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군내버스 005. 가을억새 버스
겨울을 앞둔 늦가을 들길은 고즈넉하다. 들은 벼를 모두 베어 텅 빈다. 그러나 들이 비었다고 할 수 없다. 마늘을 심은 논이 있고 유채씨를 뿌려 이듬해 경관사업을 하는 논이 있다. 무엇보다, 벼를 베었어도 흙이 있으며 들풀이 살몃살몃 고개를 내미니까 ‘비었다’고 할 수 없다. 빗물에 흙이 쓸려 시멘트도랑에 흙바닥이 생기면 억새가 씨앗을 날려 자란다. 지난날에는 시멘트도랑 아닌 흙도랑이기만 했을 테니 가을억새 물결이 훨씬 곱고 커다랐으리라 생각한다. 고작 열 해 앞서만 하더라도 훨씬 출렁대는 가을빛 밝은 길을 시골버스가 달렸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