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1.11.


아이들이 스스로 제 그릇이나 수저를 설거지하지 않으면 내가 안 해 주겠노라 했으나, 두 아이는 늘 잊는다. 하루를 잊고 이틀을 잊는다. 사흘 나흘 신나게 잊는다. 개수대를 치우고 싶어서 마지못해 아이들 그릇을 설거지하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되풀이한다. 두 아이 모두 ‘먹은 그릇을 설거지할 생각을 안 하’고 다른 그릇을 꺼내어서 쓴다. 이러다가도 큰아이는 때때로 아버지 곁에 붙어서 “설거지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배워야지!”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물끄러미 지켜보곤 한다. 저랑 아버지랑 설거지하는 손길이 다른 줄 살펴본다. 그래, 그렇게 봐야지. 본다고 해서 다 알아내지는 못할 수 있지만, 보고 또 본 뒤에 스스로 해 봐야지. 손이며 몸에 익도록 해 봐야지. 밥상을 차려 놓고서 보려다가 자꾸 못 보고 만 사진책 《귀환》을 드디어 이부자리에 누워서 본다. 평상에 앉아서 보고 싶으나 등허리를 펴려고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 누워서 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군대힘을 앞세워 러시아로 내몬 탓에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해방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고향나라 손길을 못 받았다. 더욱이 남녘 정부에서 ‘귀환’을 받아들이기로 할 적에 딸아들은 러시아에 두고 홀몸으로 남녘으로 들어와야 한 사람들이 많다. 나라는 무엇일까? 나라가 하는 일이란 뭘까? 나라는 돈을 어디에 쓰는가? 딸아들도 동무도 이웃도 러시아에 두고 홀몸으로 남녘으로 들어온 분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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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8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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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37



카고메는 카고메

― 이누야샤 8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4.25. 4500원



“어쩔 수 없었단 말야! 보고 싶었는걸!” “나를?” “뭐야, 그 얼굴은?” (33쪽)


“키쿄우는 영력이 하루하루 약해져, 이 땅의 요괴들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지. 왜인지 아느냐, 이누야샤? 키쿄우가 보잘것없는 반요에게 반해, 힘없는 보통 여자로 전락했기 때문이야.” (45∼46쪽)


“그래도, 역시 네 얼굴을 보니까, 왠지 힘이 났어. 역시 카고메가 곁에 있어 주면 좋겠어.” (74쪽)


“살아 있는 자들은 새로운 시간을 새겨 가오. 그러나 죽은 자인 그대의 시간은 멈춰 있소. 결코 섞일 수 없는 것인데, 불쌍한…….” (104쪽)


“난 역시, 키쿄우의 대용품이야?” “뭐? 바보야! 절대 아니라고 몇 번 말해야 알겠어! 물론 처음엔 닮았다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카고메는 카고메야. 너를 대신할 건 없어.” (184쪽)



  연필이 닳으면 새로 연필을 장만합니다. 새 연필을 쓰면서 옛 연필을 그리워하지는 않습니다. 연필을 쥐면서 새롭게 쓸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여요. 오랫동안 아끼며 쓰던 살림을 잃으면 새로 마련합니다. 잃은 옛 살림을 서운하게 여길 일은 없습니다. 오늘 손에 쥐며 꾸리는 살림을 헤아릴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람도 여느 물건이나 살림처럼 척척 새사람을 맞이해서 곁에 둘 만할까요?


  새로 사귀는 동무가 있습니다. 새로 만나는 이웃이 있습니다. 새로 사귀거나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전부터 사귀거나 만나는 사람을 멀리하거나 싫어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모두 다르면서 아름다운 사람이지요. 저마다 다르면서 반가운 사람이에요.


  만화책 《이누야샤》는 여덟째 권에 이르면서 카고메하고 키쿄우 사이에서 이누야샤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를 그립니다. 키쿄우가 요괴를 누르면서 마을을 지키던 힘을 잃은 까닭이 무엇인가를 모두 알아차립니다. 키쿄우는 나라쿠한테 속아서 죽고 말았는데, 죽음에 이르면서 이승에 아쉬움을 남깁니다. 홀가분하게 저승으로 못 가고 이승을 떠도는 넋이 되어요. 이승에 있는 사람을 저승으로 같이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누야샤는 죽은 넋인 키쿄우를 따라서 함께 저승으로 가고 싶을까요? 아니면 죽은 넋이 스스로 곱게 마음을 달래어 저승으로 떠나고, 이승에서 카고메라는 아이 곁에 있으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나는 삶을 짓고 싶을까요? 갈림길에 선 마음입니다. 갈림길에서는 옳음이나 그림이 아닌 스스로 가는 길이 있을 뿐입니다. 2017.11.1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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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자전거 타며 읽는 책 2017.11.10.


만화책 《맛의 달인》을 1권부터 100권까지 한꺼번에 장만했다. 만화책은 값이 안 비싸다 하더라도 한꺼번에 100권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러나 한두 권씩 띄엄띄엄 사다가는 아무래도 사이에 판이 다 끊어질는지 모르니 목돈을 들였다. 책숲집에 백 권을 이쁘게 꽂아 놓고서 하루에 두 권쯤 가져다가 읽는다. 저녁에 아이들을 이끌고 별바라기 자전거를 타러 나오면서 또 두 권을 챙긴다. 차츰 밤이 길어지면서 이제 구름이 없는 날에는 날마다 미리내를 실컷 누릴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시골에서 살며 이 밤빛을 지켜볼 수 있으니 반갑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어릴 적에 별빛으로 밝은 밤하늘을 누릴 수 없었다. 도시에 별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마 1985년이었지 싶은데, 국민학교 4학년 여름에 꼭 하루 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서 잠을 잔 적이 있다. 예전에 학교에서 하룻밤을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손수 천막을 치도록 가르치면서 바깥잠을 자는 날이 있었는데, 이때 밤 두 시인가 세 시 즈음에 모두 일어나라고 해서 일어났더니, 집마다 불이 거의 다 꺼지고 자동차도 안 다니는 깊은 밤에 인천에서도 별을 제법 많이 볼 수 있었다. 별자리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때 교장 선생님 말씀으로는 인천도 더 예전에는 별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날 인천에서 밤하늘 별을 보면서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아서 돌본다면 밤에 별을 제대로 잔뜩 볼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살짝 했다고 떠오른다. 오늘 별바라기 자전거 마실은  이런 즐거움을 누리는 길이라고 할까.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는 《기지 국가》라는 두툼한 책을 읽어 본다. 두툼하니 다 읽으려면 좀 걸릴 듯싶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구별 곳곳에 얼마나 많은 군사기지를 거느리는가를 짚은 책이다. 미국이 국방비에 돈을 쓰면 쓸수록 미국 스스로 경제가 휘청일 뿐 아니라 평화하고도 동떨어진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엇비슷한 길을 걷는단다. 그러면 왜 미국을 비롯한 숱한 나라가 국방비에 돈을 쓰고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까? 틀림없이 뒤에서 이를 꾀하면서 이끄는 다른 우두머리가 있을 테지. 그나저나 촛불힘으로 대통령이 된 분이 공식으로는 안 밝히고 비공식으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한테 ‘첨단무기 30만 달러어치 사 주기로 했다’는 말을 트럼프가 먼저 밝혔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드를 미국에 돌려보낼 생각은 안 하고, 다른 첨단무기를 사들이는 데에 30만 달러? 이뿐일까? 촛불을 뭘로 알고 이런 바보짓을 일삼을까?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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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CEO - 자전거 매출 세계 1위 자이언트 이야기 CEO의 서재 8
킹 리우.여우쯔옌 지음, 오승윤 옮김 / 센시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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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29


공무원이 모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면?
― 자전거 타는 CEO
 킹 리우·여우쯔엔/오승윤 옮김
 OCEO, 2017.10.20. 13500원


  제가 어릴 적에 우리 어버이가 장만해 준 자전거 뒤로 제가 스스로 마련해서 타고 다닌 첫 자전거는 신문사 지국에서 신문배달원으로 일하며 타던 짐자전거입니다. 신문을 돌리면서 타는 짐자전거는 짐을 싣기에도 좋고, 사람을 뒤에 앉히기에도 좋습니다. 짐자전거에는 기어가 따로 없으나 짐을 가득 싣고도 오르막을 제법 잘 오를 수 있습니다. 다만 빠르게 오르지는 못하지요.

  짐자전거로 신문배달을 여러 해 하는 동안 자전거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온몸으로 익혔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빗길에도 눈길에도, 자전거랑 늘 함께 움직이면서 이렇게 멋진 ‘새로운 두 다리’를 누릴 수 있는 하루가 기뻤어요.

  신문배달을 끝내고 다른 일자리로 옮기면서 전철에도 실을 만한 작게 접는 자전거를 마련했어요. 이즈음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꾸린 모임에 나가 보기도 했는데, 그무렵 ‘자이언트(GIANT)’ 자전거는 안 좋고, 매우 아슬아슬할 수 있다는 얘기를 둘레에서 들었어요. 얼추 스무 해 즈음 된 얘기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니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180도로 달라졌다. 처음 도전했을 때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 할 것 없이 찬성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시도 때는 정반대로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34쪽)

이 두 번의 경험으로 나는 사람이 때로는 바보 같아야 자신의 한계를 깰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내 체력은, 혹은 능력은 이 정도라고 한정 짓는다면 잠재력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 (44쪽)


  《자전거 타는 CEO》(OCEO, 2017)를 읽으면서 스무 해 즈음 된 예전 일을 떠올립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자이언트라는 대만 자전거 회사 대표입니다. 킹 리우라는 분은 저를 비롯한 ‘자전거 즐김이’가 지난날 떠올리던 ‘자이언트 자전거는 매우 안 좋아’ 하는 이야기를 책에 고스란히 적기도 합니다. 자전거 회사 대표 스스로 처음에는 퍽 엉성하게 자전거를 만들어서 팔았다는 대목을 안 숨기고 적어요. 예전에는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고도 밝힙니다.

  그런데 자이언트 자전거는 오늘날 어떻게 눈부시게 거듭났을까요? 자전거를 엉성하게 만들어 돈만 벌려고 하던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즐기는 사람들이 자이언트 자전거를 놓고서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란 대목을 달게 받아들여서, 그 뒤로는 ‘조금이라도 엉성하게 만든 자전거’는 그대로 땅에 파묻어서 버리고, 모두 새로 만들었다고 해요. 이렇게 한 해 두 해 흐르면서 어느덧 자이언트 자전거는 ‘안 좋은 자전거’에서 ‘좋은 자전거’로 달라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운동이 그렇듯 일 역시 즐겁지 않으면 보람을 찾을 수 없고, 오래 버티기도 힘들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은 ‘지금의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잊지 않는 사람은, 분명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85쪽)

유바이크의 품질은 세계 다른 도시의 공용자전거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다. 그저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자전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자전거를 보급하고자 노력한 결과다. (161쪽)


  그러면 자전거 회사 대표는 어떻게 ‘돈벌이’를 이녁 마음에서 털어낼 수 있었을까요? 바로 자전거 회사 대표 스스로 ‘자전거를 타며 출퇴근’을 하면서 달라졌고, 자전거 출퇴근을 넘어서 ‘자전거 대회 완주’까지 몸소 하면서 더욱 달라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 자전거로 산을 오르내리며, 여든을 웃도는 나이에까지 자전거 타기를 멈추지 않는다고 해요.

  많이 파는 물건으로만 자전거를 바라보았다면, 자이언트라는 자전거는 고만고만했거나 조용히 사라지는 회사 가운데 한 곳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온누리에 손꼽히는 회사가 되기를 바라려는 뜻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서 파는 물건이 제대로 된 것일 뿐 아니라, 스스로도 즐겁게 타고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생각을 품으면서 찬찬히 달라질 만하지 싶어요.

  이러면서 회사를 더욱 잘 꾸리는 길을 스스로 알아내기도 하고, 숫자로 살피는 벌이를 넘어서 지구라는 별이나 대만이라는 나라를 모두 생각하는 길까지 걸을 수 있을 테고요.


중요한 점은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단계마다 계속해서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180쪽)

나에게는 꿈이 있다. 타이완 자전거산업이 세계를 선도하는 데서 더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타이완에 와서 ‘가장 좋은 자전거’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225쪽)


  《자전거 타는 CEO》라는 책은 자전거 이야기보다는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를 잘 꾸리는 길’을 밝히는 이야기를 더 길게 다룹니다. 자전거 즐김이보다는 회사 경영자한테 어울리는 책이라고 할 만해요. 그렇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회사를 잘 꾸리는 길’도 ‘자전거를 즐기는 수수한 삶’이 밑바탕으로 있기에 열 수 있었네 하고 느꼈습니다.

  이러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봅니다. 자전거 회사 대표는 자전거 회사를 꾸리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동안 몸이 매우 튼튼하게 달라졌다고 해요.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아직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떠할까요? 대통령을 비롯해서 국회의원이든 시장·군수이든, 군의회·시의회 의원이든, 또 여느 공무원이나 교사이든, 이런 공공기관 일꾼이 모두 자가용을 내려놓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 본다면? 전국 어디에서나 공공기관에서 ‘공용차’가 아닌 ‘공용자전거’를 타도록 한다면? 이렇게 할 적에 우리 사회는 얼마나 눈부시게 거듭날까 하고 한번 꿈꾸어 봅니다. 2017.11.1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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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만쥬의 숲 1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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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36


죽었으나 저승에 못 가는 안타까움
― 파란 만쥬의 숲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오경화 옮김
 미우, 2011.5.30. 8000원


‘내 모습이 변치 않았다면 계속 곁에 있을 수 있었을까?’ (24쪽)

“당신은 그냥 당신이니까, 무리해서 신이 될 필요는 없어요. 당신에겐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잖아요?” (46쪽)

“서늘한 곳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우리를, 늘 지켜 주었죠. 어쩌면 당신은 단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이고, 나도 그 발밑에 있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우린 분명당신 덕분에 살 수 있었던 거예요.” (134쪽)

“어떡해, 어떡해? 우리 마사히로, 벌써 1살이야. 무려 1살이라구. 1살!” “어머님, 아버님한테 죄송해서 어쩌지? 그렇게 맡겨 두고 와서?” “무슨? 괜찮아. 오히려 기뻐하고 계셔. 빨리 돌아가자, 기쁨을 선사해야지.” “너무 들뜬 거 아냐?” “어떻게 들뜨지 않을 수가 있어? 그 아일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얼마나 귀여워했는데.” (188쪽)


  한국말에 ‘이승·저승’이 있어요. 산 사람이 사는 곳은 이승이요, 죽은 사람이 있는 곳은 저승이라고 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이쪽·저쪽’인 셈입니다. 이곳 너머가 저곳이요, 이 길을 떠나면 저 길을 가는 셈이고요.

  “이리 와”하고 “저리 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리 와” 하고 부를 적에는 이쪽에서 함께 살아가요. “저리 가” 하고 내칠 적에는 한곳에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곳에서 함께 있으면 싫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곳에서 보면 이곳 너머가 저곳이지만, 저곳에서 보면 저곳 너머가 이곳이지요. 우리가 선 자리에서 보자면 우리 아닌 너희는 남이지만, 저쪽에 있는 저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바로 남이 되어요.

  만화책 《파란 만쥬의 숲》(미우, 2011)은 이승하고 저승 사이에 만나는 갈림길을 다룹니다. 다만 이승하고 저승 사이에 만나는 갈림길이 숲에 있어요. 이 숲은 사람들이 여느 때에 드나들지 않습니다. 더욱이 여느 때 숲 바깥에서는 숲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뿐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지요. 그러나 막상 숲에 발을 들이고 보면, 그동안 느끼거나 보지 못한 숱한 ‘다른 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숲 바깥에서는 하찮은 돌멩이입니다만, 숲에서는 ‘스스로 걷고 움직이며 말하고 웃거나 찡그릴 줄 아는’ 목숨인 돌멩이가 되어요. 숲 바깥에서는 그저 흔한 길고양이나 들개라 하더라도 숲에서는 ‘사람하고 똑같이 말하고 웃고 울고 노래할 줄 아는’ 목숨으로 보입니다.

  《파란 만쥬의 숲》에서는 숲 안팎을 홀가분하게 드나드는 사내가 한 사람 나옵니다. 이 사내가 어릴 적에 겪은 이야기를 첫째 권 끝자락에 살며시 담아요. 숲 안팎을, 그러니까 이승저승을 홀가분하게 오가는 사내는 꼭 1살 적에 두 어버이를 교통사고로 잃었대요.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난 어버이가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지만 두 어버이가 저(1살 아기)한테 주려던 장난감 자동차는 멀쩡했다지요. 만화책 이야기를 이끄는 사내는 오랜 장난감 자동차를 가끔 들여다보면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아버지가 예전에 어떤 모습이요 어떤 말을 나누었는가’를 가만히 되새기곤 합니다.

  그리고 이 사내는 길을 잃은 ‘돌멩이 정령’을 비롯해서 숱한 목숨붙이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도록 이끄는 몫을 맡습니다. 숲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살이를 하느라 바빠서 쳐다보지 않거나 마음조차 안 쓰는 ‘작은 이웃(사람이 아닌 모든 목숨붙이)’한테 찬찬히 마음을 기울여요.

  어쩌면 사람 아닌 숱한 이웃을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말을 섞을 수 있는 눈이나 힘은 대단한 곳에 있지 않을 수 있어요. 엄청난 초능력이 있어야 돌이나 나무하고 말을 섞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어요. 바쁘게 몰아치지 않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걸음을 멈추고 살며시 쪼그려앉고, 따사로운 마음으로 지켜볼 줄 알 적에, 바람소리를 듣겠지요. 잎소리를 들을 테고요.

  죽었으나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도는 숱한 이웃들한테 마음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어린이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해요. 사회에 물들지 않기에, 사회에 휩쓸리지 않기에, 사회에 끄달리지 않기에, 스스로 한 걸음씩 내딛으며 살아가려 하기에, 우리는 꽃 한 송이를 아끼고 이웃을 보듬는 넉넉한 삶을 가꾸리라 봅니다. 2017.11.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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