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 한자말 185 : 소색素色

 


무성한 나무들이 보여줄 수 없는 그 무엇. 근본이라 할지, 근원이라 할지, 원래의 것에 아무것도 보태지 않은 소색(素色)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이들은 참 착하고 부드럽고 무엇보다 섬세했다
《유소림-퇴곡리 반딧불이》(녹색평론사,2008) 38쪽

 

  “무성(茂盛)한 나무들”은 “우거진 나무들”로 다듬고, ‘근본(根本)’은 ‘뿌리’나 ‘밑뿌리’로 다듬으며, ‘근원(根源)’은 ‘바탕’이나 ‘밑바탕’으로 다듬습니다. “원래(元來)의 것에”는 “처음 모습에”나 “태어난 모습에”나 “제 모습에”로 손보고, ‘섬세(纖細)했다’는 ‘찬찬했다’로 손봅니다.


  한자말 ‘소색(素色)’은 국어사전에 안 나옵니다. 다만, 한자 ‘素’는 “희다”를 뜻해요. 이 한자를 쓴 ‘소복(素服)’이라는 한자말 있어요. 이 한자말은 ‘흰옷’을 가리킵니다. 곧,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흰옷’이라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素色’이라는 낱말도 쓸 일이 없고 ‘흰빛’이라 쓰면 돼요.

 

 소색(素色)의 모습을 하고 있는
→ 흰빛인
→ 하얀 빛깔 모습인
→ 하얀 빛깔로 있는
→ 흰빛으로 있는
 …

 

  국어사전에 없는 말을 쓰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국어사전에는 ‘앵두빛’이나 ‘딸기빛’이나 ‘능금빛’이 없어요. ‘배꽃빛’이나 ‘참꽃빛’도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꽃빛을 가리키면서 고운 빛깔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한자를 좋아한다면 ‘素色’ 같은 낱말을 쓸 만하겠지요. 영어를 좋아한다면 ‘white’를 쓰니까요. 그러면,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 아닌 한국사람은, 미국사람이나 영국사람 아닌 한국사람은, 하얀 빛깔을 바라보며 어떤 낱말로 흰빛을 가리키면 가장 고울까요. 어떤 낱말이 우리 삶과 넋과 말을 살릴까요. 4346.12.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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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나무들이 보여줄 수 없는 그 무엇. 밑뿌리라 할지, 밑바탕이라 할지, 처음 모습에 아무것도 보태지 않은 하얀 빛깔로 있는 그이들은 참 착하고 부드럽고 무엇보다 찬찬했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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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84 : 삼가촌三家村

 


지금은 주문진에서 들어온 노인 부부와 우리에게 땅을 판 아랫집, 새로 생긴 우리 집까지 해서 겨우 삼가촌(三家村)이 된 곳이다
《유소림-퇴곡리 반딧불이》(녹색평론사,2008) 16쪽

 

  ‘지금(只今)’은 ‘이제는’으로 다듬습니다. “노인(老人) 부부”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나이든 부부”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살피면 ‘삼가촌’이라는 낱말은 없습니다. 글쓴이가 새롭게 지어서 쓴 낱말입니다. 세 집이 마을 하나를 이루었다는 뜻으로 썼구나 싶어요

 

 삼가촌(三家村)이 된 곳
→ 세집마을이 된 곳
→ 세 집으로 마을이 된 곳
→ 세 집이 한 마을이 된 곳
 …

 

  글쓴이가 어차피 새롭게 말을 지어서 쓰려 했다면 ‘세집마을’로 지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삼가촌’이라 해 놓고, 이 낱말을 못 알아들을 사람 있을까 싶어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거든요. 처음부터 쉽게 알아듣도록 낱말을 짓고 글을 쓸 때에 한결 아름답습니다. 4346.12.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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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주문진에서 들어온 나이든 부부와 우리한테 땅을 판 아랫집, 새로 생긴 우리 집까지 해서 겨우 세집마을이 된 곳이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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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나무 꽃송이

 


  도시에도 오리나무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도시 어디에서 오리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오리나무를 약으로 삼는 이들도 있지만, 막상 우리 삶자리 둘레에 오리나무를 건사하기란 쉽지 않다. 오리나무뿐 아니라 뽕나무나 대추나무나 감나무나 능금나무 한 그루 느긋하게 자랄 틈을 내주지 않는 도시 사회 얼거리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세울 자리 마련하려고 엄청난 돈과 품을 쓰는 도시 정책이고 행정일 뿐, 오리나무이든 잣나무이든 잘 자라도록 숲과 들을 살리는 도시 정책이나 행정은 찾아볼 수 없다.


  삼월이 무르익을 무렵 복실복실 부푸는 송이가 오리나무 꽃일까. 잎사귀 아직 돋지 않았는데 꽃부터 맺는 오리나무일까. 그러고 보면 느티나무나 초피나무도 꽃인지 잎인지 선뜻 알아보기 어렵게 푸른 빛깔로 조그마한 꽃송이 맺는다. 모두들 이른봄에 푸른 꽃이 피고, 어느새 꽃이 지면서 잎사귀만 더 푸르게 남는다.


  들판에 조그마한 꽃들이 맑게 돋아도 봄인 줄 느끼고, 숲에 복실복실 소담스럽게 꽃송이 다닌 오리나무를 보아도 봄인 줄 느낀다. 4346.12.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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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와 미역국과 가스불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면 으레 가만히 지켜본다. 아이들한테 이것저것 시키지 않는다. 다만, 쉬를 누라고 말하곤 하지만, 요새는 이런 말도 굳이 안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쉬를 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새롭게 하루 여는 놀이를 잘 찾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집 아이 아닌 어느 집 아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놀이를 찾아 스스로 즐기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두들 시설과 어린이집과 놀이방과 학교와 학원이라는 울타리를 씌우는 바람에, 아이들은 스스로 할 놀이를 잃거나 잊으리라 느낀다. 굳이 어른들이 무언가 시키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 해야겠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심심하도록 두면, 아이들 스스로 ‘무엇을 하지?’ 하고 생각해서 놀이를 생각하도록 두면, 아이들은 참말 재미나게 하루를 열고 누릴 수 있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두 시간쯤 흐른 뒤 고구마를 깎는다. 엊그네 이웃 할머니가 주신 고구마이다. 따순 자리에 두었다 여겼으나 벌써 곪는 데 있다. 곪은 자리 바지런히 파낸다. 굵다란 알이 얼마 안 남는다. 접시에 담아 두 아이 노는 마루에 내려놓는다.


  아침으로 미역국 끓이려고 마른미역을 불린다. 예전에는 잘린미역이 미역국 끓이기에 낫다고 생각했지만, 생협 미역이든 여느 미역이든 찬물에 여러 차례 잘 헹구고 써야 한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잘린미역은 쓰기에 참 나쁘다고 깨닫는다. 지난해에 잘린미역 선물받아 거의 안 쓴 채 있어 모처럼 뜯어서 불리는데, 헹구면서 여러모로 번거롭다. 적잖은 집에서는 미역을 안 헹구고 그냥 끓이려나. 채반을 쓰려나. 채반을 쓰면 채반을 설거지하느라 또 손이 가야 하는데.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사뭇 다르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없고, 또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이 없으면, 아마 가스불을 켜면서 창문을 안 열리라 본다. 겨울에는 더더욱 창문을 안 열리라. 가스불을 켜면서 창문을 여는 집은 얼마쯤 될까. 가스불을 쓸 적에 창문을 열어야 하고, 찬바람을 쐬어야 하며, 밥을 짓고 도마질을 하는 동안 늘 찬물을 만져야 하는 줄 ‘한 집안 아저씨’는 얼마나 살필까. 찬물을 쓰며 밥을 하는 동안 손이 얼마나 얼어붙는지, 여름에는 시원하다 하지만, 여름에도 한두 시간 찬물을 만지면 시원함을 넘어 차가움이 되는 줄 얼마나 헤아릴까.


  아이들은 놀고 아버지는 밥을 차린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새롭게 놀이를 지어내고, 아버지는 오늘은 어떤 밥과 국과 찬거리를 새롭게 지어서 차릴까 하고 생각을 거듭한다. 4346.12.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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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아이

 


  저녁 여덟 시 즈음부터 두 아이 재우려고 눕히는데 잘락 말락 하면서 안 잔다. 자장노래를 부르니, 외려 아이들이 자꾸 새로 노래를 부르며 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래서야 아이들 재울 수 없어 서로 다른 방으로 흩어진다. 두 아이는 어머니 있는 방으로 달라붙어 이불을 뒤집어쓰다가 작은아이는 이내 곯아떨어지고 큰아이는 다시 아버지한테 와서 머뭇거린다. “졸립지? 졸리면 어서 자야지. 왜 안 자고 그러니. 아침에 즐겁게 일어나서 새로 놀아야지.” 큰아이는 마루에 서서 안 들어간다. 그래, 안아서 눕혀 달라는 뜻이로구나. 안아서 자리에 눕힌다. 이불깃 여민다. 어머니 곁에 달라붙어 곯아떨어진 작은아이를 안아서 잠자리로 옮긴다. 얘들아, 이렇게 쉬 곯아떨어질 녀석들이 안 잔다며 이렇게 한참 엉겨붙니. 두 아이 모두 잠자리에 눕혀 이불깃 여미니 10초만에 코를 곤다.


  여섯 살 세 살이라는 나이를 문득 생각한다. 큰아이는 어느새 이십 킬로그램 몸무게가 되는데, 두 아이 더해도 사십 킬로그램이 되지 않아, 두 아이를 한꺼번에 들 수 있다. 한 아이씩 안으면 참 가볍다. 가벼운 아이들은 언제나 가볍게 날고, 가볍게 뛰며, 가볍게 노래한다. 가볍게 웃고, 가볍게 숟가락질하며, 가볍게 조잘조잘 떠든다. 가벼운 마음과 몸으로 두 손에 아무것도 안 쥐면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숨결이 아이들이라고 할까. 어른들은 무거운 마음과 몸으로 두 손에 이것저것 꽉 움켜쥐면서 하늘을 못 날고 꿈을 잃거나 잊는 넋이라고 할까. 이 아이들은 가방을 메려면 멀었다. 이 아이들은 가방을 안 메도 된다. 이 아이들은 가슴에 책이나 가방 아닌 다른 빛을 담을 때에 아름답다. 4346.12.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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