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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의 기억 ㅣ 창비시선 155
김정환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43
시와 신문
― 순금의 기억
김정환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6.10.10.
서울과 큰도시와 작은도시와 시골에서 수많은 신문이 날마다 나옵니다. 서울사람이 읽는 ‘서울’신문은 서울뿐 아니라 시골까지 골골샅샅 들어갑니다. 이른바 ‘중앙일간지’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나오는 서울신문을 살피면, 으레 서울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울에서 정치를 하거나 경제를 하거나 교육을 하거나 스포츠를 하거나 방송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골 읍내나 면소재지에도 곧잘 서울신문이 들어옵니다. 읍내나 면소재지에 볼일이 있어 마실을 할 적에 가끔 이런 서울신문을 들추는데, 시골에서 살아가며 들여다볼 만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주 마땅하다 할 텐데,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에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없습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유채잎이 푸릇푸릇 돋아 곧 꽃대가 오르려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문은 없어요. 이 추위에도 새봄 기다리는 들꽃이 앙증맞게 곳곳에 피곤 해요. 추위가 닥치더라도 여러 날 따순 볕이 드리우면, 이 작은 들꽃은 어느새 잎사귀를 내놓고 줄기를 뻗어 작으며 고운 꽃송이를 베풉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고 싶으며 듣고 싶어요. 대통령이나 정치꾼 아무개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아요. 주식시세나 방송편성표를 보고 싶지 않아요. 스포츠 뒷이야기나 연예인 옆이야기를 알고 싶지 않아요.
밀양사람 속마음을 듣고 싶어요. 내성천에서 아파 하는 작은 벌레와 나무 이야기를 알고 싶어요. 겨우내 들일을 살며시 쉬면서 도란도란 모이는 이웃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맛나게 먹을 들나물과 숲나물 이야기를 알고 싶어요.
아이들이 숲에 처음 깃들며 느낀 생각을 듣고 싶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나무 한 그루씩 돌보면서 느끼는 생각을 알고 싶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꿈을 키우면서 그리는 그림을 보고 싶어요.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아도, 작은 동네 작은 골목집에서 작은 골목꽃 보듬는 이웃들 상냥한 눈빛을 만나고 싶어요.
.. 전쟁은 스스로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내란도 .. (백년 전 내란과 패전)
김정환 님 시집 《순금의 기억》(창작과비평사,1996)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신문은 오늘날 우리한테 어떤 빛이 될까요. 시는 오늘날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신문은 누구한테 이바지하는 빛일까요. 시는 누구한테 따사로운 이야기일까요.
신문을 내는 사람들은 어떤 빛을 나누어 주고 싶은 뜻일까요. 시를 쓰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노래하고 싶은 뜻일까요.
신문을 내는 사람들 스스로 맑은 사랑과 밝은 꿈을 찬찬히 써서 선보일 수 있기를 빌어요. 정치나 경제나 교육이나 문화나 사회나 스포츠나 연예인 소식은 굳이 신문에 안 담아도 되어요. 이런 이야기를 안 담으면 독자가 떨어지거나 광고가 떨어질까요? 떨어질라면 떨어지라지요. 독자와 광고 때문에 만들어야 하는 신문이라면 얼마나 재미없고 따분한가요. 삶을 빛내고 사랑하는 길을 노래할 때에 비로소 참다운 신문이 되리라 느껴요.
시를 쓰는 사람들 스스로 착한 사랑과 고운 꿈을 조곤조곤 써서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 시는 문학이 아니에요. 시는 시일 뿐이고, 삶을 노래하는 시일 뿐이며, 삶을 사랑하면서 어깨동무하는 이야기일 뿐이에요. 시쓰기는 문학하기가 아니고, 시읽기는 문학평론이 아니에요. 시쓰기란 삶쓰기이고, 시읽기란 삶읽기예요.
무엇을 노래할 적에 아름다운 신문이 되고 시가 될는지, 신문기자와 시인 스스로 즐겁게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요. 무엇을 꿈꿀 적에 어여쁜 신문이 되거 시가 될는지, 신문기자와 시인 모두 환하게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요. 4347.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사람 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