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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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늘 만나는 (2017.5.1.)

― 순천 〈책방 심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소지품검사를 하며 책을 빼앗든 말든 등짐에 ‘교과서도 참고서도 아닌 책’을 대여섯 자락씩 챙겨서 다녔어요. 쉴틈이나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하며 이 책을 한 자락씩 꺼내어 읽었어요. 도시락을 먹으면서 읽고, 버스로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에 읽으며, 걸어다니는 동안에도 읽었어요. 하루에 대여섯 자락씩 챙기고 다녀도 그리 어렵잖이 다 읽을 만했어요.


  아이랑 살며 아이읽기로 부산합니다. 아이는 책보다 아이 눈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아이는 꽃내음을 큼큼 맡으며 책보다 꽃읽기를 하라고 부릅니다. 아이는 비바람을 마시면서 책보다 비읽기랑 바람읽기를 하자고 손짓합니다.


  아이는 한결 넓고 깊이 책을 읽도록 부추깁니다. 종이에 글씨를 얹는 책뿐 아니라 돌멩이라는 책, 소꿉이라는 책, 눈짓이라는 책, 구슬땀이라는 책, 자장노래라는 책, 별빛이라는 책을 함께 읽자고 잡아당겨요. 이 여러 가지가 새삼스레 하루를 북돋아 주었기에, 두 아이하고 살아낸 열 해를 갈무리해서, 큰아이가 열 살을 맞이한 해를 기려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을 썼지요. 마침 이 책을 〈책방 심다〉에서 ‘이달 심다 책’으로 뽑아 주었습니다. 신문도 방송도 이 책을 다룬 적이 없지만 마을책집에서 알아보아 주니 반갑습니다. 서울에서 바깥일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심다〉에 들르니, 이 책을 미리 맡으신 분이 책 안쪽에 이름을 적어 주기를 바라셨다고 하면서 내밉니다. 기꺼이 붓을 쥡니다. “씨앗 선생님. 풀씨가 앉아서 풀밭 되고, 꽃씨가 앉아서 꽃밭 되며, 나무씨가 앉아서 숲이 되니, 저마다 고운 마음씨가 고요히 앉아서 사랑이 됩니다.” 하고 적습니다.


  〈심다〉에는 이 책집에 와야 읽을 수 있는 책이 꽤 돼요. 팔지 않는 책입니다. 나눔읽기를 하는 책이지요. 이 가운데 《Little Tree》(Katsumi Komgate)가 있는데, 곱게 펼치면서 나무를 돌아보는 그림책을 보다가 “삶을 사랑하며 시골에서 곁님·아이들·나를 돌보는 길에 책을 고이 돌아본 이야기를 살포기 책 한 자락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같은 글자락을 90칸 글종이에 적어서 책집지기님한테 건넵니다.


  이곳에 씨앗 한 톨이 있습니다. 씨앗 한 톨은 풀도 꽃도 나무도 되지만, 사랑도 꿈도 노래도 됩니다. 이윽고 책도 이야기도 웃음도 될 테지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씨앗 한 톨을 심는 마을 한켠 책집이라면, 이 책집이 깃든 고장은 앞으로 어떻게 흐드러질 숲으로 푸르게 퍼질까요.


  대학교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앞에 책집이 적어도 한두 곳씩 태어나면 좋겠습니다. 큰길가보다 골목 한켠이며 저잣길 한쪽에 책집이 한 곳씩 자라나면 좋겠습니다. 마을도서관도 좋은데, 마을책집이 언제나 함께하면 더욱 좋겠어요. 살림을 가꾸는 살림집처럼, 책으로 삶을 사랑하는 길을 나누는 책집이 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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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최혜진 글·신창용 사진, 은행나무, 2016)

《왜냐면》(안녕달, 책읽는곰, 2017)

《시간 상자》(데이비드 위즈너, 베틀북, 2007)

《Haamuvoimi》(Jacques Duquennoy, nemokustannu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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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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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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