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1.11.
아이들이 스스로 제 그릇이나 수저를 설거지하지 않으면 내가 안 해 주겠노라 했으나, 두 아이는 늘 잊는다. 하루를 잊고 이틀을 잊는다. 사흘 나흘 신나게 잊는다. 개수대를 치우고 싶어서 마지못해 아이들 그릇을 설거지하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되풀이한다. 두 아이 모두 ‘먹은 그릇을 설거지할 생각을 안 하’고 다른 그릇을 꺼내어서 쓴다. 이러다가도 큰아이는 때때로 아버지 곁에 붙어서 “설거지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배워야지!”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물끄러미 지켜보곤 한다. 저랑 아버지랑 설거지하는 손길이 다른 줄 살펴본다. 그래, 그렇게 봐야지. 본다고 해서 다 알아내지는 못할 수 있지만, 보고 또 본 뒤에 스스로 해 봐야지. 손이며 몸에 익도록 해 봐야지. 밥상을 차려 놓고서 보려다가 자꾸 못 보고 만 사진책 《귀환》을 드디어 이부자리에 누워서 본다. 평상에 앉아서 보고 싶으나 등허리를 펴려고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 누워서 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군대힘을 앞세워 러시아로 내몬 탓에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해방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고향나라 손길을 못 받았다. 더욱이 남녘 정부에서 ‘귀환’을 받아들이기로 할 적에 딸아들은 러시아에 두고 홀몸으로 남녘으로 들어와야 한 사람들이 많다. 나라는 무엇일까? 나라가 하는 일이란 뭘까? 나라는 돈을 어디에 쓰는가? 딸아들도 동무도 이웃도 러시아에 두고 홀몸으로 남녘으로 들어온 분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