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해맞이

 


  사흘에 걸친 인천마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온다. 택시와 시외버스와 시외버스, 마지막으로 택시를 다시 한 번 타고 두멧시골로 접어드는데, 저녁이 되어 뉘엿뉘엿 기우는 빠알간 해님이 저 멧등성이에 이쁘장하게 걸린다.


  고흥에 왔구나. 빠알간 해님과 멧자락과 숲과 들판을 누리는 고흥에 왔구나. 인천에서는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숲그늘 저녁해를 보는 고흥에 왔구나. 바람맛을 느끼고 바람내음을 맡으며 바람소리를 듣는다. 내 마음과 생각을 따사롭게 보듬는 겨울 한 자락 받아먹는다. 이제 저녁해는 저 멧자락 뒤로 숨는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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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공장과 큰짐차 가득한 인천에서도 내 어릴 적에는 박쥐랑 제비하고 노닐며 살았지만, 언제까지나 매캐한 바람 마시며 지낼 수 없는 노릇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어디로? 나는 국민학교 다니던 어릴 적부터 ‘서울 아닌’ 시골을 이야기하는 방송이나 신문이나 책을 꼼꼼히 살피며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서 고운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살 때에 즐거울까 하고.


  첫째, 도시는 싫다. 둘째, 공장은 싫다. 셋째, 자동차는 싫다. 넷째, 골프장은 싫다. 다섯째, 대학교는 싫다. 여섯째, 이들 싫은 대목 말고 좋아할 만한 모습을 누리고 싶다.


  무엇이 나한테 즐거우며 반가울까. 하나, 파란 하늘. 둘, 맑은 물. 셋, 푸른 들. 넷, 너른 바다. 다섯, 제비. 여섯, 숲. 일곱, 이야기. 여덟, 꽃. 아홉, 달과 별. 열, 책.


  나는 내가 지은 생각에 맞추어 삶을 짓는다. 내가 짓는 생각과 삶에 맞추어 말을 짓는다. 내 생각에 꿈이랑 사랑이 깃들면, 삶에도 팔에도 꿈이랑 사랑이 깃든다.


  한국에서 골골샅샅 곱지 않은 데가 없구나 싶으면서도, 어릴 적부터 ‘전라도’가 참 끌렸다. 따돌림받고 등골뽑히는 데가 전라도요, 사람들은 전라도 하면 으레 깽깽이들 텃세 대단하다고 나무라는데, 나는 이런 전라도가 외려 더없이 싱그럽구나 싶었다. 겉모습 아닌 속모습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고울까 하고 생각했다.


  고향 인천을 싫어하지 않으나, 인천을 떠나 새터를 생각했다. 곧, 나는 열 살 때부터 내 보금자리를 생각했고, 어느덧 서른아홉 살 된 오늘, 전라도에서 아주 깊숙한 두멧시골 고흥, 또 고흥에서 깊숙한 시골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살아간다. 참말 이제 나는 전라도사람 되어 오늘 하루 누린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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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사랑스레 읽는 책

 


  책을 읽는 우리들은 마음을 사랑스레 읽습니다. 책을 읽는 우리들은 줄거리나 지식이나 정보를 읽지 않습니다. 책을 손에 쥔 우리들은,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즐겁게 꿈을 꾸는 이야기를 사랑스레 읽습니다. 책은 곧 마음이거든요. 책을 쓰고 책을 엮는 이들은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갈무리하려고 애써요.


  그러니, 책을 읽을 때에는 ‘책을 쓰고 책을 엮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나누고 싶은 꿈과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 뿌린 사랑씨앗을 나누어 받고, 책을 엮는 사람이 보살핀 사랑꽃을 함께 누려서,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어여쁜 사랑숲을 일굽니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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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작품과 사진

 


  사진길을 걷는다고 하는 오늘날 적잖은 이들은 ‘사진쟁이’ 아닌 ‘예술쟁이’로 나아가곤 합니다. 이들은 멋들어진 모습을 찍는다든지,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을 찍는다든지 합니다. 곧, ‘예술이라 할 만한’ ‘작품’을 만들곤 합니다. 멋들어진 모습을 찍는대서 잘못이 아니요,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을 찍는대서 훌륭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멋들어진 모습이란 그저 멋들어진 모습입니다. 사진이 아닙니다.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 또한 그저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입니다.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일 뿐, 작품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일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작품은 작품이요, 사진이 아닙니다. 작품을 만들면 작품을 만들 뿐,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면서 생각을 빛내고 사랑을 나누는 하루 이야기를 찍어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진이란, 삶이고 생각이며 사랑이요 이야기입니다. 삶이고 생각이며 사랑이요 이야기를 가만히 엮을 때에 알알이 빛나는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가 드러나서 사진이요, 사랑스러운 이야기이기에 사진이고, 삶이 묻어날 때에 사진입니다.


  작품은 값어치 있는 것입니다. 작품은 돈이고, 이름값이며, 권력입니다.


  사진은 이야기 있는 삶입니다. 사진은 사랑이고, 생각이며, 꿈입니다.


  사진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삶을 누리면 됩니다. 저마다 누리는 삶을 사랑하고 아끼며 좋아하면 저절로 사진이 태어납니다. 내 삶을 내가 사랑하며 즐길 때에 손에 사진기를 쥐면 사진이 태어나고, 내 삶을 내가 좋아하며 누릴 적에 손에 연필을 쥐면 글이 태어나요.


  작품을 만들 때에는 예술쟁이나 작품쟁이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 비로소 사진쟁이입니다. 그러니까, 삶을 누리는 삶빛일 때에 사진빛이에요. 사랑을 나누는 사랑씨앗일 때에 사진씨앗입니다. 꿈을 펼치는 꿈날개일 때에 사진날개예요. 사진을 아름다이 즐기려는 분들이 사진을 스스로 곱게 보살피면서 활짝 웃는 하루를 알뜰살뜰 꾸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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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공장 굴뚝

 


장인어른과 함께
고흥부터 인천까지
자동차로 달린다.

 

순천을 지나 구례로 접어들 무렵
저 앞 봉우리 새하얀
아름다운 숨결 보이기에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아 지리산이로구나.

 

자동차는 임실을 지나고
전주를 거쳐
천안과 평택을 지난다.
어느새 해가 진다.
깜깜한 고속도로를 달린다.
문득문득
우리 곁으로 공장 모습
스쳐 지나간다.
고속도로 옆으로 낀 공장들은
깊어 가는 밤에도 불빛 환하고
깊은 밤까지 허연 연기 뿜는다.

 

달도 별도 볼 수 없는 도시에
공장 굴뚝 허연 연기 솟는다.

 

살짝 눈을 감고
고흥 시골마을 숲을 떠올린다.

 

숲을 바라보는 사람들 마음에
숲기운 어리며
어여쁜 삶 일구는
살가운 사랑으로 자라나다오.
아리따운 말 빛내고
이쁘장한 꿈 보듬는
작은 풀 한 포기
작은 나무 한 그루
이곳 도시에도
힘차게 돋아다오.

 


4345.12.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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