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공장과 큰짐차 가득한 인천에서도 내 어릴 적에는 박쥐랑 제비하고 노닐며 살았지만, 언제까지나 매캐한 바람 마시며 지낼 수 없는 노릇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어디로? 나는 국민학교 다니던 어릴 적부터 ‘서울 아닌’ 시골을 이야기하는 방송이나 신문이나 책을 꼼꼼히 살피며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서 고운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살 때에 즐거울까 하고.
첫째, 도시는 싫다. 둘째, 공장은 싫다. 셋째, 자동차는 싫다. 넷째, 골프장은 싫다. 다섯째, 대학교는 싫다. 여섯째, 이들 싫은 대목 말고 좋아할 만한 모습을 누리고 싶다.
무엇이 나한테 즐거우며 반가울까. 하나, 파란 하늘. 둘, 맑은 물. 셋, 푸른 들. 넷, 너른 바다. 다섯, 제비. 여섯, 숲. 일곱, 이야기. 여덟, 꽃. 아홉, 달과 별. 열, 책.
나는 내가 지은 생각에 맞추어 삶을 짓는다. 내가 짓는 생각과 삶에 맞추어 말을 짓는다. 내 생각에 꿈이랑 사랑이 깃들면, 삶에도 팔에도 꿈이랑 사랑이 깃든다.
한국에서 골골샅샅 곱지 않은 데가 없구나 싶으면서도, 어릴 적부터 ‘전라도’가 참 끌렸다. 따돌림받고 등골뽑히는 데가 전라도요, 사람들은 전라도 하면 으레 깽깽이들 텃세 대단하다고 나무라는데, 나는 이런 전라도가 외려 더없이 싱그럽구나 싶었다. 겉모습 아닌 속모습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고울까 하고 생각했다.
고향 인천을 싫어하지 않으나, 인천을 떠나 새터를 생각했다. 곧, 나는 열 살 때부터 내 보금자리를 생각했고, 어느덧 서른아홉 살 된 오늘, 전라도에서 아주 깊숙한 두멧시골 고흥, 또 고흥에서 깊숙한 시골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살아간다. 참말 이제 나는 전라도사람 되어 오늘 하루 누린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