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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만쥬의 숲 1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36
죽었으나 저승에 못 가는 안타까움
― 파란 만쥬의 숲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오경화 옮김
미우, 2011.5.30. 8000원
‘내 모습이 변치 않았다면 계속 곁에 있을 수 있었을까?’ (24쪽)
“당신은 그냥 당신이니까, 무리해서 신이 될 필요는 없어요. 당신에겐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잖아요?” (46쪽)
“서늘한 곳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우리를, 늘 지켜 주었죠. 어쩌면 당신은 단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이고, 나도 그 발밑에 있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우린 분명당신 덕분에 살 수 있었던 거예요.” (134쪽)
“어떡해, 어떡해? 우리 마사히로, 벌써 1살이야. 무려 1살이라구. 1살!” “어머님, 아버님한테 죄송해서 어쩌지? 그렇게 맡겨 두고 와서?” “무슨? 괜찮아. 오히려 기뻐하고 계셔. 빨리 돌아가자, 기쁨을 선사해야지.” “너무 들뜬 거 아냐?” “어떻게 들뜨지 않을 수가 있어? 그 아일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얼마나 귀여워했는데.” (188쪽)
한국말에 ‘이승·저승’이 있어요. 산 사람이 사는 곳은 이승이요, 죽은 사람이 있는 곳은 저승이라고 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이쪽·저쪽’인 셈입니다. 이곳 너머가 저곳이요, 이 길을 떠나면 저 길을 가는 셈이고요.
“이리 와”하고 “저리 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리 와” 하고 부를 적에는 이쪽에서 함께 살아가요. “저리 가” 하고 내칠 적에는 한곳에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곳에서 함께 있으면 싫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곳에서 보면 이곳 너머가 저곳이지만, 저곳에서 보면 저곳 너머가 이곳이지요. 우리가 선 자리에서 보자면 우리 아닌 너희는 남이지만, 저쪽에 있는 저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바로 남이 되어요.
만화책 《파란 만쥬의 숲》(미우, 2011)은 이승하고 저승 사이에 만나는 갈림길을 다룹니다. 다만 이승하고 저승 사이에 만나는 갈림길이 숲에 있어요. 이 숲은 사람들이 여느 때에 드나들지 않습니다. 더욱이 여느 때 숲 바깥에서는 숲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뿐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지요. 그러나 막상 숲에 발을 들이고 보면, 그동안 느끼거나 보지 못한 숱한 ‘다른 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숲 바깥에서는 하찮은 돌멩이입니다만, 숲에서는 ‘스스로 걷고 움직이며 말하고 웃거나 찡그릴 줄 아는’ 목숨인 돌멩이가 되어요. 숲 바깥에서는 그저 흔한 길고양이나 들개라 하더라도 숲에서는 ‘사람하고 똑같이 말하고 웃고 울고 노래할 줄 아는’ 목숨으로 보입니다.
《파란 만쥬의 숲》에서는 숲 안팎을 홀가분하게 드나드는 사내가 한 사람 나옵니다. 이 사내가 어릴 적에 겪은 이야기를 첫째 권 끝자락에 살며시 담아요. 숲 안팎을, 그러니까 이승저승을 홀가분하게 오가는 사내는 꼭 1살 적에 두 어버이를 교통사고로 잃었대요.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난 어버이가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지만 두 어버이가 저(1살 아기)한테 주려던 장난감 자동차는 멀쩡했다지요. 만화책 이야기를 이끄는 사내는 오랜 장난감 자동차를 가끔 들여다보면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아버지가 예전에 어떤 모습이요 어떤 말을 나누었는가’를 가만히 되새기곤 합니다.
그리고 이 사내는 길을 잃은 ‘돌멩이 정령’을 비롯해서 숱한 목숨붙이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도록 이끄는 몫을 맡습니다. 숲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살이를 하느라 바빠서 쳐다보지 않거나 마음조차 안 쓰는 ‘작은 이웃(사람이 아닌 모든 목숨붙이)’한테 찬찬히 마음을 기울여요.
어쩌면 사람 아닌 숱한 이웃을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말을 섞을 수 있는 눈이나 힘은 대단한 곳에 있지 않을 수 있어요. 엄청난 초능력이 있어야 돌이나 나무하고 말을 섞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어요. 바쁘게 몰아치지 않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걸음을 멈추고 살며시 쪼그려앉고, 따사로운 마음으로 지켜볼 줄 알 적에, 바람소리를 듣겠지요. 잎소리를 들을 테고요.
죽었으나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도는 숱한 이웃들한테 마음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어린이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해요. 사회에 물들지 않기에, 사회에 휩쓸리지 않기에, 사회에 끄달리지 않기에, 스스로 한 걸음씩 내딛으며 살아가려 하기에, 우리는 꽃 한 송이를 아끼고 이웃을 보듬는 넉넉한 삶을 가꾸리라 봅니다. 2017.11.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