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4.30. 마음으로 함께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인천에서 나고자랐으나, 1994년에 서울에 있는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니, ‘인천에 남은’ 또래는 “넌 이제 인천사람 아니네?” 하고 여겼습니다. “뭔 소리야? 그런 말이 어딨어?” “서울물을 먹으면 사람이 바뀌어.” “난 서울물이 아니라 미국물을 먹어도 언제나 나일 뿐이야.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배우면 스스로 바꾸어야 하는데, 어떻게 나를 안 가꾸고 안 배우면서 살 수 있니?” “넌 서울에 가면 바뀔 테니까 이제 인천사람이 아니지. 벌써 서울사람이 된 듯한데?” “뭔 소리니? 나는 날마다 새로 배우기에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니까 날마다 바뀌는 사람인데, 고작 인천에서 서울로 삶터를 옮긴 대서 ‘사람이 바뀐다’면, 그때에는 ‘맛갔다’고 해야지. 나는 앞으로 어디에서 살든 인천말씨를 건사하면서 늘 나답게 살 생각이야. 너야말로 사람이 바뀌지 마.”


  저는 1994∼2003년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말씨에 물들지 않고서 인천말씨로 살았습니다. 2003년 가을부터 충북 충주를 오가며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할 적에도 충주말씨나 음성말씨나 ‘이오덕 말씨’에 물들지 않고서 ‘인천에서 나고자란 내 말씨’를 그대로 이었습니다. 2007년 4월 5일에 인천으로 돌아오니 그때 동무들이 하는 말. “넌 어떻게 안 바뀌냐? 야, 딴 애들은 한 달만 서울에서 일해도 바뀌던데, ○○이 있잖아, 걔 좀 봐.” “너흰 내가 예전에 한 말을 잊었니? 나는 늘 배우는 사람이라서 난 똑같은 적이 아예 없어. 다만, 내가 쓰는 말씨는 앞으로도 한결같겠지. 말씨는 언제나 똑같을 테지만, 말씨는 안 바뀔 테지만, 말씨에 담는 마음과 생각은 앞으로도 언제나 새롭게 가다듬을 생각이야.”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옮기고서 어느새 열다섯 해를 전남 시골내기로 살아가지만, 제 입에서 흐르는 말씨는 ‘1975년 인천말씨’ 그대로입니다. 인천 도화1동과 주안동과 신흥동3가와 신선동과 만석동과 용현동과 숭의동과 송림동과 송현동과 송월동과 관동과 신포동과 전동 …… 내동 사동 송학동 연안동 산곡동 화수동 화평동 부개동 관교동 옥련동 …… 이제는 날이 갈수록 오래동무가 살던 마을이름과 골목이름이 차츰 가물가물한데, 인천 새하늬마높 골골샅샅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동무가 누빈 길을 모두 거닐면서 모든 곳이 제 발바닥과 손바닥과 눈코귀입에 고스란합니다. 그래서 제 귀로는 ‘만석동 말씨’와 ‘화수1동 화수2동 말씨’가 다른 줄 느낍니다. 도원동 말씨와 유동 말씨와 용동 말씨도 다른 줄 느끼고, 송월동1가와 송월동2가 말씨가 다른 줄 느껴요.


  누구는 묻지요. “무슨 인천말씨(인천사투리)가 있다고 그래?” 저는 되묻습니다. “서울사람은 고흥말씨와 장흥말씨와 보성말씨가 뭐가 다른 줄 몰라요. 그러나 보성사람은 고흥말씨와 장흥말씨하고 다른 보성말씨를 쓰는 줄 알고, 읍내와 면소재지뿐 아니라 마을(리) 말씨까지 다 다른 줄 낱낱이 느끼고, 마을에서 집집마다 말씨가 다른 줄 느껴요. 거꾸로 전라남북도 사람은 인천말과 부천말과 안산말이 뭐가 다른 줄 못 느끼지만, 부천사람은 인천말뿐 아니라 부평말도 다른 줄 느끼고 알아요.”


  지난 3월 28일에 태어난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즐기고 나누는 조촐한 자리를 4월 30일에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시다락방〉에서 꾸렸습니다. ‘인천에서 나고자란 인천작가’라지만, 정작 인천시립도서관에서 여태 책수다를 해본 적이 없고, 전남 고흥에서 살아도 막상 고흥군립도서관이나 전남도립도서관에서 책수다를 한 일조차 없습니다. 오히려 ‘뜬금없다’ 싶은 부산시 여러 도서관에서 여러 책수다를 폈고, 2025년에는 부산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상주작가’로 일곱 달 동안 여러 일을 꾀하려고도 합니다. 그래도 전남 순천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푸름이하고 책수다를 딱 한 자리 연 적은 있군요.


  ‘시·군·구 도서관’에서 책수다나 이야기(프로그램·강연)를 펴려면, ‘시·군·구’한테 밉보일 말이나 글을 한 자락이라도 써서는 안 됩니다. 시장이나 군수나 구청장이나 도지사가 ‘지역개발·부흥·일자리창출·경제성장’을 이루겠다면서 밀어붙이는 여러 삽질(토목공사)을 나무라거나 따지는 글꾼(작가)은 어떤 책수다도 열지 못 합니다. 이른바 글쓰기를 하며 글삯을 번 1992년부터 2025년까지 돌아보니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책수다를 펴려고 책을 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배운 바를 갈무리하려고 책을 썼고, 아직 아이조차 없던 무렵에도 “나중에 우리 아이한테 물려주려는 마음”으로 책을 내놓았습니다. 나부터 스스로 배우려고 쓰는 책이라서, 나를 이웃이며 동무로 여기는 누구나 함께 즐기려는 뜻으로 책을 쓰고 낱말책을 여밉니다. 2016년에 내놓은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하고, 2025년에 내놓은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은 인천과 서울과 양구와 충주와 전남과 고흥과 부산이라는 고장이 무엇보다 크게 밑거름이 되어서 태어났다고 여깁니다. 아무리 늦어도 2034년에는 새 낱말책으로 내놓으려고 서른 해째 붙잡는 꾸러미가 있는데, 오늘 하루도 등짐살이를 기쁘게 이으려고 합니다.


  발걸음이 닿는 고을마다 그 고을에 뿌리내린 작은책집으로 찾아가서 몇 자락씩 책을 사들여서 온나라 온사람 마음이 흐르는 말빛과 말씨와 말결을 숲빛으로 풀어내는 길을 차곡차곡 여미려고 합니다. 알아볼 사람을 바라면서 쓰는 책이 아닌, 스스로 알아보면서 쓰는 책입니다. 아무리 인천이 ‘공장도시·침대도시·마계도시’라 하더라도, 뿌연 밤하늘 너머로 틀림없이 별이 있습니다. 모든 곳이 ‘도시’라는 이름보다는 ‘마을’과 ‘골목’과 ‘살림터’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느슨히 신나게 뛰노는 곳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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