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와 미역국과 가스불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면 으레 가만히 지켜본다. 아이들한테 이것저것 시키지 않는다. 다만, 쉬를 누라고 말하곤 하지만, 요새는 이런 말도 굳이 안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쉬를 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새롭게 하루 여는 놀이를 잘 찾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집 아이 아닌 어느 집 아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놀이를 찾아 스스로 즐기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두들 시설과 어린이집과 놀이방과 학교와 학원이라는 울타리를 씌우는 바람에, 아이들은 스스로 할 놀이를 잃거나 잊으리라 느낀다. 굳이 어른들이 무언가 시키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 해야겠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심심하도록 두면, 아이들 스스로 ‘무엇을 하지?’ 하고 생각해서 놀이를 생각하도록 두면, 아이들은 참말 재미나게 하루를 열고 누릴 수 있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두 시간쯤 흐른 뒤 고구마를 깎는다. 엊그네 이웃 할머니가 주신 고구마이다. 따순 자리에 두었다 여겼으나 벌써 곪는 데 있다. 곪은 자리 바지런히 파낸다. 굵다란 알이 얼마 안 남는다. 접시에 담아 두 아이 노는 마루에 내려놓는다.


  아침으로 미역국 끓이려고 마른미역을 불린다. 예전에는 잘린미역이 미역국 끓이기에 낫다고 생각했지만, 생협 미역이든 여느 미역이든 찬물에 여러 차례 잘 헹구고 써야 한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잘린미역은 쓰기에 참 나쁘다고 깨닫는다. 지난해에 잘린미역 선물받아 거의 안 쓴 채 있어 모처럼 뜯어서 불리는데, 헹구면서 여러모로 번거롭다. 적잖은 집에서는 미역을 안 헹구고 그냥 끓이려나. 채반을 쓰려나. 채반을 쓰면 채반을 설거지하느라 또 손이 가야 하는데.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사뭇 다르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없고, 또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이 없으면, 아마 가스불을 켜면서 창문을 안 열리라 본다. 겨울에는 더더욱 창문을 안 열리라. 가스불을 켜면서 창문을 여는 집은 얼마쯤 될까. 가스불을 쓸 적에 창문을 열어야 하고, 찬바람을 쐬어야 하며, 밥을 짓고 도마질을 하는 동안 늘 찬물을 만져야 하는 줄 ‘한 집안 아저씨’는 얼마나 살필까. 찬물을 쓰며 밥을 하는 동안 손이 얼마나 얼어붙는지, 여름에는 시원하다 하지만, 여름에도 한두 시간 찬물을 만지면 시원함을 넘어 차가움이 되는 줄 얼마나 헤아릴까.


  아이들은 놀고 아버지는 밥을 차린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새롭게 놀이를 지어내고, 아버지는 오늘은 어떤 밥과 국과 찬거리를 새롭게 지어서 차릴까 하고 생각을 거듭한다. 4346.12.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