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초꽃 책읽기

 


  꽃마다 피고 지는 철이 있단다. 참 맞다. 꽃마다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처음 피는’ 철이 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풀은 철에 따라 피거나 지지 않는다. 거의 모든 풀은 한 해에 여러 차례 피고 진다.


  쑥풀을 봄에만 뜯어서 먹지 않는다. 여름에도 뜯어서 먹고, 가을에도 뜯어서 먹는다. 미나리도 유채도 질경이도 이와 같다. 왜냐하면, 김을 맨다면서 이들 풀을 뽑아서 버리면, 머잖아 이들 풀은 새롭게 돋는다. 사람들이 다시 김을 맨다면서 이들 풀을 또 뽑아서 버리면, 이윽고 이들 풀은 새삼스레 돋는다.


  논둑이든 밭둑이든 망초라 일컫는 풀은 참 자주 쉽게 뽑힌다. 가을날 가을걷이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망초나 숱한 풀은 한숨을 돌리며 씩씩하게 돋는데, 이때에는 꽃이 피고 씨를 맺어 훨훨 저희 숨결을 퍼뜨릴 때까지 안 뽑히곤 한다. 왜냐하면, 곧 겨울이 다가와 이들 풀은 겨울 추위에 몽땅 얼어죽는다고 여기니까.


  겨울 앞둔 늦가을 들판에서 망초꽃을 본다. 너희 참 씩씩하게 잘 컸구나. 대견하네. 어여쁘네. 너희를 들여다보며 곱다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너희는 너희 숨결대로 이 땅에 힘차게 태어나 아름다이 삶을 누리는구나. 4345.11.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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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못 읽는 책읽기

 


  혼자서 순천마실을 하고 돌아오려다가 큰아이가 울면서 함께 가자고 보채느라 큰아이를 데리고 읍내로 나가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순천에 있는 헌책방을 다녀온다. 시외버스 오가는 두 시간 길에 책을 읽으려고 두 권을 가방에 넣는다. 읍내 버스역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큰아이한테 도시락 밥을 먹인다. 큰아이가 배부른지 버스역 이곳저곳 뛰고 달리며 노는 동안 살짝 숨을 돌리며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그런데, 두 권 가운데 한 권은 다 읽은 책이다. 다 읽은 책을 또 읽을 수 있는 노릇이기는 한데, 예전에 읽으면서 그닥 사랑스럽지 못하다고 느낀 시집이다. 나 원,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다가, 예전에 읽을 때 마음속으로 아무 사랑을 느끼지 못했기에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살피지 않고 얼른 챙기자며 가방에 넣었구나 싶다. 그리고, 예전에 읽으면서 아무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기에 ‘한 번 더 읽고픈’ 생각이 안 들었겠지.


  시외버스 타기까지 35분을 기다린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오줌 누이고 낯 씻기고 하니 35분은 훌쩍 지나간다. 버스에 오른다. 아이는 조용히 있는가 싶더니 졸린 얼굴이다. 안전띠를 끌러 내 무릎에 누인다. 내 무릎에 누운 아이는 곧바로 눈을 감고 잠든다. 나도 졸음이 쏟아져 아이를 안은 채 잔다.


  이윽고 순천에 닿고, 순천 헌책방을 찾아간다. 졸린 아이는 품에 안고 걷는다. 순천 헌책방 골마루를 내달리며 놀던 또래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고 없단다. 시무룩한 아이는 다시 아버지 품에 달라붙으며 안긴다. 살짝 책마실을 하고는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 시외버스에 오르는데, 과자 반 봉지를 먹은 큰아이는 조금 개구지게 놀듯 노래를 부르며 흥얼흥얼하다가는 다시 졸린 얼굴이다. 아이 안전띠를 다시 끌르고는 무릎에 누여 재운다.


  이리하여, 시외버스로 두 시간 오가는 동안 책 한 줄 읽지 못한다. 순천에서 장만한 책 또한 한 줄도 살피지 못한다. 아이는 집에 닿아 다시 살아난다. 마음껏 노래하고 달리고 뛰고 긴다. 동생하고 다투기도 하다가는 동생이랑 재미나게 놀기도 한다. 아버지인 내가 너무 고단해서 제발 우리 잠을 자자고 불러 억지로 눕힌다. 더 놀려 하다가 큰아이가 스스로 불을 끈다. 아버지 곁에 눕다가 쉬가 마렵다느니 물을 마시겠다느니 한다. 마지막 일을 치르고 자리에 누운 아이는 몇 분 안 지나 깊이 곯아떨어진다. 잘 놀았니? 잘 논 하루가 맞니? 오늘 아버지는 오직 너만 바라보며 지냈구나. 네 동생은 오늘 하루 거의 못 바라보며 지냈네. 네 동생 밑을 씻기고 코를 닦고는 했지만, 네 동생은 얼마 못 안았구나. 그래도 모처럼 ‘아버지를 너 혼자 누리는 아버지’로 곁에 두고 놀았으니, 새근새근 잘 자고 아침에 다시 기운차게 놀자. 4345.1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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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까마중

 


  쑥을 봄에 먹을 적에는 ‘봄쑥’이라 하고, 쑥을 가을에 먹을 적에는 ‘가을쑥’이라 한다. 이른여름에 마주한 까마중이면 ‘여름까마중’이라 하고, 늦가을에 마주하는 까마중이면 ‘가을까마중’이라 하면 될까. 11월 22일에도 까맣게 익는 까마중이 있다. 이날에도 하얗게 꽃을 틔우는 까마중이 있다. 아직 푸른 열매 매단 까마중이 있다. 겨울이라 하더라도 눈바람 거의 안 부는 고흥 시골마을인데, 12월이 되어도 까마중은 꽃을 피울까. 12월 한복판이 되어도 까마중 까만 열매를 먹을 수 있을까.


  아마 12월에도 까마중을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 집 마당이랑 텃밭에는 갓풀이 싱그러이 돋아 얼른 뜯어 먹어 달라며 부른다. 다만, 1월에는 어떠할는지 모른다. 까마중풀이 1월에도 씩씩하게 살아내어 까만 열매를 먹으며 기운내라고 부를는지, 1월쯤이면 모두 시들어 죽을는지 모른다. 아이들과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다. (4345.1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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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홍서나물 책읽기

 


  우리 집 마당 둘레이든 마을 밭둑 어디이든 흔하게 피고 지는 ‘주홍서나물’이라는 풀을 본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풀이요, 거의 남녘에만 피고 지던 꽃이라는데, 차츰 위쪽으로도 올라가서 피고 진단다.


  주홍서나물은 풀이름부터 ‘나물’이라고 일컫는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라든지 이곳저곳에서는 주홍서나물 같은 풀은 ‘나쁜 귀화식물’이라 여겨 뿌리째 뽑아 없애려 애쓴다고 한다.


  궁금하고 궁금하다. 이런 들풀 한 포기를 뿌리째 뽑는들 없앨 수 있을까. 이런 들풀은 씨앗이 얼마나 작으며 널리 퍼지는가를 알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이웃나라로 자주 오가고, 이웃나라에서 한국으로 흔히 오간다. 이제 지구별에서 ‘외래식물’도 ‘귀화식물’도 따로 말할 수 없다. 한국사람 스스로 커피나무를 받아들여 심기도 하는데, 블루베리나무를 심기도 하는데, 왜 어느 나무와 꽃과 풀은 일부러 이웃나라에서 사들여서 심고, 왜 어느 나무나 꽃이나 풀은 못 들어오게 막으려 하거나 뿌리째 뽑아 없애려 할까.


  늦가을에 이르러 비로소 이름을 알아내어 ‘주홍서나물’이라는 말마디를 읊어 본다.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 식구는 ‘주홍서나물’이라는 이름도 모르는 채 즐거이 뜯어서 먹었다. 올해가 저물고 새해가 되어도, 이 들풀을 비롯해 온갖 들풀을 신나게 먹겠지. 가만히 보면, 감자도 고구마도 모두 귀화식물인데, 감자랑 고구마를 없애자고 외치는 목소리는 어디에서고 들은 적 없다. 고추도 토마토도 몽땅 귀화식물이지만, 오늘날 한국사람 가운데 고추 먹지 말고 쫓아내자 외치는 사람 또한 어디에도 없다. (4345.1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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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꾸리는 마음 (도서관일기 2012.11.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사람들은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간다고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으며 ‘스스로 삶을 북돋울’ 뜻으로 ‘도서관에 간다’고 할 수 있을까.


  줄거리를 훑는대서 책읽기가 될 수 없다. 줄거리를 훑을 적에는 ‘줄거리 훑기’이다. 독후감을 쓰려고 책을 살핀다면 ‘독후감 쓰기’일 뿐 책읽기라 할 수 없다. 널리 이름나거나 알려진 책을 들춘다 할 적에도 ‘이름난 책 들추기’일 뿐 책읽기라는 이름은 붙일 수 없다. 신문을 읽을 때에 모두 신문읽기가 되지 않는다. 신문에 어떤 이야기가 실리는가를 ‘읽고’서, 신문에 어떤 이야기가 왜 실리는가를 다시 ‘읽고’서,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을 새삼스레 ‘읽고’서, 내 삶을 가만히 돌아보며 하루를 되새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신문읽기라 할 수 있다.


  영화읽기나 노래읽기나 문화읽기나 교육읽기나 정치읽기나 사랑읽기 모두 이와 매한가지이다. 겉을 훑는대서 읽기는 아니다. 겉을 훑으면 겉훑기일 뿐이다. 줄거리를 살피면 그저 줄거리를 살핀다 할 뿐이다. 읽기란 ‘살기(삶)’로 이어진다. 꽃을 읽으며 꽃마음을 가만히 되새기며 내 마음을 돌아본다. 하늘을 읽으며 하늘흐름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내 넋을 되새긴다. 아이들 마음을 읽으며 어버이로서 내 마음을 함께 읽는다. 책을 읽는다 할 적에는, 이 책 하나를 쓴 사람이 어떤 삶을 일구면서 어떤 넋을 돌보아 어떤 꿈을 펼치려 했는가를 내 사랑을 쏟아 읽는다고 해야 알맞다.


  제주에서 책손 한 분 찾아온다. 햇살이 가장 밝고 따스한 낮에 큰아이하고 나란히 도서관마실을 한다. 우리 마을 끝자락에 있는 돌기둥 하나를 구경한 다음 우체국에 들러서 도서관으로 간다. 마을 끝자락 돌기둥은 육백 해쯤 되었는지 천 해쯤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돌기둥을 누가 왜 세웠는지도 모른다. 곰곰이 헤아려 본다. 돌기둥을 세운 사람들 마음을 헤아려 본다. 어디에서 이 돌을 들고 와서 깎아 세웠을까. 이 돌기둥은 얼마나 긴 나날을 비바람과 눈바람 맞으며 이 자리를 지켰을까. 어쩌다 논 한복판이라 할 데에 이 돌기둥이 섰을까. 돌기둥은 논이 없던 때부터 돌기둥으로 있다가, 사람들이 이 언저리에서도 흙을 일구어 논을 만들었을까.


  큰아이는 도서관에 오면 책을 보기도 한다. 동생이랑 둘이 오면 뛰노느라 바쁘고, 어른들이랑 함께 오면 개구지게 뛰놀기도 하지만, 제 눈높이에 맞는 그림책을 집어서 조용히 읽곤 한다.


  고흥 시골마을에 연 도서관에 정작 고흥사람은 아직 거의 안 찾아들지만, 먼 곳에서 사는 분들이 고운 책손이 되어 찾아온다. 먼 곳에서 찾아온 분들은 느긋하게 책을 읽고 살피며 느낄 줄 안다. 그러니까 먼걸음을 하겠지. ‘가까운걸음’이라서 다들 바쁘거나 설렁눈길이지는 않지만, 외려 가까운 자리 사람들은 ‘언제라도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언제라도 안 오기’ 일쑤이다. 먼 데서 사는 사람들은 마음 즐겁게 품으며 기쁜 마실을 하며 기쁘게 책을 만지고 쓰다듬을 줄 안다.


  도서관 꾸리는 내 마음을 읽는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책을 읽어야 아름답게 거듭난다고 느끼지 않는다. 다문 한 사람이 다문 한 권을 손에 들어 만지작거린다 하더라도, 스스로 슬기롭게 살아가고픈 꿈을 사랑스레 품을 때에 비로소 아름답게 거듭난다고 느낀다. 도서관이란 백만 천만 억만 사람 누구한테나 열린 곳이기는 하지만, 도서관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가슴속 깊이 꿈을 사랑스레 품는 사람뿐이라고 느낀다. (ㅎㄲㅅㄱ)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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