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닷 Photo닷 2014.1 - Vol.2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지음 / 포토닷(월간지)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54

 


생각을 모아서 엮는 사진책
― 사진잡지 《포토닷》 2호
 포토닷 펴냄, 2014.1.1.

 


  사진가는 사진을 찍어서 사진잔치를 열기도 하고 사진책을 내기도 합니다. 사진만 찍고 사진잔치를 안 열거나 사진책을 안 엮는 사진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꼭 사진잔치를 열어야 하지 않고, 반드시 사진책을 펴내야 하지 않아요.


  사진잔치는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 열어야 하지 않습니다. 전주나 순천에서 사진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고흥이나 함평처럼 작은 시골에서 사진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사진잔치에 백만 사람이나 십만 사람이 찾아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만한 곳에 전시관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어디에서나 전시관을 열 만하고, 언제라도 사진잔치를 꾸릴 만합니다.


  사진잔치는 언론 매체에 알려져야 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동무와 이웃을 불러 조촐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흐름을 사진으로 담아 종이에 앉힌 뒤, 돌잔치를 하거나 생일잔치를 하면서 이쁘장하게 사진잔치를 함께 마련할 수 있어요. 아이가 열 살을 맞이하는 날을 기려, 갓 태어난 날부터 열 살로 자라기까지 거친 삶을 백 장이나 천 장으로 갈무리해서 벽에 차곡차곡 붙이는 사진잔치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두툼한 사진책을 꼭 한 권 만들어서 아이한테 선물로 줄 수 있어요.


  널리 알려져야 이름난 사진책이 아닙니다. 널리 이름을 날려야 멋진 사진가로 되지 않습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호(2014.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다른 사람들도 함께 좋아해 주고 내 사진이 올라오기를 기다려 주는 사람도 있어 이제 저 혼자만의 놀이가 아닌 그들과의 약속이 되어 버렸어요(28쪽/김민수).”와 같은 말마따나, 스스로 좋아서 찍을 때에 사진이 됩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 사진이 안 됩니다.


  사진을 찍어 돈을 벌 수 있고, 사진관(또는 스튜디오)에서 일할 수 있으며, 사진기자로 일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직업이 ‘사진찍기’라서 ‘사진가’이지 않아요. 직업이 기자이기에 ‘글작가’라 하지 않습니다. 공무원이 시청이나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쓰는 보고서도 ‘글’이에요. 연필을 쓰든 셈틀을 쓰든 글을 만져요. 그렇지만, 공문서를 가리켜 ‘글’이나 ‘문학’이라 하지 않으며, 이런 글(보고서)을 쓰는 이들더러 ‘작가’라 하지 않습니다.

 


 

 

  사진가란 어떤 사람일까요?


  “모국에 돌아와 다시 보게 된 우리 땅의 풍경은 안으로 스며 있고 오래 응시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내 몸과 같은 느낌이었다. 첫 눈에 매혹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남아 있는, 질리지 안는 풍경 속에 스며 있는 빛을 찾아가고 있고 … 전시는 책에 비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다. 책의 형식으로 이미지를 엮어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은 사진가에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사진을 알게 된 것도 사진책을 통해서였고, 책으로 내 작업을 정리할 때,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는 느낌을 받는다(101쪽/주상연).”와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곱씹습니다. 삶을 느끼고 읽을 줄 알면서, 이러한 삶을 사진기를 빌어 찬찬히 담아내어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진가로 다시 태어난다고 봅니다. 삶을 느끼거나 읽을 줄 모른다면 사진가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봅니다. 삶을 느끼거나 읽더라도, 이를 사진기를 빌어 찬찬히 담아내지 못한다면, 찬찬히 담아냈어도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지 못한다면,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나 스스로 즐겁게 웃거나 울지 못한다면 사진가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고 봅니다.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사진가입니다. 연필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글작가입니다. 붓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그림작가(또는 화가)입니다. 노래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노래꾼(또는 가수)입니다.


  시골마을 흙지기는 흙으로 이야기를 해요. 씨앗 한 톨로 이야기를 하지요. 풀 한 포기로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흙지기(또는 농사꾼)입니다. 시골 흙지기하고 사진가는 똑같아요. 손에 호미를 쥐거나 사진기를 쥐는 모습만 다를 뿐, 삶과 눈길과 넋이 똑같아요.


  이리하여, “사진가는 이전에 어떤 그릇에 담아 어떤 세팅으로 어떤 분위기에서 먹었을 때 더 맛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더 좋은 음식사진을 찍기 위해 한식은 물론 프랑스 요리까지 배웠다 … ‘오퍼레이터가 되지 말아라, 테크니션이 되지 말아라, 생각이 있는 사진가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수업시간에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획과 사고능력이 있어야 롱런하는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122쪽/이종근).”와 같은 이야기를 즐겁게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 다루는 솜씨로는 사진가로 태어나지 못해요. 사진기를 잘 만진대서 사진가라는 이름을 얻지 못해요. 사진으로 담아서 나누려는 이야기를 깨달아야 하고, 사진으로 엮어서 밝히는 빛을 알아차려야 해요. 사진가는 사진으로 삶을 짓는 사람이거든요. 사진가는 사진에 빛을 얹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이거든요.


  생각을 모아서 엮는 사진책입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복닥복닥 모여 삶을 이루는 한켠에서 사진기를 손에 쥐고는 내 생각을 따사롭게 그러모아 이야기 한 타래를 사진빛으로 영그는 사진가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호를 덮으면서 꿈꿉니다. 이 땅 아름다운 사진가들이 사진을 한결 사랑하면서 삶을 더욱 즐기는 새해 맞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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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살 고백
공선옥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48

 


마흔 살에 걷는 길
― 공선옥의 마흔 살 고백
 공선옥 글
 생활성서사 펴냄, 2009.2.10.

 


  소설쓰는 공선옥 님은 지난 2003년에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말)라는 책을 내놓은 적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공선옥의 마흔 살 고백》(생활성서사)을 내놓습니다. 1964년에 태어나셨으니 어느새 쉰 줄에 접어든 공선옥 님이니, 앞으로는 “쉰에 길을 나서다”나 “쉰 살 고백”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내 서른 살 언저리에 읽었고, 《공선옥의 마흔 살 고백》은 마흔 살 길목에서 읽습니다.


.. 그때 누군가 작은 소리로 그러던 것이었다. 으이구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울어. 나는 뒷머리를 한 대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미운 짓 하는 내 아이를 누군가는 지금 콱 한 대 때려 주고 싶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나는 그 나들이가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 “그런데 아이들이 저를 위로하는 거예요. 제 곁에 그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울지 않게 되었어요.” … 아이가 우는데도 악이나 쓰는 아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 이전에 나는 세상에 대한 무서움을 느꼈다. 아이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라고 했다. 무슨 일로인지 두 사람이 다퉜고 아이 엄마가 식당을 뛰쳐나갔다는 것인데 ..  (20, 27, 29쪽)


  옛날이라면 마흔 살 나이로 접어든 사람한테는 스무 살 아이가 있습니다. 스무 살 나이로 접어든 아이는 마음을 밝히는 짝꿍을 만날 만합니다. 마음을 밝히는 짝꿍을 만난 스무 살 아이는 푸른 빛으로 고운 아이를 낳을 테고, 이 아이는 새롭게 자라겠지요. 이리하여, 마흔 살 어른이 예순 살이 될 무렵, 스무 살 젊은이는 마흔 살 어른이 되고, 갓 태어난 아기는 새로운 스무 살로 꽃피우리라 느껴요.


  커다란 느티나무는 아주 작은 꽃을 풀빛으로 피우고는 아주 작은 열매를 또 풀빛으로 맺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둘레에는 작은 씨앗 떨어져 작은 싹이 돋습니다. 이들 작은 싹은 풀을 먹는 숲짐승이 냠냠 훑어먹기도 하지만, 씩씩하게 자라서 어버이 나무 곁에서 어린이 나무로 줄기가 굵어지기도 해요.


  너무 마땅한데, 사랑스러운 손길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이웃을 아낍니다. 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덜 받거나 못 받으며 자란 아이라 하더라도, 이 아이들은 그동안 덜 받거나 못 받은 따순 손길을 그리며 이웃을 곱게 아낍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언제나 이웃을 아끼는 마음길로 자라요.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또는 어른)는 아이들 모습과 매무새를 바라보면서 새롭게 깨닫지요. 사랑을 주어도 사랑을 먹고, 사랑을 미처 못 주어도 사랑을 먹는 이 아이들 삶빛에서 한 가지를 슬기롭게 배워요. 어른 스스로 어떻게 삶길 걸어갈 때에 스스로 아름다운가 하고.


.. 울어도 감싸 주거나 뺨 부벼 주는 이 하나 없는 아이들은 이다음에 커서도 그 영혼이 얼마나 외로울 것인가 … 나는 내심 아이에게 미안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언제 한 번이라도 풍족하게 먹여 준 적 없고 입혀 준 적 없는 엄마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언제 한 번을 새 물건 사 주라고 떼쓴 적이 없었다. 맛난 것 먹자고 한 적도 없었다. 있는 반찬에, 있는 옷에 저희끼리 그냥 커 버린 내 아이 입에서, 오늘의 불편한 여행에 대해 불평 한 마디 없이 고맙다는 말이 턱 하니 튀어나오다니 … 남도 지방을 여행하던 중에 어제 나는 장흥에 사는 지인의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밤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을 때 맨 먼저 나를 압도한 것은 바로 ‘밤의 빛깔’이었다 … 요즘 사람들은 밤에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헤아릴 생각은 아예 잊어버리고 인공의 빛으로 반짝이는 거리를, 그 ‘야경’이란 것을 구경하는 것이다. 아니,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야경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다 ..  (30, 49, 117쪽)


  오늘날 거의 모든 어버이(또는 어른)는 아이들한테 입시공부만 보여줍니다. 오늘날 웬만한 어버이(또는 어른)는 아이들한테 교과서와 문제집과 참고서만 건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한테 입시공부 아닌 사랑을 들려주고 삶을 보여주는 어버이(또는 어른)이 어김없이 있어요. 아이들한테 교과서나 문제집이나 참고서 아닌, 사랑책과 삶책을 넌지시 건네며 함께 즐기는 어버이(또는 어른)가 틀림없이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을 학교 울타리에 가두지 않는 어버이가 꼭 있습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지 않는 어른이 반드시 있어요.


  이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아이들을 들볶지 않는 어버이가, 그러니까 아이들을 사랑하며 아끼는 어른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톱니바퀴 되어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군인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 나라가 무너지지 않아요. 맑은 넋으로 밝은 숨결 사랑하는 어른이 있어 이 나라가 튼튼히 섭니다.


  맑은 숨결이 목숨을 살려요. 밝은 웃음이 사람을 살리지요. 고운 바람이 목숨을 지키고, 따사로운 햇볕이 사람을 살찌웁니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 ‘어머니 학력’이나 ‘아버지 재산’은 덧없습니다. 일흔 할매나 여든 할배한테 ‘할매 학력’이나 ‘할배 재산’은 부질없습니다.


  아이들한테 어버이 학력이나 재산을 물어 볼 까닭 없어요. 할매와 할배한테 이녁 학력이나 재산이 어떠한가 여쭐 까닭 없어요. 언제나 즐겁게 마주하고, 늘 사랑으로 어루만지며, 노상 웃음꽃으로 이야기 나누면 돼요.


.. 네가 대학에 안 가면 나는 돈 안 들어서 좋고 너는 시간 벌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네가 알면 ‘기절할까 봐’ 너 몰래 나 혼자 했었다. 대학이야 네가 나중에 진짜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것이 꼭 대학이란 데서 배워야만 할 때, 하여간 뭔가 필요성이 생길 때 가면 되지 않을까. 사람은 내가 정말로 필요하면 무슨 일이든 저절로 하게 되어 있잖냐 … 너는 나를 최초로 엄마로 만들어 준 아이다. 나는 너를 낳았지만 너는 나를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 어떤 사람이 어떻게 세 아이를 혼자서 떠맡을 생각을 다 했느냐고 물어 왔다. 나는 상황이 그렇게 되어서 그랬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만약 나만 고생한다는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으로 아이들을 아이 아빠들에게 두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나는 어땠을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 어찌어찌하여 그 ‘험한’ 세월을 통과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둘째 아이 입양하라는 그 상담원을 떠올리곤 했다 ..  (62, 64, 75쪽)


  공선옥 님이 걸어온 길은 어떤 빛이었을까요. “험한 세월(75쪽)”이었을까요? 아마, 공선옥 님 둘레에서 공선옥 님을 바라보던 이들이 이렇게 말했겠지요. 힘들거나 고단하다고 하지만, 늘 사랑이 피어났을 삶이 아닌 껍데기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겠지요.


  배고프다고 죽지 않아요. 목마르다고 죽지 않아요. 배고프면 배고플 뿐이고, 목마르면 목마를 뿐이에요. 배고픔을 잊자면, 목마름을 잊자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니까, 배고픔 아닌 다른 이야기를 떠올려야지요. 목마름 아닌 다른 삶을 찾아야지요. 사랑하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고, 꿈꾸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아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날마다 다섯 끼니를 먹더라도 늘 허거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물을 몇 동이 들이켜더라도 언제나 메마릅니다.


  한 숟가락 더 먹기에 배부르지 않아요. 한 숟가락 덜 먹으니 배고프지 않아요. 한 그릇 더 먹으니 배부르지 않아요. 한 그릇 덜 먹기에 배고프지 않아요. 사랑이 없을 때에 배고파요. 꿈이 없으니 목말라요. 사랑하고 멀어지니 힘들어요. 꿈을 잊으니 고단하지요.


.. 내가 꿋꿋이 작은 글들 쓰는 시간들을 견뎌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우리들 먹여살리기 위해서 내가 하는 글쓰는 일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든 일들을 하지 않았나 …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올 수 있는 그 어떤 형태의 고난, 억압, 모욕, 치욕까지도 받아들이고 감내할 수 있을 때가 아니겠는가 … 밥 먹고 집 앞 오솔길을 걷고 글을 쓰고 사는 단순한 삶을 사랑하고 싶다 … 젊어서 돈을 많이 벌어 놓으면 과연 늙어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지만, 혹시 돈 버는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때까지도 돈돈 하는 사람이 될까 무섭다 ..  (79, 81, 113, 115쪽)


  내가 하는 일이 힘들다고 느낀 적 없습니다. 가끔 “아이고 힘들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는 하지만, 힘들기에 내뱉는 말은 아니에요. 그저 힘을 더 써야 하니 이런 말이 절로 나올 뿐입니다. 그러면? 그러면 어떡할까요? 힘이 들면 쉬면 돼요. 힘이 들기에 힘을 더 내면 돼요. 힘이 드니까 살짝 쉬었다고 새로 기운을 차려서 일하면 돼요. 힘이 드는 만큼 더더욱 땀을 쏟으면서 애쓰면 돼요.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길이란, 날마다 새롭게 사랑하겠다는 마음가짐이지 싶습니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나날이란, 언제나 새삼스럽게 꿈꾸겠다는 매무새이지 싶습니다.


  아이한테 베풀 사랑을 키운다기보다, 스스로 새롭게 사랑하려는 삶을 일굽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꿈을 가꾼다기보다, 스스로 새삼스럽게 이루면서 웃고 싶은 꿈을 돌봅니다.


  즐겁게 살아갑니다. 노래하며 살아갑니다. 춤추며 살아갑니다.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즐거움은 이야기가 되고, 노래는 빛이 됩니다. 춤은 밥이 되고, 웃음은 꽃이 됩니다.


..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에는 소나무, 잣나무, 꽃사과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나무, 잣나무, 꽃사과나무 아래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먹는 게 즐겁지 않으니, 뭔들 즐거웠겠는가 … 모든 엄마들은 모든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모든 아이들은 모든 엄마들의 아이들이 되었던 것이다 …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 되기는 저 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내가 왜 진작 몰랐을까. 나이 마흔의 어느 아침에 거울을 보고 앉아 내가 나를 예뻐하며, 나는 그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가 나를 예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이기 시작했다 ..  (123, 148, 174, 191쪽)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해야 아이를 사랑할 수 있지 않아요. 어버이로서 내가 나를 사랑하면 아이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아이한테 집이나 자가용이나 돈을 물려주어야 어버이 몫이 아닙니다.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일구면 아이는 시나브로 사랑과 꿈을 이어받아요. 스스로 날마다 즐겁게 노래하면 아이는 천천히 웃음꽃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어요.


  마흔 살에 걷는 길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스무 살에 걷는 길이 더 푸르지 않습니다. 예순 살에 걷는 길이 더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열 살에 걷는 길이 더 싱그럽지 않습니다. 스스로 아름답고 싶은 사람이 아름답게 걷습니다. 스스로 싱그럽고 싶은 사람이 싱그럽게 걷습니다.


  꿈을 꾸려고 해야 꿈을 꿉니다. 돈이 넉넉해야 꿈을 꾸지 않아요. 사랑을 나누려고 해야 사랑을 나눕니다. 살림이 넉넉해야 사랑을 나누지 않아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여다봐요. 마음속에서 자라는 웃음을 노래로 빚어요.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젊은이이고, 스스로 어른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스스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랑스럽고, 스스로 꿈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꿈날개를 폅니다. 아이도 어른도 골고루 한 살씩 더 먹으면서, 저마다 새 하루를 즐겁게 어깨동무합니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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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톰하게 나온 사진잡지 《포토닷》 2호를 엊그제 받는다. 첫 호를 내는 언저리에 모두 백스무 사람이 정기구독을 해 주었다는 알림글을 본다. 나도 이 백스무 사람 가운데 하나로 살짝 곁들었다. 현대사진으로만 흐르지 않고, 사진과 삶과 빛과 사랑을 두루 이야기하는 징검다리 노릇을 잘 해 줄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전문가와 비평가와 예술가들 사이에 갇히지 않는, 사진을 좋아하고 즐기며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밭이 될 수 있는 잡지로 나아가면 참 아름답겠지. 2013년이 저무는 마지막날 저녁에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읽었다. 4347.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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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4.1- Vol.2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지음 / 포토닷(월간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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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가리 씨앗 책읽기

 


  지난가을 박주가리 열매를 길에서 주웠다. 길가에 박주가리 열매가 잔뜩 맺힌 옆을 자전거로 지나가다가 몇 주워서 건사했다. 통통한 열매를 터뜨리면 하얀 물이 졸졸 흐르는데, 먹어도 되고 생채기에 발라도 된단다. 그대로 두면 스스로 말라 갈라지면서 속에서 씨앗이 터져나온단다. 부엌에 건사한 지 달포쯤 지나니 참말 하얀 솜털이 커다랗게 달린 작고 가벼운 씨앗이 드러난다. 우리 집 둘레에 박주가리씨 놓으면 어떨까 생각하며 큰아이와 함께 이곳저곳에 하나씩 내려놓는다. 민들레 솜털보다 훨씬 크고 보드라운 박주가리 솜털이란. 새해에 우리 집에서 박주가리꽃 볼 수 있을까. 박주가리풀에서 박주가리 열매가 맺히다가 살며시 터지면서 박주가리 씨앗 나풀나풀 온 마을에 두루 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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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세 번 읽는 책

 


  다카하시 루미코 님 단편만화책에 실린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만화영화가 있다. 뜻밖에 이 작품이 있었다고 알아챈 뒤 고맙게 얻었다. 이튿날 아이들한테 보여줄까 생각하면서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 작품은 아이들하고 그냥 보아도 되리라 생각하지만, 또 모르는 노릇이니까.


  생각해 보면, 어느 영화를 아이하고 함께 보더라도, 나나 곁님이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살핀다. 아이와 함께 볼 만하지 않은 대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잘 살펴야 한다. 제대로 안 살피거나 얼추 살피고 함께 보다가 뜨끔한 영화가 꽤 있다.


  아차, 뜨끔하구나, 하고 깨달으며 영화를 끄지만, 벌써 뜨끔한 대목은 흐른 뒤. 어른들은 영화를 만들며 굳이 이런 대목과 저런 모습을 넣어야 했을까.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는 모습을 반드시 넣어야 영화다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 따사롭게 흐르는 사랑을 보여주자면, 바보스럽거나 짓궂은 이야기를 꼭 끼워넣어야 할까.


  좋은 말만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어떤 풀도 겨울이 되면 시들어 죽는다. 시들어 죽어야 씨앗을 맺어 이듬해에 새롭게 자라날 어린 아이(풀)를 내놓는다. 그런데, 이런 풀살이와는 다르게, 사람들끼리 얕은 셈속으로 치고받는 이야기를 굳이 들출 까닭이 있을까. 들추더라도 그악스럽게 그려내야 할까.


  아이들과 영화를 보면서 어떤 영화라도 두세 번 먼저 보고 열 번 스무 번, 때로는 백 번이나 이백 번까지 다시 본다.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어떤 책이라도 두세 번 먼저 읽고 열 번 스무 번, 때로는 백 번이나 천 번까지 다시 읽는다. 어른들한테 읽히려는 인문책은 열 번이나 백 번까지 볼 책이 얼마 없으리라 느낀다. 아이들과 읽는 책은 적어도 백 번은 넘게 읽기 마련이다. 천 번이나 만 번까지다 되읽는 책이 있다. 이런 책이요 영화인 터라, 아이들과 누리는 이야기는 더 깊이 살피고 한결 넓게 돌아보기 마련이다. 아이들과 백 번쯤 읽을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니, 이런 책에 나오는 낱말과 말씨를 허투루 지나치지 못한다. 아이들과 천 번쯤 되읽을 책이라 한다면, 연필을 들고 책에 금을 죽죽 긋고 새 말을 집어넣을밖에 없다.


  작가도 편집자도 독자도, 책 하나를 얼마나 오래도록 수없이 되새기면서 마음을 살찌우는가 하는 대목을 살펴야지 싶다. 한 번 읽고 버리는 책은 없다. 한 번 읽고 버리더라도 가슴으로 맞아들이는 책이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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