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3.6.7. 큰아이―시그림 함께

 


  아이가 그림을 그리도록 이끌고 싶을 때에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곁에서 그림을 함께 그리면 된다. 아이는 스스로 그림이 좋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어머니나 아버지가 말없이 그림을 즐기다 보면, 아이는 저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곁에 앉아 얌전하고 예쁘게 그림을 즐긴다. 큰아이는 어제에 이어 계단을 그린다. 아버지는 무언가 다른 그림 그리고 싶어, 파란 빛깔 연필로 하늘과 구름을 그리다가, 꽃 한 송이 그리고, 굵직한 나무 한 그루 그린다. 나무는 굵직하고 커서 가지가 안 보이도록 키가 크다고 생각하며 그린다. 그런 뒤, 아이들 이름을 곱게 적어 넣고, 큰아이한테는 ‘숲’을, 작은아이한테는 ‘빛’을 선물한다. 큰나무 오른쪽에 어머니와 아버지 자리도 그린다. 그러고는 어머니한테는 ‘하늘’을 아버지한테는 ‘땅’을 선물한다. 자, 그러면 이제 무얼 그릴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연필로 또박또박 글을 적어 본다. 내가 읽으면서 즐겁고, 아이한테 한글 가르치면서 재미날 만한 글을 적는다. 누구나 시인이니, 누구나 시그림 그릴 수 있다고 느낀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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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50] 사랑밥

 


  따사로운 손길로 웃음 담아 짓는 밥에는 사랑이 깃듭니다. 여느 아침밥이고 낮밥이며 저녁밥이면서, 사랑밥 됩니다. 오순도순 웃음꽃 피우면서 밥을 먹을 적에는, 이 밥이 쌀밥이나 보리밥일 뿐 아니라, 웃음밥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밥이기에 이야기밥이라고도 느낍니다. 밥 한 그릇으로 기운을 얻어 삶을 새롭게 일구니, 삶밥이 되곤 합니다. 삶이 되는 밥이란, 목숨을 살찌우고 숨결을 살리니, 살림밥이기도 해요. 그런데, 몹시 슬프거나 힘든 일 있어, 어느 때에는 눈물밥 먹습니다. 슬픔밥이라 할까요. 씩씩하게 일어서야지요. 꿈밥을 먹고, 믿음밥을 먹으며 새힘 북돋아야지요. 기지개를 켜면서 하늘을 올려다봐요. 하늘숨 마시고 하늘밥 먹어요. 가만히 쪼그려앉아 들풀과 들꽃 쓰다듬어요. 흙숨 마시고 흙밥 먹어요. 풀을 즐기니 풀밥이지만, 풀바람 쐬면서 풀밥입니다. 나무그늘에 앉아 도시락 먹으면 들밥이 될 텐데, 푸른 내음 가득한 나무바람 들바람 듬뿍 마시니, 푸른밥도 되어요. 서로서로 나누는 밥이에요. 다 함께 누리는 밥이에요. 나눔밥이고, 어깨동무밥입니다. 구름밥이며, 무지개밥입니다.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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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적부터 읽은 시집

 


  고등학생 적부터 읽은 시인을 서른아홉 살에 두 아이 낳아 돌보는 시골마을에서 다시 읽으며 생각한다. 조태일, 김현승 두 시인은 스물 몇 해 앞서나 오늘이나 가슴을 북돋운다고 느낀다. 김소월, 윤동주, 한용운, 이육사 네 시인은 예나 이제나 아름다운 노래를 새록새록 되새겨 준다고 느낀다. 김수영, 신동엽, 고정희, 김남주, 박노해 다섯 시인은 예전에는 못 느낀 다른 깊이와 너비를 해마다 새롭게 건드려 준다고 느낀다.


  신경림 시인을 가만히 헤아린다. 신경림 시인 시집 이야기를 스물 몇 해 만에 처음으로 느낌글로 갈무리한다. 고등학생이던 1992년과 1993년에는 ‘교과서에서 볼 수 없던 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다. 스물 몇 해 지난 오늘날에는 ‘교과서에 실리는 이야기’를 느낀다.


  아마, 앞으로 언제가 될는 지 모르나, 권태응 같은 분들 동시를 교과서에서 제대로 다룰 날 있을 수 있다. 2001년에 이오덕 님이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같은 책을 내며 널리 알리고서야 교과서에도 권태응 님 동시가 실린다 할 수 있고, 백창우 같은 분이 〈감자꽃〉에 가락을 붙였기에 이러한 시가 교과서에 실린다 할 수 있는데, 나는 권태응이라는 이름을 아주 느즈막하게 알았다. 둘레에서 알려주는 사람 없었고, 곁에서 권태응 시인 좋아하는 사람 만나지 못했다.


  오늘 신경림 시인 2008년 시집 한 권 곰곰이 돌아보면서 권태응 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원수 님을 떠올린다. 시란 무엇이고 이야기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일까. 책이 좀 팔리고 여러모로 인기인 되면 ‘좋은 시’라 할 수 있을까. ‘읽히는 시’하고 ‘사랑스러운 시’는 얼마나 어울릴 만할까.


  신경림 시인이 꼭 농투산이 되어 열 해 스무 해 흙하고 씨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흙이 어떠한 숨결이요 흙을 어떠한 사랑으로 맞이할 때에 우리가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사람 되는가를 생각해 볼 만하다고 느낀다. 신경림 시인이 애써 장돌뱅이 되어 서른 해 마흔 해 골골샅샅 다리품 팔며 떠돌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신경림 시인은 장돌뱅이처럼 장사하며 지낸 적 있다지 않은가. 그러나, 이 땅 골골샅샅 더 깊고 고요한 시골과 멧골과 두메를 사귀며 작은 이웃 마주하면서 어깨동무하는 나날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으면, 신경림 시인 삶과 사랑과 눈길과 손길은 사뭇 새롭게 거듭났으리라 느낀다.


  그래, 그저 그뿐이다. 신경림 시인은 시골에서 안 살지만, 나는 아이들과 옆지기하고 시골에서 산다. 나는 날마다 시골노래를 듣는다. 나는 언제나 시골노래를 부른다. 그뿐이다. 그예 그뿐이다.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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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9 05:20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글을 읽고 있으니 저도,
조태일님의 <국토>나 황명걸님의 <한국의 아이>, 김명인님의 <동두천>을 뜨겁던
가슴으로 읽은 그 시간들이...떠오릅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를 처음 읽었던 건, 아마 ,<農舞>였던 듯 싶어요.
친구들과 罷場,을 읽으며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웃는다'를 읽으며 낄낄 서로를 더욱 사랑하던 시간이었지요.

며칠전에 ,<노동의 새벽>으로 처음 만났었던 박노해 시인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몇 장 넘겨 봤는데...참.. 좋더군요.

부끄럽게도 저는 권태응 시인을 몰랐어요.
<감자꽃>, 감사한 마음으로 담아갑니다.~


파란놀 2013-06-09 07:53   좋아요 0 | URL
저도 <감자꽃>을 1994년이 아닌 1998년에 이르러 비로소 알았어요. 다만, 책은 1994년에 나왔지만, 노래는 예전부터 듣기는 했는데, 그 노래가 그 시인 줄 제대로 모르기도 했고, 요 몇 해 또는 요 열 해 남짓 제법 알려지기는 했어도, 아직 권태응 시인이나 <감자꽃> 시집은 제대로 읽히거나 사랑받지 못해요.

더 오랜 나날 흐르면, <감자꽃> 시집에 깃든 깊은 사랑 우리들한테 골고루 스며들 수 있으리라 믿어요. 이 시집에 담긴 시는 '동시'가 아니라 '시노래'로구나 하고 느낄 만큼 참 아름답지요...

신경림 시인이 그 '파장' 시처럼, '못난 놈'으로 살아가며 '서로 웃고' 좋아하는 삶 즐겁게 이을 수 있기를 빌어요. 부디 '원로'는 되지 마시고요...
 
낙타 창비시선 284
신경림 지음 / 창비 / 200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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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즐거움
[시를 말하는 시 26] 신경림, 《낙타》

 


- 책이름 : 낙타
- 글 : 신경림
- 펴낸곳 : 창비 (2008.2.22.)
- 책값 : 8000원

 


  밤에 아이들 재우며 개구리 노랫소리 듣습니다. 나는 저녁마다 아이들한테 개구리 노랫소리를 말합니다. 봄이 무르익는 사월부터 아이들한테 개구리 노랫소리를 말하며 여름을 보내고, 여름부터 개구리뿐 아니라 풀벌레 노랫소리를 말하고, 여름이 무르익을 적에는 매미 노랫소리를 말해요.


  아이들은 아버지 말을 듣다가 마루문을 활짝 열고는 묻습니다. “아버지, 개구리 노랫소리 들을래요?” 응, 그래, 그런데, 네가 마루문 안 열어도 아버지는 늘 하루 내내 개구리 노랫소리를 마음으로 듣는단다.


  머잖아, 큰아이는 매미 노랫소리 듣자며 마루문 활짝 열겠지요. 또, 풀벌레 노랫소리 듣자고 마루문 활활 열 테지요.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는 비바람 노랫소리 듣자고 하겠지요. 눈송이 휘날리는 날에는 눈바람 노랫소리 듣자고 할 테고요.


  그러고 보면 언제나 노래예요. 개구리도, 풀벌레도, 매미도 노래이지만,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도, 구름 흐르는 소리도 노래예요. 유채꽃 날리는 소리 들어 보았나요? 진달래나 개나리뿐 아니라, 오디 열매 감 열매 흔들리는 소리 들어 보았나요? 동백꽃잎과 후박잎 떨어지는 소리 들어 봐요. 오동잎이랑 은행잎 지는 소리를 헤아려요. 어느 소리이든 그야말로 노래입니다.


.. 그러나 내 고장에 와서 나는 남이 된다. / 큰길도 골목도 달라진 게 없는데도 / 너무 익숙해 들여다보면 장바닥은 /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로 가득하고, / 술집은 표정 모를 얼굴들로 소란스럽다 ..  (나와 세상 사이에는)


  큰아이 낳아 살아갈 적까지 모르던 소리 하나를, 아니 큰아이 낳아 살아가면서 미처 살가이 깨닫지 못하던 소리 하나를, 작은아이 낳아 살아가며 느낀 적 있어요. 바로, 골짝물 소리예요. 작은아이는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 태어났어요. 작은아이한테 살갑고 익숙한 소리는 멧골자락 소리예요. 그래서, 작은아이는 골짝물이나 시냇물이나 바닷물 찰랑이거나 흐르는 소리 들으면 이내 잠들어요. 아주 예쁜 얼굴로 아주 깊이 새근새근 잠들어요.


  큰아이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도시에서도 전철길 바로 옆에 붙은 옥탑집에서 태어났어요. 백 데시벨 훌쩍 넘는 시끄러운 데에서 태어나서, 전철 소리에다가 자동차 소리까지 뒤섞인 골 아픈 데에서 갓난쟁이 나날 보냈어요. 큰아이는 작은아이와 달리 제법 시끄러운 데에서도 잘 자요. 그래서 큰아이 재울 때면 참 미안해요. 너한테 보드랍고 사랑스러운 소리 들려주지 못한 지난날 참 미안하구나 하고 얘기헤요. 그래서 큰아이한테 더 자주 노래를 들려주려 해요. 작은아이 나란히 곁에 두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노래를 부르곤 해요. 내가 몸소 노래를 못 부르면 사랑스러운 노래를 틀어서 듣도록 해요.


  시골에서 살아가며, 노래 틀어 주는 일 많이 줄어들어요. 시골에서 살아가니, 이웃 할배가 경운기 몰지 않으면 참 좋은 노래 들어요. 멧새가 노래하고 제비가 노래하지요. 박새가 노래하며, 까치와 멧비둘기가 노래하지요. 자전거 타고 이웃마을 마실을 하면 왜가리 노랫소리를 들어요. 바닷가로 나아가 몇 시간이고 물결 소리를 들어요. 집에서는 마당 한켠 씩씩한 후박나무 바람결에 흔들리며 춤추는 소리를 들어요.


.. 살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과 악취가 / 꿈과 달빛에 섞여 때로 만개한 매화보다도 / 더 짙은 향내가 되기도 하는 건지. / 내년 봄에도 다시 한번 매화 찾아 나섰다가 매화는 그만두고 밤차나 타고 올라올까 ..  (매화를 찾아서)


  노래란 삶을 북돋우는 즐거움이로구나 하고 생각해요. 노래란 삶을 살찌우는 웃음꽃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노래를 떠올리며 하루를 열어요. 노래를 되새기며 하루를 마무리해요.


  널리 알려진 노래도 부르고, 우리 깜냥껏 그때그때 새 노래를 빚어서 불러요. 아버지도 아이들도, 마음대로 노래를 지어요. 노랫말도 노랫가락도 스스로 짓지요. 왜냐하면, 가수 되려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가수 흉내를 내려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삶을 빛내려고 부르는 노래이거든요. 사랑을 찾고 꿈을 바라는 노래이거든요.


.. 어찌 탓할 수만 있으랴, 착한 이웃들이 그가 이룩한 작은 성과를 자못 자랑스러워하면서 우리의 작고 매운 독재자를 기리고 있다 한들. 도시와 공장과 도속도로에 밴 눈물과 피는 해가 뜨면 자국도 없이 스러지는 한갓 이슬 같은 것인가 ..  (이슬에 대하여)


  어느덧 할배 시인이라 할 만한 신경림 님 시집 《낙타》(창비,2008)를 읽습니다. 신경림 할배 시인 스스로 참 홀가분하게 쓴 시를 그러모았다고 하는 시집입니다. 시를 읽는 내내, 참말 신경림 님 스스로 참으로 홀가분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시를 읽는 내 마음은 그닥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홀가분해도 독자는 갑갑합니다. 왜냐하면, 신경림 시인은 《낙타》라는 시집에서 이녁 울타리와 올가미를 벗어던졌다 하지만, 외려 ‘새로운 울타리와 올가미’를 만들었다는 느낌 들었어요. 민요 가락을 헤아리며 지은 옛날 시에서 외려 가붓한 노래를 느껴요. 민요 자락을 떠올리며 읊은 오래된 시에서 되레 가뿐한 노래를 느껴요. 왜냐하면, 민요란 그저 삶인 이야기이거든요. 민요란 고을마다 사람마다 때마다 다 다르게 나누던 이야기이거든요.


.. 하얀 설산이 바로 동네 뒷산이다, / 해발 이천오백 미터 능선 위의 시노아 마을 ..  (히말라야의 순이)


  오백 해나 천 해쯤 대물림해야 민요가 되지 않아요. 오늘 빚어서 우리 아이한테 물려주어도 민요가 돼요. 아니, 나 스스로 지어 오늘 부르는 노래도 민요예요. 곧, 민요에는 틀이 없어요. 민요는 격식도 규칙도 없어요. 민요는 문학이 아니에요. 민요는 그예 삶이고 사랑이고 생각이지, 민요는 문학도 예술도 문화도 아니에요.


  민요는 삶을 부르는 노래라 민요이고, 사랑을 나누는 노래라 민요요, 생각을 빛내는 노래이기에 민요예요. 신경림 할배 시인 옛날 싯자락이 민요와 같고 민요를 닮을 적에 더 살갑다 느낀 까닭은 ‘민요를 흉내냈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날그날 그때그때 그곳그곳 다 다른 날과 때와 곳을 헤아리면서 삶을 즐기고 사랑을 나누며 생각을 빛내려 했기에 아름다운 싯자락이었구나 싶어요.


  민요 형식이란 없어요. 민요 가락이란 없어요. 민요를 부른 사람, 곧 민중이란 다른 사람 아니에요. 내 어머니와 내 할머니가 민중이에요. 내가 민중이고 내 동생과 형이 민중이에요. 민중은 어디 머나먼 나라에 있지 않아요. 내 동무와 이웃 누구나 민중이에요. 신경림 시인이 지난날 ‘민요 시인’이었다면, 바로 신경림 님 스스로 민중이 되어 누구하고나 어깨동무하면서 막걸리를 나눌 만한 넋이자 숨결이었다는 뜻이에요.


.. 나는 지금 보르도에 와 있다. 프랑스 포도의 주산지. / ‘시골’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술집에 앉아 / 뉘여서 3년, 앉혀서 3년, 다시 / 거꾸로 세워 3년을 묵혔다는 명포도주를 마시며 / 창밖의 섹스 용품점을 내려다보고 있다 ..  (세계화는 나를 가난하게 만들고)


  신경림 할배 시인이 프랑스 포도술 마신대서 민중이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창밖의 섹스 용품점을 내려다보”니까 민중하고 동떨어지지 않아요. 다만, 신경림 할배 시인 스스로 민요를 부르지 않겠다고 하니까, 이제 신경림 할배 시인은 참말 민요 시인이 아니요, 민중이 아닐 뿐이에요. 그저, 도시사람 가운데 하나이지요. 도시에 많은 수많은 문학가나 시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요. 그리고, 원로작가 가운데 하나예요.


  생각해 봐요. 민요라는 노래를 부르던 할매나 할배는 나이 여든이나 아흔이라 하더라도 ‘원로’라는 소리 안 들어요. ‘원로 농사꾼’이란 없어요. 그저 농사꾼일 뿐이에요. ‘원로 촌사람’이란 없어요. 그저 시골사람일 뿐이에요.


  신경림 할배 시인으로서는 ‘민요’도 ‘민중’도 짐과 같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짐이라면 내려놓으면 되니까 걱정없어요. 그냥 내려놓으셔요. 짐을 내려놓는대서 시인이 아니지는 않으니까요. 짐을 던대서 예술인이 아니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봄을 노래하지 않고, 들꽃을 사랑하지 않으며, 흙빛이라 할 얼굴빛에서 멀어지면, 민중도 백성도 서민도 되지는 않아요. 그뿐이에요. 즐거움 없는 삶에서는 아무런 이야기 샘솟지 않아요.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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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9 05:1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원로'라는 호칭...
저는 이태전 이곳으로 이사와..늦가을이 깊어가던 밤,
커다랗게 마른 목련나무 이파리가 창밖 바람에 '왈그락, 왈그락'구르는 소리를
처음 들었지요. 마치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려 맑은 차, 한 잔 마시는 듯한 기쁨이었어요.
지금 아침을 여는 새소리도, 조금 들리네요.~^^ 그리고 비 오시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말고는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못 듣고 사네요. 이궁,,,

파란놀 2013-06-09 07:24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 작가 분들한테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
자꾸 스스로를 '원로'로 여긴다는... 그런 모습이에요.

문학이건, 진보이건, 사진이건, 예술이건...
죄다 '원로'투성이예요.

그런데, 오직 한 군데,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사람을 놓고는 '원로'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식구는 시골에 와서 살아갑니다.

아이들 바라보며 '애늙은이' 되지 말라 얘기하지만,
정작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늙은어른' 되려고
너무 애써요......
 

[시로 읽는 책 6] 서로 아름답게

 


  다른 사람이 늘 옳듯
  나도 함께 언제나 옳아
  서로 아름답게 어울립니다.

 


  아이들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요. 내 목소리를 가만히 헤아리며 가장 고운 목청으로 이야기를 빚어요. 아이들 목소리는 내 삶을 북돋우는 아름다운 노래예요. 내 목소리는 아이들 마음속에 사랑이 돋아나도록 이끄는 따사로운 손길이에요. 서로서로 좋고 착하며 빛나요. 서로서로 즐겁고 반가우며 맑아요. 네 목소리도 내 목소리도 살갑습니다. 4346.6.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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