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못 읽는 책읽기

 


  혼자서 순천마실을 하고 돌아오려다가 큰아이가 울면서 함께 가자고 보채느라 큰아이를 데리고 읍내로 나가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순천에 있는 헌책방을 다녀온다. 시외버스 오가는 두 시간 길에 책을 읽으려고 두 권을 가방에 넣는다. 읍내 버스역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큰아이한테 도시락 밥을 먹인다. 큰아이가 배부른지 버스역 이곳저곳 뛰고 달리며 노는 동안 살짝 숨을 돌리며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그런데, 두 권 가운데 한 권은 다 읽은 책이다. 다 읽은 책을 또 읽을 수 있는 노릇이기는 한데, 예전에 읽으면서 그닥 사랑스럽지 못하다고 느낀 시집이다. 나 원,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다가, 예전에 읽을 때 마음속으로 아무 사랑을 느끼지 못했기에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살피지 않고 얼른 챙기자며 가방에 넣었구나 싶다. 그리고, 예전에 읽으면서 아무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기에 ‘한 번 더 읽고픈’ 생각이 안 들었겠지.


  시외버스 타기까지 35분을 기다린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오줌 누이고 낯 씻기고 하니 35분은 훌쩍 지나간다. 버스에 오른다. 아이는 조용히 있는가 싶더니 졸린 얼굴이다. 안전띠를 끌러 내 무릎에 누인다. 내 무릎에 누운 아이는 곧바로 눈을 감고 잠든다. 나도 졸음이 쏟아져 아이를 안은 채 잔다.


  이윽고 순천에 닿고, 순천 헌책방을 찾아간다. 졸린 아이는 품에 안고 걷는다. 순천 헌책방 골마루를 내달리며 놀던 또래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고 없단다. 시무룩한 아이는 다시 아버지 품에 달라붙으며 안긴다. 살짝 책마실을 하고는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 시외버스에 오르는데, 과자 반 봉지를 먹은 큰아이는 조금 개구지게 놀듯 노래를 부르며 흥얼흥얼하다가는 다시 졸린 얼굴이다. 아이 안전띠를 다시 끌르고는 무릎에 누여 재운다.


  이리하여, 시외버스로 두 시간 오가는 동안 책 한 줄 읽지 못한다. 순천에서 장만한 책 또한 한 줄도 살피지 못한다. 아이는 집에 닿아 다시 살아난다. 마음껏 노래하고 달리고 뛰고 긴다. 동생하고 다투기도 하다가는 동생이랑 재미나게 놀기도 한다. 아버지인 내가 너무 고단해서 제발 우리 잠을 자자고 불러 억지로 눕힌다. 더 놀려 하다가 큰아이가 스스로 불을 끈다. 아버지 곁에 눕다가 쉬가 마렵다느니 물을 마시겠다느니 한다. 마지막 일을 치르고 자리에 누운 아이는 몇 분 안 지나 깊이 곯아떨어진다. 잘 놀았니? 잘 논 하루가 맞니? 오늘 아버지는 오직 너만 바라보며 지냈구나. 네 동생은 오늘 하루 거의 못 바라보며 지냈네. 네 동생 밑을 씻기고 코를 닦고는 했지만, 네 동생은 얼마 못 안았구나. 그래도 모처럼 ‘아버지를 너 혼자 누리는 아버지’로 곁에 두고 놀았으니, 새근새근 잘 자고 아침에 다시 기운차게 놀자. 4345.1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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