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띄운 '나는 대학교를 왜 때려치웠는가' 다음으로 이 글을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학생인 분, 또 대학교 마친 분, 또 대학교를 바라는 푸름이들, 모두한테 즐거운 글선물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당신은 어른입니까 12] 대학교읽기
― 내가 꿈꾸는 사랑스러운 벗님

 


  대학교를 나왔대서 대수롭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안 나왔대서 대단하지 않아요. 그런데,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살아가려면,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하지요. 의사가 되고 싶든 판사가 되고 싶든 기자가 되고 싶든 작가가 되고 싶든, 으레 대학교 졸업장을 바랍니다. 출판사 편집자나 영업자로 일하고 싶어도 대학교 졸업장을 바랍니다. 다만, 도시에서도 막일 하는 공사판에서는 대학교 졸업장을 바라지 않아요. 편의점 알바생 뽑을 적에도 대학교 졸업장은 바라지 않아요. 공장에서는 외려 대학교 졸업장을 꺼릴 테지요. 머리만 굴리려 하는 사람들은 몸을 제대로 못 쓰니까요.


  인천에서 아직 우리 식구들 살아갈 적, 골목동네를 거닐며 골목이웃을 가만히 헤아려 보곤 했습니다. 가난하다 하는 달동네 골목이웃은 으레 ‘대학교 안 다닌’ 사람이요, ‘학교 문턱조차 못 밟은’ 사람이 많아요. 이런 골목동네 찾아와 사진찍기 즐기는 이들은 으레 ‘대학교 다닌’ 사람이거나 ‘대학교 한창 다니는’ 사람이기 일쑤이고요. ‘대학교 다녔거나 다니는’ 사람들은 ‘대학교 안 다닌’ 사람들이 일군 달동네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생각할까 궁금합니다. 요즈음, ‘골목길 해설사’라든지 ‘골목길 투어’라든지 쏠쏠히 생긴다 하는데, ‘골목해설’은 누가 하고, ‘골목투어’는 누가 꾀할까 궁금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물려받아 흙을 일구는 분들은 대학교를 안 다녔습니다. 시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네 아이들은 대학교를 다니며 몽땅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오늘날에도 시골을 지키는 어르신들은 거의 모두 대학교하고는 먼 삶자락을 꾸립니다. 할머니는 모두 다 대학교는커녕 고등학교조차 안 다녔다고 할 만해요. 따지고 보면, ‘대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대학교 안 다닌’ 사람들이 시골에서 일군 곡식과 열매를 먹고, ‘대학교 안 다닌’ 사람들이 도시 변두리 공장에서 만든 물건을 사다가 씁니다. ‘대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대학교 안 다닌’ 사람 앞에서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며, 무슨 사랑을 베풀려나요.


  대학교를 나왔거나 한창 다니는 사람들 말씨가 참 어렵습니다. 대학교를 다니고 싶어 입시공부에 푹 파묻힌 아이들 말투까 참 어렵습니다. 대학바라기를 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말, 딱딱한 말, 게다가 일본 말투가 끼어든 슬픈 말, 영어범벅, 어설픈 번역투, 이러저러해서 한국말답지 않은 한국말로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들 대학바라기 사람들은 이녁 스스로 어떤 한국말을 쓰는지 모릅니다.


  대학교를 안 나왔거나 학교 문턱 안 밟은 사람들 말씨가 참 쉬워요. 수수하지요. 투박하고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말씨가 참 쉽습니다. 수수합니다. 투박합니다. 그러나, 같은 시골 하늘을 등지고 살더라도, 면사무소나 농협이나 이런저런 공무원과 회사원들 말씨는 도시사람하고 똑같이 어렵더군요.


  시골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왜 대학바라기를 하면서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야 할까요. 대학교는 왜 시골에는 한 군데도 없이 도시에만 있을까요. 더러, 시골 외진 한켠에 선 대학교도 있지만, 시골자락 한 귀퉁이 차지한 대학교 가운데 ‘대학교 마친 아이들이 시골에서 살도록 북돋우거나 이끄는 곳’은 아직 한 군데조차 없어요. 그러니까, ‘시골 대학교’란 없다. 모두 ‘도시 대학교’일 뿐입니다.


  모두 도시로 가고 시골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맡기면, 누가 흙을 일구지? 유기농이든 무농약이든 저농약이든 친환경이든, 누가 흙을 일구지? 필리핀이나 베트남이나 칠레에서 사다 먹으면 되나? 그러면, 필리핀이나 베트남이나 칠레 젊은이들은 대학교 안 가고 시골에서만 살아야 하나?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대서 도시에서만 살아야 할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목숨이기에, 그저 도시살이만 생각하고 도시내기로 지내서 도시붙박이가 되어야 할까?


  시골 어린이집조차 숲마실을 안 합니다. 시골 초등학교조차 시골마을 들판이나 바다로 나들이를 다니지 않습니다. 시골 중학교조차 시골 어버이 봄일·여름일·가을일 거들도록 ‘일하는 방학’을 마련하지 않아요. 시골 고등학교조차 시골에서 스스로 삶을 짓고 꿈을 짓는 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모두 도시바라기로 흐릅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사람대로 도시바라기요,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대로 도시바라기가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바로 대학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교를 나와야 도시에서 돈 잘 버는 일자리 거머쥘 수 있고, 대학교 졸업장을 따야 손에 흙이나 물 안 묻히면서 먹고 놀고 자고 입고 싸고 뒹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전태일 님은 ‘대학생 동무 하나 있으면’ 하고 바라며 숨을 거두었어요. 그런데, 나는 고등학생 때에 전태일 님 이야기를 책으로 읽으며 ‘이건 아닌데’ 하고 느꼈어요. 아니, 어쩌면 전태일 님 이 서글픈 바람이 내 마음속에서 잠자던 생각 하나 깨웠는지 모릅니다. 무언가 하면, ‘대학생 아닌, 곧 고등학교만 마친, 또는 학교 문턱 밟은 적 없는 동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는 대목을 일깨웠구나 싶어요. 전태일 님은 곁에 아주 사랑스럽고 애틋한 동무들이 많았는데, 미처 이 동무들 너른 사랑을 못 껴안았다고 할까요. ‘무식쟁이(대학교 나온 사람들이 대학교 안 나온 사람을 깎아내리며 부르는 이름이지만)’끼리 어깨동무를 할 적에 얼마나 크고 너르며 깊은 힘이 솟는 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고 할까요.


  나는 대학교를 그만두어 고졸 ‘신분’이기에 즐겁습니다. 내 옆지기는 고등학교를 그만두어 중졸 ‘신분’이기에 사랑스럽습니다. 꼭 학력 때문에 더 좋거나 싫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제도권 입시교육이 사람을 얼마나 갉아먹고 사랑을 얼마나 깎아내리며 꿈을 얼마나 망가뜨리는가를 몸으로 느끼며 살아갈 수 있으니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우리 아이들한테 제도권 입시교육을 함부로 들이밀지 않을 수 있는 어버이로 살아가는 하루가 고맙습니다.


  나는 꿈꿉니다. ‘대학교 졸업장 없는 시골 흙동무’를 꿈꿉니다. ‘대학교 졸업장 없는 도시 달동네 예쁜 동무’를 꿈꿉니다. 모두들 어딘가에서 아름다운 하루를 누리면서 아름다운 생각을 흩뿌리겠지요. 저마다 어딘가에서 고운 사랑을 나누면서 고운 이야기꽃을 피우겠지요.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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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1-1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 받으세요!

파란놀 2013-01-19 12:31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유다다 님은 세 번 네 번 고운 복과 사랑 듬뿍 누리셔요~~~ ^^

비로그인 2013-01-1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살기님~
하루종일 이 글 생각만 했어요.
바로보기! 라니요.ㅎㅎ
바로보는 학생은 못되더라도 바로보는 부모는 꼭! 될게요.
그렇습니다ㅎㅎ

파란놀 2013-01-21 03:43   좋아요 0 | URL
우리들 모두 삶을 예쁘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으면
참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대학교' 이야기를 하나 쓰다가, 문득 떠올라 예전에 쓴 글 하나를 찾아봅니다. 이 글은 1999년 8월 7일에 쓴 글입니다. 저는 1998년 12월에 대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좋게 말해서 ‘그만두기’이지, 제 마음은 ‘때려치우기’였습니다. 대학교를 때려치운 뒤 둘레에서 ‘대학교로 다시 돌아오라’부터 ‘대학교로 돌아가지 않으면 넌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소리까지 온갖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꿋꿋하게 고졸자로 살았고, 고졸자로 신문배달 일을 하면서 1999년 여름에 출판사 한 곳에서 새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는 고졸자로 ‘잘 살아’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으레 “학번이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묻는데, 저는 “고졸입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이 글은 고졸자로 신문배달 일을 하며 살다가 ‘학력제한 없음’을 내건 출판사에 어떻게 붙을 수 있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밝히면서, 제 후배들한테 보내 준 편지입니다. 1999년 무더운 여름날 밤, 제가 때려치운 대학교 전산실에서 신나게 적어서 종이로 뽑은 다음, 제가 때려치운 대학교 학과방과 동아리방 벽에 붙여놓았던 글인데, 글투만 조금 손질해서 띄워 봅니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 넋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왜 대학교를 때려치웠는가
 ― ‘고졸자 신분으로 일자리 얻기’

 


 대학교를 그만두었으니 마지막 학력은 ‘고졸’이 됩니다. 식구들도 그렇고 친척이나 동무나 선배들은 “졸업장은 따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더욱 “졸업장을 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분들은 모두 ‘제 참된 삶’을 걱정해 주시며 하는 말씀이 아니거든요. 이분들은 최종규라고 하는 한 사람이 오롯이 꾸리는 삶이 아닌 ‘대학교 졸업장이라는 번듯한 울타리와 쇠밥그릇을 잃을까’ 걱정하실 뿐이었거든요. 대학교 졸업장이란 종이조각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더욱 졸업장을 따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만 굳었습니다.

 

 1994년에 서울에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듬해 1995년에 인천 부모님 집에서 나와 ㅎ신문 서울 휘경지국에 들어갔습니다.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며 살림돈을 벌고(이와 함께 학교 도서관과 구내서점에서 일을 하며 근로장학금을 받고), 이 돈으로 책을 사 읽으며 혼자 살림을 꾸리면서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1995년 11월에 군대에 갔다가 1997년 12월에 전역을 하고는, 1998년 1월에 다시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오늘까지(1999년 8월) 스무 달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신문 딸배(배달원) 일은 오늘로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신문 돌린 일이 마지막으로 신문을 돌리는 일이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바로 내일부터 새 일자리를 얻어 나가거든요.

 

 저는 졸업장에 눈길도 안 둔만큼 ‘학력제한’을 둔 곳에서 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고졸자에게 문을 활짝 연 곳은 드뭅니다. 더더구나 ‘지식’을 주무르는 곳에서는 ‘대학교 졸업장’은 ‘출세를 보장하는 보증수표’이자 ‘출입증’인데, 보증수표도 출입증도 없는 사람을 어느 곳에서 뽑으려고 할까요.

 

 그나마 ㅎ신문은 학력제한이 없다고 밝힙니다. 그러나 여태껏 이러한 ‘학력제한 없음’을 뚫고 들어간 기자가 없더랍니다. 개개인 애씀이 모자란 탓만이라고 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이곳 또한 저으기 학벌이 있기에 학벌 벽을 넘기 어려웠다고 보아야 합니다.

 

 요새 ㅎ신문에 실리는 기사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오히려 이와 같이 안타깝고 씁쓸한 일터를 찾아가서, 내가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며 이러한 안타깝고 씁쓸한 모습을 다독여, ㅎ신문이 처음 서던 넋을 살리는 일에 이바지를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마침, 저는 ㅎ신문 홍보광고 모델 노릇을 하며(새벽을 여는 신문배달 근로학생 모습으로 1998년 가을부터 1999년 여름까지), ㅎ신문사 이사님이 저한테 기자로 일할 생각이 있으면 특채로 뽑아 주겠다고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사님한테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저는 ‘학력제한 없음’이라는 이름 그대로 공채이며 고졸자로서 들어갈 수 있을 때에만 들어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무렵 참 뜻밖에 ‘학력제한 없음’을 밝히며 새 일꾼을 뽑겠다고 하는 출판사 광고를 보았습니다. 신문사지국에서 전화를 걸어 여쭈어 보았지요. 졸업증명서를 내지 않아도 되느냐고. 그렇다고 하기에 꿈을 꾸었습니다. 저한테는 컴퓨터가 없고 대학교 전산실에 가서 쓰고 있었기에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를 다른 사람들처럼 반듯하게 출력해서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주제대로, 새벽마다 지국으로 오는 신문꾸러미 앞쪽을 싸고 있는 갱지를 이면지 삼아 손글씨로 또박또박 자기소개서를 쓰고 이력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대학교를 그만두었다 보니 이력서에 쓸 이야기가 얼마 없더군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고 구내서점에서 일한 이야기하고, 군대에서 우리 말 운동을 했던 이야기에다가 신문사지국에서 딸배 일을 한다는 이야기며, 헌책방을 부지런히 다니며 세상 공부를 하고 있는데 대학교에서 배울 때보다 훨씬 깊고 널리 배울 수 있어 좋다는 이것저것을 적었습니다.

 

 입사지원서를 우체국에서 보내며 붙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용케 1차에 붙어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을 본 다음에 설마 붙으랴 싶었는데 참말 붙고 말았습니다. 교육책과 어린이책을 내 오는 ㅂ출판사에서 제 앞날을 좋게 헤아려 주면서 차근차근 키워 주겠다고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이곳 ㅂ출판사는 학력제한을 두지 않았을 뿐더러, 지원서를 쓸 때에도 틀에 박힌 대로 쓰면 받지도 않는다고 하더군요. 이야기하듯 써서 내야 받는다는 지원서였고, 저는 이 지원서를 열흘 남짓 걸려서 써 보내고 면접을 봤습니다. 면접 볼 때에는 ‘늘 입는 대로 편한 차림으로 오라’고 해서 늘 입는 ‘배꼽티에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샌들을 신고 갔습니다. 다만 말이 배꼽티이지, 신문배달을 하면서 입는 옷입니다. 신문배달을 하면 한겨울에도 5분쯤 지나면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저는 짐자전거로 신문을 나르기 때문에 땀을 식히려고 난닝구와 다를 바 없는 배꼽티를 입고 신문을 돌립니다. 뭐, 이 옷도 돈 주고 산 옷이 아니라, 동네 골목에 있는 헌옷 모으는 통에서 주워 입은 옷입니다. 사람들 눈치를 보며 살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신문배달을 하는 차림새 그대로 돌아다니고, 헌책방을 찾아갈 때에도 신문배달 짐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이런 차림으로 ㅂ출판사에 면접을 보러 가니 직원 분들이 큰소리로 웃으시더군요. 그러나 싫어하시진 않았습니다. 면접 보느라 힘들고 고달프다는 데, 제 차림새를 보고는 청량제와 같았다고 하시더군요. 한여름에도 다들 정장 차림에 딱딱하고 굳은 모습에 딱딱하고 굳은 말만 했다는데, 제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긴장이 풀려 웃음이 터져나왔다고, 미안하다 그러시더군요.

 

 ㅂ출판사 면접은 으레 아는 면접과 사뭇 달랐습니다(그렇지만 저는 면접이 처음이었습니다. 뭐랄까 연속극 같은 데에 나오는 면접 분위기가 보통 면접 분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 텔레비전 같은 데 보면, 얼마나 살벌하고 무섭습니까. ㅂ출판사 면접은 회의실에 있는 둥근 책상에 면접관 예닐곱 분이 둘러 앉습니다. 이분들은 출판사에서 저마다 다 다른 부서에서 일하시는 분들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둥근 책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죠. 공채로 일꾼을 뽑기는 올해가 두 번째라 했습니다. 믿음을 갖고 일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 그동안 소개받아 새내기 직원을 받았답니다.

 

 면접관으로 둘러앉으신 분들은 맨 처음으로 ‘대학교를 그만둔 일’을 여쭈셨습니다. ㅂ출판사가 학력을 안 따진다 하지만 왜 대학교를 안 다니는지는 누구에게나 궁금한 일이었겠지요.

 

 그렇지만 대학교 교육 속셈이란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같은 책이라든지 《녹색평론》 같은 잡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라 안팎 훌륭한 분들 글에 아주 낱낱이 또렷하게 잘 나와 있습니다. 굳이 제 입으로 대학교를 왜 그만두어야 하는가를 말씀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대로 그냥 스스럼없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중등교육이나 대학교 교육이라 하며 받는 가르침은 ‘이 나라에까지 널리 뿌리내린 서구 중심 사상과 철학’이라고, 이러한 서구 중심 사상과 철학이란 우리 삶터와 사람을 살피지 않는다고,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문화를 내동댕이친다고, 모든 겨레는 여태껏 스스로 살고 있는 땅과 날씨에 알맞게 몸과 마음을 맞추며 지내 왔고, 이에 걸맞게 가르치고 배우며 대물림하며 살아 왔으나, 서구 중심 사상과 철학은 이 모두를 깨부순다고, 겨레마다 스스로 가장 알맞고 좋은 문화를 일구며 어깨동무하는 삶이 있으나 이러한 문화나 삶은 우리들이 대학교 네 해를 다니는 동안 스스로 짓밟거나 허물어 버린다고, 오늘날 우리가 받는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은 서구 패권주의가 내세우는 침략성 가득한 야만스런 자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이리하여 끝간 데 없는 개발만능만을 이야기하고 우리 스스로 이런 개발만능에 젖어들면서 바보가 되고 있는데 이런 바보스러운 모습을 거꾸로 가장 값어치 있는 ‘지식창출’인 줄 잘못 여기고 있다고, 그렇지만 제아무리 훌륭한 지식창출이라 하더라도 먹지 않고는 못 살며 집 안 짓고는 제 한몸 지킬 수 없고 옷 한 벌 안 입고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고, 중등교육이든 대학교육이든 이러한 밥집옷 이야기는 한 가지도 안 가르친다고, 가르쳐도 시멘트와 철근으로 다 똑같은 모습 판박이 아파트만을 짓게 한다고, 잘 생각해 보면 아무리 값비싸고 좋다는 아파트라 하여도 쉰 해는커녕 서른 해도 못 간다고,으레 스무 해나 서른 해만 지나면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고,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살림집이란 모두 자연에서 얻은 건축재료로 지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때로는 무량수전이나 옛 절집이나 기와집처럼 즈믄 해를 더 이어가기도 한다고, 우리는 흙에서 얻어 흙으로 돌아가도록 하던 집을 잃으며 흙에서 얻어 흙한테 돌려주는 삶과 얼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고, 세상 모든 일이 온통 쓰레기투성이이고 우리 스스로 쓰레기 같은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고, 현대 도시 문명에서 짓는 시멘트 철골 집과 건물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백 해만 되면 다 쓰레기가 되는데 서울에 가득한 온갖 시멘트 철골 건물들을 백 해 뒤에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63빌딩은 앞으로 백 해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걱정 안 되느냐고, 한강가에 가득한 높다란 아파트들은 또 어떻게 되느냐고, 도시는 길마다 아스팔트를 깔고 시골길도 어지간해서는 시멘트로 길을 깔아 놓는데 이렇게 길을 ‘포장’한다는 이름으로 땅을 덮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노릇인데 어느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아니 이야기하지만 이 이야기를 덮으려고 정부 공권력이 아둥바둥댄다고, 흙으로 빗물이 스며들고 이 빗물이 땅속물이 되어 우리 몸을 시원하게 적시는 샘물이 되는데 우리들은 물다운 물을 잊고 살아간다고, 오늘날은 댐에 가둔 물을 쓰는데 갇혀 버린 물이란 얼마나 더럽고 우리 몸에 안 좋으냐고, 더구나 댐을 짓는다며 부수는 자연 삶터는 또 어떠하며, 우리는 참말로 물을 얼마나 많이 써야 하느냐고, 왜 이렇게 욕심만 부리느냐고, 마을마다 먹을 만큼만 우물을 파고 살던 때에는 물 걱정을 할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온갖 재벌 자본가들이 물을 갖고 장사를 한다고, 물장사로 술장사로 마실거리장사로 물이 망가지고 있다고, 온갖 공장에서 중간 과정에서 물을 쓰고 원자력발전소에서도 열을 낮추는 데에 물을 쓰며 바다로 그냥 흘려보내 바다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이런 일을 대학교에서 가르치기나 하느냐고, 이렇게 ‘부수고 망쳐 없애기만 하는 현대 문명’을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우리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인데 내가 이러한 세상 이음고리를 알아 버렸는데, 어떻게 대학교에 머물면서 졸업장을 따고 쇠밥그릇 공무원이 될 수 있겠느냐고.

 

 면접을 보는 분들은 철없는 젊은이가 줄줄 읊어대는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 주었습니다. 아니, ㅂ출판사 면접이란 이곳에 들어와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믿음이 단단하고 생각이 깊은가를 알아보고자 이렇게 스스로 ‘연설’을 하도록 시키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면접을 마치고 밥 한 그릇 얻어먹고 신문사지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합니다. 아까 못 다한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하며, 아무래도 글렀겠다고 여겼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냐고 느끼며, 이런저런 말을 더 했어야 한다고 곱씹습니다.

 

 대학교 교육을 받고 대학원까지 교육받는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 땅을 일궈 스스로 먹을 나락을 거두고 반찬을 거두며 산을 타며 나물 캐고 물고기 잡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0.001%도 안 됩니다. 나아가, 스스로 옷을 짓기는커녕 옷감도 못 뽑고 집 짓기는커녕 나무하고 땅 파고 흙벽 짓는 일뿐 아니라 요새 그 흔한 시멘크 공구리조차 제대로 할 줄 아는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다들 아무것도 할 줄은 모르고 공장 덕만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공장이 얼마나 오래 갈까요. 우리는 바로 눈앞에 공장이 잘 돌아가고 지하자원도 넘쳐나는 듯하고 값마저 싸니까 아무 걱정을 안 하고 눈에 뵈는 대로 눈요깃감에 홀리고 텔레비전 앞에서 즐거우며 술집에서 물 아까운 줄 모르고 쓰기만 하며 옷이 구질구


질하다는 핑계를 내세우고 유행이 지났다며 쉽게 내다 버립니다. 밥을 먹으며 밥풀 하나 아까운 줄 모르고, 우리 땅에서 자란 반찬 먹기를 꺼려 하며, 입맛은 우리 땅에서는 나지 않는 먹을거리를 즐깁니다.

 

 대학교에서 무역을 배우고 경영을 배우고 법을 배우고 이공계열 전공하며 배우고 외국말을 배우고 뭘 배우고들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배운 앎을 우리 삶에서 얼마나 ‘지구 이웃을 살리고 지키는 가운데’ ‘무한정한 개발 만능주의’가 아니며 사람만 으뜸이라는 생각을 털어내며 모든 목숨붙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일을 하는 데에 쓰고 있을까요.

 

 정부는 ‘신지식인’을 들먹입니다. ‘지식창출산업’이 어떻다느니 하고 떠듭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잘난 지식인도 하루 밥 세 끼니를 안 주면 “신지식인이고 개나발이고 나 그거 안 한다”고 할 터이며, 하루 잠 잘 곳을 안 주고 길바닥에서 자라고 하거나 입을 옷 안 주고 알아서 겨울을 나라고 하면 이때에도 “지식창출이고 개나발이고 옷을 입고 잠을 자야 하지 나 그거 못한다” 하고 외치겠지요.

 

 우리는 ‘개나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지식인도 안 됩니다. 그저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 문화를 더 잘 일구고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았다는 발자국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무덤조차 쓸 까닭이 없습니다. 납골당을 만들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죽었을 때에는 흙으로 돌아가 지구라는 목숨보따리가 새 숨을 쉴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비닐이나 플라스틱이란 쓰레기는 썩어서 없어지지 않고 발자국이 끝까지 남아 두고두고 이어지기에 말썽거리가 됩니다. 핵 폐기물이 문제가 되는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한때 즐겁게 쓴 ‘원자력 발전’이지만 몇 천 해 몇 만 해 동안 사라지지 않고 발자국을 남기는 엄청난 쓰레기덩어리이기에 나쁘다고 합니다. 몇 만 해 동안 어느 한 군데도 다치지 않도록 지켜야 할 귀찮은 쓰레기덩이가 됩니다.

 

 지식창출 산업이란 이처럼 발자국을 남길 뿐 아니라 지구자원을 없애기만 하고 지구 목숨붙이 목줄을 죄는 일입니다. 그래서 농사짓는 일이야말로 발자국을 안 남기며 다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만들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모두 개발만능 자본주의가 바탕에 깔린 서구 교육을 받았기에 코웃음을 칩니다. 그러고는 저마다 한 마디씩 합니다. “웃기고들 있네. 깝치고 있네. 잘난 척을 하네.”

 

 입시 지옥이 있는 까닭이란 이러한 얼개를 이어가면서 기득권 세력이 당신들 안락함을 더 단단히 뿌리내리려는 속셈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부리기만 하면 ‘개발할 수 있다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를 이러한 신화로 끌어당겨서 참을 참 그대로 못 보도록 눈을 가리고 거짓을 거짓 그대로 알아채지 못하도록 귀를 막고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생각을 깨치고 마음을 여는 사람들마저 이 땅 지구를 함께 망가뜨리는 일을 하도록 내몰고야 맙니다.

 

 저는 고졸자입니다. 대졸자가 되거나 대학원 졸업자가 되면 이렇게 지구를 무너뜨리고 죽이는 일밖에 할 수 없기에 지식장사꾼이 안 되려고 대학교를 때려치웠습니다. 이제까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나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힘”을 길러 갈 생각입니다. 나 스스로 내가 먹고 입고 살 모두를 짓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돈’으로 모든 일을 풀 수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돈으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는지 몰라도, 사람 삶은 돈으로 굴러가지 않음을 뒤늦게라도 깨달을 노릇입니다. 돈이란 코풀 휴지조차 못 되는 줄 알아차려야 합니다. 대학교 졸업장은 똥닦을 똥종이조차 못 되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으려면 ‘졸업장이라는 보증수표이자 출입증’ 신화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를 씻어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황금만능주의를 우리한테 불어넣는 비틀린 대한민국 사회 얼개를 바로보아 이를 뜯어고쳐 사람다운 삶을 꾸릴 수 있는 열린 마을 문화로 내 삶터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다음주부터 일할 ㅂ출판사는 이러한 삶 매무새를 다스리고 이끌면서 슬기로운 얼과 넋을 가꾸는 책을 펴내는 곳이라 마음이 끌립니다. 이곳에서 아무런 학벌과 연줄이 없이 부지런히 일할 수 있으니 반갑기도 합니다.

 

 얻으면 얻은 만큼 나누는 삶을 즐겨야 합니다. 사람은 목숨껏 살았으면 이 목숨껏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될 줄 알아야 합니다. 욕심을 부리면 다른 사람이 얻을 몫까지 빼앗아 가는 줄을 바로보고, 지구 삶터에서 개발만능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려 할 때에는 우리 뒷사람들이 오순도순 살아갈 땅을 죽이는 꼴이 되는 한편 우리도 함께 죽고 뭇목숨도 같이 죽으며 뒷사람들은 아예 발조차 못 붙이고 마는 줄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러한 일은 대학교 졸업장 신화에서 홀가분할 수 있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눈뜨고 볼 수 있다고 느낍니다.

 

 고졸자 신분으로 ‘학력제한 없음’에 따라 처음으로 일자리를 얻었다는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신나게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요 며칠은 신문사지국을 떠나 새 살림집으로 짐을 옮겨야 하느라 몹시 바빠서 미루고 미루다가 이삿짐을 다 옮긴 오늘 저녁, 책만 가득한 한칸방에서 물그릇 하나 떠 놓고 눈물을 떨구며 글을 맺습니다.

 

 1999년 8월 7일, 흙.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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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1-19 11:50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파란놀 2013-01-19 11:5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유다다 님 또한 새해 즐거운 복과 사랑 듬뿍 누리셔요~
 

사진 2

 


별을 보고 싶은 사람은
별을 보며 살고,

 

무지개 찾고 싶은 사람은
무지개 찾아 살고,

 

시냇물 마시고 싶은 사람은
시냇물 마시며 살고,

 

하늘을 날고 싶은 사람은
하늘 날 길 걸으며 살아,

 

스스로
빛이 된다.

 


4345.12.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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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이야기가 있기에
빛이 싱그러워요.

 

삶이 있기에
빛이 밝아요.

 

사랑이 있기에
빛이 환해요.

 

꿈이 있기에
빛이 좋아요.

 

 

사진은 빛을 찍고
사진은 빛으로 찍어요.

 

그러니까,
사진은
이야기와 삶과 사랑과 꿈을
즐겁게 담아요.

 


4345.12.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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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나무

 


  도시를 짓고자, 사람들은 숲을 민다. 도시를 지으며, 사람들은 나무 한 그루 없이 메마른 곳에서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에, 아직 도시로 짓지 않은 시골을 찾아가서 나무를 파낸다. 그러고는 도시에 새로 나무를 박는다.


  도시에서는 나무를 심지 않고, 나무씨앗을 뿌리지 않으며, 나무가 씨앗을 떨굴 적에 씨앗이 깃들어 자랄 빈 흙땅이 없다. 도시는 ‘나무박기’를 한다. 시골에서 예쁘게 자라던 나무를 함부로 파내어 찻길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줄줄이 나무박기를 한다. 뿌리뽑힌 채 고향을 잃어야 하는 나무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먹으며 시름시름 앓는다. 해마다 공무원들은 나뭇가지를 뭉텅뭉텅 자른다. 핑계를 대기론, 전봇대 전깃줄 건드린다며 나뭇가지를 베지만, 나무는 전깃줄을 안 건드린다. 괜히 사람들 스스로 나무를 괴롭히려고 할 뿐이다.


  도시로 와야 하는 나무들은 밤에 잠들지 못한다. 밤이면 밤마다 찻길을 환하게 비추려고 등불을 켜니까, 나무는 답답해서 잠들지 못한다. 사람들은 나무 옆에 담배를 버리고 쓰레기를 버린다. 가게 일꾼은 나뭇줄기에 못을 박아 걸개천을 걸기도 하고, 운동한다며 이녁 등판을 나뭇줄기에 쿵쿵 때리기도 한다.


  나무는 천 해나 이천 해쯤 살아가는데, 때로는 오천 해나 만 해를 살아가는데, 고향인 시골을 빼앗기며 도시 한복판 아스팔트 찻길 가장자리로 박히며 줄기가 자꾸자꾸 뭉텅뭉텅 잘리는 나무는 서른 해조차 살기 힘들다. 왜냐하면, 도시는 끝없이 재개발을 하기에, 이제 서른 해쯤 산 나무들은 새삼스레 밑둥을 잘리며 죽어야 한다.


  여섯 살 큰아이가 도시나무를 보다가 살살 줄기를 쓰다듬는 모습을 떠올린다. 나 또한 큰아이처럼 도시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살살 줄기를 쓰다듬곤 한다. 아프지? 힘들지? 고단하지? 그래도 너는 봄이 되면 이곳에서도 푸른 잎사귀 내놓고, 가을이면 곱게 물든 나뭇잎 흩뿌리는구나. 나무야, 나무야, 사랑도 이야기도 꿈도 모두 곱게 자라는 나무야. 사람들은 언제쯤 도시짓기를 멈추면서 삶짓기를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스스로 삶짓기를 하지 못하는 오늘날, 너는 이 가녀리고 딱한 사람들한테 싱그러운 그늘을 베풀려고, 아픈 몸 달래며 씩씩하게 새 가지를 뻗고 새 잎사귀로 노래를 하니?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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