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아이 - 에드워드 고리 시리즈 에드워드 고리 시리즈 10
플로렌스 패리 하이드 지음, 강은교 옮김, 에드워드 고리 그림 / 두레아이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1

 


마음속 사랑을 보살펴 주셔요
― 줄어드는 아이
 플로렌스 하이드 글,에드워드 고리 그림,강은교 옮김
 두레아이들 펴냄,1978.9.1./6900원

 


  둘째 아이가 처음 우리 식구한테 찾아온 날을 더듬어 봅니다. 둘째 아이가 찾아오고부터 우리 식구 삶은 새삼스레 달라졌습니다. 첫째 아이가 찾아올 적에도 크게 달라졌으니, 둘째 아이가 찾아온 뒤에도 크게 달라질밖에 없습니다만, 아이를 하나 돌볼 때하고 둘 돌볼 때에는 참 다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몸은 비록 꽤나 고되거나 고단하달지라도, 셋째 아이나 넷째 아이도 낳아 갓난쟁이 뒤치닥거리부터 차근차근 다독이면서 함께 살아가면 나 스스로 더 아버지답고 사람다운 몸가짐을 건사하겠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아이들을 한결같이 귀여워 하거나 예뻐 하는 밑뿌리가 어디에 있을 만한가를 살갗으로 헤아린달까요.


.. “줄어들고 있단 말예요. 점점 작아지고 있다니까요.” 트리혼이 대답했어요. “네가 꼭 줄어드는 체하고 싶다면 맘대로 하려무나.”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그렇지만 식탁에선 그러면 못써.” ..  (12쪽)

 


  첫째 아이는 거의 어머니 곁에 붙어 안 떨어지느라, 밤잠을 재울 적에도 퍽 힘겨웠던 지난일을 떠올립니다. 이와 달리 둘째 아이는 젖 물릴 때를 빼고는 으레 아버지가 안고 어르며 돌보듯 지내서 그러한지, 아버지가 낮잠을 재우고 밤잠을 재웁니다. 젖을 거의 다 뗀 요즈음, 밤새 둘째 아이는 아버지한테 찰싹 달라붙어 잡니다. 깊이 잠들었겠거니 여기며 쉬를 하러 일어난다든지, 아버지 일인 글쓰기를 하자며 깊은 새벽에 살그마니 일어난다든지 하면, 둘째 아이는 어느새 알아채고는 울먹울먹하다가는 으앙 하고 웁니다. 엉금엉금 기어 아버지 있는 데로 찾아와서 무릎에 안기거나 눕습니다. ‘녀석아, 반듯한 자리에 누워야 허리도 한결 시원하게 풀리지 않겠니?’ 하고 달래지만, 둘째 아이는 아버지 무릎이 더 좋답니다. 하기는, 첫째 아이도 아직 아버지 무릎에 눕기를 더 좋아합니다. 동생이 아니라면, 첫째 아이는 아마 아버지 무릎을 혼자 차지하면서 놀겠지요.


  한 시간 즈음 둘째 아이를 무릎에 누인 채 글을 씁니다. 허벅지와 무릎이 지릿지릿 저린다 싶으면, 둘째 아이를 가만히 살핍니다. 잠자리로 옮겨도 될 만한가 들여다봅니다. 살살 안아 잠자리로 옮깁니다. 눕히기 무섭게 다시 으앙 하며 보채거나 달라붙으면 하는 수 없이 또 한 시간 더 눕힙니다. 이러기를 두 차례쯤 되풀이하면 글쓰기이고 뭐고 더는 이을 기운이 안 남습니다. 나도 아이 곁에 누워 잠을 부를밖에 없습니다.


  너희 둘 다 아버지 무릎이 그리도 좋니? 그래, 너희 둘 다 아버지 무릎도 좋고 어머니 무릎도 좋지? 아버지 등짝도 좋고 어머니 등짝도 좋지? 아버지 가슴도 좋고 어머니 가슴도 좋지?


  그래, 너희 몸뚱이 아직 조그마할 적에 많이많이 안기렴. 너희 몸무게 아직 가벼울 적에 자주자주 누우렴. 너희한테 침대가 되어 주마. 너희한테 베개가 되어 주마. 너희한테 말이 되어 주마. 참말, 너희 어버이로 살아가마.


.. “의자 위에 올라가는 걸 엄마는 못 참는다는 거 알지, 얘야.” 엄마가 소리치셨어요. 그리고 엄마는 먼지를 닦으러 거실로 가셨어요. 트리혼은 돼지 저금통을 찬장 서랍 맨 아래 칸에 놔두었어요. ‘이렇게 해 두면 내가 아무리 작아지더라도 상관없이 언제나 손이 닿겠지’라고 꼬마는 생각했어요 ..  (24쪽)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늘 바라보고 마주하면서 함께 놀 때에 서로 즐겁다고 느낍니다. 아이도 어른도 방바닥에 드러누워 게으름을 피울 만합니다. 마당 평상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할 만합니다. 천천히 숲길이나 들길을 걸을 만합니다. 책을 펼쳐 놀거나, 공책에 글씨쓰기 놀이를 누릴 만합니다.


  내 머리에도 아이 머리에도 지식조각이 깃들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이런 사건과 저런 사고 이야기를 머리에 담을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이런 정치꾼 저런 재벌기업 이야기를 굳이 머리에 넣을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사랑스러운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아름다운 벗님이 꿈꾸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 즐겁구나 싶습니다.


  맑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즐겁습니다. 멧새 노랫소리와 날갯짓을 바라보면 즐겁습니다. 아이랑 신나게 구르며 뛰놀면 즐겁습니다. 노래를 한껏 뽑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들면 즐겁습니다.


  꼭 이것을 해야 하지 않아요. 반드시 저것을 이루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살아갈 길을 걸어가면 즐거워요.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일을 하면 사랑스러워요. 즐거움을 찾아 즐겁게 누리는 삶이고, 사랑을 살피며 사랑을 나누는 삶이에요.


  일곱 살이 되었대서 왜 학교에 가야 할까요. 초등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곳인가요.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곳인가요. 교사는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거나 보여줄 수 있나요. 교과서와 수업과 교칙을 넘어, 삶과 사랑과 꿈을 들려주거나 보여주거나 나누는 학교는 몇 군데쯤 있나요. 시골에서 시골사람으로 살아갈 아이한테 시골살이를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나누는 학교는 한국에 한 군데라도 있나요.


.. 텔레비전 위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어요. 트리혼의 얼굴도 연두색이었어요. 귀도 연두색이었어요. 온 몸뚱이가 연두색이어어요. 트리혼은 한숨을 쉬었어요. ‘이건 ……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는 게 낫겠어’라고 꼬마는 생각했어요. ‘내가 아무 소리 않으면 아무도 그걸 알아채지 못할 거야.’ ..  (62쪽)

 

 


  플로렌스 하이드 님 글하고, 에드워드 고리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줄어드는 아이》(두레아이들,1978)를 읽습니다. 1978년에 처음 한국말로 옮긴 이 작은 그림책은 2007년에 새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납니다. 1978년에도 새삼스럽다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이었고, 2007년에도 새롭다 싶은 이야기를 깨우치는 그림책입니다. 그러나, 이 땅 어른들은 이녁 아이가 줄어드는 모습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이 가슴속에 깃든 빛줄기가 자꾸 줄어들다가 그예 사라지고 마는 모습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 나라 어버이들은 당신 아이가 작아지는 모습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이 마음속에 서린 꿈이랑 사랑이 자꾸 작아지다가는 그만 없어지는 모습을 알아채지 못해요.


  아이들은 맑은 빛을 깨워서 환하게 빛날 숨결입니다. 아이들은 따스한 사랑을 북돋우면서 곱게 피어날 꽃송이입니다. 우리 어른은 어릴 적부터 언제나 맑은 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일 때에 즐겁습니다. 우리 어른은 어린 나날부터 늘 따스한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하며 흐드러지는 목숨일 때에 기쁩니다.


  전쟁무기 아닌 호미와 낫과 쟁기를 들어요. 펜대나 컴퓨터 아닌 숲과 밭을 보살펴요. 신문이 아닌 하늘을 바라봐요. 텔레비전이 아닌 옆지기 얼굴과 아이들 얼굴과 이웃들 얼굴을 마주해요. 우리가 선 자리를 환한 눈빛으로 깨달아요.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1978년에 처음 나온 책 모습 (선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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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혼자 떠먹을래

 


  두 돌을 꽉 채우지 않았으나 세 살이 된 산들보라, 어머니랑 아버지랑 누나가 떠서 먹이는 밥도 싫지 않으나, 이제 혼자서 씩씩하게 떠먹고 싶어라. 그래, 흘리면서 숟가락질 하고, 천천히 손가락힘을 길러야겠지. 배불리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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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서재 '알라디너의 선택'이 요즈음 들어 아주 '알라딘 선택'으로 바뀐 듯하다. 이렇게 한들 알라딘책방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보일 턱이 없다. 부디, 아름다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옳게 깨닫기를 바란다 ..

 

..

 

‘책방 단골’ 되기


  내가 자주 드나드는 어느 헌책방에서 어느 단골 할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이 헌책방에서 ‘단골’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두 가지를 넘어서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첫째, 스무 해 넘게 드나들 것. 둘째, 삼천 권 넘게 책을 사서 읽을 것.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을 무렵, 나는 이 헌책방에 열다섯 해쯤 드나들었고 그무렵까지 이 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은 사천 권쯤 되었다. 2013년을 지나며 이 헌책방을 드나든 햇수는 스물두 해가 되었고, 이곳에서 장만한 책은 어느덧 오천 권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나도 어느 단골 할아버지처럼 ‘아무개 헌책방 단골’이라는 이름을 씩씩하고 즐겁게 쓴다.


  ‘단골’이라는 이름을 다른 책방에서도 똑같이 느낀다. 헌책방에서만 “스무 해 삼천 권”은 아니라고 느낀다. 새책방에서도 “스무 해 삼천 권” 잣대를 채울 수 있으면, 비로소 ‘책방 단골’이라 할 만하다고 느낀다. 그저 책만 많이 사들여 준대서 단골이 되지 않는다. 오래도록 마실을 하면서 삶을 함께 누릴 때에 비로소 단골이 된다. 한편, 오래도록 들락거리는 하되, 책을 사서 읽지 않는다든지, 또는 책방에 찾아와서 선 채로 책을 죽 읽기라도 하지 않는다면, 서른 해나 마흔 해를 들락거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단골’은 못 된다. 그저 ‘책손’이나 ‘책나그네’ 또는 ‘책방 손님’이나 ‘책방 나그네’가 될 뿐이다.


  나한테는 ‘단골 헌책방’이 여럿 있다. 스무 해 넘게 다니면서 삼천 권 넘게 책을 장만한 헌책방을 꼽자면, 인천 아벨서점·서울 뿌리서점·서울 신고서점·서울 골목책방·서울 정은서점·서울 진호서점, 이렇게 여섯 군데 있다. 스무 해 넘게 들락거렸지만 아직 삼천 권 넘게 책을 장만하지 못한 곳이 있고, 아직 스무 해 드나들지 못했으나 삼천 권 넘게 책을 장만한 곳이 있다. 새책방은 어떨까. 인천 대한서림은 국민학교 적부터 드나들었으나 고향을 떠나며 발길을 끊었고, 서울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은 우리 식구 두멧시골로 삶터를 옮기면서 찾아가기 어렵다.


  두멧시골에서 살아가며 인터넷책방에서 책을 꽤 장만한다. 엊그제까지 인터넷책방 알라딘에서 책을 몇 권쯤 장만했는가 하고 살펴보니 천오백 권이 조금 넘는다. 앞으로 몇 해쯤 지나면 인터넷책방 알라딘에서 장만하는 책 권수가 삼천 권을 넘으리라. 그런데, 인터넷책방 알라딘은 앞으로 열 몇 해를 더 버틸 수 있을까. 스스로 아름다운 ‘책방’으로서 이 자리를 지킬 만할까.


  헌책방이나 새책방에서 ‘단골’로 지내는 ‘책 할아버지’들 말씀을 때때로 듣곤 하는데, 당신들이 일흔이나 여든 나이에도 날마다 책방마실 즐기면서 책을 사서 읽는 까닭은 ‘지식쌓기’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삶이 즐겁기에 늘 새로 책을 사서 읽는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당신들이 단골로 삼는 책방들은 ‘돈벌기’에만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책 할아버지’들은 인터넷을 할 줄 아실까? 글쎄, 할 줄 아는 분이 더러 있을 테지만, 애써 인터넷까지 할 틈을 내지는 않으리라 느낀다. ‘책 할아버지’들은 책을 읽을 때뿐 아니라 책을 고를 때에도 당신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작거리기를 더 즐기고, 책방 바람 쐬기를 더 좋아하며, 책방으로 오가는 길을 천천히 걷는 하루를 더 누리시니까.


  그나저나, 인터넷책방 알라딘은 어디로 가는가. 스스로 아름다운 책방으로 나아갈 생각인가, 아니면 ‘돈벌이’에 사로잡힌 채 제 무덤을 팔 생각인가.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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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책읽기

 


  나는 세탁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세탁기’라는 이름조차 안 좋아하는데, ‘빨래’라 하는 한국말을 아주 잊어버리도록 내몰기까지 하는 이런 이름 붙은 기계가 나한테 달가울 수 없다. 그러나, 굳이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낀다. 빨래기계를 쓰고 싶은 이들은 즐겁게 잘 쓰면 될 노릇이다. 그런데, 빨래기계를 쓴대서 집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빨래기계를 쓰며 빨래를 맡는 이는 오늘날에도 거의 어머니 또는 가시내요, 아버지 또는 사내가 빨래기계를 도맡아 쓰는 일은 퍽 드물다. 게다가, 빨래기계가 빨래를 다 했어도, 촉촉히 젖은 빨래를 바깥에 내다 널어 보송보송 말리는 몫, 빨래줄이나 빨래대에서 다 마른 옷가지를 걷어 차곡차곡 개는 몫, 갠 옷가지를 옷장에 찬찬히 갈무리하는 몫 들은 누가 맡는가. 이 집일을 즐겁게 맡으면서 해맑게 웃는 아버지 또는 사내는 얼마나 있을까.


  예나 이제나 집일을 도맡다시피 하는 어머니 또는 가시내한테 빨래기계 하나 선물해 준대서 집일 짐이 줄지 않는다. 빨래기계를 쓰면 옷가지 몇 벌만 빨더라도, 어쨌든 거의 한 시간씩 돌아가야 한다. 손으로 빨래를 할 때에는 옷가지 몇 벌이라면 10분이 채 안 걸리며 끝날 노릇이지만, 빨래기계를 쓰면 다 끝날 때까지 다른 일을 하며 기다려야 하고, 다 된 뒤에 꺼내서 널어야 한다. 집일을 하며 쉴 겨를을 안 준다. 빨래기계가 빨래를 다 한 뒤에 깜빡 잊으면, 빨래를 애써 했어도 말리지 못하니, 도루묵이 되기도 하는데, 하루쯤 빨래를 잊고 빨래기계에 두면 퀴퀴한 냄새가 배고 말아 다시 빨아야 하곤 한다.


  모처럼 빨래기계를 써서 빨래를 한 어제 낮, 다 마친 빨래를 마당에 내다 너는데, 몇몇 옷가지는 때가 제대로 빠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일까. 기계는 옷가지 하나하나 구석구석 살피며 복복 비벼 주지 않을 테니까. 물은 물대로 많이 쓰고, 전기는 전기대로 많이 쓰며, 겨를은 겨를대로 많이 쓰는 빨래기계를 쓰는 일이란 내 삶에 어떻게 이바지를 할까. 빨래기계를 쓰는 사람들은 일손이 줄어 즐겁다고 여길까. 일손이 줄었다고 여기는 사람은, 줄어든 일손만큼 삶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가꾸거나 북돋울까. 집안일이 줄었다고 여기는 살림꾼은 그만큼 숲마실을 누리거나 책읽기를 누리거나 아이들과 더 예쁘게 하루를 누릴 수 있는가.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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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구름낮

 


  추위에 오들오들 떤다고 하는 한겨울이라지만, 바람이 조용한 한낮, 작은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평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니 따뜻하다. 큰아이는 마당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리고 뛰면서 논다. 배앓이를 한 작은아이는 누나하고 함께 달리거나 뛰지 않고, 아버지 무릎에 앉아 함께 겨울 해바라기를 한다.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고, 먼 멧자락을 바라본다.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잎사귀를 바라본다. 좋은 겨울이구나. 참 따스한 시골이구나.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은 무척 따스하면서 포근한 마을이구나. 한겨울에도 해바라기를 하며 놀 수 있다니.


  빨래가 잘 마른다. 때때로 뒤집어 더 잘 마르도록 한다. 마을 들고양이는 마늘밭이랑 풀밭 언저리에서 하품을 하며 해바라기를 한다. 겨울은 아직 안 끝났으나, 봄이 멀지 않았다고 느낀다. 햇살은 눈부시고 하늘은 파랗다. 멧새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노래를 흩뿌린다. 이웃 할머니가 머리에 무언가 이고 지나간다. 평화란 무엇일까. 군대가 있어야 평화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살을 비벼야 사랑일까. 두 아이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겨울 구름낮을 실컷 누린다.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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