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바라는 쪽글을 받고 이틀쯤 묵혔다가, 오늘 비로소 답글을 보낸다. 그냥 잊고 지나갈까 하다가, 애써 쪽글 보낸 마음을 생각하며, 글 하나 적어 본다. '서평 바라는 책읽기'란 무엇일까.

 

..

 


  쪽글 잘 받았습니다.

 

  즐겁게 애써 내시는 책을 보내 주신다는 뜻은 더없이 고맙습니다. 온누리 모든 책은 아름다운 손길 받아서 태어나잖아요.

 

  그런데, 저는 ‘부탁받는 서평’은 안 써요. 책을 선물받는 일이 더러 있지만, 선물을 받건 안 받건, 그 책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를 살필 뿐, 아름답지 않은 책일 때에는 ‘읽어도 아무 느낌글을 안 쓴다’든지, ‘읽고 나서 쓰는 느낌글에 어떠한 즐거움도 묻어나’기 힘들어요.

 

  저는 ‘서평 쓰는 기계’가 아니랍니다. 저는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을 즐기는 살림꾼’입니다. 어느 선물받은 책은 두 해쯤 지나서야 비로소 느낌글을 쓴 적 있어요. 저로서는, 책읽기보다 아이들과 부대끼는 삶이 더 앞에 있어요. 저한테는, 아름다운 책 읽고 나서도 느낌글 쓰는 일보다 밥을 차리거나 빨래를 하거나 비질이랑 걸레질 하는 일을 더 앞서서 하자는 생각 가득해요. 제가 손수 산 책 가운데에도, 사서 읽은 지 다섯 해가 넘거나 열 해가 지났으나 아직 느낌글 못 쓰는 책도 많아요. 즐겁게 사서 읽고도 스무 해 넘도록 아직 느낌글 안 쓰고 ‘마음으로 묵히며 기다리는’ 책도 무척 많아요.

 

  책을 선물받고 한 주만에 뚝딱 하고 서평을 만드는 일이란 그리 즐겁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보내 주시면 고맙게 받고 싶습니다. 마음껏 즐겨야지요. 언제나 즐거움과 사랑으로 책을 빚으시기를 빌어요.


― (최종규)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973번지 동백마을 (548-892)


  저희 집은 시골집입니다. 저한테는 책소포나 택배나 편지가 많이 옵니다. 등기 아닌 일반우편으로 부치셔도 책이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일 없어요. 고흥군 우체국 배달일꾼은 다 저를 알아요. 시골에서는 꽃샘추위 수그러들며 봄바람 가득해요. 봄내음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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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눈물

 


  좋아하는 책 하나 읽고 좋아하는 느낌글 하나 적바림하면서 살짝 눈물 핑 돕니다. 이 느낌글 읽는 사람들도 내 좋은 이야기 살며시 깃들 수 있기를 바라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 한 방울. 느낌글 쓰면서 눈물 두 방울. 느낌글 내 글방에 띄우면서 눈물 세 방울.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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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잡고 구경

 


  지게차 있는 이웃 불러 뒷밭 쓰레기를 파내고 뽕나무를 세우며 흙을 갈아엎는다. 이동안 아이들이 아버지 곁에 서서 구경한다. 더 가까이 오고 싶으나, 오지 말라 하니, 살짝 떨어진 자리에서 구경한다. 큰아이가 작은아이 손을 잡는다. 작은아이는 큰아이 손을 잡는다. 서로가 서로를 기대고, 서로가 서로를 돌본다. 어버이 하는 일이란 아이들 늘 함께 따라다니며 어울릴 만해야 한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어른들 일이라면, 아이들이 배우거나 받아들이거나 즐길 만하지 못하리라 느낀다. 아이들한테도 즐겁고 반가우면서, 어른들 누구나 즐겁고 반갑게 빛낼 일을 할 때에, 보금자리가 살아나고 살림이 알차면서 사랑이 솟아나리라 느낀다.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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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에 달이 뜬다 목언예원시조선 5
한분순 지음 / 목언예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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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말
[시를 말하는 시 10] 한분순, 《손톱에 달이 뜬다》

 


- 책이름 : 손톱에 달이 뜬다
- 글 : 한분순
- 펴낸곳 : 목언예원 (2012.9.20.)
- 책값 : 1만 원

 


  누구나 시를 씁니다. 시인만 시를 쓰지 않습니다. 누구나 소설을 씁니다. 소설가만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누구나 희곡을 씁니다. 극작가만 희곡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으로 나오는 문학은 으레 문학꾼들이 빚는 글만 다룹니다.


  지난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는 한겨레 여느 시골사람을 만나서 ‘일노래’와 ‘옛이야기’를 갈무리했습니다. 일본 학자는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며 아시아 여러 겨레 일노래와 옛이야기를 갈무리하기도 했어요. 일본은 이녁 일노래와 옛이야기도 퍽 옛날부터 꾸준히 갈무리하고 건사하며 즐깁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이 부르던 일노래란 곧 시입니다. 노래이면서 시입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이 나누던 옛이야기란 곧 소설입니다. 소설이면서 옛이야기입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이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주고받는 이야기가 곧바로 희곡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자락이 모두 희곡입니다.


.. 집 비운 / 문틈 새로 / 햇빛 살금 찾아든다 ..  (빈집)


  오늘날 시인들은 시를 쓰기는 하지만,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시는 곧 노래요, 노래는 곧 시인 줄 살갗으로 못 느끼곤 합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 글줄을 꿸 줄 아는 오늘날 시인이요 문학꾼이기는 한데, 사랑스러운 삶을 노래하며 즐기는 길하고는 자꾸 동떨어지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삶이 재미없어서 글도 재미없을까요? 삶이 고단해서 글도 고단할까요? 삶이 비틀리거나 꼬이거나 엉키기에 글 또한 비틀리거나 꼬이거나 엉킬까요?


  지난날 시골사람은 고단하고 힘든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막대접을 받거나 푸대접을 받으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집살이노래만 있지 않아요. 모내기노래만 있지 않아요. 자장노래만 있지 않아요. 언제나 노래예요. 소를 몰면서 노래를 부르고, 밭자락 돌을 고르며 노래를 불러요. 아궁이에 불을 때며 노래를 부르고, 밥상을 나르거나 나물을 무치면서 노래를 불러요. 물을 길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빨래를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멧골이 깃들어 나무를 하거나 갈퀴질을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다듬이질을 하거나 베틀을 밟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밥을 먹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이래도 노래요 저래도 노래입니다. 삶자락 어느 모습이건 노래로 거듭납니다. 삶결 온갖 모습이 노래로 다시 태어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난날 시골사람은 모든 삶을 오롯이 노래로 빚었어요. 노래로 빚으면서 이야기로 엮습니다. 노래는 입에서 입을 거치며 이어집니다. 이야기는 삶에서 삶을 거치며 물려받습니다.


  굳이 머리를 쥐어짜야 나오는 노래가 아닙니다. 스스럼없이 풀려나오는 노래입니다. 애써 원고지를 구겨야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절로 시나브로 샘솟는 이야기입니다.


.. 너는 무엇 / 나? / ― 글쎄, / 외줄 타는 광대랄까 ..  (광대놀음)


  말을 짜지 않아도 돼요. 삶을 말하면 모두 노래이면서 시예요. 말을 구슬처럼 꿰지 않아도 돼요. 삶을 즐기면 모두 이야기이면서 소설이에요.


  시에서 쓰는 말은 따로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며 누리는 말이 모두 시입니다. 소설에서 써야 하는 말이 딱히 없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나누는 삶이 고스란히 소설에서 쓰는 말이 됩니다.


.. 불그레 두근거리는 / 손톱 위의 / 봉숭아물 ..  (손톱에 달이 뜬다)


  한분순 님 시조시집 《손톱에 달이 뜬다》(목언예원,2012)를 읽습니다. 오랜 나날 시조를 즐긴 한분순 님이라고 합니다. 싯말이 정갈합니다. 시조 얼거리가 가지런합니다. 다만, 구수하거나 소담스럽다는 맛이나 결은 잘 못 느끼겠습니다. 오랜 나날 삶을 빛내고 즐기고 누리고 사랑하고 나눈 모습을 하나하나 적바림하면 될 텐데, 자꾸 말을 구슬처럼 꿰려고 하시는구나 싶습니다. 수수하게 노래하면 될 시요 시조인데, 꼭 어떤 틀을 맞추려고 하시는구나 싶습니다.


  홀가분하게 시를 즐기기를 빌어요. 시는 즐거움입니다. 즐겁게 노래하기에 시입니다. 즐겁게 사랑하고, 즐겁게 살아가니까 시가 저절로 태어나요.


  말구슬놀이는 말구슬놀이일 뿐이에요.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시를 즐기는 예쁜 이웃입니다. 말구슬놀이는 겉보기로는 살짝 재미있을까 싶다가도, 이내 차갑게 식어요. 말구슬놀이로는 삶을 밝히거나 빛내지 못해요. 노래 한 자락으로 삶을 밝혀요. 웃음 한 꾸러미로 삶을 빛내요.

  노래를 불러요. 웃으면서 노래를 흐드러지게 불러요. 그러면 날마다 아름다운 싯말 수없이 길어올릴 수 있으리라 믿어요.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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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 5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17

 


삶·교육·꿈을 흙과 함께
― 우리 마을 이야기 5
 오제 아키라 글·그림,이기진 옮김
 길찾기 펴냄,2012.5.31./8800원

 


  문명 사회라 할수록 흙 일구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문명을 누린다고 할수록 흙을 밟거나 만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도시와 비슷하거나 똑같이 문명을 누린다면, 흙을 구경할 일조차 없곤 합니다. 시골에서도 아파트를 얻어 지낸다든지, 시골에서 여느 공무원이나 회사원으로 일한다면, 또 시골 읍내나 면내 가게에서 일한다면, 이름은 시골살이라 하지만 속모습이나 삶모습은 온통 도시내기 물질문명하고 같습니다.


  스스로 흙을 일구지 않으면, 밥이 어디에서 나오고 물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모릅니다. 스스로 흙을 밟지 않으면, 쓰레기가 흙을 어떻게 더럽히거나 망가뜨리는가를 못 깨닫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흙을 일구는 이들조차 흙을 살리거나 살찌우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은 흙을 밟으며 살아가는 이들마저 흙을 섬기거나 모시거나 돌보지 않기 일쑤예요.


- “우리가 지키려 하는 것은 이제 토지뿐만이 아닙니다. 이 투쟁은 인간의 존엄과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농민의 자긍심을 지키는 싸움이 되었습니다.” (12쪽)
- “이곳 광경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시기가 아무리 늦춰진다 해도, 일이 아무리 엉터리로 진행된다 해도, 내가 공단을 관둔다 해도, 마을을 부수고 농민을 내쫓고, 결국 공항은 완성되겠지.” (17쪽)
- “교장 선생님, 당신네 학교는 방음교사의 건설이 예정돼 있지요?” “소음으로부터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게 어째서 아이들을 지키는 일입니까? 왜 교육환경을 파괴하는 공항 건설에 반대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 바깥 공기가 차단된 방음교사에 아이들을 가둬 놓는 것은 차별이 아니란 말입니까? 공항 건설이 진행되면 등교길이 끊겨서 아이들은 먼 길을 돌아서 다니거나 전학을 해야 해요! 이건 차별 당하지 않는 평등한 교육입니까?” (82∼83쪽)

 


  삶에서 흙이 사라지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삶에서 흙이 없어지면 어떤 빛깔이 될까요.


  시멘트 바닥만 밟아도, 아스팔트 바닥만 있어도 될까요. 흙을 모조리 시멘트로 다진 다음 쇠붙이로 지은 건물에 다시 시멘트로 바닥을 대고서, 이런 곳에 깃들어 살아도 될까요. 흙은 없이 영양소로만 짜깁기를 해서 가공식품 만들어 먹어도 될까요. 흙도 햇볕도 바람도 없이, 오직 영양소와 물 두 가지로만 열매와 곡식을 키워서 먹어도 될까요. 흙 한 뼘 밟지 못하는 짐승을 좁은 우리에 가두어서 항생제와 사료만 먹여서 살을 찌워 잡아먹어도 될까요.


  흙을 누리지 못하는 풀을 먹는대서 풀맛이 나지 않습니다. 흙을 누리지 못하는 짐승을 살만 찌워 잡아먹는대서 고기맛이 나지 않습니다. 흙맛이 없는 풀과 고기는 삶맛이 없습니다. 흙을 마시지 못한 풀과 고기에는 싱그러운 숨결이 깃들지 못합니다. 흙을 누릴 때에 푸른 숨결이 감돕니다. 흙을 밟을 때에 따사로운 넋이 뱁니다.


- “똑똑히 봐 두는 거여, 뎃페이.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죄다.” “할아버지.” “그리고 잘 생각해 보는 겨. 네 할애비랑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서 살아온 세월을. 흉작에 울고 풍작에 웃으면서 조금 조금씩 쌓아 온 이 마을의 역사를. 그것들이 죄다, 이 땅과 함께 콘크리트 밑으로 묻혀버릴지도 모르는 지금 이 사태를 말이여.” (21∼22쪽)
- “선생님은 기동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응? 아니.” “기동대한테 맞거나 발로 차이거나 체포되거나 해 본 적 있어요? 우리 부모님과 형처럼요. 지금 저의 의무는 투쟁에 참가하는 거예요. 전 산리즈카 소년행동대장이니까요. 전 가 보겠습니다!” (26∼27쪽)
- “공항 문제는 정치도 사상도 아니오. 우리들의 생명에 관한 문젭니다. 친권 남용이라고요? 그거 당연한 거 아닙니까? 농가가 바쁠 때는 어린 애들에게도 하루 종일 일을 시켜요! 아이들을 투쟁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강도가 집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 마당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가 어디 있답디까? 그렇게 우리 자식들이 걱정된다면…….” (84∼85쪽)

 

 


  학교에서 흙을 가르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흙짓기 하는 어버이 거의 없는 오늘날인데, 집에서조차 안 하는 흙짓기를 학교에서나마 한 주에 한 시간조차 안 가르치면 어떻게 될까요.


  시골학교마저 흙짓기를 가르치지 않고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골에 농업고등학교 사라진 지 까마득합니다. 농업고등학교는커녕 농업중학교도 농업초등학교도 없어요. 농업유치원이나 농업어린이집이란 아예 없습니다. 농업대학교도 없어요. 커다란 대학교에 농과대학이라는 단과대는 있다지만, 농업과학자나 농업기술자를 키울 뿐, ‘흙일꾼(농사꾼)’을 가르치지 않아요. 게다가, 농과대를 가는 푸름이 가운데 ‘나는 앞으로 흙을 지어 손수 밥을 얻겠어!’ 하고 다짐하는 아이가 몇이나 있을는지요.


  교사부터 스스로 흙짓기를 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학교에서는 누구보다 교사한테 먼저 두 평쯤 밭 한 자락 내주어 교사 스스로 푸성귀를 길러 먹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이러고 난 다음, 학생한테도 밭 두 평쯤 나누어 주어, 학생 스스로 삶짓기를 하는 길을 열어야지 싶어요.


  학교에는 체육관이나 강당이나 수영장이나 과학실이나 컴퓨터실이나 음악실이나 도서실이나 영어교실보다 밭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밭 없이 다른 건물이나 시설을 짓는다면 거꾸로인 셈이라고 느껴요. 밭부터 일구고서 교과서를 쥐든 들든 던지든 해야지 싶어요. 밭에서 흙을 만지고 나서 이것을 가르치든 저것을 보여주든 해야지 싶어요.


- ‘소리를 지르는 엄마의 얼굴은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이 잡놈들아! 인간이라면 부끄러운 줄 알아라! 할 테면 해 봐! 이 도둑놈들아! 머리통을 깨부숴 줄 테다!” ‘들어 본 적도 없는 험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온화하기 그지없는 우리 엄마가.’ “네 녀석들 따위 무섭지 않아! 네 놈들이 농사꾼을 우습게 봤겠다! 후딱 꺼져! 여긴 네 놈들이 올 곳이 아니다! (51∼52쪽)
- “땅과 흙은 농작물을 키워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 우리의 무기가 되었어. 우리는 땅과 흙을 무기로 싸운다.” (70쪽)
- ‘4월부터 본격적인 활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늘 조용하던 지방도로에 하루 종일 덤프트럭이 오가고 있다. 마을은 조금씩 배기가스와 소음으로 뒤덮여 가는 듯했다.’ (114쪽)

 


  아이들 가슴에서 꿈이 샘솟기를 빌어요. 모든 어른은 누구나 아이로 태어나 자랐으니, 어른들 또한 가슴에서 꿈이 솟아나기를 빌어요.


  꿈이 보이지 않거나 꿈을 모르겠다면, 천천히 꿈을 길어올리기를 빌어요. 이제부터 꿈을 한 가지씩 지어, 즐거이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살펴도 좋지만, 책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부터 잘 헤아려 봐요. 책을 빚자면 누군가 글을 써야 할 텐데, 글을 쓰자면 종이와 연필이 있어야 해요. 자, 글쓰기에 앞서 종이와 연필부터 만들어야겠지요. 종이와 연필을 만들자면 바로 나무부터 있어야 해요. 나무 한 그루 쉰 해나 백 해나 이백 해나 오백 해쯤 자라야 해요. 이렇게 잘 자란 우람한 나무를 베어 종이랑 연필을 만들어요.


  그리고, 책 또한 종이로 만드는 만큼, 누군가 연필로 종이에 쓴 글을 책으로 묶자면, 더 많은 종이가 있어야 하니, 나무도 더 많이 있어야 할 테지요.


  곧, 책 한 권 누리자면, 먼저 숲이 있어야 합니다. 숲은 흙이 있은 뒤에 있습니다. 다시금 말하자면, 우리들 누구나 흙을 읽을 수 있는 몸가짐일 때에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흙을 먼저 아끼고 사랑할 때에 비로소 책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셈입니다. 흙을 실컷 누리고 즐긴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책을 실컷 누리거나 즐길 수 있는 노릇이에요.


  아이들이 흙을 밟고 자라야 아이답게 자라요. 어른들은 어릴 적에 흙을 실컷 밟으며 실컷 놀았을 때에 참말 사람다운 사람,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흙이 있으면서 삶이 있고, 삶이 있기에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여요.


- “그렇지 않아, 마유. 다들 잘 모르는 것뿐이야, 진실을. 언론에 속고 있는 거야.” (76쪽)
-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글자와 수, 역사상의 인물 따위만을 가르칠 뿐이었습니다! 정작 아이들이 직면한 가장 절실한 문제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배우지 못했어요. 우리는, 여러분이 가르치기를 외면한 공항 문제를 우리 스스로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동맹휴교를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80쪽)
- “여기가 덴나미 부락. 지금은 제1기 공사 구역으로 불리고 있어요.” “새소리도 들리지 않네.” “이런 거였나.” (198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삶도 교육도 꿈도, 늘 흙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누구도, 언제나 흙하고 어깨동무할 때에 삶을 빛냅니다.


  밥을 안 먹고 살아가지 못해요. 밥은 모두 흙에서 비롯해요. 밥은 안 먹어도 물을 마시면 된다 하는데, 물이 정갈하고 맑자면, 고운 흙땅을 흘러야 물을 마실 만합니다. 고운 흙땅을 가로지르는 냇물이요 우물물이며 도랑물이어야, 비로소 이 물을 기쁘게 받아 마실 만해요. 밥이나 물보다 바람은 몇 초만 안 먹어도 곧장 죽는다 하는데, 사람 숨결 살리는 바람이란 매캐한 배기가스나 공장 연기로는 안 돼요. 푸르며 아름다운 숲을 흐르는 바람이라야 사람을 살려요. 아무 바람이나 사람을 살리지 않습니다. 흙이 있어 숲이 우거져야 하고, 우거진 숲을 바람이 흘러야, 사람도 짐승도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흙하고 살아야 삶입니다. 흙을 가르쳐야 교육입니다. 흙이 있어야 학교이고 마을입니다. 흙을 만져야 사람입니다.


  흙하고 동떨어지니, 이런 정치꾼 저런 경제꾼이 자꾸 검은 꿍꿍이를 키워요. 흙을 모르쇠하니, 이런 지식인 저런 학자 자꾸 이름벌이와 돈벌이에 눈이 빙글빙글 돌아요.


  운동선수도 연예인도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바람을 들이켜야 합니다. 대통령도 군수도 시장도 밥·물·바람 없이는 1초조차 숨결 못 잇습니다. 밥과 물과 바람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밥과 물과 바람을 정갈히 지키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 “그래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편리해진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해진다면, 공항 같은 건, 만들면 안 돼요. 누군가가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 그건 공항을 만드는 인간들이 지어낸 말이에요.” (212∼213쪽)


  핵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부질없습니다. 오늘 곧장 전기 한 줌 못 써도 됩니다. 고흥 시골마을 골골샅샅 둘러보셔요. 전기 안 들어오면 시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는 ‘연속극 못 보는 아쉬움’ 하나랑 ‘손전화로 손자 손녀랑 이야기 못 나누는 서운함’ 두 가지 있을 뿐이에요. 전기 있건 말건, 낫과 호미와 쟁기와 삽과 가래로 흙을 돌봅니다.


  석유 없으면 어때요. 소를 몰면 되지요. 염소를 키우면 되지요. 닭을 치면 되지요. 멧골에서 나무를 하고 장작을 패면 돼요. 구들은 나무를 조금만 먹어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는 사이 방바닥 따스해요. 쓰레기 하나 없을 뿐 아니라, 찌꺼기 하나 없어요. 숲을 아끼고 흙을 살찌워요. 시골사람은 서로서로 아낄 수 있고, 시골사람은 목숨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느낄 수 있어요.


  오롯이 공해 없고 무한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나 자동차 아니라면, 굳이 없어도 돼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노릇이라고 느껴요.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 어떤 삶을 일구면서 지을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깨우쳐야지 싶어요. 돈이 있대서 맛나거나 좋은 밥을 먹지 않아요. 기름진 흙이 있고, 아름다운 논밭 있을 때에 맛나거나 좋은 밥을 먹어요. 오늘날 도시 아이들이 몽땅 아토피에 시름시름 앓는 까닭을 슬기롭게 깨닫기를 빌어요. 오늘날 도시 어버이와 아이 모두 흙을 안 만져요. 시골에서 흙 만지며 일하는 어버이가 아토피에 걸리는 일 없어요. 시골에서 흙 만지며 노는 아이가 아토피에 시름시름 앓는 일 없어요. 그런데, 시골 유치원과 초등학교조차 아이들이 흙을 일구도록 이끌지 않아요. 시골 유치원과 초등학교마저 곁에 예쁜 숲과 멧골 있어도 마실을 안 다녀요. 숲학교가 없어요. 시골숲 아름다운 고흥 같은 곳에 숲유치원, 숲초등학교, 숲중학교, 숲고등학교, 숲대학교 하나 없는 일이란 참으로 서글프고 안타깝습니다.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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