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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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늘 만나는 (2017.5.1.)

― 순천 〈책방 심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소지품검사를 하며 책을 빼앗든 말든 등짐에 ‘교과서도 참고서도 아닌 책’을 대여섯 자락씩 챙겨서 다녔어요. 쉴틈이나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하며 이 책을 한 자락씩 꺼내어 읽었어요. 도시락을 먹으면서 읽고, 버스로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에 읽으며, 걸어다니는 동안에도 읽었어요. 하루에 대여섯 자락씩 챙기고 다녀도 그리 어렵잖이 다 읽을 만했어요.


  아이랑 살며 아이읽기로 부산합니다. 아이는 책보다 아이 눈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아이는 꽃내음을 큼큼 맡으며 책보다 꽃읽기를 하라고 부릅니다. 아이는 비바람을 마시면서 책보다 비읽기랑 바람읽기를 하자고 손짓합니다.


  아이는 한결 넓고 깊이 책을 읽도록 부추깁니다. 종이에 글씨를 얹는 책뿐 아니라 돌멩이라는 책, 소꿉이라는 책, 눈짓이라는 책, 구슬땀이라는 책, 자장노래라는 책, 별빛이라는 책을 함께 읽자고 잡아당겨요. 이 여러 가지가 새삼스레 하루를 북돋아 주었기에, 두 아이하고 살아낸 열 해를 갈무리해서, 큰아이가 열 살을 맞이한 해를 기려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을 썼지요. 마침 이 책을 〈책방 심다〉에서 ‘이달 심다 책’으로 뽑아 주었습니다. 신문도 방송도 이 책을 다룬 적이 없지만 마을책집에서 알아보아 주니 반갑습니다. 서울에서 바깥일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심다〉에 들르니, 이 책을 미리 맡으신 분이 책 안쪽에 이름을 적어 주기를 바라셨다고 하면서 내밉니다. 기꺼이 붓을 쥡니다. “씨앗 선생님. 풀씨가 앉아서 풀밭 되고, 꽃씨가 앉아서 꽃밭 되며, 나무씨가 앉아서 숲이 되니, 저마다 고운 마음씨가 고요히 앉아서 사랑이 됩니다.” 하고 적습니다.


  〈심다〉에는 이 책집에 와야 읽을 수 있는 책이 꽤 돼요. 팔지 않는 책입니다. 나눔읽기를 하는 책이지요. 이 가운데 《Little Tree》(Katsumi Komgate)가 있는데, 곱게 펼치면서 나무를 돌아보는 그림책을 보다가 “삶을 사랑하며 시골에서 곁님·아이들·나를 돌보는 길에 책을 고이 돌아본 이야기를 살포기 책 한 자락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같은 글자락을 90칸 글종이에 적어서 책집지기님한테 건넵니다.


  이곳에 씨앗 한 톨이 있습니다. 씨앗 한 톨은 풀도 꽃도 나무도 되지만, 사랑도 꿈도 노래도 됩니다. 이윽고 책도 이야기도 웃음도 될 테지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씨앗 한 톨을 심는 마을 한켠 책집이라면, 이 책집이 깃든 고장은 앞으로 어떻게 흐드러질 숲으로 푸르게 퍼질까요.


  대학교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앞에 책집이 적어도 한두 곳씩 태어나면 좋겠습니다. 큰길가보다 골목 한켠이며 저잣길 한쪽에 책집이 한 곳씩 자라나면 좋겠습니다. 마을도서관도 좋은데, 마을책집이 언제나 함께하면 더욱 좋겠어요. 살림을 가꾸는 살림집처럼, 책으로 삶을 사랑하는 길을 나누는 책집이 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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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최혜진 글·신창용 사진, 은행나무, 2016)

《왜냐면》(안녕달, 책읽는곰, 2017)

《시간 상자》(데이비드 위즈너, 베틀북, 2007)

《Haamuvoimi》(Jacques Duquennoy, nemokustannu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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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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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책한테 (2018.3.31.)

― 도쿄 진보초 〈慶文堂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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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하고 꽃하고 열매를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문학은 사전을 옆에 여러 자락 놓는다 하더라도 옳게 옮길 수 없습니다. 이웃나라에 가서 문학을 배우거나 석사·학사·박사가 되더라도 잘 옮기지 않습니다. 살림을 읽고 삶을 알며 이웃나라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사랑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숲도 알고 풀꽃나무도 읽어야지요. 밥짓기랑 옷짓기도 알아야 하고, 살림이며 빨래나 아이돌보기도 즐거이 맡아야 합니다. 이 여러 가지를 모르는 채 어떤 책을 제대로 옮길 수 있을까요? 이 여러 가지를 모르면서 문학비평을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해가 없으면 푸나무도 죽고 사람까지 죽습니다. 비바람이 없으면 푸나무뿐 아니라 사람도 죽습니다. 냇바닥에 시멘트를 덮으면 물살림도 죽고 사람도 죽어요.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터는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생각하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늘나라(천국)’에 가려고 살아가지 않겠지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꿈을 지으려고 살아갈 테지요. ‘죽은 뒤’에 갈 하늘나라가 아닌, 바로 오늘 이곳에서 두 다리로 디디는 하늘나라를 누릴 노릇이겠지요. 언제나 오늘 이곳에서 즐거워야지 싶어요.


천천히 천천히 걷습니다. 책을 보면서, 책집골목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틈틈이 나무를 쓰다듬으면서, 봄꽃송이를 올려다보면서, 이 하루를 오늘 이곳을 사랑하자고 생각합니다. 〈慶文堂書店〉 앞에 이릅니다. 눈에 뜨이는 책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샘솟는 마음, ‘이 책집을 통째로 사고 싶어!’


일본이 만화를 널리 읽거나 아끼기에 오랜 만화책을 쉽게 만난다고 말하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책을 책으로 여기는 눈길이 알뜰하기에 꽤 묵은 책도 어렵잖이 만나고 되읽고 돌아볼 만하지 싶습니다. 만화는 만화이면서 책이 됩니다. 그림은 그림이면서 책이 되지요. 사진은 사진이면서 책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만화책이나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그저 책으로’ 깊이 마주하는 살림이 얕아요. 그림책을 놓고는 마음을 기울이는 이웃님이 꽤 늘었습니다만, 만화책하고 사진책이 널리 사랑받기까지는 한참 남았지 싶어요. 아이를 안 낳았어도 누릴 그림책이요, 어린이가 아니어도 즐길 만화책이며, 사진을 찍는 일을 안 하더라도 나눌 사진책이에요.


책이라고 하는 종이꾸러미에 감도는 빛살을 느끼면서, 이 종이꾸러미가 태어난 숨결을 짚을 줄 안다면, 책읽기를 넘어 사회읽기·역사읽기·문화읽기를 슬기로이 하는 눈썰미로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慶文堂書店〉에서 사진책 두 자락을 고르고 셈합니다. 뭇책이 저를 쳐다보면서 “더! 더!”라든지 “나도! 나도!”를 외칩니다. 제 손으로 쥐어서 펼쳐 주기를 기다리는 책이 끝없이 외치는데, 이 외침을 못 들은 척할 마음은 없어요. 나긋나긋 속삭입니다. “내가 오늘 만나는 이 책 하나가 다릿돌이 되어 곧 너희를 만나겠지? 너희는 나한테 올 수도 있지만 다른 이웃님한테 갈 수도 있겠지? 우린 어느 곳에 있어도 마음으로 만날 수 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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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路の煙》(長谷川英紀, 六法出版社, 1971)

《NEPAL》(Pierre Toutain, ubspd,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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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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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한테서 배운 마음읽기 (2014.3.6.)

― 서울 〈숨어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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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어떻게 옛 보금자리로 돌아올까 궁금하곤 합니다. 제비한테 물어보면 째째째 노래합입니다. 째째째 노래를 듣다가 쳇쳇쳇 하고 대꾸를 하니 제비는 다시 째째째 노래하네요. 문득 다시 생각합니다. 얼핏 보면 ‘제비는 사람말을 못 하고, 사람은 제비말을 못 한다’고 여길 만한데, 입으로만 읊는대서 제비가 알아들을는지 몰라도, 저는 제비가 입으로 읊는 소리를 말로 바꾸어 내지 않으면 끝까지 서로 이야기가 안 되겠네 싶어요.


이제 눈을 감습니다. 입은 닫습니다. 제비한테 마음으로 묻습니다. “넌 어떻게 여기로 돌아올 수 있니?” “어라? 너도 이제 마음으로 말을 할 줄 아네? 진작 좀 그러지 그랬니? 우리는 언제나 마음 가득 오직 이 하나를 생각하면서 살았어. 서로서로 다음에 날아갈 곳을 그리며 날마다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며칠쯤 아무것도 안 먹고 안 마시고 날아서 여기 오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아. 우리한테는 이곳이 아주 크게 보이거든.” “아, 그래, 그렇게 날아다니며 하늘을 가로질렀구나.”


제비는 어떤 냄새를 맡으면서 살까요? 우리는 어떤 냄새를 받아들이면서 사는가요? 태평양을 가로지르면서 온몸에 담는 냄새는 무엇일까요? 제비가 그동안 살던 고장은 어떤 내음이 가득했을까요? 봄이 된 이곳에 찾아온 제비는 이곳에서 농약바람을 쐬는가요, 아니면 푸근한 숲내음을 누리는가요?


헌책집 〈숨어있는 책〉에 깃들어 묵은 시집이며 묵은 책을 잔뜩 장만합니다. 이렇게 묵은 책을 장만해서 읽는 저를 만나는 이웃님은 “하, 최 작가, 최 작가는 왜 이렇게 고리타분한 책을 보시나? 젊은 사람이 고리타분한 책을 보면 정신도 고리타분해지지 않나?” 하고 얘기합니다. 빙긋 웃습니다. “새로 나온 책을 읽으면 모두 새마음에 새빛에 새사랑에 새몸이 되는가요? 글쎄요, 돈을 치러 살 적에는 헌책이나 새책으로 가르겠지만, 두 손에 쥘 적에는 오로지 책이에요. 무엇보다 종잇조각이란 껍데기가 아닌, 종잇조각에 얹은 마음을 읽자면 아무리 고리타분한 종이에 찍은 책이어도 늘 새롭게 빛나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노래가 흐르던걸요.” “헌책에서는 곰팡내가 나잖아?” “폴리로 짠 옷에서는 화학약품 냄새가 고약한걸요? 저는 오직 마음에서 피어나는 숲내음을 만나려고 어떤 책이든 다 읽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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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일본 동요시선》(박병엽 옮김, 진영출판사, 1988)

《영선못의 봄》(최계복, 문사철, 2010)

《천 년의 바람》(박재삼, 민음사, 1975)

《사랑이여》(박재삼, 실천문학사, 1987)

《朝漢飜譯敎程》(張敏, 北京大學出版社, 1992)

《중국명승고적》(김광성, 연변인민출판사, 1994)

《중국조선족문화론》(김경일, 료녕민족출판사, 1994)

《ソウエト旅行記》(ジトド/小松淸 옮김, 岩波書店, 1937)

《幸福な王子》(ワイルド/西村孝次 옮김, 新潮社, 1968)

《금각사》(미시마 유끼오/계명원 옮김, 삼중당, 1975)

《인류의 여덟가지 죄악》(콘라드 로렌쓰/임석진 옮김, 분도출판사, 1974)

《몽실 언니》(권정생, 창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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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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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면서 사랑하고 만나는 (2014.2.18.)

― 서울 〈우리 동네 책방〉



저는 여수화학단지에 가 보고 싶지 않습니다. 포항제철이라든지 인천 남동공단에도 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이 둘레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기에 인천 남동공단 둘레로 늘 지나다녔고 주안공단이나 월미도공단도 언제나 쳐다보며 살았어요. 텃마을 동무는 만석동 공단 곁에서 언제나 공장바람을 마시며 살았고, 숭의동 철길 옆에서 탄가루와 엄청난 소리를 먹으며 살았어요.


모두들 만만하지 않은 삶터에서 하루를 여밉니다. 모두들 고단하기도 하고 고달프기도 한 삶을 잇습니다. 그런데 고단하거나 고달프더라도 조그마한 마당에 나무를 심어요.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어요. 꽃씨를 심고 풀씨를 심습니다. 배추 한 포기를 얻고 고추 몇 줌 얻습니다. 큰길에서 보면 초라하거나 어두컴컴한 모습이라 할 테지만, 골목에 들어서면 환하면서 아기자기합니다. 큰길에서는 자동차 소리로 시끄러우며 공장 굴뚝이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골목에 깃들면 조용하면서 도란도란 오붓한 밥내음과 꽃내음이 퍼집니다.


마을책집은 먼발치서 보면 눈에 안 띄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마을책집은 책 한 자락에 마음을 살찌우는 씨앗을 품고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누구라도 언제나 마음꽃씨를 나누어 받는 마을책집입니다.


자꾸 자리를 옮기는 〈우리 동네 책방〉을 찾아듭니다. 아기자기한 책이 쏠쏠한 이곳을 아낄 이웃님이 조금 더 늘어난다면, 책마다 흐르는 마음꽃씨를 나누어 받을 이웃님이 눈을 밝히면 이곳은 든든히 뿌리를 내리겠지요.


작은 마을책집에는 다문 만 자락이나 이만 자락 책만 있어도 넉넉합니다. 작은 헌책집에 삼만 자락이나 사만 자락 책만 있어도 푸집니다. 아니 즈믄 자락 책이어도 좋아요. 더 많은 책보다 아름다운 책이면 됩니다. 더 큰 책집보다 사랑스러우면서 따사로운 책터이면 됩니다.


책집이란 책터요 책쉼터이면서 책사랑터이고 책만남터입니다. 책으로 쉬고 책으로 사랑하며 책으로 만납니다. 책으로 꿈꾸고 책으로 노래하며 책으로 일해요. 책으로 웃고 춤추며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스러운 마을책집은 그냥그냥 두어도 사람들이 즐겁게 알아보면서 활짝 웃으며 찾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요. 꾸미기보다는, 가꾸면 됩니다.


민들레 곁에 냉이가 있고, 냉이 곁에 꽃다지가 있고, 꽃다지 곁에 코딱지나물이 있고, 코딱지나물 곁에 잣나물이 있고, 잣나물 곁에 봄까지꽃이 있고, 봄까지꽃 옆에 갈퀴덩굴이 있고, 갈퀴덩굴 곁에 달걀꽃이 있고, 달걀꽃 곁에 쑥이 있고, 쑥 곁에 달래가 있고, 달래 곁에 돌나물이 있고, 돌나물 곁에 도깨비바늘이 있고, 도깨비바늘 곁에 소리쟁이가 있고 …… 다 다른 들꽃이 어우러지듯 다 다른 마을가게가 어우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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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ブ-タン》(太田 大八, こぐま社, 1995)

《ガンバレ!! まけるな!! ナメクジくん》(三輪一雄, 偕成社,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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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찾아간 지 여섯 해. 아니, 다시 찾아가기를 여섯 해를 기다린다고 해야겠지. 잘 계시지요, 책집지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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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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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바라본다 (2018.3.14.)

― 부산 보수동 〈알파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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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집에는 새로 나온 책만, 더구나 베스트셀러하고 유명작가 책이 한복판을 크게 차지합니다. 흔하고 판에 박힌 책이 가득합니다. 이와 달리 헌책집은 똑같은 책을 여럿 꽂거나 갖추는 일이 드물어요. 헌책집 책꽂이는 어느 고장 어느 헌책집을 가도 ‘다 다른 책을 빼곡하게 건사하는 차림새’입니다. “굳이 헌책집까지 책을 보러 갈 까닭이 있나?” 하고 묻는 분한테 “헌책집을 다니며 다 다른 아름책을 만나고 보면, 이다음에 새책집을 다니는 눈썰미가 한결 그윽하게 거듭나는걸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요즈음 책을 비롯해서 해묵은 책에다가 나라밖 갖가지 책이랑 비매품까지 고루고루 품는 책숲이 헌책집이에요.


책집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스윽스윽 파랑 나물을 다듬는 〈알파서점〉 지기님입니다. “뭘 이런 모습도 찍으려고 해?” “이렇게 살림하는 모습이니 더더욱 책집을 살가이 보여줄 만한걸요. 살림하는 책집인걸요.”


오늘 우리는 책집을 찾아가거나 셈틀이나 손전화를 켭니다. 책집은 이제 큰길보다는 마을 안쪽으로 깃듭니다. 갖은 시끌벅적한 물결하고 어느 만큼 등진 골목에 자리잡는 책집으로 찾아가자면 자가용은 안 어울립니다. “차를 세울 자리가 없으면 가기 어렵잖아요.” 하고 묻는 분이 꽤 많아 “책집에 갈 적에는 자전거를 타 봐요. 바람을 천천히 가르며 마을을 느끼면서 가면 상큼하답니다. 두 다리로 더 천천히 걸으며 골목을 누린다면 우리 손에 쥔 책이 훨씬 싱그러울 테고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책집으로 마실하며 도란도란 수다꽃을 피울 만합니다. 책집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만난 책으로 다시 수다꽃을 피울 만해요.


시골에 없는 책집을 찾아 여러 고장을 떠돌다 보면 길에서 보내는 틈이 깁니다. “자가용으로 다니면 시간도 아끼고 책짐도 안 무겁잖아요? 최종규 씨도 자가용 좀 몰아 보지요?” “손잡이를 쥐면 책을 못 읽어요. 자가용 값에, 기름값에, 보험삯으로 돈을 쓰기보다는 책값에 쓰고 싶어요. 정 책짐이 무거우면 택시를 타지요. 길에서 오래 보내는 만큼 쉬엄쉬엄 ‘이 골목하고 마을을 떠올리며 동시를 쓸 수 있’으니, 시를 쓰고프다면 두 다리로 책집마실을 해보시면 좋겠다고 여쭐게요.”


우리가 누리책집에서 책을 장만하더라도 이모저모 살피느라 품하고 겨를을 꽤 들여야 합니다. 다리품만 품이 아니에요. 또각또각 누리는 손짓도 품입니다. 게다가 누리책집에서 책을 살피자면 몇 가지에서 그치지만, 책집에 닿아 휘 둘러보면 이 어마어마한 책이 모두 우리 읽을거리로 품에 안깁니다.


자동차를 달리자면 앞만 보면서 옆거울을 흘깃거릴 뿐, 하늘도 이웃도 마을도 쳐다보기 어렵습니다. 셈틀·손전화로 책을 장만하자면 ‘시킬 책’만 바구니에 담을 뿐, 우리를 둘러싼 숱한 책바다에서 헤엄치기 어렵습니다. 마을을 걸으면서 마을을 봅니다. 숲을 거닐면서 숲을 봅니다. 아이하고 손을 잡고 걷기에 아이 손끝에서 우리 손끝으로 옮는 따사로운 사랑을 누립니다. 걸으면서 바라보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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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용해 전집 1∼6》(예용해, 대원사, 1997)

《산시로》(나츠메 오소세키/최재철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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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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