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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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책한테 (2018.3.31.)

― 도쿄 진보초 〈慶文堂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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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하고 꽃하고 열매를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문학은 사전을 옆에 여러 자락 놓는다 하더라도 옳게 옮길 수 없습니다. 이웃나라에 가서 문학을 배우거나 석사·학사·박사가 되더라도 잘 옮기지 않습니다. 살림을 읽고 삶을 알며 이웃나라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사랑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숲도 알고 풀꽃나무도 읽어야지요. 밥짓기랑 옷짓기도 알아야 하고, 살림이며 빨래나 아이돌보기도 즐거이 맡아야 합니다. 이 여러 가지를 모르는 채 어떤 책을 제대로 옮길 수 있을까요? 이 여러 가지를 모르면서 문학비평을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해가 없으면 푸나무도 죽고 사람까지 죽습니다. 비바람이 없으면 푸나무뿐 아니라 사람도 죽습니다. 냇바닥에 시멘트를 덮으면 물살림도 죽고 사람도 죽어요.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터는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생각하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늘나라(천국)’에 가려고 살아가지 않겠지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꿈을 지으려고 살아갈 테지요. ‘죽은 뒤’에 갈 하늘나라가 아닌, 바로 오늘 이곳에서 두 다리로 디디는 하늘나라를 누릴 노릇이겠지요. 언제나 오늘 이곳에서 즐거워야지 싶어요.


천천히 천천히 걷습니다. 책을 보면서, 책집골목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틈틈이 나무를 쓰다듬으면서, 봄꽃송이를 올려다보면서, 이 하루를 오늘 이곳을 사랑하자고 생각합니다. 〈慶文堂書店〉 앞에 이릅니다. 눈에 뜨이는 책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샘솟는 마음, ‘이 책집을 통째로 사고 싶어!’


일본이 만화를 널리 읽거나 아끼기에 오랜 만화책을 쉽게 만난다고 말하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책을 책으로 여기는 눈길이 알뜰하기에 꽤 묵은 책도 어렵잖이 만나고 되읽고 돌아볼 만하지 싶습니다. 만화는 만화이면서 책이 됩니다. 그림은 그림이면서 책이 되지요. 사진은 사진이면서 책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만화책이나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그저 책으로’ 깊이 마주하는 살림이 얕아요. 그림책을 놓고는 마음을 기울이는 이웃님이 꽤 늘었습니다만, 만화책하고 사진책이 널리 사랑받기까지는 한참 남았지 싶어요. 아이를 안 낳았어도 누릴 그림책이요, 어린이가 아니어도 즐길 만화책이며, 사진을 찍는 일을 안 하더라도 나눌 사진책이에요.


책이라고 하는 종이꾸러미에 감도는 빛살을 느끼면서, 이 종이꾸러미가 태어난 숨결을 짚을 줄 안다면, 책읽기를 넘어 사회읽기·역사읽기·문화읽기를 슬기로이 하는 눈썰미로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慶文堂書店〉에서 사진책 두 자락을 고르고 셈합니다. 뭇책이 저를 쳐다보면서 “더! 더!”라든지 “나도! 나도!”를 외칩니다. 제 손으로 쥐어서 펼쳐 주기를 기다리는 책이 끝없이 외치는데, 이 외침을 못 들은 척할 마음은 없어요. 나긋나긋 속삭입니다. “내가 오늘 만나는 이 책 하나가 다릿돌이 되어 곧 너희를 만나겠지? 너희는 나한테 올 수도 있지만 다른 이웃님한테 갈 수도 있겠지? 우린 어느 곳에 있어도 마음으로 만날 수 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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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路の煙》(長谷川英紀, 六法出版社, 1971)

《NEPAL》(Pierre Toutain, ubspd,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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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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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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