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옷 입히는 어린이

 


  여섯 살 사름벼리는 동생한테 옷을 잘 입혀 준다. 일곱 살이 되면 훨씬 잘 입혀 주겠지. 그러나, 이렇게 예쁜 누나인 탓에 작은아이는 스스로 옷을 입으려 하지 않는다. 아이야, 누나가 옷 입혀 주는 즐거움도 누리되, 너는 너 스스로도 옷을 입을 수 있어야지. 누나가 예쁘고 착하니 이것저것 잘 챙겨 준다만. 4346.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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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스스로 쉬하기

 


  세 살 산들보라더러 스스로 쉬를 하라 시키면 으레 옆으로 흘리지만, 곧잘 스스로 쉬를 하도록 시킨다. 쉬가 너무 마려우면 바지 내리기 앞서 바지에 싸지만, 너무 마렵지 않은 쉬일 때에는 천천히 바지를 내려서 오줌그릇 들고 쉬를 눈다. 다만, 바지를 내릴 줄 알아도 혼자서 올릴 줄 아직 모른다. 4346.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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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똥

 


  작은아이가 또 바닥똥을 눈다. 작은아이는 두 돌 지난 세 살인데, 큰아이와 달리 똥을 눌 적에 오줌그릇(또는 똥그릇)에 앉지 않는다. 사내는 가시내와 달리 앉아서 쉬를 해 버릇하지 않아 똥을 누는 버릇 들이기까지 훨씬 오래 걸리려나. 하루에 한두 차례, 또는 서너 차례 바닥똥 눌 때마다 똥바지 빨아야 하고, 바닥에 고이는 똥오줌물 치워야 한다. 치우는 일이야 훌쩍 해내지. 다만, 이 아이 언제쯤 똥을 잘 가려서 스스로 씩씩하게 눌까 궁금하다. 틀림없이 작은아이 스스로 ‘아이, 똥이 마렵네.’ 하고 느낄 텐데, 아버지한테 무언가 시키고 싶어 이렇게 바닥똥을 누나. 4346.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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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 물구나무 그림책 71 파랑새 그림책 71
송창일 지음, 이승은.허헌선 인형, 이상혁 사진 / 파랑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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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1

 


눈이 내리지 않는 이 나라
― 눈사람
 이승은·허헌선 인형,이상혁 사진,송창일 글
 파랑새 펴냄,2008.7.10./9800원

 


  눈사람을 굴리자면 눈이 얼마만큼 내려야 할까요. 눈이 소복소복 내리면, 눈이 펑펑 내리면, 꺄아 소리치면서 바깥으로 나와서 눈사람을 굴릴 만할까요.


  눈이 올라치면 어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저런, 저런, 길이 막히겠는걸.’ 어른들은 어느새 두 다리로 걷는 어른 아니라, 자가용을 몰거나 버스를 타는 어른 되고 말아, 하늘을 하얗게 채우며 빛나는 눈송이를 반기지 않습니다. 눈이 오는 겨울날, ‘오늘은 버스 말고 전철 타야겠어.’ 하고 생각하는 어른들투성이인 도시입니다. 시골에서도 다르지 않아요. 시골에서도 어른들은 ‘자동차 다니기 나쁘니’까 얼른 눈을 쓸자며 넉가래로 밀고 빗자루로 쓸지요.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앞서부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어른도 아이도 가만히 지켜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눈을 쓸자면 다 내리고 나서 쓸면 되어요. 괜히 한참 내리는데 쓸 까닭 없어요. 한참 내릴 때에 눈을 쓸며 다니면, 발에 눌린 자리는 더 쓸기 어렵지요.

  눈이 오는 날이면 언제나 어릴 적 들은 옛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에 농사가 잘 된다’라는 한 줄 떠오릅니다. 눈이 많이 와서 들판에 소복소복 쌓이면 이런 벌레 저런 벌레 잘 죽기도 하고, 겨우내 흙이 포근하게 쉬며, 이 눈이 녹는 봄에는 고운 물기 퍼져 한결 기름질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더더욱 눈은 그대로 둘 노릇이에요.


  그러나, 어떻게 보면, 도시도 시골도 온통 아스팔트길이고 시멘트땅입니다. 흙이 그대로 남은 땅이 거의 없어요. 도시에서 텃밭 일구는 사람 매우 적어요. 도시에서 빈터 남은 데 거의 찾아볼 길 없어요. 하늘하늘 내리는 눈이 느긋하게 쉴 자리 없어요. 도시에서는 눈이 거추장스러워 얼른 치우려 할밖에 없어요. 도시에서는 자동차를 맨 먼저 걱정하면서 염화칼슘 같은 화학약품 마구 뿌릴밖에 없어요. 아스팔트 밑에 깔린 흙땅이 염화칼슘 때문에 더러워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아니, 흙땅이 아스팔트한테 깔리고 자동차한테 눌리며 얼마나 아파 하는 줄, 도시사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아요.

 

 

 


  송창일 님 글에 맞추어 인형을 만든 이승은·허헌선 님입니다. 두 분이 만든 인형을 예쁘장하게 사진으로 찍은 이상혁 님입니다.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눈사람》(파랑새,2008) 한참 들여다보고, 아이들과 읽습니다. 눈사람이 앙증맞고, 눈사람한테 마음을 쓰는 아이들이 아름답습니다. 아이들 돌보는 어머니가 사랑스럽고,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이 살갑습니다. 아름다운 넋으로 글을 쓴 사람 있어, 이 아름다움을 받아 인형을 만듭니다. 아름다움 깃든 인형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아름답게 보여주려고 마음을 기울인 한 사람 있습니다. 그래요, 옛날에는, 아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에는, 모두들 이렇게 눈을 맞이하고 집에서 복닥복닥 놀며 하루를 길고 아름답게 보냈어요. 눈이 오니 눈을 바라보면서 눈 노래 불러요. 눈을 바라보며 즐겁게 뛰놀고, 눈을 기쁘게 맞이했어요.


  이제 도시에서는 눈을 아름답게 맞아들이면서 눈놀이 아름답게 누리지 못할까요. 이제 도시에서는 눈을 사랑스레 마주보면서 눈사람 사랑스레 굴리지 못할까요. 이제 도시에서는 눈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눈싸움 신나게 뒹굴지 못할까요.


  예쁜 사진책 《눈사람》인데, 눈사람 굴리기를 ‘흘러간 옛일’로만 여기기는 너무 아쉽습니다. 고운 사진책 《눈사람》이니, 겨울눈 이야기를 ‘지나간 옛일’로만 여기기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오늘 이곳에서도, 오늘날 도시와 시골 어디에서도,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아이들이 땀 송송 흘리며 눈사람 굴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눈을 만지며 손이 얼얼하고, 눈을 굴리며 싱그럽게 웃으며, 눈을 척척 쌓으며 두 손 번쩍 치켜들 수 있어야지 싶어요.


  무대가 아파트나 빌라라 하더라도, 삶터가 도시요 서울이라 하더라도, 길 한복판에 눈사람 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눈사람 곳곳에 선다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천천히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하늘과 땅과 이웃과 동무를 살뜰하게 마주하며 반갑게 손을 흔들고 싱긋빙긋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눈놀이 즐기고, 눈놀이 사진으로 기쁘게 담으며, 눈놀이 이야기 두고두고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4346.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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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6-2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은 허헌선 인형작가의 전시회에 갔다가 이 부부 작가를 직접 뵌적이 있어요. 코 뾰족하고 눈 파란 인형이 아니라 누가 봐도 우리를 닮은, 우리 삶이 드러나는 작품들이었어요. 그러고보니 그게 벌써 오래전 일이네요.

파란놀 2013-06-22 13:41   좋아요 0 | URL
아, 전시회를 가셨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예전에 전시회에 가 본 적 있는 듯도 하고...
저로서는 퍽 어릴 적 일이라서요~ ^^

이렇게 사진그림책으로 나온 적 있는 줄 보고는
놀라면서 반가웠어요.
 

비가림 농사

 


  나는 ‘유기농’으로 고추농사를 짓는다는 사람 말은 믿지 않는다. 거름을 사람 똥오줌으로 줄 만큼 고추밭에 뿌릴 수 없기도 하거니와, 같은 땅에 해마다 고추를 심을 수 없기도 하다.


  비닐을 씌우면서 곡식과 열매를 키우는데 ‘유기농’과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믿을 수 없다. 비닐집 세워서 농사를 지으면 ‘비닐농사’이지, 다른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감자밭에도 고추밭에도 마늘밭에도 배추밭에도 무밭에도 온통 비닐을 씌우는 비닐농사를 하는 오늘날 흐름이라면, 섣불리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요새 어떤 흙일꾼은 ‘노지 감자’라는 말을 쓴다. ‘노지(露地)’는 일본말로 ‘맨땅’을 가리킨다. ‘맨땅 감자’란 뜻인데, 이렇게 따로 이름을 안 붙이면 사람들이 제대로 모른다고 한다.


  귀농이나 귀촌을 가르치거나 알려준다는 모임이나 자리를 보면, 으레 ‘비닐집 짓’고 밭두둑마다 넓게 ‘비닐을 까’는 모습부터 보여주던데, 왜 이렇게 ‘생각있고 뜻있다’는 사람조차 비닐사랑에 매달리는지 알쏭달쏭하다.


  얼마 앞서 어느 모내기잔치 행사에 갔을 때에 여러 사람 주고받는 이야기를 곁에서 들었다. 한 사람이, 고추나 여러 가지 푸성귀 심어 기르면서 ‘푸성귀가 빗물 맞으면 안 되어 비가림 시설을 한다’는 말을 한다. 다른 한 사람이, 그러면 그 농사는 친환경도 유기농도 아닌 ‘비가림 농사’ 아니냐고 말을 한다. 아까 말한 사람은, 그게 아니고 유기농으로 하려면 ‘비가림 시설을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니 다른 한 사람이 다시, ‘그게 바로 비가림 농사이지 뭐냐’면서, ‘언제부터 고추고 토마토고 빗물 안 마시고 자라느냐고, 이녁 밭에서는 고추도 배추도 무도 무엇도 빗물 잘 마시면서 잘 큰다’고 덧붙인다.


  가만히 따지면, 오늘날 도시사람 먹는 모든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는 ‘농약 농사’와 ‘항생제 농사’와 ‘비료 농사’에다가 ‘비닐 농사’로 거둔다. 곧, 오늘날 사람들은 몽땅 ‘농약·항생제·비료·비닐 농사’로 거두는 곡식이랑 푸성귀랑 열매를 먹는 셈이다. 아니, 감자도 고구마도 참외도 수박도 딸기도 토마토도 멜론도 블루베리도 커피도 포도도 사과도 배도 복숭아도 아닌, 농약과 항생제와 비료와 비닐을 먹는 셈이다. 4346.6.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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