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날



  오늘 두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간다. ‘집’을 찾아서 길을 나선다. 그러면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는 이곳은 어떤 곳일까. 나는 스무 살 무렵까지 이곳을 ‘집’으로 삼아서 지냈는데, 내가 돌아가려는 곳은 어떠한 터인가. 아이일 적에는 어버이와 지내는 자리가 ‘집’이고, 어른이 되면 제금을 나면서 새로 일구어야 하는 데가 ‘집’일까.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집을 스스로 일굴 수 있을까. 나와 곁님은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집을 손수 일구거나 닦도록 북돋우거나 이끌 만할까.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집에서 산다. 그럴 만하다. 그러면 다 다른 집은 어디에 어떻게 있을 적에 아름다울까. 다 다른 우리들은 저마다 어떠한 터전을 보금자리로 가꾸면서 삶을 이룰까.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손수 가꿀 집은 얼마나 새롭고 놀라우면서 사랑스러울까 하고 헤아려 본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사랑과 꿈을 얼마나 넓고 깊이 물려주면서 이 아이들이 스스로 삶짓기·넋짓기·말짓기를 하도록 슬기롭게 어우러질 수 있을는지 곱씹어 본다. 4348.2.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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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먹이기



  순천서 조치원으로 달리는 기차를 타기 앞서 김밥을 넉 줄 장만한다. 기차에 타기 앞서 한 줄을 함께 먹는다. 기차에 탄 뒤 한 줄을 두 아이한테 준다. 큰아이는 젓가락질을 익숙하게 하고, 작은아이는 젓가락질이 익숙하지 않다. 작은아이가 젓가락질을 못 하니, 큰아이가 “자 봐, 누나가 해 줄게.” 하면서 동생한테 김밥을 한 조각씩 입에 넣어 준다. 여덟 살 아이는 다섯 살 아이한테 김밥을 먹인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먹이면서 기차를 함께 즐긴다. 4348.2.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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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다락방 2015-02-17 23:11   좋아요 0 | URL
아...너무 예쁜 모습일 것 같네요~!

숲노래 2015-02-17 23:56   좋아요 0 | URL
예뻐서,... 예쁘고 예뻐서
나는 오늘 기차에서
눈물을 조용히 흘렸습니다..
 

아이와 어른



  나이를 더 먹기에 어른이지 않다. 이는 아주 마땅하다. 나이가 많으면 그저 나이가 많을 뿐이다. 내가 너보다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내가 너한테 높임말을 받아야 하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네가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내가 너한테 높임말을 써야 하지 않다. 고작 나이값 하나를 놓고 누가 누구를 높이거나 섬기거나 모셔야 하지 않다. 사람다운 사람일 때에 서로 사랑스러운 자리에 함께 있다. 아름다운 사람일 때에 서로 어깨동무를 한다. 착하고 참다우면서 기쁜 사람일 때에 서로 믿고 헤아리면서 손을 맞잡는다.


  높임말은 누가 누구한테 쓰는가? 서로 아끼면서 기댈 삶벗한테 쓰는 말이 높임말이다.


  나이를 어느 만큼 먹어서 몸이 자라면 사내와 가시내는 살곶이를 할 만하고, 살곶이를 하고 나면 씨앗과 씨앗이 만나서 아기를 낳을 수 있다. 아기를 낳기에 ‘어른’이지 않다. 아기를 낳는 몸뚱이인 나이만 먹었대서 어른이라고 하지 않는다. ‘철’이 든 사람만 어른이다.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은 ‘빈 허물로 어른 모습’을 할 뿐이다.


  나이를 먹은 몸일 뿐, 누구나 아이와 어른이라는 두 모습이 함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도 어른을 생채기 입힐 수 있고, 어른도 아이를 생채기 입힐 수 있다. 이를 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제대로 바라본 다음에는 깨끗이 잊고, 새로운 사랑으로 가면 된다. 섣불리 나를 ‘높이려’ 하지 말자. ‘어른’이라는 말은 내가 나한테 쓰는 말이 아니다. 나는 내가 ‘철’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를 살펴서 말할 뿐이다. 철이 아직 안 들었으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철부지이거나 응석받이이다. 철이 들었으면, 나이가 아무리 적어도 ‘사람’이다. 4348.2.15.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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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싹 비워서 고마운 밥그릇



  아이들이 살짝 배고픈 아침을 맞이해서 밥상을 차린다. 이때에 가장 맛나게 먹는구나 하고 느낀다. 밥이랑 국이랑 풀을 모두 말끔히 비워서 밥상을 치우거나 설거지를 하기에 수월하도록 해 주는 날이 있다. 곰곰이 헤아리면, 아이들이 밥이나 국이나 풀을 얼마쯤 남긴다면 다 까닭이 있을 테지. 나는 왜 아이들이 이렇게 조금씩 남기는지 헤아리면서 다음 끼니를 차리면 한결 맛나면서 재미난 밥잔치가 될 수 있다. 그릇을 삭삭 비우면서 혓바닥으로 날름날름 빈 접시를 핥으면, 어쩜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다 있나 하고 느낀다. 여느 때에도 늘 귀엽고, 언제나 사랑스러운데, 밥상맡에서 “다 먹었다!” 하고 외치는 아이들이란 더할 나위 없이 귀여우면서 사랑스럽다. 4348.2.1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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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14 13:44   좋아요 0 | URL
파프리카 사이에 있는 저 하얀것은 무엇인가요?

숲노래 2015-02-14 16:35   좋아요 1 | URL
배춧잎입니다.
배추 한 통을 겉잎부터 천천히 뜯어서 먹다 보면
속배추알은 뿌리 쪽 잎이 새하얗고 도톰해요.
이렇게 썰면 간장이나 된장에 톡톡 찍어서 먹기에 좋더라구요 ^^
 

[시골살이 일기 86] 보고 그린다

― 내가 바라보는 꿈을 담는다



  바다 옆에서 살면 늘 바다를 보면서 바닷바람을 마시고 바닷내음을 맡습니다. 바다가 보여주는 빛깔을 늘 바라보면서 바다와 얽힌 이야기를 마음에 담습니다. 멧골에 깃들어 살면 늘 멧골을 보면서 멧바람을 마시고 멧내음을 맡습니다. 멧골이 보여주는 빛깔을 늘 바라보면서 멧골과 얽힌 이야기를 마음에 담습니다.


  내가 사는 곳에 내가 바라보는 숨결이 있습니다. 내가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에 내가 맞이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내 삶터에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더 나은 것이나 덜떨어지는 것이 있는 삶터는 없습니다. 언제나 나 스스로 바란 대로 있는 삶터입니다. 내 보금자리가 아파트이든 시골집이든 그대로 받아들여서 누릴 때에 내 넋이 싱그럽습니다. 어느 곳에서 살든 마음이 홀가분하면서 즐거울 때에 내 하루가 홀가분하면서 즐겁습니다. 아파트에 있으면서도 하느님 마음이 될 수 있고, 시골집에 있으면서도 꽁꽁 묶이거나 갇힌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립니다. 우리가 늘 마주하거나 바라보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 그림은 그예 그림입니다. 곱거나 예쁜 그림이 아니라, 그저 그림입니다. 사는 모습을 그리고, 생각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꿈꾸는 모습을 그리고, 사랑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래서 그림에는 온갖 모습을 담을 수 있습니다. 바로 내 눈앞에 있는 모습을 그리고, 앞으로 누리려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릴 적에는 먼저 숨을 차분히 고릅니다. 잘 그리려는 생각이나 다르게 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내 숨결을 담아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 하나만 합니다. 이런 손재주나 저런 기법이나 그런 이론을 써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내 손길이 닿는 대로 그리되, 내 손길은 내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는지 모르겠다면, 아이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셔요. 나는 아이가 그릴 그림을 말하고, 아이는 내가 그릴 그림을 말하면 됩니다. 서로 어느 그림을 그려 보자고 이야기해 주면 됩니다.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그림대로 내 삶이 흐릅니다. 내가 마음속에 담으려는 그림대로 내 하루가 찾아옵니다. 그러니, 내 생각은 늘 내 꿈이어야 합니다. 이루려는 꿈을 늘 생각하고, 이루려는 꿈으로 가는 길을 언제나 가꾸어야 합니다. 걱정이나 근심이 아닌 맑은 생각과 밝은 마음이 되어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림을 즐겁게 그리는 사람입니다. 4348.2.1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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