 또한 마음으로 우러나와 노래가 샘솟아야지 예뻐요.


  이냥저냥 부르는 노래에는 꿈도 사랑도 없어요. 맑은 목소리로 밝은 이야기를 실어 불러야 비로소 노래가 돼요. 어른인 나 스스로 예쁘게 아끼면서 부를 노래요, 어른인 나부터 스스로 곱게 돌보면서 부를 노래예요. 아이들한테 물려줄 한 가지는 오직 사랑인 만큼, 스스로 사랑스레 살아가는 하루를 누리면서, 아이들 또한 사랑스레 살아가는 하루를 누리도록 손을 맞잡아 주셔요.


.. 공주는 산처럼 쌓인 반짝이는 빗들을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공주의 머리는 길수록 좋다’고 한 왕의 말을 알게 되었어요. 공주는 왕과 왕자들과 서커스 남자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만 하면 우리 나라는 부자가 되었어.’ ..  (19쪽)

 


  그림책 《긴 머리 공주》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시금 돌아봅니다. 자그마한 나라 임금님은 ‘딸아이 예쁜 머리카락’을 내세워 ‘가난한 나라에 돈이 가득하기’를 꾀합니다. 딸아이는 저희 아버지(임금)가 왜 머리카락을 못 자르게 하면서 저를 힘들게 하는지 영 모르다가는, 어느덧 푸름이를 지나 ‘스스로 설 수 있는 나이(성년)’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하, 내 아버지(임금)라는 사람은 나(내 마음)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돈(내 머리카락)을 보는 사람이었구나.’


  이제 아버지(임금)라는 울타리 없어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아이는 조용히 집(궁궐)을 떠납니다. 스스로 삶을 일구면서 누리고 싶기에 집을 떠납니다. 아니, 거짓스러운 울타리 아닌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찾아, ‘참다운 집’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아이는 ‘긴 머리 공주’로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는 ‘훨훨 날아다니는 홀가분한 넋’이 되고 싶습니다. 굴레에 갇힌 인형이 아니라,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뛰놀며 스스로 꿈꾸고 스스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숨결이 되고 싶어요.


.. 서커스 남자가 공주의 머리를 잘라 주었어요. 공주는 이제 혼자서 가방 없이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서커스의 긴 머리 공주가 되어 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녔어요 ..  (24쪽)


  우리 한국땅 어버이들이 슬기롭게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을 학원만큼은 안 보내기를 빌어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보금자리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보금자리 곁에 숲이랑 바다랑 멧골이 있어,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언제나 풀밭과 숲과 바다와 멧골을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자가용을 타고 멀리멀리 나가야 만나는 숲이 아니라, 집 곁에서 천천히 두 다리로 걸어가서 숲을 만날 수 있기를 빌어요. 그림책이나 다큐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들여다보는 바다나 멧골이 아니라, 집에서 사뿐사뿐 걸어나와 언제라도 누릴 수 있는 바다와 멧골을 곁에 둘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가 살아갈 보금자리 곁에는 아파트나 관공서나 온갖 가게나 골프장이나 고속도로나 공장이 있을 까닭이 없어요. 우리가 살아갈 보금자리란, 생각을 열고 마음을 가꿀 고운 숲이에요. 우리가 다닐 배움터란, 대학입시를 잘 치르도록 내모는 싸움터가 아니에요. 우리 배움터는 꿈을 북돋우고 사랑을 살찌우는 삶터예요.


  아이들 마음을 아껴 주셔요. 아이들 마음을 읽어 주셔요. 어른인 내 마음을 따사로이 어루만져 주셔요. 어른인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셔요. 4345.1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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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3) 보통의 1 : 보통의 생활

 

사회의 평화와 안전은 정치적인 움직임보다도 오히려 우리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생활 가운데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바 치나츠/이상술 옮김-평화를 심다》(알마,2009) 203쪽

 

  “사회의 평화와 안전은”은 “사회 평화와 안전”이라고 다듬을 수 있고,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회는”처럼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평화(平和)’와 ‘안전(安全)’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헤아린다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이라든지 “즐겁고 밝은”이라든지 “너그럽고 따사로운”처럼 새롭게 생각을 열도록 이끄는 말마디를 넣을 만해요. “정치적(-的)인 움직임보다도”는 “정치로 하는 움직임보다도”나 “정치 움직임보다도”나 “정치보다도”나 “정치로 움직이기보다도”로 손볼 수 있고, “우리 보통(普通) 사람들”은 “우리 여느 사람들”이나 “우리 같은 여느 사람들”이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나 “우리처럼 수수한 사람들”로 손봅니다. “생활(生活) 가운데”는 “살아가면서”나 “살아가며”로 손질하고, ‘행동(行動)하는’은 ‘움직이는’으로 손질하며, “이루어지는 것이다”는 “이루어집니다”나 “이루어진다”로 손질합니다.

 

 보통의 생활 가운데 생각하고
→ 여느 삶을 누리며 생각하고
→ 수수하게 살아가며 생각하고
→ 조그맣게 살림을 꾸리며 생각하고
→ 즐겁게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

 

  한자말 ‘보통(普通)’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함”을 뜻합니다. ‘특별(特別)’은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을 뜻하는 한자말이요, ‘평범(平凡)’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를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보통’도 ‘특별’도 ‘평범’도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서로 돌림풀이를 하거든요. 게다가, 이런 한자말 풀이이나 저런 한자말 풀이도, 먼먼 옛날 한자가 한국 사회에 깃들지 않던 때 이 겨레가 어떤 낱말로 생각을 주고받았는가 하는 조그마한 귀띔도 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곰곰이 생각합니다. 먼먼 옛날 ‘여느’ 사람들은 어떤 낱말로 생각을 주고받았을까요.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 ‘수수한’ 사람들은 어떤 말마디로 마음을 나누었을까요.


  보기글을 살피면 “보통의 생활 가운데”라 나옵니다. 토씨 ‘-의’를 애꿎게 붙이기도 하지만, ‘가운데’를 잘못 넣습니다. ‘가운데’라는 낱말은 한국말이에요. 한자말도 영어도 아니에요. 그러나 이 대목에 ‘가운데’를 넣을 수 없어요. 잘못 쓰는 번역 말투이거든요. 한국말에는 현재진행형이 없을 뿐더러, 일본사람이 현재진행형을 일본사람 나름대로 옮겨서 쓰는 ‘中’이라는 말투를 한국말로 어설피 옮길 적에 자꾸 ‘가운데’라는 말마디가 튀어나옵니다. 어느 번역가는 그냥 ‘중’이라고 적어 무늬만 한글처럼 옮기기도 해요. 그러니까 “보통의 생활 중에 생각하고”처럼 일본글을 한국글로 옮기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들은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자그마한’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조그맣거나 작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크든 작든, 누구나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이름값이 높거나 낮거나, 누구라도 고운 넋입니다.


  우리들이 쓰는 말은 더 거룩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수수한 말이 널리 쓰는 말이요, 여느 말이 쉬운 말입니다. 남다르지 않은 말로 내 생각을 펼칩니다. 톡톡 튀지 않는다지만 얼마든지 내 마음을 드러냅니다.


  한 번 더 살피고, 다시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물빛은 어떤 빛이라 할 수 있나요. 해맑고 환한 물빛은 남다르다 할 빛깔일까요. 어디에서나 흐느는 물은, 골짜기 물은, 바다를 이루는 물은 어떤 빛깔일까요. 어디에서나 보는 파란 하늘은, 푸른 들판은, 저마다 어떤 빛깔일까요.


  가장 수수하다 싶은 말이 가장 즐겁거나 맑은 말이라고 느낍니다. 여느 자리 여느 사람 입에서 흔히 흐르는 말이 가장 어여쁘거나 밝은 말이라고 느낍니다. 4345.1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회는 정치보다도 오히려 우리처럼 수수한 사람들이 여느 삶을 즐겁게 누리며 생각하고 움직일 때에 이루어집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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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심다 - 용기와 신념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8가지 이야기
바바 치나츠 지음, 이상술 옮김 / 알마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평화와 민주주의가 없는 나라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6] 바바 치나츠, 《평화를 심다》(알마,2009)

 


- 책이름 : 평화를 심다
- 글 : 바바 치나츠
- 옮긴이 : 이상술
- 펴낸곳 : 알마 (2009.11.9.)
- 책값 : 9500원

 


  고흥군청 민원실에 들러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국가보안법 바로알기 10문 10답》이라 적힌 노란 빛깔 도톰한 책자를 봅니다. 어디에서 누가 만들었는지 간기가 없는 알쏭달쏭한 유인물이라 할 텐데, 군청 민원실 책꽂이에 버젓이 놓입니다. 국가정보원에서 만들었는지, 군청에서 만들었는지, 청와대에서 만들었는지, 또는 어느 정당에서 만들었는지 아리송합니다. 이 책자 곁에 나란히 놓인 한 장짜리 ‘귀농·귀촌’ 안내 전단지조차 전라남도 도청에서 만들었다는 간기를 또렷이 밝히는데, 도톰한 《국가보안법 바로알기 10문 10답》은 어디에도 간기를 안 밝혀요.


  2012년 가을, 고흥군의회에서 ‘고흥군 화력발전소 문제’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고흥군에 화력발전소 같은 위험·위해시설을 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창 고흥군이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애쓸 적에 조그마한 면사무소뿐 아니라 읍내 버스역에조차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면 고흥군에 얼마나 이바지를 하느냐’ 하는 이야기만 잔뜩 적힌 전단지가 수북히 있었어요. 이 전단지에도 간기가 없어 누가 왜 어떻게 만들어 이렇게 수북히 쌓았는지 아리송했습니다. 그냥저냥 군청에고 면사무소에고 읍내 버스역에까지, 이 전단지를 잔뜩 쌓아 사람들더러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옳고 그름이나 맞고 틀림을 따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만든 책자와 전단지가 버젓이 놓인다면, 이 곁에는 ‘정체를 알 수 있는’ 곳에서 만든 ‘다른 목소리’가 함께 놓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말밥거리가 되기에 누군가 ‘스스로 제 모습(정체)을 숨긴’ 채 어떤 책자나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겠지요.


.. 2주일 동안의 취재를 마치고 딜리 공항을 출발할 때 내 뒷머리를 잡아당기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일본인인 나는 일이 끝나면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동티모르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탄압에 시달리면서 살아가야 한다. 생명의 소중함은 어디나 다르지 않을 텐데도 ..  (6쪽)


  군청 민원실에 있던 《국가보안법 바로알기 10문 10답》 1부를 챙겨 집으로 가져옵니다. 찬찬히 살핍니다. 대한민국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자면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힘있게 외치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책자를 덮고 생각합니다. 평화란 무엇일까요.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요. 어느 때에 평화라고 말할까요. 어느 때에 민주주의라고 말할까요. 이 나라에 군대가 있어 평화를 누릴까요.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표로 뽑아 민주주의를 누리는 셈일인가.


  고흥군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 한 이들은 공무원과 개발업자입니다. 군청 공무원이든 중앙정부 공무원이든, ‘서울과 큰도시 전기가 모자라다’고 하니까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밝히면서, 정작 서울이나 큰도시에 발전소를 안 짓고, 고흥군처럼 맑고 정갈한 시골에 발전소를 지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서울과 큰도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 이런 도시에 발전소 같은 위험·위해시설을 지으면 ‘많은 사람들 안전이 걱정스럽’다 하거든요. 다음으로 개발업자는 고흥군 같은 시골에 발전소를 지어야 땅을 값싸게 사들여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밝힙니다. 위험·위해시설을 짓기 때문에 ‘보상금’ 같은 돈을 준다 하는데, 보상금을 안기려 하는 시설이라 한다면 얼마나 위험하고 나쁘다는 소리일까요. 참으로 고흥군에 도움이 되며 멋스러운 시설이라면, ‘고흥군에서 돈을 주면서 끌어들일’ 노릇이거든요.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둘러싼 실타래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 나라는 하나도 평화롭지 않습니다. 이 나라 지자체는 조금도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군민한테 제대로 된 정보나 이야기 한 자락조차 들려주지 않고 위험·위해시설을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이 나쁜가 하는 대목을 군청이나 중앙정부나 개발업자 스스로 밝히지 않습니다. 발전소란 어떤 곳이며, 전기를 한꺼번에 어마어마하게 만드느라 어떤 것을 어떻게 불태워 어떤 배기가스와 쓰레기와 열폐수가 나오고, 어떤 것(연료)을 실어나르느라 얼마나 많은 짐배와 짐차가 이곳을 드나들어야 하며, 얼마나 많은 송전탑을 어떤 도시까지 줄줄이 이어야 하는가를 조금도 밝히지 않았어요. 간추리자면, 정보이건 이야기이건 꽉 막힌 채 ‘발전소 지으면 고흥군에 이바지하니까 꼭 해야 한다’는 명령과 지시만 있었어요. 평화도 아니요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그저 전쟁이고 그예 독재입니다.


.. 중립적인 위치에서 원조 활동을 벌이던 NGO와 국제기관이 안전상의 문제로 차례차례 철수 또는 활동을 축소하는 사이, 그 여파로 피해를 입는 것은 가난하고 어려운 생활에 처한 이라크 사람들이다 … “나는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없지만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습니다.” 신부는 말한다. “가톨릭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아이들도 그런 나쁜 말을 듣거나 나쁜 모습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남을 상처가 가장 걱정이었습니다.” ..  (111, 185쪽)


  학교에서 교사는 학생한테 평화나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는 평화와 민주주의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과서는 늘 ‘대학 입시 문제’에 틀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여러 갈래 과목이 있다고 하지만, 중·고등학교 수업은 늘 ‘대학 입시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히도록 하는 쪽으로 흐릅니다. 시험공부를 시키는 교과서이지 삶배움으로 이끄는 교과서가 아니에요. 교과서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다루기는 하지만, 시험문제를 잘 맞히도록 하는 지식을 다룰 뿐, 아이들이 사회에서 평화를 누리거나 민주주의를 빛내는 길을 밝히지 않아요. 평화가 어디에서 오고, 평화를 우리 스스로 어떻게 일구며, 평화는 서로 어떻게 어깨동무할 적에 태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교사부터 스스로 평화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교사는 평화를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입시지도와 진학지도로 바쁘며, 온갖 서류를 꾸려야 하니 바쁩니다. 학생 또한 스스로 평화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대학입시와 상급학교 진학에 온 넋을 쏟아야 하느라 바쁩니다. 영어 낱말 하나를 더 외우느라 바쁩니다. 한국사람이면서 정작 ‘한국말 한 가지’ 옳고 바르게 쓰는 데에는 마음을 두지 못해요. 왜냐하면,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쓰기보다는 영어 낱말 하나를 더 외워야 대학입시와 중간·기말시험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니까요.


  학교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교사도 학생도 스스로 느낍니다. 교사도 학생도, 또 학부모도 여느 사람들도 학교는 ‘입시전쟁터’라고 느낍니다. 대학입시를 치르는 싸움터가 학교라고 여깁니다. 학교로는 모자라 학원을 세워 아이들을 몰아넣습니다. 학원으로 모자라 방과후학교이니 체험학습이니 봉사활동이니 외부인사 초청 특강이니 하면서, 또 나라밖 영어유학이니 하면서 서로 들볶고 스스로 들볶입니다.


  평화롭지 않은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오직 대학입시 한길만 바라볼 뿐이기에, 민주주의가 들어서지 못합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교사와 교사 사이에도, 학생과 학생 사이에도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더 깊이 파고들면, 교사도 학생도 ‘국가보안법’이 무언지 모릅니다. 알 턱이 없고 알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 이야기는 대학입시에 안 나오거든요. 교과서에도 안 실리거든요.


.. 강권 정치를 펴던 밀로셰비치 정권은 독립을 외치는 알바니아계 주민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여 세르비아 치안 부대 등에 의한 비인도적인 인종 청소를 저질렀다. 주민을 추방하고 학살하는 것도 모자라 알바니아인 여성에게 세르비아인 아기를 갖게 하려는 성폭행도 수없이 자행되었다. 문화·교육 면에서도 코소보의 ‘세르비아화’가 진행되어 공립학교에서는 알바니아인 교사가 대량 해고되고 세르비아식 교육이 강제되었으며 알바니아인은 학교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쓰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  (145쪽)


  교과서에는 ‘밥하기·빨래하기·아이돌보기’ 같은 이야기가 안 나옵니다. 대학입시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안 다룹니다. 교과서에는 ‘사랑하기·꿈꾸기·생각하기’ 같은 이야기가 안 나옵니다. 어린이는 푸름이가 되며 차츰 사랑에 눈을 뜨고, 사랑놀이에 마음을 기울이지만, 성교육 한두 시간 어설피 하고 지나갈 뿐, 참사랑을 밝히며 가르치고 배우며 누릴 겨를이 없어요. ‘성교육 지식’이 아니라 ‘삶을 누리는 사랑’을 보지도 듣지도 배우지도 익히지도 누리지도 살지도 못한 아이들은 밥그릇 나이로만 ‘어른’이 되어 모텔방을 드나들 뿐이에요. 서로를 아끼는 사랑을 깨닫지 않아요. 서로를 아끼는 사랑으로 빚는 아름다운 아기를 헤아리지 않아요. 서로를 아끼는 사랑으로 빚는 아름다운 아기를 어떻게 돌보고 가르쳐서 해맑은 넋으로 뛰놀며 자라도록 이끌 때에 즐거운가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날 푸름이나 젊은이들은 아이돌보기와 얽힌 지식조차 모릅니다. 아기를 어떻게 어디에서 낳는가조차 모르며, 밥을 어떻게 짓고, 밥은 어떻게 얻으며, 빨래는 어떻게 하고, 옷은 어떻게 짓거나 깁거나 손질하는가조차 몰라요. 아이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아이들은 대학입시 시험문제만 알아요. 어른들도 아무것도 몰라요. 아이들을 대학입시에 밀어넣는 틀거리만 알 뿐, 아무것도 몰라요.


.. 나는 민간인 희생자들 간의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 간의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살인을 명령하는 사람들 간의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사람을 선과 악으로 나누지 못합니다. 나는 정치가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악마에게 팔아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잘못되고 치우친 정보를 전하는 언론도 믿을 수 없습니다 … 누군가의 욕망이 아닌, 내 인간성이 바라는 것만을 따를 것입니다 … 스스로 평온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지낼 수 없습니다. 나라안이 평화롭지 않은 나라는 다른 나라와 평화롭게 지낼 수 없습니다 ..  (19∼21쪽)


  삶이 삶답지 못한 곳에는 평화가 싹트지 못합니다. 삶이 삶답지 못해 평화가 싹트지 못하는데, 평화가 자랄 일이란 없습니다.


  사랑이 사랑답지 못한 곳에는 민주주의가 싹트지 못합니다. 사랑이 사랑답지 못해 민주주의가 싹트지 못하는데, 민주주의가 자랄 일이란 없습니다.


  대통령을 뽑는 한 표 권리를 쓸 수 있기에 평화나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군수와 국회의원이나 기초의원을 내 한 표로 뽑을 수 있대서 평화나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삶을 삶답게 누릴 때에 평화입니다. 사랑을 사랑답게 나눌 때에 민주주의입니다. 삶을 누리지 못하면서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랑을 나누지 못하면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 평화를 만드는 것은 정치가나 국제기관의 수장 같은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만 하는 일이 아니다. 사회의 평화와 안전은 정치적인 움직임보다도 오히려 우리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생활 가운데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203쪽)


  일본사람 바바 치나츠 님이 쓴 《평화를 심다》(알마,2009)라 하는 인문책을 읽습니다. 일본사람 바바 치나츠 님은 ‘지구별 분쟁 지역’을 두루 돌아다닙니다. 왜 안타까운 싸움이 생기고, 왜 슬픈 피죽음이 일어나며, 왜 쓸쓸한 미움이 커지는가를 살핍니다.


  참말 왜 평화와 민주주의 아닌 싸움과 독재가 이리도 판칠까요. 지구별 어느 나라이든 전쟁무기가 그토록 많은데, 아니 지구별 어느 나라이든 군대가 그토록 크고 많은데, 왜 어느 나라에서도 평화는 찾아들지 못할까요. 지구별 어느 나라도 대통령이든 누구이든 한 표 권리로 뽑는다는데, 왜 민주주의는 싹트지 못할까요.


  평화는 어디에 있을까요.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나요. 평화를 부르는 사람은 어디에 있나요. 민주주의를 일구는 사람은 어디에 있나요. 평화란 무엇이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요. 자유와 평등과 통일과 자주란 무엇일까요.


  양복을 입어야 점잖은 차림새일까요. 자가용을 몰아야 느긋한 살림일까요. 아파트에서 살아야 아늑한 보금자리일까요. 대학교를 마쳐야 사람 구실을 할까요. 은행계좌에 돈이 넘쳐야 넉넉한 하루일까요.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 맡겨야 복지일까요.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밤하늘에 뭇별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겨울바람 스산하게 불며 후박나무 잎사귀를 건드립니다. 마을 들고양이가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쏘다닙니다. 마늘잎은 함박눈을 머금으며 한결 씩씩하고 푸른 빛깔을 뽐냅니다. 갈대와 억새와 부들은 짙누렇게 물듭니다. 이웃마을에서 닭이 울고, 먼 멧자락에서 멧새가 노래합니다. 4345.1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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