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에 달이 뜬다 목언예원시조선 5
한분순 지음 / 목언예원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와 말
[시를 말하는 시 10] 한분순, 《손톱에 달이 뜬다》

 


- 책이름 : 손톱에 달이 뜬다
- 글 : 한분순
- 펴낸곳 : 목언예원 (2012.9.20.)
- 책값 : 1만 원

 


  누구나 시를 씁니다. 시인만 시를 쓰지 않습니다. 누구나 소설을 씁니다. 소설가만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누구나 희곡을 씁니다. 극작가만 희곡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으로 나오는 문학은 으레 문학꾼들이 빚는 글만 다룹니다.


  지난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는 한겨레 여느 시골사람을 만나서 ‘일노래’와 ‘옛이야기’를 갈무리했습니다. 일본 학자는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며 아시아 여러 겨레 일노래와 옛이야기를 갈무리하기도 했어요. 일본은 이녁 일노래와 옛이야기도 퍽 옛날부터 꾸준히 갈무리하고 건사하며 즐깁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이 부르던 일노래란 곧 시입니다. 노래이면서 시입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이 나누던 옛이야기란 곧 소설입니다. 소설이면서 옛이야기입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이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주고받는 이야기가 곧바로 희곡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자락이 모두 희곡입니다.


.. 집 비운 / 문틈 새로 / 햇빛 살금 찾아든다 ..  (빈집)


  오늘날 시인들은 시를 쓰기는 하지만,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시는 곧 노래요, 노래는 곧 시인 줄 살갗으로 못 느끼곤 합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 글줄을 꿸 줄 아는 오늘날 시인이요 문학꾼이기는 한데, 사랑스러운 삶을 노래하며 즐기는 길하고는 자꾸 동떨어지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삶이 재미없어서 글도 재미없을까요? 삶이 고단해서 글도 고단할까요? 삶이 비틀리거나 꼬이거나 엉키기에 글 또한 비틀리거나 꼬이거나 엉킬까요?


  지난날 시골사람은 고단하고 힘든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막대접을 받거나 푸대접을 받으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집살이노래만 있지 않아요. 모내기노래만 있지 않아요. 자장노래만 있지 않아요. 언제나 노래예요. 소를 몰면서 노래를 부르고, 밭자락 돌을 고르며 노래를 불러요. 아궁이에 불을 때며 노래를 부르고, 밥상을 나르거나 나물을 무치면서 노래를 불러요. 물을 길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빨래를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멧골이 깃들어 나무를 하거나 갈퀴질을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다듬이질을 하거나 베틀을 밟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밥을 먹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이래도 노래요 저래도 노래입니다. 삶자락 어느 모습이건 노래로 거듭납니다. 삶결 온갖 모습이 노래로 다시 태어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난날 시골사람은 모든 삶을 오롯이 노래로 빚었어요. 노래로 빚으면서 이야기로 엮습니다. 노래는 입에서 입을 거치며 이어집니다. 이야기는 삶에서 삶을 거치며 물려받습니다.


  굳이 머리를 쥐어짜야 나오는 노래가 아닙니다. 스스럼없이 풀려나오는 노래입니다. 애써 원고지를 구겨야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절로 시나브로 샘솟는 이야기입니다.


.. 너는 무엇 / 나? / ― 글쎄, / 외줄 타는 광대랄까 ..  (광대놀음)


  말을 짜지 않아도 돼요. 삶을 말하면 모두 노래이면서 시예요. 말을 구슬처럼 꿰지 않아도 돼요. 삶을 즐기면 모두 이야기이면서 소설이에요.


  시에서 쓰는 말은 따로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며 누리는 말이 모두 시입니다. 소설에서 써야 하는 말이 딱히 없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나누는 삶이 고스란히 소설에서 쓰는 말이 됩니다.


.. 불그레 두근거리는 / 손톱 위의 / 봉숭아물 ..  (손톱에 달이 뜬다)


  한분순 님 시조시집 《손톱에 달이 뜬다》(목언예원,2012)를 읽습니다. 오랜 나날 시조를 즐긴 한분순 님이라고 합니다. 싯말이 정갈합니다. 시조 얼거리가 가지런합니다. 다만, 구수하거나 소담스럽다는 맛이나 결은 잘 못 느끼겠습니다. 오랜 나날 삶을 빛내고 즐기고 누리고 사랑하고 나눈 모습을 하나하나 적바림하면 될 텐데, 자꾸 말을 구슬처럼 꿰려고 하시는구나 싶습니다. 수수하게 노래하면 될 시요 시조인데, 꼭 어떤 틀을 맞추려고 하시는구나 싶습니다.


  홀가분하게 시를 즐기기를 빌어요. 시는 즐거움입니다. 즐겁게 노래하기에 시입니다. 즐겁게 사랑하고, 즐겁게 살아가니까 시가 저절로 태어나요.


  말구슬놀이는 말구슬놀이일 뿐이에요.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시를 즐기는 예쁜 이웃입니다. 말구슬놀이는 겉보기로는 살짝 재미있을까 싶다가도, 이내 차갑게 식어요. 말구슬놀이로는 삶을 밝히거나 빛내지 못해요. 노래 한 자락으로 삶을 밝혀요. 웃음 한 꾸러미로 삶을 빛내요.

  노래를 불러요. 웃으면서 노래를 흐드러지게 불러요. 그러면 날마다 아름다운 싯말 수없이 길어올릴 수 있으리라 믿어요.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