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걷어차기



  어른도 곧잘 이불을 걷어차지만, 아이만큼 신나게 이불을 걷어차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어른은 이불을 걷어차다가도 다시 발가락으로 잡아당기는데, 아이는 이불을 한 번 걷어차면, 다시 끌어당기지 않고 덜덜 떨면서 몸을 웅크린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이불을 밤새 여러 차례 걷어찬다. 처음에는 걷어차면서 시원하다고 느끼지 싶으나, 이내 몸을 옹크린다. 그래서 자다가 틈틈이 두 팔을 뻗어서 두 아이가 제대로 이불을 덮는지 살핀다. 웬만하면 드러누워서 자는 채 팔만 뻗어 슥슥 이불을 잡아당겨 제대로 덮어 줄 수 있지만, 두어 차례쯤 걷어찬 뒤에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새로 여미어야 한다. 이불을 걷어찬 지 제법 지났으면, 이불깃을 새로 여밀 적에 두 아이 모두 포근하다는 얼굴로 바뀌어 이불깃을 턱밑까지 꼬옥 품는다. 아무리 캄캄한 밤이어도 두 아이 낯빛을 읽을 수 있다. 4348.3.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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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수수께끼 (2015.3.1.)



  새봄을 맞으면서 작은 그림을 하나 그린다. ‘수수께끼’를 그린다. 내가 나한테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면서, 이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자는 뜻에서 작은 그림을 그려서 부엌에 붙인다. 실타래를 엮는 사람도, 실마리를 푸는 사람도, 언제나 바로 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굳이 실타래나 실마리를 생각하지 말고, 삶을 생각하면서 삶을 지을 수 있는 사람도 바로 나이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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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3-03 06:49   좋아요 0 | URL
삶이란 내가 낸 수수께끼를 푸는 것!

숲노래 2015-03-03 07:29   좋아요 0 | URL
우리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고 풀려고 이 땅에 왔구나 하고 느껴요
 

[당신은 어른입니까 40] 직업읽기 (직업선택의 십계)

―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까



  거창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치는 ‘직업선택의 십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다짐글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찬찬히 읽습니다. 열 가지로 된 다짐글을 하나하나 읽습니다. 이를 슬기롭게 따르는 사람이 있을 테고, 이를 거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테며, 이를 지키기 어렵다 느끼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나는 이 다짐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를 떠올립니다. 이러고 나서, 우리 집 아이들한테 들려줄 말을 내가 새롭게 써 보자고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내 일 찾기’라는 글을 열 줄로 씁니다.



 * 내 일 찾기 (ㅎㄲㅅㄱ) *

 하나, 하면서 기쁜 일을 하자.

 둘, 하면서 신나는 일을 하자.

 셋, 손수 밥·옷·집 짓는 일을 하자.

 넷, 사랑스러운 일을 하자.

 다섯, 아름다운 일을 하자.

 여섯,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일을 하자.

 일곱,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을 하자.

 여덟, 숲을 짓는 일을 하자.

 아홉, 파란하늘을 보며 바람을 마시는 일을 하자.

 열,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는 일을 하자.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직업’을 찾으라고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직업’을 찾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기쁘게 누릴 ‘일놀이’를 찾아서 마음껏 살찌우기를 바랍니다.


  거창고등학교에서 쓰는 ‘직업선택의 십계’를 보면, 첫째로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라 나옵니다. 나는 이 첫 대목부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찾는데 왜 ‘월급’을 따질까요? 나는 내가 할 기쁜 일을 찾으면 될 뿐입니다. 이 일은 돈이 안 들어올 수 있고, 돈이 많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돈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내가 기쁘게 할 일을 찾으면 됩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 둘째는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라 나옵니다. 나는 둘째 대목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나는 내가 신나게 할 일을 합니다. 내가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일 때에 비로소 나는 ‘내 마을’에서도, 내 고장에서도, 내 나라에서도, 어느 한쪽에서 슬기롭게 이바지하는 일꾼이 됩니다. 내가 신나게 하지 못하면서 톱니바퀴가 되는 일이라면, 이러한 일은 안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 셋째는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라 합니다. 나는 내가 기쁘고 신나게 하면서 삶을 짓는 일을 하니까, ‘승진’하고는 아랑곳할 까닭이 없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한테는 승진이란 아예 없습니다. 아무래도, 거창고등학교에서는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될 사람을 헤아려서 이러한 ‘십계’를 지었구나 싶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한테 ‘앞으로 나아갈 길(진로)’을 밝히려 한다면, 도시에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살아갈 길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요. 게다가, 시를 쓰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승진’이란 없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려는 살림꾼한테도 ‘승진’이란 없습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 넷째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라 나옵니다. 나는 내가 기쁘면서 신나게 누릴 일을 할 뿐입니다. 모든 조건은 다 갖추어졌을 수 있고,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조건이 있든 없든 대수롭지 않아요.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짓는 일을 기쁘면서 신나게 해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를 더 보면,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 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이렇게 나옵니다. 나는 다른 여섯 가지도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할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다짐글은 ‘삶짓기’나 ‘삶찾기’나 ‘삶사랑’하고는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갑니다. 내가 가는 길에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가는데, 이 길이 아름다우면 다른 사람도 함께 걸을 수 있어요. 게다가, 나는 앞날이 맑고 밝으면서 환한 길을 갑니다. 나는 굳이 어두운 길로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는 길은 내가 밝힐 길이니까요. 내가 스스로 지어서 키우는 길을 가지, ‘장래성이 있든 없든’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은 삶길이자 사랑길이자 꿈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길을 걷는 사람은 저마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습니다. 서로 아끼고 좋아할 만합니다. 그러니, 누군가 내 길을 거룩하게 볼 수 있고, 훌륭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나는 내 둘레에서 나를 북돋우든 말든, 내 언저리에서 나를 깎아내리든 말든, 이를 쳐다볼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내 길을 웃고 노래하면서 갈 뿐입니다.


  나는 언제나 한복판에 섭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별에는 한복판이나 가장자리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곳은 한복판이면서 가장자리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두 다리로 우뚝 서서 홀가분하게 노래하는 곳은 ‘내 삶자리’입니다. 나는 내 삶자리에서 내 ‘삶일’을 찾고 ‘삶놀이’를 누립니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 곁님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어깨를 겯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 혼자만 갈 수 없어요. 함께 갑니다. 다만, 함께 가되 억지로 잡아끌면 안 되지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노래해야지요. 나만 믿고 따르라 해도 안 되고, 나 혼자만 가겠노라 해도 안 됩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노래해야지요.


  무엇보다 나는 단두대로 안 갑니다. 나는 왕관으로도 안 갑니다. 내는 ‘죽음길’이나 ‘허울뿐인 명예’ 어느 곳으로도 안 갑니다. 나는 내 삶으로 갑니다. 오늘 나는 모레로 갑니다. 오늘 나는 내 보금자리로 갑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일을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 된 사람은, 스스로 즐겁고 아이하고 함께 즐거우며 곁님하고도 함께 즐거운 일놀이를 누리면서 삶을 지을 때에 노래가 저절로 샘솟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 일 찾기’를 해야지요. ‘직업찾기’나 ‘진로선택’이 아닌, ‘내 일 찾기·내 삶 찾기·내 길 찾기’를 하면서 사랑과 꿈을 가꿀 때에 아름답고 사랑스레 기쁜 하루가 되리라 느낍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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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3-02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을 지위, 돈만 보고 정하는 어른들과 사회의 모습이 안타깝지요. 아이들도 그리 생각하는게 어른들이 그리 만든거겠죠. 꿈보다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하는 기회를 많이 줘야겠어요. 저도 이런 생각을 깊이 한것은 스물 몇해가 지나서 시작했으니 아이들도 쉬운 문제는 아니겠지요.

숲노래 2015-03-02 05:30   좋아요 0 | URL
민들레처럼 님 말씀대로,
`월급 따지지 말자`나 `지위 따지지 말자` 같은 말도,
정작 돈과 지위에 얽매인 모습이에요.

비판을 한다면서 세운 거창고 직업십계명일 테지만,
막상 `비판`은 되더라도 `스스로 짓는 새로운 삶`은 되지 못해요.

직업이 아닌 `꿈`을 그려야 하고, 이 꿈을 `삶`으로 이루도록 하는 `길`을
아이와 어른이 저마다 스스로 가꾸도록 도울 수 있는 `말`을
마음에 심을 때에,
비로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찾을 수 있어요.

늦깎이에 이 대목을 알아도 되고, 일찍부터 알아도 돼요.
언제 알아차리든, 이 대목을 알았으면 그때부터
씩씩하게 나아가면 기쁩니다~
 

엄지손가락을 벨 뻔하다



  아침을 짓다가 엄지손가락을 벨 뻔했다. 집 둘레에서 뜯은 갓풀을 썰고 오리고기도 썰어서 볶음밥을 하려는데, 고기를 썰다가 그만 엄지손가락까지 함께 썰려 했다. 칼날이 엄지손톱을 꾸욱 누를 즈음 ‘아차’ 하고 곧바로 깨달으면서 오른손에서 칼을 놓았고, 천천히 칼을 치우면서 왼손을 드는데, 엄지손톱만 파이고 끝난다. 한숨을 몰아쉰다. 그래도 한참 아프다. 피는 안 나오지만 몹시 아프다. 고기를 썰 적에 ‘힘 빼고 썰기’를 하니까 그나마 엄지손가락을 안 베었다. 아니, 엄지손가락을 안 썰었다. 고깃결에 맞추어 위에서 아래로 꾸욱 하고 누르면서 고기썰기를 했기에 그나마 엄지손가락을 자르지 않았구나 싶다. 오른손에 조금이라도 힘을 주어 눌렀다면 어찌 되었을까. 참으로 끔찍한 노릇이다. 욱씬거리는 왼손을 들면서 ‘미안하다, 고맙다, 괜찮다’는 말을 쉴새없이 한다. 손가락 끝자리마다 손톱이 있는 까닭을 새삼스레 생각한다. 손톱이란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가.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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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다락방 2015-03-01 13:44   좋아요 0 | URL
큰일날뻔 하셨네요~ 크게 다치지않아 다행입니다.아침밥상이 무척 먹음직스럽습니다^ ^

숲노래 2015-03-01 14:18   좋아요 0 | URL
이 사진은 저녁밥상이었어요.
요새는 참으로 조촐한 밥상만 차려요 ^^;
참말 손톱이 두꺼웁기 때문에
손가락이 안 베었습니다 @.@
 

우리집배움자리 13. 읽는 글 듣고 쓰기



  여덟 살 사름벼리는 혼자서 글을 척척 읽을 줄 안다. 이제 사름벼리는 굳이 ‘글을 보고 옮겨서 쓰기’는 안 해도 된다. 다음으로 넘어간다. 요즈막에는 ‘읽는 글 듣고 쓰기’를 한다. 사름벼리가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생각을 지으며 새로운 말을 살려서 쓰기를 바라면서, 나도 아이와 함께 그때그때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말로 지어서 부른다. 미리 쓴 글을 읽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하면 재미없다. 오늘 하루 아이와 어떤 일이나 놀이를 즐겁게 했는가를 돌아보면서, 이 이야기를 그림엽서 한쪽에 적을 만큼 간추려서 이야기를 짓는다. 그러면 이 ‘글’은 저절로 ‘동시(시)’가 되고, 이 글을 사름벼리가 가락을 입혀서 부르면 ‘노래’가 된다. 나는 아이한테 글을 써서 주고, 아이는 이 글에 가락을 넣어 새로운 노래로 가꾼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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