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이 좋아

 


  삶에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참말 없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좋다’와 ‘나쁘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곤 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좋다와 나쁘다라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무언가 즐길 만할 때에 ‘좋다’라 말하고, 나 스스로 즐길 만하지 않을 때에 ‘나쁘다’라 말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즐길 만하구나, 즐겁구나, 하는 뜻으로 ‘좋다’라는 말이 흘러나와요.


  나는 풀밭을 바라보며 즐겁습니다. 풀이 좋고 반가우며 고맙거든요. 중학교 3학년이었나 고등학교 1학년이었나, 문학 교과서에서 〈풀〉이라는 시를 만나고는 김수영 시인이 좋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시를 쓴다면 이렇게 시를 쓸 때에 나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김수영 시인은 ‘풀’을 모두 들려주지 않았어요. 김수영 시인이 살아가는 어느 도시 어느 보금자리에서 느끼는 풀살이만 들려주었어요.


  풀밭을 가만히 바라보면, 풀은 바람에 따라 눕지 않고 일어서지 않습니다. 숱한 풀이 서로 얼키고 설켜 가만히 있습니다. 드센 비바람이 몰아친대서 풀포기가 뽑히지 않아요. 풀은 서로 뿌리에서도 얼키고 설키거든요. 풀 한 포기 뽑아 보셔요. 이웃한 풀까지 나란히 뽑혀요. 서로 한 뿌리라도 되는 듯 꼭 붙잡으니까요.


  풀밭을 바라보면서 내 눈을 거쳐 내 마음으로 푸른 기운이 스며듭니다. 풀밭을 마주하면서 내 손과 내 가슴으로 푸른 숨결이 샘솟습니다. 좋아요. 풀이 좋아요. 즐거워요. 풀이 즐거워요. 풀은 사랑을 먹고, 사람은 풀을 먹습니다. 풀은 씨앗을 남기고, 사람은 사랑을 남겨요.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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