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에서 시 쓰기

 


  옆지기 여관을 만들려고 군청으로 마실을 간다. 고흥군에서 여느 날 사람 가장 북적이는 데는 군청과 하나로마트 두 군데인가 할 만큼 군청 민원실이 북적북적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어린 두 아이와 함께 군청으로 마실을 오니 골이 띵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집에서고 밖에서고 잘 뛰어노는구나. 아이들은 참 씩씩하며 야무지구나. 이러거나 저러거나 잘 노는 아이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안 마시던 커피를 군청 한쪽에서 뽑아 마시고는 생각을 가다듬는다. 내가 힘들다 생각하면 스스로 힘들고, 내가 즐겁다 생각하면 스스로 즐거울 테지, 자 어느 쪽 삶으로 갈래?


  군청 민원실 곳곳에 있는 이면지 하나를 집는다. 하얀 쪽을 펼쳐 볼펜을 쥔다. 시를 하나 쓴다. 어제까지 못 보았으나 오늘부터 마을 곳곳에서 마주하는 제비꽃 이야기를 쓴다. 한 글자 두 글자 천천히 쓴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복닥이며 잘 논다. 시 한 꼭지 다 쓸 무렵, 옆지기는 드디어 접수를 마쳤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나도 이제 시 다 썼어. 됐어. 좋구나. 아이들아, 우리 어서 여기 떠나고 집으로 돌아가자. 조용하며 호젓한 시골마을 예쁜 집으로 가자꾸나. 4346.3.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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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40

 


사진에 담는 빛을 나누는 넋
― 세계사진걸작집 1
 최민식 엮음
 삼성출판사 펴냄,1979.3.1.

 


  한국에서 살 수 없는 사진책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 있는 출판사에서 펴내지 않았으니 살 수 없습니다. 또는, 한국에 있는 책방에서 사들여서 갖추지 않았으니 살 수 없습니다. 유섭 카쉬이든 살가도이든 한국에서는 이런 사진책이고 저런 사진책이고 구경하거나 사기 참 어렵습니다.


  한국으로 들어와서 살거나 일하는 외국사람이 갖고 들어온 책 있어, 이 책이 헌책방으로 흘러들고서야 비로소 살 수 있는 사진책이 아주 많습니다. 주한미군 도서관에서 갖추었다가 ‘도서관 장서 정리’를 하며 ‘문화 후진국 눈높이 올려주겠다’고 할 적에 나라밖 놀라운 사진책을 살 수 있곤 합니다. 나라밖으로 마실을 다녀오거나 배우러 다녀온 이들이 갖고 온 사진책이 더러 헌책방으로 나오곤 합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사진책이 안 나오지 않습니다. 사진모임이나 사진동아리에서 꾸준하게 이녁 작품모음 내놓습니다. 지자체와 문화모임에서 공모전 열어 작품모음 선보입니다.


  다만, 사진모임이 이 나라 내로라하는 사진작가 모인 곳이라 하든, 지자체가 서울이든 부산이든, 이곳저곳에서 내놓는 작품모임에 깃든 사진 가운데 이웃나라로도 알릴 만하거나 사진문화를 밝힐 만하다 싶은 사진은 손에 꼽기 어려워요. 때때로 개인 사진작품집이 나오곤 하지만, 그리 눈여겨볼 만한 사진책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돈이 있기에 찍어서 자랑하듯 내놓는 사진작품집이 꽤 많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담는 최민식 님은 1979년에 《세계사진걸작집 1》(삼성출판사)를 엮어서 내놓습니다. 세계 사진역사에서 손꼽힐 만한 작품을 하나둘 그러모아 당신이 하나씩 풀이말 붙여서 내놓습니다. 최민식 님은 《세계사진걸작집 1》 머리말에서 “본집에 수록된 불후의 걸작들을 통하여 인류는 눈을 뜨고 또 정신적 의식이 성장하였으며, 한결같이 박력이 넘치는 불멸의 걸작들은 사진사에 영구히 빛날 것이며, 우리들은 국경을 넘어 역사를 초월한다.” 하고 밝힙니다. 덧붙여, “우리는 인류가 성취한 문명의 승리자로서의 사진을 인류가 존재하는 한 무엇인가 이야기하려는 고백자로서 투쟁이며, 숙명과의 대결, 운명의 극복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러므로 사진적인 것을 초월하는 위대성이 있을 것이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진을 하거나 사진을 안 하거나, 사진 하나 함께 들여다보면서 사회와 세계와 인류와 문명을 더 깊고 넓게 살펴보자고 말씀하지요.


  그러면, 최민식 님은 이 사진책에 담은 사진을 어떻게 모았을까요. 원판을 얻어서 내지는 못하고, 최민식 님 스스로 그러모은 사진책에서 한 장씩 뽑아 ‘해적판’으로 엮습니다. 1970년대 이무렵에는 이러한 해적판이라 하더라도 이만 한 사진책 하나 나오기 힘들었어요. 한국에서 사진을 배우려 하는 이들이 세계 사진역사를 빛내는 작품 하나 구경하기 힘들었지요. 《세계사진걸작집 1》에 실은 사진들은 ‘사진책에 실린 사진을 복사한 사진’이라 질감이 아주 떨어집니다. 그러나, 1970∼80년대에 이 사진책 마주하며 사진을 배우거나 생각하던 이들은 ‘질감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이 놀라운 사진들 한 자리에 그러모은 이 사진책 하나’ 무척 고마우며 반갑다고 여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최민식 님은 ‘사람’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빛 한 줄기를 보았다고 느낍니다. 빛 한 줄기 나누려는 넋으로 ‘사람’을 사진으로 담고, 이웃들과 빛을 즐거이 나누고 싶어 했구나 싶어요. “동화나 아동화 같은 서정적인 세계가 이 작품 전체에 넘쳐흐르는 감마저 들며 냇가나 풀잎과 같이 조용한 느낌은 인상적이다(1853/Georee.N.Burneyid).” 같은 풀이말을 읽으면, 이런 느낌 물씬 듭니다. 냇가를 떠올리는 사진, 풀잎이 떠오르는 사진, 어린이가 까르르 웃는 이야기 되새기는 사진, 이런저런 사진은 어떤 빛이요 결이며 무늬일까요.

 

 

 

 

 

 


  사진은 사진기라는 기계를 쓴다고 합니다. 오늘날 사진기는 이른바 첨단기계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첨단이건 아니건, 어떠한 사진기이건 밑바탕은 같아요. 빛을 받아들여 이야기를 그림으로 앉힙니다. 빛을 안 받아들이는 사진기계 없고, 이야기를 그림으로 안 앉히는 사진기계 없어요. 기계를 써서 찍는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사진입니다. 기계가 좋아야 좋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이 좋아야 좋은 사진입니다. 기계에 얽매이는 사진이 아니라, 이야기를 누리는 사진입니다.


  붓이 좋든 안 좋든, 그림은 얼마든지 그립니다. 연필이건 볼펜이건, 글은 얼마든지 씁니다. 타자기로도 쓰는 글이요, 컴퓨터 켜서도 쓰는 글입니다. 원고지 아닌 이면지에도 쓰는 글입니다. 낫으로도 풀을 베고 호미로도 풀을 뽑지만, 두 손을 써서 풀을 뜯기도 합니다. 사진이 좋지 않은데 사진틀만 값지다고 사진 또한 값지거나 좋지 않아요. 사진이 좋으면 골판지에 붙인 사진이든 얇은 나무판에 붙인 사진이든 값지며 아름답고 좋습니다.


  자가용 타고 고속도로 달려야 찾아가는 길이 아니에요. 자전거를 타고 되고, 걸어도 되지요. 더 빨리 달린대서 이야기가 샘솟지 않아요. 차근차근 느릿느릿 가기에 이야기가 안 나오지 않아요. 외려, 더 빨리 가는 바람에 이야기를 못 느낍니다. 고속도로 따라 서울부터 부산까지 내리 달리면, 어떤 이야기 나올까요. 서울부터 부산까지 달포쯤 걸려 천천히 걸어서 간다면, 어떤 이야기 나올까요.

 

 

 

 

 


  아직 한국에서 ‘참 아름답구나’ 싶은 여행책이나 수필책이나 문학책 그림책 사진책 만화책 안 나오는 까닭을 한국사람 스스로 못 깨달아요. 왜냐하면, 달포쯤 아주 더디게 거닐면서, 또는 한 곳에 여러 날 머물며, 한국여행을 느긋하고 넓게 누리는 사람 있다면, 한국여행기를 여러 권 쓰고도 더 쓸 수 있습니다. 한국땅에서 사진 찍는 이들이 아름답거나 놀랍거나 재미나거나 사랑스러운 사진책 못 내놓는 까닭 가운데 하나도, 아직 한국에서 이웃을 더 넉넉하거나 너그러이 사귀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서둘러 찍는대서 그럴듯한 사진 못 찍어요. 살가이 사귀어야 비로소 사진 한 장 얻어요. 애써 무대를 만들고 스튜디어 꾸며서 수십 수백 수천 장 찍어야 겨우 쓸 만한 사진 한 장 얻는다 하는데, 찬찬히 ‘내 모델 될 님’과 사귀고 보면,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장 아름답고 놀라운 사진 얻어요.


  최민식 님이 부산 길거리에서 ‘사람’을 찍을 수 있던 까닭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최민식 님은 걸어다녔어요. 가장 느리게 걸었지요. 가장 느리게, 오랫동안, 하염없이, 차근차근, 여기에 즐거움 하나 얹어 사뿐사뿐 걸었어요. 그래서 ‘사람’이라는 이름 하나로 열 권 넘는 사진책 잇달아 내놓을 수 있었어요. 길에 이야기가 있어서 이룬 사진책은 아니요, 길을 최민식 님 삶으로 받아들여 빛 한 줄기 앉혔기에 이야기가 태어난 사진책입니다.

 

 

 

 

 


  “그는 이와 같은 어린이들의 진실한 생활상을 단순한 고발의 다뮤켄트로 끝내지 않고 조용하면서 강력한 설득력을 지녔으며 약자에의 깊은 애정과 가혹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화면 깊숙이 내포되고 있다(1935/Jack Delano).” 같은 말마디는 살짝 앞뒤가 안 맞는구나 싶지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하는 대목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한테 들려주고 싶은 얘기 너무 많은 나머지, 미처 찬찬히 보듬지 못한 말마디로구나 싶은데, 잭 델라노라 하는 분은 ‘사랑’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사랑이지요. 최민식 님 또한 ‘사람’들 마주하면서 오직 사랑을 헤아렸겠지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삶을 헤아리고, 사랑을 나누는 삶을 돌아보며, 사랑을 빛내는 사진을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세계사진걸작집 1》에는 최민식 님이 사진을 잘못 읽은 대목 더러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이 작품은 자유를 빼앗은 공산독재자들의 잔인성을 폭로, 뒤따르는 공포와 좌절감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뚜렷이 설명해 주는 증언자로서 자극시킨 작품이다.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의 공산독재를 종식시킬 날이 올 것인가? 인류의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1960/Marc Riboud).” 같은 대목입니다. 베트남전쟁과 얽힌 사진인데, 북베트남 ‘괴뢰 공산당’이 젊은이를 강제노역 시킨다고 하면서 보여주는 사진이에요. 사진을 들여다보면 강제노역이라고 느낄 수 없을 만큼, 젊은이들 낯빛이 밝습니다. 웃는 얼굴까지 보입니다. 이 사진에서 어떤 잔인성이나 공포나 좌절감이 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최민식 님이 1970년대에 리영희 님 책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으셨는지 못 읽으셨는지 모릅니다. 다만, 1980년대를 넘어설 때까지도 베트남전쟁 속살이 어떠한가 하는 이야기를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밝히거나 말할 수 없었어요. 베트남전쟁 속살을 들추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붙잡혀 고문을 받다가 이슬 한 떨기로 사라지던 군사독재였으니까요.


  2013년 2월 12일에 저승길로 떠난 최민식 님을 생각합니다. 최민식 님은 예순 해 가까운 사진길을 걸었습니다. 첫발 내딛던 때에 찍은 사진과 예순 해 가까울 무렵 찍은 사진은 같지 않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열 해쯤 사진길 거닐며 찍은 사진과 쉰 해쯤 사진길 걷다가 찍은 사진은 같지 않으나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배우는 사진이요, 날마다 새삼스레 깨닫는 사진입니다. 언제나 새롭게 누리는 삶이고, 늘 새삼스레 웃고 즐기는 삶이에요.

 

 

 

 


  사진책 《세계사진걸작집 1》를 살펴보면 ‘명작이 되는 외국 사진’을 보여주는 큰 틀 하나에, ‘사진 하나로 인류문명에 이바지하는 길’를 밝히는 걸음걸이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 하나로 아름다움 나누는 넋 읽을 수 있고, 최민식 님 스스로 굳센 다짐 품으며 사진과 사람과 삶을 사랑하려는 얼 엿볼 수 있어요.


  이만 하면 넉넉합니다. 2013년에 더 나은 질감과 빼어난 엮음새로 ‘세계사진걸작집’을 다시 내놓는 출판사 있을 수 있을 텐데, 이만 하면 아름답습니다. 사진이 아름다운 까닭은 더 나은 질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진이 즐거운 까닭은 초점이나 황금분할이나 조리개를 잘 맞추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진이 사랑스러운 까닭은 대단한 사건이나 사고를 찍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진은 삶이기에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럽습니다. 최민식 님이 스스로 걸어가면서 우리한테 남긴 선물 한 가지, 사진에 담는 빛을 나누는 넋을 오늘날 사진밭 사람들 누구나 맛나게 받아먹을 수 있기를 빌어요.


  부산사람으로 부산에서 사진길 걸은 최민식 님 사진책 《세계사진걸작집 1》를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우리글방〉에서 만나, 한결 애틋합니다. 헌책방 일꾼은 나한테 이 사진책 안 팔 수 있었는데, 고이 건사하며 여러 사람한테 전시를 할 수 있었는데, 또는 웃돈으로 돈있는 책손한테 팔 수 있었는데, 고맙게 나한테 이 사진책 하나 팔아 주었습니다. 따순 이웃을 느끼며 따순 ‘사람’을 찍은 최민식 님 이야기를, 이렇게 따순 손길 느끼는 헌책방 한켠에서 마주하며 나부터 따순 글 쓸 줄 아는 삶 누리자 하고 생각합니다. 4346.3.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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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그친 하늘 책읽기

 


  비바람 몰아치며 마당에 있는 살림살이 이리 날리거 저리 굴린 끝에 새벽녘 빗줄기 가라앉고 바람 잠잔다. 햇살은 구름 사이사이 고개를 내밀다가 숨는다. 흰빛, 잿빛, 허여물그스름한 빛, 온갖 빛깔 구름이 갖은 모습으로 섞여 흐른다. 봄하늘 파란 빛깔하고 사뭇 다른 새로운 파란 빛깔로 하늘이 열린다.


  저 하늘은 어떤 마음일까. 저 하늘은 어떤 마음이 나타난 모습일까. 누군가 비바람 그친 하늘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으리라. 누군가 비바람 그친 하늘을 가슴으로 담고 마음으로 새기리라. 아기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고, 꽃봉오리 터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든 꽃봉오리 터지든 열매가 맺든 옆지기가 웃든, 그예 가슴속으로 고이고이 아로새기면서 이야기 한 타래 길어올리는 사람이 있다. 책은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어, 우리는 언제나 숱한 삶말 누린다. 4346.3.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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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사진 만지며 놀기

 


  누나가 작은 사진첩에 사진을 꽂는다. 동생은 누나가 끼운 사진첩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들여다본다. 너희 누나는 사진첩 몇 박살내면서 사진을 뺐다가 넣다가 하며 스스로 사진놀이를 했단다. 그래서 너희 누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진을 퍽 잘 다루고, 곱게 건사하지. 너도 누나 하는 양 가만히 지켜보면서 사진과 사진첩 곱게 다루어 주렴.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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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17 22:40   좋아요 0 | URL
사름벼리의 예쁜 발..^^
그런데 사름벼리 왼손 두 번째 손가락이 왜 빨갛게 됐을까요~^^ 이궁,
산들보라의 앉은 모양과 발이 의젓해요~~^^

파란놀 2013-03-18 08:50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맨발 맨손으로 시멘트마당이나 동네길에서 놀고 흙 만지고 하느라
늘 이렇습니다 ^^;;;
붓다가 가라앉고 또 붓다가 가라앉고 ^^;;
시멘트란 참 아주 나쁘지요...
 

 

 

 

도화사람 마실 다니기 (13.3.2.)
고흥 길타래 5―올봄·지난봄 들마실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는 지난 2011년 가을부터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2011년 8월에 집 자리와 도서관 자리를 살피러 고흥마실을 처음 했고, 9월에 마음을 굳힌 다음, 10월에 살림집 계약을 하고서, 11월에 도서관으로 쓸 흥양초등학교 건물 넉 칸 빌려서, 고흥에 갓 뿌리를 내렸어요.


  많이 어린 두 아이하고 부대끼는 삶이라 다른 시골이웃처럼 알뜰살뜰 집살림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도서관 또한 제대로 열지 못합니다. 그러나, 집과 도서관 모두 천천히 뿌리를 내리며 튼튼하게 줄기를 올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리라 생각해요. 새봄을 맞이해 들일·밭일 바쁠 나날이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마을부터 제대로 돌아보고 즐겁게 누리며 반갑게 걷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시골에서 일구는 삶이란, 느긋하고 넉넉하며 아름답게 삶을 누리자는 뜻이 될 텐데, 아이들이 고운 봄볕 흐드러지게 쬐면서 들길 걷는 일에도 마음을 기울이며 재미있게 놀자고 생각합니다.


  볕 좋은 한낮, 자전거를 끌고 나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웁니다. 이웃마을에는 봄볕이 얼마나 드리우는가를 돌아보기로 합니다. 여섯 살 세 살 아이와 거닐면 면소재지까지 오갈 수 있고, 천등산 언저리까지 다녀올 수 있는데, 자전거수레를 몰면 한두 시간 길을 둘러볼 수 있어요.

 

 

 


  동백마을부터 달리는 자전거는 동호덕마을과 도화면 소재지를 지나 서오치마을에 이릅니다. 도화면 장날이 예전에는 무척 컸다 하는데, 이제 예전 모습은 찾아볼 길 없습니다. 참말 많은 사람들이 복닥거리며 서로 아끼고 돕는 시골살이 이루던 지난날이었겠지요.


  볕 아주 잘 드는 길가에 있는 시골집 동백나무 소담스레 벌어집니다. 참 빨리 피어나는군요. 그만큼 볕이 좋다는 뜻이요, 볕이 좋은 만큼 다른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도 잘 익는다는 뜻일 테지요.


  전봇대에 챙 넓은 모자 하나 있습니다. 들일 하는 할머니가 이곳에 모자를 꽂으시는 듯합니다. 전봇대에 끈 하나 묶으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겠어요.


  예전에는 길가 가게였음직한 살림집 앞을 지납니다. 유리창에 빛바랜 자국으로 남은 ‘담배’ 종이를 보고 알아챕니다. 이 언저리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렸을까요. 마을 분들 들일 하다가 이곳에서 담배도 사고 막걸리도 샀을까요. 간장도 사고 조미료도 사고 소금도 사고 과자도 사고 라면도 사고 했을까요.

 

 

 


  지등마을 어귀에 나무 한 그루 섭니다. 아직 그리 큰 나무는 아닙니다. 앞으로 쉰 해를 더 살고 백 해를 더 살면, 이 나무 한 그루 지등마을 밝히는 우람한 나무 되겠지요. 이백 해 더 살고 사백 해 더 살면, 지등마을 지키는 씩씩한 나무 될 테지요. 큰아이하고 나뭇줄기를 쓰다듬고 어루만집니다. 나뭇줄기에 귀와 손바닥을 대고 나무 숨소리 듣습니다.


  지등마을 어귀에는 이곳에 있는 시설을 살펴 적바림한 자국이 아직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이런저런 시설을 살펴 숫자를 적바림했을까요. 우물이 몇이요 가게가 몇이며 주민 숫자 몇이라는 대목을 이렇게 마을 어귀에 적도록 시킨 사람은 누구일까요. ‘무슨무슨 지도자 아무개’와 ‘담당공무원 아무개’ 자국은 아직 햇볕에 바래지 않습니다.


  아이들 태운 자전거를 천천히 몹니다. 겨울바람처럼 드세지 않고 차갑지 않지만, 바람이 제법 붑니다. 자전거를 몰며 마을 한 바퀴 빙 돌아봅니다. 봄햇살 포근히 내려앉는 시골길을 천천히 달립니다. 봄햇살 먹는 들풀은 푸릇푸릇 돋고, 길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도 새 잎을 틔우며 꽃봉오리 맺으려고 부산합니다.


  지등마을에서 이목동마을 사이는 오르내리막. 이목동마을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고, 지등마을로 가는 길은 오르막입니다. 자동차로 달리면 오르막도 내리막도 모르겠지요. 자전거로 달릴 때에 비로소 길이 어떠한가 하고 깨닫습니다. 지등마을에는 붉은벽돌로 쌓은 버스터 있고, 이목동마을에는 군에서 새로 지어서 놓은 듯한 버스터 있습니다. 햇살과 빗물 가릴 지붕 있고, 옆과 뒤는 유리로 막음하니, 버스 오가거나 사람들 오가는 모습 살피기에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버스터 건물 짓기 앞서까지는 아무 푯말 없이 ‘이쯤에서 버스 서고 지나가고’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도 줄기 한쪽에서 새 가지가 나오곤 합니다. 이런 새 가지를 가지치기 하라고도 하지만, 모두 쳐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옆줄기에서 돋은 작은 가지 하나 쉰 해나 백 해쯤 지나면 굵고 튼튼하게 자라, 쉰 해나 백 해 뒤 태어나 뛰놀 아이들이 나무타기를 하며 놀 수 있으리라 느껴요. 사람들은 소나무 가지를 뭉텅뭉텅 잘라 우듬지만 달랑 남기곤 하는데, 나무젓가락 박듯 나뭇가지 모두 치는 일은 나무한테도 사람한테도 안 좋으리라 느낍니다.


  이목동 세거리에서 원도동 쪽으로 꺾어 구암 바닷가를 빙 돌아볼까 하다가 작은아이 새근새근 자고 큰아이도 퍽 졸린 듯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박문터를 지나, 시루봉과 유주산 사이, 사동마을 가는 푯말 있어 이쪽으로 올라갈까 하며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퍽 가파릅니다. 자전거를 달리지 못하고 내립니다. 땀 뻘뻘 흘리며 수레를 끕니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안 보인다 싶은데, 왼쪽 벼랑 따라 쓰레기 많습니다. 누가 어디에서 왜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형광등과 빈 푸대뿐 아니라, 헌 텔레비전까지 있습니다. 술병은 너무 흔한 쓰레기입니다. 멧비탈에 쓰레기를 버리면 이 쓰레기는 누가 치울까요. 이 쓰레기는 어찌 될까요. 쓰레기로 덮인 비탈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시사람이 고흥으로 왔다가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이 둘레 마을 분들이 버린 쓰레기일까요. 아니면, 이 마을에서 좀 먼 다른 마을에서 자동차 몰고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사동마을까지 가지 못하겠다 싶어, 자전거를 돌립니다. 비탈길을 천천히 내려옵니다. 다시 서오치마을로 들어섭니다. 서오치마을 굵은 팽나무 옆을 지나갑니다. 비탈길에서 작은아이가 잠에서 깼기에 팽나무 곁에서 살짝 쉬었다 갈까 싶었는데, 팽나무를 빙 둘러 울타리를 세웠군요. 이 팽나무는 아무나 찾아가서 누릴 수 없는 듯합니다. 푸른 빛깔 쇠울타리에는 이 마을 아무개가 서울에 있는 ㅅ대학교에 붙은 일을 기리는 걸개천 하나 붙습니다.


  면소재지 가로질러 도화냇물 따라 신호리로 접어듭니다. 누르스름한 빛깔 고운 들길을 달립니다. 논둑 한쪽에 포기를 이루는 유채풀을 봅니다.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쬡니다. 아이들은 수레에서 하품을 합니다. 자, 집으로 돌아가서 마당에서 신나게 뛰며 놀자.

 

 

 

 * * *


  지난 2012년 3월 언저리에는 들마실 어떻게 즐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지난해에는 작은아이가 아직 잘 걷지 못해, 옆지기와 내가 작은아이를 서로 업거나 안으며 큰아이는 걸리면서 걸어다녔습니다. 동호덕마을 마늘밭 사이를 지나가고, 서호덕마을 자작나무를 구경했습니다. 도화냇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어요. 도화냇물에 시멘트 붓고 큰돌 쏟으면서 물고기가 아주 많이 사라진 듯합니다. 왜 냇바닥을 시멘트로 메꾸면서 물고기 삶터를 없애거나 망가뜨려야 할까요. 물고기를 몽땅 죽이면서 수십 억 들이는 ‘냇바닥 공사’는 누구한테 이바지하는 일이 될까요.


  우리 식구는 시멘트로 안 덮은 논둑이 있는 데를 찾아서 걷고 싶었습니다. 이제 고흥군에서 시멘트 안 덮은 논둑은 아주 드뭅니다. 경운기 다니기 좋도록 논둑을 시멘트로 덮고, 잡풀 자라지 말라면서 논둑이랑 밭둑 모두 시멘트로 덮으려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간다지만, 흙땅이나 풀밭 밟고 거닐기란 퍽 힘들어요.

 

 

 

 


  집에서 면소재지까지 두 다리로 걸어서 나들이를 하던 어느 날, 면소재지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웃마을 할매를 만납니다. 할매는 머리에 짐보퉁이 이고 지팡이 짚으며 씩씩하게 걸으셨어요. 면소재지에서 우리 마을이나 옆마을까지는 1100원이면 되는데, 할머니는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갑니다. 이렇게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가면, 들바람 먹고 들새 노래 마시며 봄볕 한껏 즐길 수 있어요.


  도화초등학교는 운동장이 흙바닥입니다. 가짜 잔디 안 깔아 참 반갑습니다. 깔려면 진짜 잔디를 깔아야지, 플라스틱 호르몬 뭉치라 할 인조 잔디 까는 일은 아이들한테 못할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집부터 도화초등학교까지 걸어서 나들이를 하며 이것저것 타며 놉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들길에서는 막 피어나는 유채꽃을 봅니다. 논을 그득 채운 자운영 풀밭을 바라봅니다. 먹음직스러운 싱그러운 풀을 뜯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습니다.


  일찍 핀 동백꽃은 일찍 떨어집니다. 늦게 피는 동백꽃은 늦게까지 붉은 빛깔 베풉니다. 냉이꽃이랑 들쑥갓꽃 어우러진 마을회관 앞자락 작은 꽃밭은 한창 봄물결입니다. 봄을 먹는 봄마실입니다.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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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17 23:21   좋아요 0 | URL
검정 비닐봉투를 머리에 이신 할머님과, 옆지기님과 사름벼리와 산들보라의 사진이 넘 좋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렇게 활짝 핀 동백꽃을 본 적이 없어요. ^^;;;

파란놀 2013-03-18 08:49   좋아요 0 | URL
비닐봉투는 아니고 보따리예요. 서울 언저리에서는 동백나무 보기 힘들지요.
전라남도 경상남도 바닷가 쪽 마을에서는 장미 저리 가라 할.. 참말 그런데, 온갖 동백꽃이 골고루 핀답니다. 분홍빛 동백꽃도 있어요. 참말 깜짝 놀랄 만한 어여쁜 동백꽃이 골골샅샅 피고 진답니다.

올해에는 동백꽃튀김을 한 번 해 볼 생각이에요 ^^;;;

appletreeje 2013-03-18 10:38   좋아요 0 | URL
앗, 보따리군요 ^^;;
그런데 동백꽃튀김의 맛은 어떠할까요~??
생각만 해도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