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적부터 읽은 시집
고등학생 적부터 읽은 시인을 서른아홉 살에 두 아이 낳아 돌보는 시골마을에서 다시 읽으며 생각한다. 조태일, 김현승 두 시인은 스물 몇 해 앞서나 오늘이나 가슴을 북돋운다고 느낀다. 김소월, 윤동주, 한용운, 이육사 네 시인은 예나 이제나 아름다운 노래를 새록새록 되새겨 준다고 느낀다. 김수영, 신동엽, 고정희, 김남주, 박노해 다섯 시인은 예전에는 못 느낀 다른 깊이와 너비를 해마다 새롭게 건드려 준다고 느낀다.
신경림 시인을 가만히 헤아린다. 신경림 시인 시집 이야기를 스물 몇 해 만에 처음으로 느낌글로 갈무리한다. 고등학생이던 1992년과 1993년에는 ‘교과서에서 볼 수 없던 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다. 스물 몇 해 지난 오늘날에는 ‘교과서에 실리는 이야기’를 느낀다.
아마, 앞으로 언제가 될는 지 모르나, 권태응 같은 분들 동시를 교과서에서 제대로 다룰 날 있을 수 있다. 2001년에 이오덕 님이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같은 책을 내며 널리 알리고서야 교과서에도 권태응 님 동시가 실린다 할 수 있고, 백창우 같은 분이 〈감자꽃〉에 가락을 붙였기에 이러한 시가 교과서에 실린다 할 수 있는데, 나는 권태응이라는 이름을 아주 느즈막하게 알았다. 둘레에서 알려주는 사람 없었고, 곁에서 권태응 시인 좋아하는 사람 만나지 못했다.
오늘 신경림 시인 2008년 시집 한 권 곰곰이 돌아보면서 권태응 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원수 님을 떠올린다. 시란 무엇이고 이야기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일까. 책이 좀 팔리고 여러모로 인기인 되면 ‘좋은 시’라 할 수 있을까. ‘읽히는 시’하고 ‘사랑스러운 시’는 얼마나 어울릴 만할까.
신경림 시인이 꼭 농투산이 되어 열 해 스무 해 흙하고 씨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흙이 어떠한 숨결이요 흙을 어떠한 사랑으로 맞이할 때에 우리가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사람 되는가를 생각해 볼 만하다고 느낀다. 신경림 시인이 애써 장돌뱅이 되어 서른 해 마흔 해 골골샅샅 다리품 팔며 떠돌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신경림 시인은 장돌뱅이처럼 장사하며 지낸 적 있다지 않은가. 그러나, 이 땅 골골샅샅 더 깊고 고요한 시골과 멧골과 두메를 사귀며 작은 이웃 마주하면서 어깨동무하는 나날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으면, 신경림 시인 삶과 사랑과 눈길과 손길은 사뭇 새롭게 거듭났으리라 느낀다.
그래, 그저 그뿐이다. 신경림 시인은 시골에서 안 살지만, 나는 아이들과 옆지기하고 시골에서 산다. 나는 날마다 시골노래를 듣는다. 나는 언제나 시골노래를 부른다. 그뿐이다. 그예 그뿐이다.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