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17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

 최종규 글·사진

 숲속여우비

 2014.7.4.



  오늘이라는 나는 여태까지 걸어온 어제로 이룹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이제부터 새로 태어날 모레로 나아갑니다. 얼핏 보면 어제·오늘·모레는 모두 다른 듯싶어도 늘 하나로 잇습니다. 글로 안 남기고, 찰칵 안 찍어도, 우리 마음에는 모든 하루를 새깁니다. 2014년에 태어난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1992년부터 스물세 해를 드나든 인천 배다리책골목 〈아벨서점〉 한 곳을 아로새긴 자취를 담았습니다. 그 뒤 열 해가 지났으니 서른세 해째 헌책집 한 곳으로 책마실을 다니는 셈인데, 1992년 7월에 이곳에서 문득 “아! 책이란 이렇구나! 책집이란 이렇네! 책을 만지고 다루고 읽고 짓는 사람은 이런 빛이네!” 하고 느낄 적에 속으로 “앞으로 서른 해 뒤에도 이곳을 드나들며 ‘단골’이란 이름을 누리자.”고 생각했습니다. 요새는 ‘단골’을 다르게 여기지만, 1992년 언저리만 해도 ‘책집단골’이라는 이름을 들으려면 ‘20해 + 3000자락’이 밑동이어야 한다고 쳤습니다. ‘30해 + 5000자락’을 넘으면 책집지기하고 책손이 서로 ‘마음지기’로 피어난다고 했어요. 줄거리만 담을 적에는 아직 책이 아닙니다. 이야기로 거듭나야 살짝 책입니다. 첫 손길이 닿을 적에도 아직 책하고 멉니다. 두 손길에 서너 손길이 잇달아 스미기에 비로소 책입니다. 헌책이란, 손길이 거듭 닿은 책입니다. 널리 읽혔거나 미처 안 읽혔거나, 우리 손길이 새롭게 닿은 ‘새로 읽히는 빛’이 흘러나오기에 헌책입니다. 그래서 ‘책·빛·숲’ 세 낱말은 다르면서 나란하지 싶습니다. 책으로 눈을 빛내고 마음과 몸을 숲에 두어 사랑을 짓는 사람으로 깨어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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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14


《1987年 國民投票公報 (憲法改正案)》

 편집부 엮음

 선거관리위원회

 1987.



  이제 한글로 ‘헌법’이라 적지만, 꽤 오래도록 한자로 ‘憲法’이라 적었습니다. 예전에는 한글 아닌 한자로 까맣게 적던 글이라면, 요사이는 거의 모두 한글로 바꾸었습니다. 2000년 무렵까지만 해도 한자를 쓸 줄 모르면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라는 벼슬꾼과 글바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1987年 國民投票公報 (憲法改正案)》 같은 꾸러미를 누가 읽을 수 있을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조선 무렵에는 아예 중국글로 적어서 내려보냈으니, 한자를 조금 읽더라도 뜻을 새기기 훨씬 힘들었습니다. 흙살림을 짓거나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책은커녕 글씨조차 쓸 일이 아예 없었어요. 퍽 오래 씨내림으로 잇던 임금과 벼슬자리에, 중국글로 뭇사람을 억누르는 얼개였습니다. 앞으로는 ‘헌법’과 ‘국민투표’라는 일본스런 한자말을 수수하고 쉽게 우리말로 바꾸는 첫발을 내딛을 일이라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첫길·으뜸길 ← 헌법’을 생각할 만합니다. ‘가림·고름 ← 투표’를 생각할 수 있어요. “헌법은 ‘첫째가는 길’이야”나 “국민투표는 ‘우리 누구나 뽑는다’는 뜻이야”처럼 풀어서 말하지 말고, 처음부터 어린이 눈높이로 새말을 여미는 길을 찾으면서 바꿀 만하지요. ‘선거관리위원회’조차 아닌 ‘選擧管理委員會’ 같은 이름은 누가 읽겠습니까. 누구보다 어린이한테 묻고, 어린이가 꿈을 펼 새나라와 새터를 일굴 마음을 펼 첫걸음을 올해에 다시 내디딜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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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13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윤동주 글

 전광하·박용일 엮음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2002.7.



  중국에 우리 한겨레가 무척 많이 삽니다. 처음부터 한겨레가 많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나라를 잃고 집을 잃고 논밭까지 잃고 아이들마저 잃은 슬픈 사람들은 이웃나라로 건너갔습니다. 러시아하고 일본에도 한겨레는 숱하게 건너갔고, 때로는 끌려갔습니다. 맨몸으로 걸어갔어요. 맨손으로 땅을 일구었어요. 윤동주 님은 ‘명동촌(용정시)’에서 1917년에 태어납니다. 그무렵 한겨레는 고되게 일하면서도 저마다 꿈을 품었고, 먼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어질게 배워서 참하게 일어설 새길을 그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아는 윤동주 님 노래는 여러 동무와 이웃과 뒷내기 손길로 태어났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석 자락을 꾸려 스스로 하나, 이양하 님한테 하나, 정병욱 님한테 하나 남겼고, 이 가운데 전남 광양 어머니집 독에 고이 숨긴 정병욱 님 꾸러미가 1945년까지 살아남았다지요. 2002년에 흑룡강에서 펴낸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를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한겨레로서 ‘한말’을 ‘한글’로 담은 글자락이고, 예전 북녘말씨하고 연변말씨를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더군요. 그런데 중국은 뜬금없이 ‘중국조선족 애국시인’이란 이름을 붙이면서 윤동주 님을 ‘중국 역사’로 끼워맞추려 합니다. 어처구니없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를 찾아서 누리는 나날이라면, 나라지기부터 앞장서서 ‘한겨레 한노래’를 편 옛자취를 제대로 밝힐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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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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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 숲노래 사랑꽃

숲집놀이터 289. 경력단절



숱한 엄마는 ‘경력단절’을 걱정한다. 애써 오래도록 배움터랑 일터를 다녔으나, 아기를 낳느라 그만 일터를 쉬면서 ‘예전 배움터에서 익힌 길’을 써먹지 못 하고 잊어버린다며 걱정을 한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서 하루하루 무엇을 배우고 익히면서 새롭게 피어나고 거듭나고 깨어나는지 으레 놓치는 듯싶다. 아기는 엄마아빠한테 따로 나뉜 씨앗으로 흐르다가 엄마몸에서 열 달을 고이 자면서 자란다. 아기라는 몸을 입으려고 ‘두 씨앗’에서 ‘한 씨앗’으로 바뀌고, ‘한 씨앗’이던 몸을 내려놓고서 ‘아기’로 나아간다. 열 달이 지난 뒤에는 ‘아늑한 엄마몸’을 떠나서 밖으로 나온다. 갓 태어난 뒤로는 젖을 빨다가 젖떼기밥으로 건너가고, 이내 목을 가누고 뒤집고 기고 선 끝에 걸음마를 뗀다. 바야흐로 모든 나날이 ‘옛길을 끊고서 새로 나아가는 하루’이다. 온누리 어느 곳에서도 “사랑으로 아기를 품어서 돌보는 살림”을 못 가르친다. 엄마하고 아빠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받는 두 사람은 저마다 보금자리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으로 짓는 숲빛살림”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살림을 깨닫고 익히려면 ‘옛길은 다 내려놓아’야 한다. 이제 ‘아줌마·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바뀐 ‘엄마·아빠’는 아주 마땅히 옛날하고 다르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 다르게 ‘일멎이(경력단절)’에서 ‘일꾼·살림꾼’으로 피어났다. 그래서 ‘아줌마·아저씨’는 일터도 마을도 나라도 아름답게 사랑으로 가꿀 줄 아는 눈길과 손길과 발걸음으로 자라난 ‘어른’으로 선다. ‘아줌마·아저씨’는 아주 빠르게 새일과 새길을 익힐 줄 안다. ‘아줌마·아저씨’는 낯선 일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면서 웃고 노래하며 일할 줄 안다. 왜 이럴 수 있겠는가? 바로 아기를 맞이하는 ‘일멎이(경력단절)’를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를 겪었거든. ‘아줌마·아저씨’는 “아기를 낳아서 돌본 눈부신 새일·새길(경력)을 갈고닦은” 터라, 오히려 누구보다도 일을 훨씬 잘 하거나 한결 알뜰살뜰 여미곤 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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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5.8.

숨은책 925


《유미리 戱曲集》

 유미리 글

 정진수 옮김

 예음

 1994.7.9.



  글이름으로 ‘유미리’가 덜 알려진 1994년에 한글판으로 나온 《유미리 戱曲集》입니다. 1997년에 ‘아쿠타가와 상’을 받고서 《풀하우스》와 《가족 시네마》와 《물가의 요람》을 비롯한 숱한 책이 한글판으로 나오는데, 이즈음 《유미리 戱曲集》 겉종이에 “일본 최고의 문학상”을 받았다는 글씨를 덧붙입니다. 글보람(문학상)을 안 받더라도 아름다운 책은 아름답게 마련이지만, 이 작은 책이 좀더 눈길을 받으면서 읽히기를 바랐을 테지요. 유미리 님은 2020년에는 ‘미국도서상’을 받습니다. 1997년이나 2020년이나 이녁은 한결같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서 어느 곳에만 뿌리가 있다고 여길 수 없다는 마음이요, 2018년에 후쿠시마 한켠에 연 마을책집 〈풀하우스〉는 조용히 나즈막히 살림빛을 나눈다고 합니다. 곰곰이 보면, 두 나라 모두 ‘한국문학·일본문학’에 안 넣는 듯싶습니다. 그렇다면 ‘재일조선문학’에는 들어갈까요? 글자락으로 삶꽃을 밝히고 살림빛을 나누며 사랑씨를 품는 길을 편 마음을 ‘세계문학’으로는 넣어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요? 고름을 다독여 곱게 풀어내고, 생채기를 달래어 새빛으로 엮어내고, 멍울을 쓰다듬어 미움·싸움·가름을 멈추자는 뜻을 들려주는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福島南相馬市小高區東町1-10

1-chome-10 Odakaku Higashimachi, Minamisoma, Fukushima 979-2121 Japan


https://twitter.com/yu_miri_0622/status/177766723899009032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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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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