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혼자 떠먹을래

 


  두 돌을 꽉 채우지 않았으나 세 살이 된 산들보라, 어머니랑 아버지랑 누나가 떠서 먹이는 밥도 싫지 않으나, 이제 혼자서 씩씩하게 떠먹고 싶어라. 그래, 흘리면서 숟가락질 하고, 천천히 손가락힘을 길러야겠지. 배불리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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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서재 '알라디너의 선택'이 요즈음 들어 아주 '알라딘 선택'으로 바뀐 듯하다. 이렇게 한들 알라딘책방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보일 턱이 없다. 부디, 아름다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옳게 깨닫기를 바란다 ..

 

..

 

‘책방 단골’ 되기


  내가 자주 드나드는 어느 헌책방에서 어느 단골 할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이 헌책방에서 ‘단골’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두 가지를 넘어서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첫째, 스무 해 넘게 드나들 것. 둘째, 삼천 권 넘게 책을 사서 읽을 것.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을 무렵, 나는 이 헌책방에 열다섯 해쯤 드나들었고 그무렵까지 이 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은 사천 권쯤 되었다. 2013년을 지나며 이 헌책방을 드나든 햇수는 스물두 해가 되었고, 이곳에서 장만한 책은 어느덧 오천 권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나도 어느 단골 할아버지처럼 ‘아무개 헌책방 단골’이라는 이름을 씩씩하고 즐겁게 쓴다.


  ‘단골’이라는 이름을 다른 책방에서도 똑같이 느낀다. 헌책방에서만 “스무 해 삼천 권”은 아니라고 느낀다. 새책방에서도 “스무 해 삼천 권” 잣대를 채울 수 있으면, 비로소 ‘책방 단골’이라 할 만하다고 느낀다. 그저 책만 많이 사들여 준대서 단골이 되지 않는다. 오래도록 마실을 하면서 삶을 함께 누릴 때에 비로소 단골이 된다. 한편, 오래도록 들락거리는 하되, 책을 사서 읽지 않는다든지, 또는 책방에 찾아와서 선 채로 책을 죽 읽기라도 하지 않는다면, 서른 해나 마흔 해를 들락거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단골’은 못 된다. 그저 ‘책손’이나 ‘책나그네’ 또는 ‘책방 손님’이나 ‘책방 나그네’가 될 뿐이다.


  나한테는 ‘단골 헌책방’이 여럿 있다. 스무 해 넘게 다니면서 삼천 권 넘게 책을 장만한 헌책방을 꼽자면, 인천 아벨서점·서울 뿌리서점·서울 신고서점·서울 골목책방·서울 정은서점·서울 진호서점, 이렇게 여섯 군데 있다. 스무 해 넘게 들락거렸지만 아직 삼천 권 넘게 책을 장만하지 못한 곳이 있고, 아직 스무 해 드나들지 못했으나 삼천 권 넘게 책을 장만한 곳이 있다. 새책방은 어떨까. 인천 대한서림은 국민학교 적부터 드나들었으나 고향을 떠나며 발길을 끊었고, 서울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은 우리 식구 두멧시골로 삶터를 옮기면서 찾아가기 어렵다.


  두멧시골에서 살아가며 인터넷책방에서 책을 꽤 장만한다. 엊그제까지 인터넷책방 알라딘에서 책을 몇 권쯤 장만했는가 하고 살펴보니 천오백 권이 조금 넘는다. 앞으로 몇 해쯤 지나면 인터넷책방 알라딘에서 장만하는 책 권수가 삼천 권을 넘으리라. 그런데, 인터넷책방 알라딘은 앞으로 열 몇 해를 더 버틸 수 있을까. 스스로 아름다운 ‘책방’으로서 이 자리를 지킬 만할까.


  헌책방이나 새책방에서 ‘단골’로 지내는 ‘책 할아버지’들 말씀을 때때로 듣곤 하는데, 당신들이 일흔이나 여든 나이에도 날마다 책방마실 즐기면서 책을 사서 읽는 까닭은 ‘지식쌓기’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삶이 즐겁기에 늘 새로 책을 사서 읽는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당신들이 단골로 삼는 책방들은 ‘돈벌기’에만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책 할아버지’들은 인터넷을 할 줄 아실까? 글쎄, 할 줄 아는 분이 더러 있을 테지만, 애써 인터넷까지 할 틈을 내지는 않으리라 느낀다. ‘책 할아버지’들은 책을 읽을 때뿐 아니라 책을 고를 때에도 당신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작거리기를 더 즐기고, 책방 바람 쐬기를 더 좋아하며, 책방으로 오가는 길을 천천히 걷는 하루를 더 누리시니까.


  그나저나, 인터넷책방 알라딘은 어디로 가는가. 스스로 아름다운 책방으로 나아갈 생각인가, 아니면 ‘돈벌이’에 사로잡힌 채 제 무덤을 팔 생각인가.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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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책읽기

 


  나는 세탁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세탁기’라는 이름조차 안 좋아하는데, ‘빨래’라 하는 한국말을 아주 잊어버리도록 내몰기까지 하는 이런 이름 붙은 기계가 나한테 달가울 수 없다. 그러나, 굳이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낀다. 빨래기계를 쓰고 싶은 이들은 즐겁게 잘 쓰면 될 노릇이다. 그런데, 빨래기계를 쓴대서 집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빨래기계를 쓰며 빨래를 맡는 이는 오늘날에도 거의 어머니 또는 가시내요, 아버지 또는 사내가 빨래기계를 도맡아 쓰는 일은 퍽 드물다. 게다가, 빨래기계가 빨래를 다 했어도, 촉촉히 젖은 빨래를 바깥에 내다 널어 보송보송 말리는 몫, 빨래줄이나 빨래대에서 다 마른 옷가지를 걷어 차곡차곡 개는 몫, 갠 옷가지를 옷장에 찬찬히 갈무리하는 몫 들은 누가 맡는가. 이 집일을 즐겁게 맡으면서 해맑게 웃는 아버지 또는 사내는 얼마나 있을까.


  예나 이제나 집일을 도맡다시피 하는 어머니 또는 가시내한테 빨래기계 하나 선물해 준대서 집일 짐이 줄지 않는다. 빨래기계를 쓰면 옷가지 몇 벌만 빨더라도, 어쨌든 거의 한 시간씩 돌아가야 한다. 손으로 빨래를 할 때에는 옷가지 몇 벌이라면 10분이 채 안 걸리며 끝날 노릇이지만, 빨래기계를 쓰면 다 끝날 때까지 다른 일을 하며 기다려야 하고, 다 된 뒤에 꺼내서 널어야 한다. 집일을 하며 쉴 겨를을 안 준다. 빨래기계가 빨래를 다 한 뒤에 깜빡 잊으면, 빨래를 애써 했어도 말리지 못하니, 도루묵이 되기도 하는데, 하루쯤 빨래를 잊고 빨래기계에 두면 퀴퀴한 냄새가 배고 말아 다시 빨아야 하곤 한다.


  모처럼 빨래기계를 써서 빨래를 한 어제 낮, 다 마친 빨래를 마당에 내다 너는데, 몇몇 옷가지는 때가 제대로 빠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일까. 기계는 옷가지 하나하나 구석구석 살피며 복복 비벼 주지 않을 테니까. 물은 물대로 많이 쓰고, 전기는 전기대로 많이 쓰며, 겨를은 겨를대로 많이 쓰는 빨래기계를 쓰는 일이란 내 삶에 어떻게 이바지를 할까. 빨래기계를 쓰는 사람들은 일손이 줄어 즐겁다고 여길까. 일손이 줄었다고 여기는 사람은, 줄어든 일손만큼 삶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가꾸거나 북돋울까. 집안일이 줄었다고 여기는 살림꾼은 그만큼 숲마실을 누리거나 책읽기를 누리거나 아이들과 더 예쁘게 하루를 누릴 수 있는가.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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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구름낮

 


  추위에 오들오들 떤다고 하는 한겨울이라지만, 바람이 조용한 한낮, 작은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평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니 따뜻하다. 큰아이는 마당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리고 뛰면서 논다. 배앓이를 한 작은아이는 누나하고 함께 달리거나 뛰지 않고, 아버지 무릎에 앉아 함께 겨울 해바라기를 한다.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고, 먼 멧자락을 바라본다.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잎사귀를 바라본다. 좋은 겨울이구나. 참 따스한 시골이구나.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은 무척 따스하면서 포근한 마을이구나. 한겨울에도 해바라기를 하며 놀 수 있다니.


  빨래가 잘 마른다. 때때로 뒤집어 더 잘 마르도록 한다. 마을 들고양이는 마늘밭이랑 풀밭 언저리에서 하품을 하며 해바라기를 한다. 겨울은 아직 안 끝났으나, 봄이 멀지 않았다고 느낀다. 햇살은 눈부시고 하늘은 파랗다. 멧새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노래를 흩뿌린다. 이웃 할머니가 머리에 무언가 이고 지나간다. 평화란 무엇일까. 군대가 있어야 평화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살을 비벼야 사랑일까. 두 아이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겨울 구름낮을 실컷 누린다.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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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감은빛님의 "도서정가제에 대한 오해와 개인 의견"

 

 

감은빛 님이 쓰신 글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조금만 생각하고 살펴도
누구나 알아채고 알아낼 수 있는 대목,
아니 기본으로 깨닫고 헤아릴 대목이라고 느껴요.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이조차
제대로 살피거나 헤아리지 않은 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느니 찬성하느니 하면서
편가르기를 하면서 힘싸움 하는 얼거리를 몰아갑니다.

 

책값도 할인율도 무엇도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대수로운 한 가지는 오직 하나,
'책'이지요.

 

나는 내가 쓴 책들이 여러 해 지났대서
이 책들을 출판사에서 20% 넘게 에누리해서 판다면
작가인 나 스스로 그 출판사하고는
절필을 합니다. 곧, 내가 책을 낸 출판사는
내 책이 아닌 다른 작가 책이라 하더라도
펴낸 지 여러 해 지났어도 20% 넘는 에누리를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게 '책'이니까요.

 

구간할인이라는 핑계로 반값으로 인터넷책방에서 팔기도 하는 책이 있는데
<난 쏘 공> 같은 책을 구간할인으로 파는 일이란 없겠지요.
'책'이니까요.

 

<몽실 언니> 같은 책을 구간할인 적용시켜서 아이들한테 읽혀야 할까
하고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책다운 책, 책으로 읽을 책, 책을 읽을 우리들 몸가짐,
이 모두를 어떻게 살펴야 하는가를
스스로 느끼며 올바르게 추스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도서정가제를 놓고 이래저래 여러 단체와 지식인들 말이 많은데,
저는 어느 쪽에도 마음이 안 닿습니다.
모두 '책'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 주의주장만 하는 듯싶더군요.

 

동네서점이 살아날 수 있으려면,
사람들 삶이 먼저 달라져야 하고,
사람들 스스로 돈벌이에 목을 매다는 나날이 아닌
사랑과 꿈을 찾는 나날이 될 수 있어야 해요.

 

귀촌이나 귀농을 하는 사람들조차
책을 안 읽거나 못 읽거든요.
도시에서도 바쁜 사람은 시골에서도 바쁘고 말아요.

 

곧, 시골에서도 느긋한 넋이어야
도시에서도 느긋하게 살아가며
책이든 이웃이든 어깨동무하면서
삶을 빛낼 수 있어요.

 

정부는 핵발전소 늘리기는 그만둔다 하지만
화력발전소를 끔찍하게 짓는 쪽으로 돌아가요.
그런데, 이 대목을 비판할 수 있는 가슴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아무쪼록, 알라딘서재에서
곁길로 새는 주의주장 아닌,
'책'을 한복판에 놓고,
삶을 일구는 이야기를 빚는 목소리가
차츰 솟아날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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