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982) 해서


해서 나는 남편과 내 삶의 대부분을 보냈던 몬타나 주를 떠나 남편의 고향인 아일랜드 미스 카운티에 있는 아름다운 집 2층에 세를 얻어 이사했습니다

《로렌스 R.스펜서/유리타 옮김-외계인 인터뷰》(아이커넥,2013) 41쪽


 해서

→ 이렇게 해서

→ 이리 해서

→ 그래서

→ 이래서

 …



  앞 글월과 이으려고 첫머리에 “이렇게 해서”를 넣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적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적잖은 이들이 “이렇게 해서”가 아닌 “해서”만 쓰곤 합니다. 이런 말투가 부쩍 늘었습니다.


  말이 길어서 줄이려는 뜻일까요. 멋을 내려고 이처럼 쓰는 셈일까요. 새로운 말투를 만들려는 뜻일까요. 한국말을 제대로 안 배우고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셈일까요.


  ‘해서’라는 이음씨는 없습니다. 이렇게 줄여서 쓰는 일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잘못 쓰는 말투입니다. 줄여서 쓰고 싶으면 ‘이래서’나 ‘그래서’를 쓸 노릇입니다. 4347.7.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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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남편과 내가 거의 모든 삶을 보냈던 몬타나 주를 떠나 남편이 태어났던 아일랜드 미스 카운티에 있는 아름다운 집 2층을 얻어 옮겼습니다


“삶의 대부분(大部分)을 보냈던”은 “거의 모든 삶을 보냈던”이나 “아주 오래 살았던”으로 손봅니다. “남편의 고향(故鄕)인 아일랜드”는 “남편 고향인 아일랜드”나 “남편이 태어난 아일랜드”로 손질하고, “2층에 세(貰)를 얻어”는 “2층에 삯을 얻어”나 “2층을 얻어”로 손질합니다. ‘이사(移徙)했습니다’는 ‘옮겼습니다’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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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13) 역할 6 : 배달 역할

덕분에 내 역할은 영어를 가르치는 역할에서 계속해서 에어럴이 요구하는 참고 도서들을 찾아서 가져다 주는 배달 역할로 바뀌어 버렸지요
《로렌스 R.스펜서/유리타 옮김-외계인 인터뷰》(아이커넥,2013) 87쪽

 내 역할은
→ 내 일은
→ 내가 하는 일은
 영어를 가르치는 역할
→ 영어를 가르치는 일
→ 영어를 가르치는 자리
→ 영어 가르치기
 배달 역할
→ 배달 일
→ 나르는 일
→ 심부름꾼 노릇
→ 심부름
 …


  보기글을 살피면, ‘역할’이라는 한자말을 세 군데 씁니다. 그런데, 세 군데 모두 이 낱말이 알맞지 않습니다. 맨 처음에는 ‘일’이라 적어야 알맞고, 다음에는 덜어내야 알맞으며, 마지막에는 ‘노릇’으로 적어야 알맞습니다.

  맨 처음 자리만 ‘일’이라고 한 마디를 넣어도 됩니다. 다음 자리는 “영어 가르치기에서 …… 책들을 찾아서 가져다주기로 바뀌어”처럼 적어도 됩니다. 또는 글월을 통째로 손질해서, “이리하여, 나는 영어를 가르치다가 이제 에어럴이 보고 싶다는 책들을 가져다주기만 했지요”처럼 다시 쓸 수 있습니다.

  학교나 방송에서는 ‘역할’이라는 한자말을 안 써야 한다고 곧잘 이야기하는데, 정작 이 한자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때와 곳에 알맞게 어떤 낱말을 써야 알맞을는지 헤아리지 못합니다. 4347.7.31.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래서 내 일은 영어 가르치기에서 이제 에어럴이 보고 싶다는 책들을 찾아서 가져다주는 심부름꾼 노릇으로 바뀌어 버렸지요

‘덕분(德分)에’는 ‘그래서’나 ‘이리하여’로 다듬습니다. ‘계속(繼續)해서’는 ‘잇달아’나 ‘이어서’로 다듬을 낱말인데, 이 자리에서는 ‘이제’로 다듬을 때에 글흐름하고 잘 어울리지 싶습니다. “에어럴이 요구(要求)하는 참고(參考) 도서(圖書)들”은 “에어럴이 바라는 책들”이나 “에어럴이 보고 싶다는 책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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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11) 시작 49 : 울기 시작했어요


혼자 남은 꼬마 늑대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

《니시마키 가야코/이선아 옮김-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비룡소,2007) 32쪽


 울기 시작했어요

→ 울어요

→ 울려고 해요

→ 울음이 나와요

→ 울음이 터져요

 …



  훌쩍훌쩍 웁니다. 활짝활짝 웃습니다. 훌쩍훌쩍 울려고 합니다. 활짝활짝 웃으려고 합니다. 울음이 나오고, 웃음이 나옵니다. 울음이 터지고, 웃음이 터집니다. 울음이 샘솟고, 웃음이 샘솟습니다.


  찬찬히 삶이 흐릅니다. 이야기가 흐르고 빛이 흐릅니다. 수수한 말 한 마디에서 생각이 자라고, 고운 글 한 줄에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기뻐서 웃고, 슬퍼서 웁니다. 4347.7.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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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좋아요



  작은아이가 곧잘 아버지 무릎에 안긴 뒤 나즈막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좋아요.” 하고 말한다. 졸려서 저녁에 아버지 무릎에 안겨 꾸벅꾸벅 졸다가 곯아떨어지기 앞서, 읍내로 군내버스를 타고 마실을 가는 길에 아버지 무릎에 안겨 노래를 하다가 어느새 까무룩 잠들기 앞서, 작은아이는 귀여우며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 이야기한다.


  큰아이가 잠자리에서 아버지 옆에 누우며 곧잘 “아버지가 좋아요.” 하고 말한다. 두 아이는 함께 말하는 일이 없다. 서로 눈치를 보지는 않을 테지만,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따로 말하고,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따로 말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집에 있을 적에도 어머니 귀에 대고 “어머니가 좋아요.” 하고 속닥속닥 말하곤 한다.


  장난꾸러기에 개구쟁이인 아이들인데, 두 아이 모두 다리에 힘이 붙는다면서 마실길에 늘 멀찌감치 앞장서서 달리는데, 멀리 앞장서서 달리면서도 저 앞에서 “아버지 얼른 와요!” 하고 부른다. 쳇, 아버지는 짐을 잔뜩 짊어지고 가니 얼른 못 가잖니. 너희가 기다려 주어야지. 4347.7.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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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긷는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348
한승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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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61



시와 시골빛

― 달 긷는 집

 한승원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8.6.13.



  시골에서 살지만 시골이 즐겁지 않은 사람은 ‘아름다운 시골길’을 찬찬히 걷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사는데 도시가 기쁘지 않은 사람은 ‘예쁜 골목길’을 천천히 걷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깜깜한 밤이 내키지 않아 곳곳에 등불을 밝히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동안 어두운 밤은 만난 적이 없고, 밝은 낮을 새롭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봄은 따스한 바람이 불면서도 밤에는 쌀쌀합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지만 햇볕이 쨍쨍 내리쬡니다. 가을에는 보드라운 바람이 불면서도 밤에는 선선합니다.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면서도 곧잘 포근한 볕이 드리웁니다.


  철마다 다른 지구별입니다. 씨줄과 날줄에 따라 날씨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우리 겨레가 살아가는 이 터에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있습니다. 철마다 빛이 다르고, 철마다 다른 빛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우리 막내고모 가마 타고 시집에 간 첫날 상다리 휘어지는 신부상을 받았는데, 상 위에는 젓가락으로 집어 먹어야 할 것들뿐이었습니다. 처녀 시절 부뚜막에 앉아 바가지에 밥을 담아 먹곤 한 막내고모는 젓가락질을 할 줄 몰랐습니다 ..  (족두리 꽃)



  바람에 귀를 기울여 봐요. 바람이 우리한테 어떤 노래를 베풀고 싶은지 들어 봐요. 서양에서 어떤 이들이 지은 교향곡을 들어도 좋으나, ‘사람이 지은 모든 노래’는 가만히 내려놓은 뒤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 보아요.


  바람이 풀잎을 건드리면서 부르는 노래를, 바람이 바닷물이나 냇물이나 골짝물을 건드리면서 부르는 노래를, 바람이 구름이나 무지개를 건드리면서 부르는 노래를, 바람이 비나 눈을 건드리면서 부르는 노래를 곰곰이 들어요.


  바람노래를 들었으면 바람빛을 바라봅니다. 아침에 흐르는 바람빛을 보고, 낮과 저녁에 흐르는 바람빛을 봅니다. 새벽과 밤에 흐르는 바람빛을 보며, 갠 날과 흐린 날에 흐르는 바람빛을 봅니다.


  바람노래를 듣고 바람빛을 보았다면 바람내음을 맡습니다. 숲에서 부는 바람이 실어 나르는 내음을 맡습니다. 들에서 부는 바람이 실어 나르는 들꽃내음과 들풀내음을 맡습니다. 바닷내음을 맡고, 마당에 넌 빨래를 건드리는 내음을 맡습니다.



.. 전원생활 하겠다고 서울에서 장흥 안양 산골로 이사 온 / 중년 남자가 숭어회에 포도주 한잔을 걸치면서 / 5백 평 산밭에 심은 콩씨 파먹어버린 / 비둘기와 꿩을 원망했을 때, 마주 앉은 / 풋늙은이는 토굴 연못가의 주렁주렁하던 황금색 살구를 모두 따먹어버린 / 어치와 물까치와 무당새를 저주했습니다 ..  (하늘 길)



  풀과 나무는 햇볕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풀과 나무는 바람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풀과 나무는 빗물과 눈송이를 먹으면서 자랍니다. 풀과 나무는 흙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그리고, 풀과 나무는 사람들이 베푸는 사랑과 이야기를 먹으면서 자랍니다.


  사람은 어떻게 자라는가요? 학교에 넣으면 알아서 자라지 않겠지요?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는가요? 학원에 넣거나 참고서를 풀라고 던져 주면 자라지 않겠지요?


  사람과 풀이랑 나무하고 똑같습니다. 사람도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눈송이와 흙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사람도 이웃과 동무가 베푸는 사랑과 이야기를 먹으면서 자랍니다.


  햇볕이 없고 바람이 없다면, 숲이나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비와 눈이 없다면, 숲이나 사람은 모두 시듭니다. 흙이 없거나, 사랑이나 이야기가 없으면, 숲도 사람도 풀이 죽으면서 고개가 꺾입니다.



.. 꿈속에서 또 《조선왕조실록》을 펼쳐 보다가 / 이런! 쯧쯧! 하고 혀를 찼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갈피갈피에 우글거리는 / 하루살이들의 찬란하게 반짝거리는 날개들이 하도 덧없고 가엾어서 ..  (날개)



  한승원 님이 빚은 시를 엮은 《달 긷는 집》(문학과지성사,2008)을 읽습니다. 한승원 님은 이 시집을 이녁 시골인 전남 장흥에서 썼다고 합니다. 글을 쓰는 한승원 님을 키운 사람들 이야기를 싯말에 담습니다. 글을 쓰는 한승원 님을 이루도록 이끈 숲과 마을 이야기를 싯노래에 담습니다.


  시는 언제나 말입니다. 그러니 싯말입니다. 서로 오붓하게 어우러지면서 주고받는 말이 빛나기에 싯말입니다.


  시는 늘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싯노래(시노래)입니다. 나란히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면서 나누는 노래가 흐드러지기에 싯노래입니다.



.. 나무숲이나 하늘이나 바다나 해나 달이나 별이나 구름이나 안개나 / 꽃송이나 천강의 물결이나 새들의 눈빛 속에 스며들어 / 저를 지켜보시는 당신 ..  (열꽃 피는 날의 기도)



  시골사람은 시골빛입니다. 시골마을에서는 마을빛입니다. 숲에서는 숲빛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빛이요, 멧골에서는 멧빛입니다. 하늘에서는 하늘빛이며, 흙에서는 흙빛입니다. 사랑을 속삭이고 싶은 사람은 사랑빛입니다. 꿈을 키우고 싶은 사람은 꿈빛입니다.


  어디로 나아갈 길인가요. 우리들은 저마다 어느 곳을 우리 보금자리로 삼아서 어떤 길로 나아갈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떤 밥을 먹고, 어떤 옷을 입으며, 어떤 집을 지을 적에 우리 삶이 즐겁거나 아름다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 평상에 누워 / 피어오르는 모깃불 연기 사이로 / 별 하나 꽃꽃 별 둘 꽃꽃 헤아리던 어머니 / 먼 마을에서 들려오는 어미 소 울음소리에 / ‘아야! 그래서 그랬던갑다.’ 하고 나서 / 큰댁 할머니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  (고향 노을)



  한여름 칠월 끝자락에 시집을 읽습니다. 한여름 칠월이 저물고 팔월을 앞둔 한낮에 아이들과 골짜기로 나들이를 가서 시집을 읽습니다. 우리 네 식구 깃든 전남 고흥 시골자락에서 골짜기까지는 가깝습니다. 걸어서 삼십 분 남짓이면 넉넉합니다. 자전거를 달리면 옷이 옴팡 젖도록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립니다. 땀에 젖은 옷과 몸은 골짝물로 씻습니다. 한참 골짝물놀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개운합니다. 골짝물에 온몸을 담그면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와 가재와 도룡뇽이 방긋방긋 고개를 내밉니다. 어떤 이는 골짜기까지 자가용을 몰고 찾아와서 고기를 굽느니 고스톱을 치느니 술을 들이붓느니 하고 시끄럽습니다. 우리 식구는 왈짜하고 멀찌감치 떨어진 골짜기에 깃듭니다. 골짜기에서는 바람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골짜기에서는 나뭇잎빛을 누리려 합니다. 골짜기에서는 물소리와 물빛을 마주하려 합니다. 농약도 비료도 비닐도 경운기도 아닌, 수수한 흙과 풀과 하늘이 어우러진 빛을 느끼고 싶습니다.


  골짜기에 그늘을 드리우는 커다란 나무가 푸른 잎사귀 하나 톡 떨굽니다. 나뭇잎은 톡 소리를 내면서 골짝물에 내려앉습니다. 골짝물에 내려앉은 가랑잎은 물살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흐릅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습니다.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아이들 따라 웃고 노래를 부릅니다. 여름이 더우면서 시원하고 싱그럽습니다. 4347.7.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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