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보던 책을 슬쩍

 


  누나가 보던 책을 슬쩍 보는 동생. 누나는 이것을 하다가 어느새 저것을 하고, 저것을 하다가도 새삼스레 그것을 한다. 이동안 동생은 누나가 하던 이것을 따라서 하고, 누나가 이어서 하던 저것을 좇아서 한다. 누나는 돌고 돌아 다시 이것이나 저것으로 돌아와서 노는데, 그동안 동생이 이것이나 저것을 붙잡고 놀면 “내가 놀던 거야.” 하면서 가로채려 한다.


  벼리야, 보라는 누나를 좋아해서 누나가 놀던 것을 저도 한번 놀아 보고 싶단다. 벼리는 이것도 놀 수 있고 저것도 놀 수 있잖아. 이 책도 읽을 수 있고 저 책도 읽을 수 있지. 보라가 이 책을 보고 싶다 하면 이 책을 주고, 저 책을 보고 싶다 하면 저 책을 주렴. 다 주면 돼. 그리고 벼리가 보고픈 책이 있으면 보드라운 목소리로 보라한테 달라고 해 봐. 그러면 보라도 너한테 모두 다 줄 테니까.


  예쁜 손으로 예쁘게 책을 읽자. 예쁜 마음으로 예쁜 하루를 빛내자. 예쁜 꿈으로 서로 예쁘게 사랑을 꽃피우자. 네 동생 보라는 누나 벼리가 노는 모습을 책으로 삼으며 하루를 빛내고 싶어 한단다.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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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싫어하는 책읽기

 


  아버지는 말야, 맛나게 먹자고 차린 밥상 앞에서 책을 펼쳐 읽겠다고 하는 모습이 참으로 싫단다. 책을 읽으려면 아버지가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떠는 동안 읽어야지,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떨 적에는 자꾸 불가에 달라붙으며 이것 달라느니 저것 주라느니 하더니, 막상 밥상을 차린 뒤에는 책을 들고 와서 밥상 앞에 앉고는 밥상은 쳐다보지 않으면, 누가 좋아하겠니.


  밥은 즐겁게 먹고, 책은 즐겁게 읽으며, 놀이는 다 함께 즐겁게 하자. 밥상 앞에서는 책을 내려놓고, 책상 앞에 앉을 적에는 배고프다 말하지 말자.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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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밭이 좋아

 


  삶에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참말 없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좋다’와 ‘나쁘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곤 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좋다와 나쁘다라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무언가 즐길 만할 때에 ‘좋다’라 말하고, 나 스스로 즐길 만하지 않을 때에 ‘나쁘다’라 말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즐길 만하구나, 즐겁구나, 하는 뜻으로 ‘좋다’라는 말이 흘러나와요.


  나는 풀밭을 바라보며 즐겁습니다. 풀이 좋고 반가우며 고맙거든요. 중학교 3학년이었나 고등학교 1학년이었나, 문학 교과서에서 〈풀〉이라는 시를 만나고는 김수영 시인이 좋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시를 쓴다면 이렇게 시를 쓸 때에 나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김수영 시인은 ‘풀’을 모두 들려주지 않았어요. 김수영 시인이 살아가는 어느 도시 어느 보금자리에서 느끼는 풀살이만 들려주었어요.


  풀밭을 가만히 바라보면, 풀은 바람에 따라 눕지 않고 일어서지 않습니다. 숱한 풀이 서로 얼키고 설켜 가만히 있습니다. 드센 비바람이 몰아친대서 풀포기가 뽑히지 않아요. 풀은 서로 뿌리에서도 얼키고 설키거든요. 풀 한 포기 뽑아 보셔요. 이웃한 풀까지 나란히 뽑혀요. 서로 한 뿌리라도 되는 듯 꼭 붙잡으니까요.


  풀밭을 바라보면서 내 눈을 거쳐 내 마음으로 푸른 기운이 스며듭니다. 풀밭을 마주하면서 내 손과 내 가슴으로 푸른 숨결이 샘솟습니다. 좋아요. 풀이 좋아요. 즐거워요. 풀이 즐거워요. 풀은 사랑을 먹고, 사람은 풀을 먹습니다. 풀은 씨앗을 남기고, 사람은 사랑을 남겨요.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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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에 시집 네 권

 


  저녁에 시집 네 권을 읽는다. 한 권은 즐겁게 읽고, 세 권은 이렁저렁 시큰둥하게 읽는다. 즐겁게 읽은 시집을 쓴 이도 어떤 문학상 하나를 받았다 하는데, 신문배달 하던 어릴 적 이야기부터 방위병으로 지내며 현역병한테 숱하게 얻어맞은 이야기에다가 탄광일과 김일 하는 삶을 시로 알뜰히 적바림했다. 다른 세 권을 쓴 이도 이런 상 저런 상을 받았다 하고, 누군가는 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기도 한단다. 그런데 나는 이들 시집 세 권이 썩 즐겁지 않다. 이들은 시를 왜 썼을까. 이들은 시를 써서 왜 상을 받고 왜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할까.


  시는 헛소리를 담지 않는다. 시는 삶을 담는다. 삶을 담지 않고서는 시가 태어나지 않는다. 주절주절 떠들거나 말놀이를 한대서 시가 될까. 주절주절 떠들면 ‘주절주절 시끄러운 소리’요, 말놀이를 하면 ‘꼬투리 잡는 말놀이’가 될 뿐이다.


  일을 하건 놀이를 하건 아이를 돌보건 살림을 꾸리건 마실을 다니건 숲에 깃들건 무얼 하건, 스스로 살아내는 하루를 노래 하나로 영글 때에 비로소 싯말이 태어난다고 느낀다. 어떤 일을 하건 무슨 대수랴. 어떤 일을 하건 스스로 말꽃을 피울 수 있어야 노래를 불러 시를 짓겠지.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스스로 사랑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지 못할 뿐 아니라 시노래를 짓지 못한다.


  한 달에 걸쳐 읽는 시집이 아니요, 한 해 내내 읽는 시집이 아닌, 저녁나절 휘리릭 훑고는 두 번 다시 펼칠 일이 없으리라 느끼는 시집 세 권이란 무엇일까. 이 시집이 되려고 싹둑싹둑 베이고 만 숲은 무엇이 된 셈일까. 종이 한 장은 나무 한 그루요, 책 한 권은 숲 한 자락이다. 시집 하나는 숱한 숲이 새로 태어난 넋이다. 사람들은 숲에 어떤 이름을 아로새길 생각인가. 사람들은 숲을 밀어 어떤 돈을 벌 생각인가. (4345.1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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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한테 책이란 (도서관일기 2012.11.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아이들한테 책이란 무엇이 될까. 아이들은 책을 얼마나 읽어야 할까. 우리 아이들 또래 다른 아이들은 진작부터 보육원·유아원·어린이집·유치원을 다닌다. 다른 아이들은 이런저런 곳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영화를 보며 영어노래를 배운다. 어느 아이는 한글을 벌써 떼고 혼자 그림책을 읽기도 하리라. 우리 집 다섯 살 큰아이는 이제 한창 글놀이를 할 뿐, 나도 옆지기도 딱히 큰아이한테 글을 가르치지 않는다. 큰아이는 제 이름을 즐거이 쓰며 놀다가, 이제 누가 제 이름을 따로 적어 주지 않아도 혼자 씩씩하게 쓸 줄 안다.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그림책 큰 글씨 읽어 달라 하면서 때때로 하나둘 익히곤 한다.


  작은아이가 아직 안 태어난 지난날, 도시에서 살며 자연그림책이나 생태그림책을 되게 많이 사서 보았다. 자연사진책이나 생태사진책도 꽤나 많이 사서 모았다. 글로 된 환경책도 퍽 많이 사서 읽었다. 그런데 막상 시골로 삶터를 옮겨 보금자리를 이루고 보니, 이런 자연그림책이나 저런 생태사진책이 그닥 쓸모있지 않다. 늘 숲을 보니까 자연그림책이 덧없다. 언제나 숲이 곁에 있으니 생태사진책이 부질없다. 자연그림책이 숲을 더 깊거나 넓게 보여주지 않는다. 자연그림책은 숲하고 동떨어진 채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숲맛’을 조금이라도 느끼도록 해 주려고 빚는다. 생태사진책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시골사람이 시골을 더 살가이 깨닫고 느끼도록 이끄는 자연생태 이야기책은 아직 없다. 아니, 아마 앞으로도 나올 일이 없으리라 본다.


  우리 서재도서관으로 뿌리내리면서 집숲으로도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시골 폐교 자리에 아이들과 놀러온다. 이 터를 교육청한테서 우리보다 먼저 빌려 건물 둘레에 나무를 빼곡히 심고 내팽개친 분들은 한 해 내내 한 차례도 이곳에 찾아오지 않았다. ‘나무 심었으니 이제 내 땅이야!’ 하는 듯할 뿐, 조금도 돌보지 않고 건사하지 않는다. 우리 식구는 이 좋은 터에 풀약 하나 안 치고 정갈한 숲과 밭으로 돌보면서 책이 함께 있는 예쁜 마을쉼터를 일구고 싶다.


  우리한테는 마음이 있고 책이 있다. 아직 돈은 없다. 날마다 꿈을 꾼다. 머잖아 우리들 주머니에 돈이 들어와 이 터를 ‘버려진 땅’이 아닌 ‘싱그럽고 푸르게 빛나는 숲과 책밭’이 되도록 보살필 수 있으리라고 즐겁게 바란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러거나 저러거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저희 아버지가 책을 몇 만 권 건사하든 말든 대수롭지 않다. 어떤 이가 이 터를 돈으로 거머쥐려고 나무를 잔뜩 심든 말든 대수롭지 않다. 그예 재미난 놀이터요, 그저 마음껏 노래하고 뛰거나 구르는 좋은 앞마당이다. 겨울 지나고 새봄 찾아오면 곳곳에서 딸기꽃 피고 들딸 먹는다며 아이들 날마다 마실을 하자고 조르겠지.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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