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순이 16. 엉금엉금 올라타기 (2014.3.26.)

 


  여러 해에 걸쳐 오랫동안 아주 많이 타던 자전거가 있다. 세모꼴로 접어서 세울 수 있고, 부피를 적게 차지하기도 하니 버스에도 들고 타는 자전거이다. 서울 남산도 이 자전거로 올랐고, 서울부터 부산까지 이 자전거로 달린 적이 있기도 하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 달리다가 벨트가 끊어진 적이 있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짐받이에까지 책을 제법 묵직하게 묶어서 다니기도 했다. 그동안 오래 많이 탔기에 손잡이 뼈대 이음새가 낡고 닳아서 부러지면서 더는 탈 수 없다. 도서관 한쪽에 접어서 고이 모신다. 네 살 작은아이가 이 자전거에 타겠다며 엉금엉금 올라타려 한다. 달리지는 못해도 엉금엉금 올라타기만 해도 즐거울 수 있겠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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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06. 나락 말리는 가을에

 


  나락 말리는 가을에 시골길을 달리는 군내버스는 나락내음을 싣고 달린다. 마을마다 길바닥에 나락을 말리느라 부산하고, 군내버스는 이 마을과 저 마을을 돌면서,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할매와 할배가 거둔 나락마다 곱게 풍기는 내음을 담아 고흥군을 한 바퀴 돈다. 왜 찻길에 나락을 말리느냐고 따질 수 있을 테지만, 나락을 말리는 할매와 할배가 군내버스를 타는 손님이다. 군내버스가 태울 할매와 할배는 나날이 줄어든다. 길바닥에 나락을 더 말리지 못한다면, 군내버스에 탈 할매와 할배도 사라지고 만다는 뜻이 될 테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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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05. 가을억새 버스

 


  겨울을 앞둔 늦가을 들길은 고즈넉하다. 들은 벼를 모두 베어 텅 빈다. 그러나 들이 비었다고 할 수 없다. 마늘을 심은 논이 있고 유채씨를 뿌려 이듬해 경관사업을 하는 논이 있다. 무엇보다, 벼를 베었어도 흙이 있으며 들풀이 살몃살몃 고개를 내미니까 ‘비었다’고 할 수 없다. 빗물에 흙이 쓸려 시멘트도랑에 흙바닥이 생기면 억새가 씨앗을 날려 자란다. 지난날에는 시멘트도랑 아닌 흙도랑이기만 했을 테니 가을억새 물결이 훨씬 곱고 커다랐으리라 생각한다. 고작 열 해 앞서만 하더라도 훨씬 출렁대는 가을빛 밝은 길을 시골버스가 달렸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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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04. 버스 냄새 나

 


  아이들이 버스만 지나가면 “아이, 버스 냄새.” 하고는 코를 싸쥔다. 자동차 지나가는 일이 아주 드문 두멧시골에서 살다 보니, 어쩌다 마주치는 버스가 있어도 ‘자동차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군내버스를 타도 택시를 타도 늘 ‘자동차 냄새’를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서 코를 싸쥐고는 웃는다. 좋구나. 그런데 무엇이 좋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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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40. 아이들이 뛰놀 곳 2014.3.27.

 


  아이들이 뛰놀 곳은 어디인가. 자동차가 없는 곳. 아이들이 노래할 곳은 어디인가. 자동차 소리가 없는 곳. 아이들이 오붓하게 어울리면서 어깨동무할 곳은 어디인가. 자동차가 서지 않아 홀가분한 곳. 아이들은 아스팔트길이나 시멘트길을 바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즐겁게 뛰놀면서 시원하고 따스한 곳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흙을 밟으면서 풀노래를 부르고 싶다. 아이들이 뛰놀 곳에 아이들이 있는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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