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4) -의 : 네 분의 선생님

 

같이 동참해 주신 네 분의 선생님께도 감사하자
《이상봉-안녕, 하세요!》(공간 루,2011) 157쪽

 

  한자말 ‘동참(同參)’은 “어떤 모임이나 일에 같이 참가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참가(參加)’는 “모임이나 단체 또는 일에 관계하여 들어감”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같이 동참해 주신”은 겹말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같이해 주신”이나 “같이 애써 주신”이나 “같이 있어 주신”처럼 손질해 줍니다.


  ‘감사(感謝)’는 “(1)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2) 고맙게 여김”을 뜻합니다. 한국말은 ‘고마움’입니다. “감사하자”는 “고마워 하자”나 “고맙게 여기자”나 “고맙게 인사하자”로 손봅니다.

 

 네 분의 선생님께도
→ 네 분 선생님께도
→ 네 선생님한테도
→ 선생님 네 분한테도
→ 선생님들한테도
 …

 

  “네 권의 책”이 아닌 “책 네 권”입니다. 한국 말투로는 “선생님 네 분”이에요. “네 분”이라는 말마디를 앞에 놓고 싶다면 “네 분 선생님”이나 “네 선생님”이라 적으면 돼요. 말차례와 말투와 말결을 알뜰살뜰 돌아보며 슬기롭게 말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2.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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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해 주신 네 선생님한테도 고맙다 말하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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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찬물빨래 돌아오다 (대통령 뽑기 생각)

 


  겨울 찬물빨래가 돌아온다. 십이월 첫머리만 하더라도 찬물에 손을 담글 때에 ‘시리다’고까지 안 느꼈으나, 십이월 한복판으로 접어들어 새 추위가 찾아오니, 이제 찬물에 손을 담그며 살짝 ‘시리다’고 느낀다. 그러나, 새벽부터 밤까지,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씻기고 무얼 하고 걸레 빨고 하면서 손에 물기 마를 새 없기는 늘 마찬가지이다. 바야흐로 손 트고 발 트는 철이 돌아왔구나 싶다.


  겨울 찬물빨래는 여름 찬물빨래보다 훨씬 바쁘고 빠듯하다. 겨울에는 물을 끓여서 빨래를 해야 하기도 하지만, 이보다 해가 어느 만큼 떴고, 바깥바람이 얼마나 포근한가를 살핀다. 바깥바람이 꽁꽁 얼어붙으면 해가 났다 하더라도 내다 널거나 말거나 부질없다. 바깥바람이 차면 빨래가 얼어붙으니 방에 널 때보다 못하다. 바깥바람을 살피며 ‘빨래가 안 얼 만하구나’ 싶으면 바지런히 빨래를 해서 내다 넌다. 으레 저녁나절 잠자리 들기 앞서 빨래를 해서 방에다 넌다. 밤에 아이들 밤오줌 누이려고 잠에서 깼을 때 조금 더 한다.


  새 대통령 뽑는다는 날이 밝는다. 나랑 알고 지내는 이웃 가운데 1번 후보가 훌륭하니 이녁을 뽑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분은 꼭 한 사람 있다. 내 어버이는 아마 1번 후보를 찍으실 듯한데, 이번 선거에서는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말씀이 없다. 내 어버이는 지난번 대통령 뽑을 적에는 아주 마땅히 1번 아니고는 될 수 없다고 말씀했고, 지지난번 대통령 뽑을 적에는 나한테 ‘여행경비’를 줄 테니 대통령 뽑는 그날에 맞추어 외국여행 다녀오라고 말씀했다.


  시골마을 택시 일꾼은 2번 후보를 뽑아야 시골도 나아지고 남북교류도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옆지기 명상모임 이웃들도 2번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2002년까지는 2번 후보한테 내 표를 주었다. 1997년 겨울, 군대에서 전역을 앞두고 대통령 뽑기를 할 적에는 중대장과 행정보급관 눈치를 보며 목숨을 걸고 2번 후보한테 내 표를 주었다. 이때 ‘설마 전역이 코앞인 나를 어떻게 해코지하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마지막휴가를 나온 군대 바깥에서 정권이 바뀐 모습을 보았고,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군부대는 생각 밖으로 조용했으나, 눈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서 대대장이 나와 동기들더러 ‘눈 때문에 길이 나쁘니 며칠 쉬다(?) 전역하라’ 했는데, 이 말이 더 무서워 눈밭에서 얼어죽더라도 맨발로 전역하겠다고 외치며 깊은 멧골에서 몇 시간 걸려 허우적허우적 뛰쳐나온 일이 새삼스럽다.


  겨울날 찬물빨래가 돌아오면서 여러 생각이 겹친다. 빨래를 할 적에는 다른 생각을 잊는다. 내 마음을 무척 차분히 다스릴 수 있다. 나는 올 2012년 대통령 뽑기에서 누구한테 내 표를 줄까 생각한다. 나는 2002년이 지나고서 한 표 권리를 쓸 적에 5번이나 7번 후보한테 내 표를 주었다. 올해에도 5번 후보한테 내 표를 줄 생각이다. 5번 후보를 기리거나 떠올리는 이웃은 아직 내 곁에 한 사람뿐이지만, 아줌마 대통령이고 노동자 대통령이고를 떠나, 가장 믿음직하며 씩씩한 ‘심부름꾼’ 노릇을 할 사람은 이녁 하나 아닌가 생각한다.


  내 둘레 사람들이 하나같이 ‘2번 후보한테 표를 주지 않으면 투표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들려준다. 나는 곰곰이 듣다가 묻는다.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 맞나요? 나는 내가 믿을 만하며, 심부름 잘 하겠구나 싶은 사람한테 표를 주겠어요.’ 이런 말을 듣는 분들은 ‘그래도, 될 사람과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으니, 되어야 할 사람한테 표를 주어야지요.’ 하고 말한다. 그래, 나는 찬찬히 듣다가 ‘나는 5번 후보가 될 만하다고 여겨 5번 후보한테 표를 주어요.’ 하고 말한다. 더 하고픈 말이 있으나, 더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리라 느껴 입을 다문다.


  내 책읽기를 돌아보면 내 삶읽기하고 같다. 나는 아무 책이나 읽지 않는다. 나는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읽지 않는다. 이른바 ‘한 해 마무리’라 하면서 ‘올 한 해 사랑받은 책 투표’ 같은 무언가 한다 할 적에도, 나는 어느 책에도 내 표를 주지 않는다. 내가 올 한 해 사랑한 책이 ‘한 해 마무리’하는 자리에 끼는 적이 아직 없으니까.


  내 마음을 움직일 만한 책이어야 내가 기꺼이 장만해서 읽는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내놓은 ‘이럭저럭 읽을 만한 책’이라서 읽지 않는다. 백 해 천 해 두고두고 즐길 만하다 싶을 때에 즐거이 장만해서 읽는다.


  나는 내 온 사랑을 실어 빨래를 하고 밥을 지으며 비질을 한다. 이맛살 찡그리면서 밥·빨래·청소를 할 수 없다.


  나로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리 아랑곳할 일이 없다. 1번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2번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또 5번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이 대목을 내 이웃들한테 들려주고 싶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 삶은 달라지지 않아요. 누가 대통령이 된대서 우리 삶이 나빠지지 않아요. 누가 대통령이 되니까 우리 삶이 좋아지지 않아요.


  내 삶은 나 스스로 좋게 가꾸려고 힘쓸 때에 좋아져요. 내 삶은 나 스스로 손을 놓거나 마음을 놓을 때에 나빠져요. 독재자가 대통령이 된대서 나빠지는 내 삶은 아니에요. 제국주의자가 우리 나라를 총칼로 쳐들어온대서 나빠지는 내 삶은 아니에요. 내 삶은 내가 일굴 뿐이에요. 내 삶은 ‘공무원 삶’도 ‘회사원 삶’도 아니에요. 내 이웃인 당신이 공무원이거나 회사원이라 하더라도 다를 구석 없어요. 당신이 살아가는 밑바탕은 ‘사람’이지, 어떤 신분이나 계급이나 직위가 아니에요.


  가슴속을 들여다보셔요. 당신 가슴속에서 어떤 빛이 밝게 비추는가를 들여다보셔요.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시장이든 군수이든 구청장이든 면장이든, 어느 누구한테도 기대지 마셔요. 내 삶은 내가 빚어서 내가 누려요. 아이들을 낳아 보살핀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저희끼리 아이들 삶을 빚어서 누려요. 어버이가 만들어서 나누어 주는 삶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빚는 삶이에요. 내 어버이가 나를 낳기는 하지만, 내 삶을 만들어 줄 수 없어요. 나는 내 어버이 뜻이 아닌 내 뜻에 따라 내 삶을 빚는걸요.


  대통령 뽑는 자리에 다녀올 당신이 신문을 내려놓고 방송은 끄고 인터넷은 좀 닫을 수 있기를 빌어요. 삶을 돌아보아 주셔요. 이런저런 새소식 챙긴다면서 스스로 ‘마음읽기’하고 멀어지지 마셔요. 자, 나랑 같이 손빨래를 해요. 빨래기계 하루쯤 쉬라 하고, 다른 일 모두 잊으며 홀가분하게 ‘우리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요. 나 스스로 어떻게 일굴 때에 아름다울 내 삶인가를 생각해요. 내가 빚을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아이들하고 누릴 예쁜 나날은 어떤 그림인지를 생각해요.


 

  저마다 찍고 싶은 사람한테 표를 주면 돼요. 민주주의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하면 끝이에요. 한 표 권리를 썼으니, 우리는 우리 삶으로 돌아가야지요. 아직 5번 후보가 대통령 된 적 없어 모를 노릇이라고도 하지만, 1번이나 2번 후보가 대통령이 된대서, 이 나라에 골프장이 줄어들지 않더군요. 1번이든 2번이든 한결같이 ‘토목공사 대통령’ 노릇만 하더군요. 핵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공해덩어리만 잔뜩 만들 뿐, 슬기로운 길을 걷지 않아요. 1번이든 2번이든 군대를 없애거나 줄이겠다고 밝히지 않아요. 둘 다 전쟁무기 더 많이 만들고 군부대 더 키운다고 하더군요. 1번이고 2번이고 ‘회사원·노동자·공무원’이 일터에서 적게 일하며 집에서 아이들과 더 오래 보내도록 할 마음이 없기도 해요. 어린이집을 더 많이 세운다고 하지만, 우리한테는 어린이집 아닌 ‘일자리 나누기’와 ‘내 집에서 내 식구랑 더 오래 사랑을 빚는 삶’이 즐겁고 아름다울 텐데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국가보안법 없어질 낌새는 없구나 싶어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자유무역협정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경제성장율에 목 매다는 슬픈 모습이 사라질 듯하지 않아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새만금이고 4대강이고, 또 끝없는 막개발이고, 고속도로이고 고속철도이고, 이제 그만 때려짓겠다 하는 다짐은 없어요.”

 


  이제 아침이 밝고 햇살 따사롭게 내리쬔다. 아침빨래 바지런히 마치고, 아침밥 맛나게 차려서 먹어야지. 네 식구 손 잡고 시골 들길을 걸어 면소재지 투표하는 데에 가야겠다. 4345.12.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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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93 : 두 줄에서 읽는 얼

 


  우리가 애써 책을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읽을 때에 ‘즐거울’는지 ‘아름다울’는지 ‘참다울’는지 ‘착할’는지 ‘신날’는지 ‘빛날’는지 ‘거룩할’는지 ‘재미날’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어야 한다면, 줄거리를 살펴 독후감이나 서평을 써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곧, 우리가 어버이한테서 새 목숨 선물받아 살아가야 하는 까닭은 ‘어른 되어 일자리 얻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삶을 누리는 까닭을 생각하듯, 책을 읽는 까닭을 헤아려 봅니다.


  밥을 먹어야 한다면 어떤 밥을 먹을 때에 즐거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밥은 왜 먹을까요. 밥은 왜 지을까요. 밥집은 왜 이다지도 많을까요. 회사원이나 공무원은 왜 바깥 밥집에서 밥을 사다 먹을까요. 학교는 왜 급식을 할까요. 집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도시락을 싸려고 하지 않을까요. 도시락을 싸지 못할 만큼 바쁠까요. 도시락을 쌀 겨를에 ‘생산성 높은’ 다른 일을 해야 할까요. 밥짓기는 ‘생산성 낮은’ 일이라, 돈 몇 푼 치러서 사다 먹거나 급식실 만들어서 밥판에 척척 밥을 올려놓고 먹은 다음 설거지조차 안 해도 그만인 셈일까요.


  내 어릴 적을 돌이켜봅니다. 나와 형과 아버지는 날마다 도시락을 둘씩 싸들고 다녔습니다. 나와 형은 중학생과 고등학생 여섯 해를 도시락 둘 싸들고 다녔고, 집과 일터 사이가 먼 아버지도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날마다 도시락 다섯 통 싸는 일을 해야 했고, 나와 형은 도시락 설거지‘라도’ 했습니다.


  요즈음 여느 어머니(아버지 아닌 어머니)들 얘기를 살짝 엿들으면, 소풍날이나 현장학습날 같은 자리에 김밥을 싸 주거나 김밥을 ‘사 주’거나 하는데, 아이들은 빈 도시락통 아닌 ‘빈 스티로폼 통과 나무젓가락과 비닐봉지’ 따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해요. 열 번 백 번 천 번,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고이 건사하며 쓰는 도시락통 쓰는 집이 아주 드물다고 합니다.


  우리 식구가 시골집을 떠나 할머니 할아버지 댁까지 기차 타고 찾아갈 적을 떠올립니다. 집에서 바지런히 손을 놀려 도시락을 싸기도 하고, 때때로 김밥집에서 사다 먹기도 합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면 쓰레기가 안 나오지만, 김밥집에서 사다 먹으면 쓰레기가 한 봉지씩 나옵니다. 독일사람 에냐 리겔 님이 쓰고 한국사람 송순재 님이 옮긴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라는 책을 읽으면, “우리는 학생들이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역할극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대신, 파리 중앙역에 배낭 하나 메고 내려서 거기에서 리옹까지 혼자서 찾아가는 특명을 수행할 날을 꿈꾸었다. 또한 학생들이 아일랜드에서 도보여행을 할 날도 꿈꾸었다(107쪽).”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참말, 아이들은 교과서를 배울 아이들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고 배우며 받아들일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짓고 생각을 지으며 사랑을 지을 아이들입니다. 체험학습 아닌 ‘삶’을 누릴 아이들이에요. 손수 밥을 짓고, 손수 빨래를 하며, 손수 이야기를 엮을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자전거 타고 집과 학교 사이를 다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흙을 만져 곡식이랑 푸성귀를 거두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서로 어깨동무하며 고운 노래 부르기를 빌어요. 4345.12.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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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읽는 마음

 


  나는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봅니다. 깜깜한 시골 밤하늘은 온통 별잔치입니다. 멀리 내다볼 수 있다는 망원경이 있으면 별을 한결 잘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굳이 망원경을 써서 쳐다보지 않아도 별빛을 누리고 별내음을 맡습니다.


  지구별에서 1만 광년이나 10만 광년, 또는 100만 광년쯤 떨어졌다는 저 먼 별에서도 지구를 ‘별’로 여겨 바라볼까 헤아려 보곤 합니다. 지구사람은 큼지막한 망원경으로 다른 별을 바라보며 ‘천체과학자’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는데, 지구별에서 바라보는 다른 별 모습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저 먼 별에서 지구를 바라볼 적에는 ‘지구라는 별 모습에서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이웃별 사람들은 지구별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삶을 들여다볼까요. 이웃별 사람들은 지구별 빛깔을 지구에서 아우성대는 사람들 목소리로 느낄까요.


  별을 바라보는 과학자는 별무늬와 별자리를 살핍니다. 이웃별을 구경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학자도 여느 사람들 삶이나 정치꾼 삶을 구경합니다. 곁에서 구경하면서 학문을 밝히고 학설을 펼칩니다. ‘별 과학자’는 이웃별로 찾아가서 ‘살아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인문학자이든 역사학자이든 문화인류학자이든 이웃집에 깃들어 ‘함께 살아가’면서 이야기를 엮지 않습니다. ‘학자가 되자’면 어느 만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해요. 학자가 되는 이들은 ‘이웃’이 되지 않고 ‘구경꾼’이 되어요.


  4월혁명을 역사로 밝히는 이들은 4월혁명 한복판에서 함께 거친 숨을 들이쉬던 이들인가요. 동학혁명을 역사로 그리는 이들은 동학혁명 한복판에서 함께 멧골 넘으며 못난 관리를 꾸짖은 이들인가요.


  아이를 품에 안고 마당에서 별바라기를 하며 생각합니다. 나한테 망원경이 없더라도, 나는 아이들과 별바라기를 합니다. 나는 아이들이랑 별을 바라볼 적에 망원경으로 구경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별에 깃든 사람들은 어떤 넋 어떤 삶 어떤 사랑일까를 그리고 싶습니다. 이 별 지구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은 어떤 숨 어떤 꿈 어떤 빛깔일까를 헤아리고 싶습니다.


  망원경 아니어도 읽는 별입니다. 학문이나 학설 아니어도 읽는 사람살이입니다. 책 아니어도 읽는 역사요 문화이며 교육이고 예술입니다. 아이들 마음밭은 따순 손길로 보듬는 사랑일 때에 읽습니다. 구수한 밥은 요리책 아닌 너그러운 손길로 목숨을 짓는 믿음일 때에 읽습니다. 4345.12.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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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꽃

 


널찍하게 자리 누비는 자동차는
골목을 달리면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흙을 꽁꽁 덮는데,
귀퉁이 아주 좁은
한 뼘 되는 곳에
흙 옮겨담은 그릇 있어
꽃 한 송이
가을볕 쬔다.

 


4345.10.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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