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66] 말없이 하는 항공방제

― 주는 대로 받는 삶



  아침 일곱 시에 마을 이장님이 우리 집에 찾아옵니다. 지난해에 있던 일 때문에 농협에서 ‘항공방제 못 하겠다’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알려줍니다. 지난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 봅니다. 그래요. 지난해 여름, 칠월 십일일에 항공방제 헬리콥터가 우리 집 마당으로 넘어왔습니다. 한창 볕이 좋아 아이들 옷가지하고 이불을 말리는데, 또 아이들이 마당에서 이불놀이를 하는데, 항공방제 헬리콥터가 갑자기 넘어오더니 농약을 쏴아아 뿌렸습니다. 깜짝 놀라서 아이들을 집안으로 들여 문을 모두 닫고 사진기를 챙겨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먼저 찍었다면 항공방제 헬리콥터가 마당 위쪽으로 버젓이 들어온 모습을 담았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먼저이기 때문에 아이들부터 더 농약에 안 맞도록 집안으로 들여서 문을 닫으려 했습니다.


  이장님한테 말씀을 여쭙니다. “이장님, 저희가 항공방제를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지난해에는 저희 집 마당 위로 헬리콥터가 넘어와서 아이들이 농약을 맞았으니, 이 때문에 항의를 했어요. 마을에서 농약을 쳐야 한다면 쳐야 하는데, 농협 사람들이 저희를 핑계로 대면서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며칠 앞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 집 울타리와 맞닿은 옆밭에 고추를 심은 면소재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녁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옆밭에 농약을 뿌립니다. 우리한테는 말도 안 하고 뿌립니다. 그런데 이녁 아이들은 짐차에 태우고 창문을 꽁꽁 닫습니다. 이녁 아이들은 짐차에서 내리고 싶으나 못 나오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버젓이 농약을 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농약을 칩니다.


  적어도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저희 아이’한테만큼은 농약이 닿으면 안 되는 줄 압니다. 이웃 아이가 어떻게 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더라도 ‘저희 아이’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더 생각을 이을 수 있어야 해요. ‘내 아이’한테만 농약이 나쁠까요? 농약을 듬뿍 머금은 고추를 따서 누가 먹을까요? 내다 팔기도 할 테지만, 이녁 식구들이 먹겠지요. 농약을 머금은 고추를 이녁 아이들도 고추장으로 먹을 텐데, 농약을 뿌릴 적에 짐차에 숨긴들 이 아이들이 ‘농약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농협에 돈을 내고 항공방제를 합니다. 논에 농약을 뿌리기 힘들기 때문에 항공방제를 합니다. 항공방제는 농약입니다. 이렇게 항공방제를 해서 나락을 거두면, 도시로 떠나 살아가는 이녁 딸아들과 손자 손녀한테 쌀을 부치실 테지요. 다시 말하자면, 도시로 떠나 살아가는 딸아들과 손자 손녀는 ‘항공방제 농약을 먹는 셈’입니다.


  농약을 써야 한다 말아야 한다, 와 같은 이야기는 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농약을 뿌리면, 농약을 우리가 먹습니다. 농약을 안 뿌리면, 우리는 농약을 안 먹습니다. 모기를 잡는다며 모기약을 뿌리거나 무기향을 태우면 모기약과 모기향 기운을 우리가 고스란히 함께 먹습니다. 숲과 들과 바다와 냇물은 ‘우리가 그들한테 주는 것을 고스란히 우리한테 돌려줍’니다.


  그나저나 지난해에는 항공방제를 할 적에 면사무소에서 예고 방송을 며칠 앞서부터 했는데, 올해에는 예고 방송조차 없네요. 하기는, 지난해에도 예고 방송이 없이 항공방제를 곧잘 했습니다. 4347.7.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살이 일기 65] 불어난 골짝물
― 장마가 끝난 골짜기에서


  장마가 오기 앞서 비가 거의 오지 않아서 골짜기는 물이 아주 얕았습니다. 이러다가 스무 날 남짓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렸습니다. 골짜기는 물이 얼마나 많이 불었을까요. 비가 그친 이튿날 자전거를 몰아 아이들과 골짜기로 갑니다. 아, 골짜기에 닿으니 골짝물이 아주 엄청납니다. 스무 날 남짓 쏟아부은 빗물이 흐르는 골짜기는 마치 폭포와 같습니다. 골짝물 흐르는 소리도 여느 때와는 사뭇 달리 아주 큽니다. 이곳까지 자동차를 끌고 와서 술과 고스톱을 즐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보이지만 아랑곳할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니까요.

  고흥에서 지내며 스무 날 넘는 장마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골짝물이 이렇게 불어난 모습을 처음 만납니다. 아이들은 무척 거세게 흐르는 골짝물을 보면서 섣불리 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살짝 궁둥이를 담그고 나서는 “추워.” 하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면서 슬슬 차가운 골짝물에 몸을 맞춥니다. 물을 튀기고 깊은 물에 잠기면서 놉니다.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골짝물을 바라봅니다. 장마가 길었을 적에는 날마다 고단했는데, 장마가 끝난 뒤 이렇게 멋진 골짝물을 베풀어 주는군요. 이튿날에도 다음날에도 해가 뜨겁게 내리쬐면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골짜기에 가려 합니다. 집과 더 가까운 데에 골짜기가 있으면 더 자주 마실을 할 테고, 아이들은 여름 내내 골짜기에서 살겠구나 싶습니다. 아니, 어른도 골짜기에서 여름 내내 살겠지요. 4347.7.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 그림놀이] ㅍㄹㅅ (2014.7.18.)



  아이들 치과 진료를 받으려고 고흥집을 이레쯤 비운 사이, 누군가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와서 ‘씨받이 상추’를 뽑아 갔다. 누구 짓일까? 누가 우리 집 ‘씨받이 상추’를 몰래 가져갔을까? 고흥집을 나서기 앞서 씨방이 차츰 여물기에, 고흥집으로 돌아오면 ‘사다 심는 상추씨’가 아닌 ‘씨를 받아 심는 상추씨’를 잔뜩 얻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어떤 마을 이웃집에서 우리 상추씨를 몽땅 가져갔을까? 이 얘기를 들은 곁님이 나한테 그림을 그리라고 말한다. 우리 집에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림을 그리라고 말한다. 그래, 우리 집에는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넋으로 삶을 가꾸는 사람만 찾아오도록 그림을 그려야겠구나. 맑게 웃고 노래하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집을 지키고, 우리 식구가 심은 나무가 우리 집을 감싸며, 구름과 무지개와 하늘과 흙과 꽃이 우리 집을 지킨다. “우리 집은 ㅍㄹㅅ이다.” 나한테 ‘ㅍㄹㅅ’은 “푸른 숲”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낮잠 잘 겨를



  곁님이 오늘부터 미국으로 람타공부를 하러 떠난다. 고흥에서 인천공항까지 가자면 많이 멀기에, 지난주부터 일산집에 가서 지냈다. 나는 월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고흥으로 돌아왔고, 아이들과 닷새째 보낸다. 지난해에는 곁님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석 달 동안 아이들과 지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한결 즐겁게 잘 지내겠다고 느끼기는 하는데, 곁님이 집에 없는 터라, 낮잠 잘 겨를이 없다. 집에서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곁님이라 하더라도 집에 있기만 하더라도 여러모로 숨을 돌릴 겨를이 있었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작은아이는 놀다가 지치면 스스로 자리에 눕는다. 큰아이는 놀다가 고단해도 스스로 자리에 안 눕는다. 밥하고 청소하고 도서관 갈무리하고 글을 쓰고 우체국에 다녀오고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니고, 글씨놀이와 그림놀이를 조금 하다가 드러눕는다.


  꾸물꾸물한 날씨가 얼른 지나가기를 빈다. 햇볕이 쨍쨍 나면서 골짜기나 바다로 나들이를 갈 수 있기를 빈다. 아이들이 실컷 물놀이를 하고 나서 새근새근 곯아떨어질 수 있기를 빈다. 오늘은 멧새도 우리 집에 몇 마리 안 찾아온다. 조용한 하루이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8. 나이 있는 양반



  스무 해 앞서 으레 듣던 말을 떠올립니다. 그무렵 내 글을 읽던 이들은 ‘나이도 어린’이나 ‘나이가 어린’과 같은 말을 참 흔하게 썼습니다. 이런 말은 마흔 살이 될 무렵까지 자주 들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적마다 왜 이렇게 나이를 따지려 하나 알쏭달쏭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려면 ‘이야기’를 보아야지, 왜 자꾸 ‘나이’를 보려 하나 싶어 쓸쓸했습니다. 나이를 들추려는 사람하고는 아무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야기가 아닌 나이를 보니까요. 이야기가 아닌 나이를 생각하니까요.


  어떤 이는 나이조차 아닌 ‘학번’을 묻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졸입니다. 학번이란 무엇인가요?” 하고 되묻는데, 이렇게 되물어도 “그래도 학번으로 치면 뭔지 알지 않느냐?” 하면서 끝까지 ‘나이 아닌 학번’으로 사람을 따지거나 재려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그래, 참다못해 “저는 토끼띠입니다.” 하고 말했더니, 띠로 나이를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도 많더군요.


  글을 쓰려면 어느 만큼 나이를 먹어야 할까요? 어떤 글을 쓸 만한 사람은 어느 만한 나이를 먹은 사람뿐일까요?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사람을 안 뒤에는, 내 글을 놓고 ‘나이’를 들먹이는 사람한테 “모차르트가 지은 노래를 들으면서, 모차르트가 몇 살에 이 노래를 지었는지를 따질 생각이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노래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빛을 느낄 노릇이고, 노래가 사랑스러우면 사랑스러운 숨결을 느낄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으면 엉뚱하게 “네가 모차르트인 줄 아니?” 하고 되묻는 사람이 퍽 많았습니다.


  세계대회에서 1위를 거머쥐는 운동선수는 나이가 어리거나 젊기에 1위를 거머쥐지 않습니다. 스스로 솜씨를 쌓고 재주를 키웠기 때문에 1위를 거머쥡니다. 무척 어린 나이에 테니스 대회나 골프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무척 늙은 나이에 테니스이건 수영이건 골프이건 1위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뿐입니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몸과 마음을 하나로 다스리면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나는 어느새 마흔 살 나이로 접어듭니다. 마흔 살이 지나니, 이제 내 글을 읽으면서 ‘나이도 어린’이나 ‘나이가 어린’이나 ‘나이가 젊은’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부쩍 줄어듭니다. 아니, 이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싶습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나이 있는 양반’이라든지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든지 ‘나이를 먹은 어른’이라든지 ‘나이도 먹고 애도 있는 양반’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이 나이를 먹고 다시금 ‘나이’ 소리를 들으니 헤헤 하고 웃음이 납니다. 히히 하고 웃음이 터집니다. 내 나이가 어리다 할 적에는, 또 내 나이가 많다 할 적에는, 나는 내 이웃한테 어떤 모습인 셈일까 궁금합니다. 나이가 어리면 ‘이렇게 해야’ 하고, 나이가 있으면 ‘저렇게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나이가 어려도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안 깨달은 사람은 안 깨달은 사람입니다. 나이가 어려도 참거짓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바라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참거짓을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은 가릴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어른이라는 사람들만 자꾸 이웃과 동무한테, 또 아이들한테까지 나이를 묻습니다. 이러다 보니, ‘나이를 안 묻고 살던 아이들’조차 동무끼리 나이를 따지면서 누가 오빠이니 언니이니 누나이니 동생이니 하고 자꾸 금을 긋고 맙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